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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81) 제6공화국 : 이명박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본문

코리아시대/대한민국

대한민국 (81) 제6공화국 : 이명박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대야발 2025. 7. 19. 16:22

 

 

 

 

 

 

■ [취재파일] 2010년 11월 23일..'연평도 포격전'인가, '연평도 포격 도발'인가

김태훈 기자2020. 11. 23. 10:18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 4군단의 방사포 공격으로 연평도 포격전은 시작됐습니다.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는 북한 방사포탄을 맞으면서 단 13분 만에 반격했습니다. "대응이 늦었다", "논바닥만 때렸다"고 비아냥대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지만 연평부대는 말 그대로 혼신을 다해 버티며 싸웠습니다.

 

K-9 자주포 안으로 화염이 쏟아져 들어오고, 고막 터져 정신 잃고, 포탄 옆에 붙은 불 끄고, 끊어진 케이블 이으면서 포7중대는 무도를 공격해 큰 전과를 거뒀습니다. 그라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숱한 실전을 경험한 당시 한미연합사 존 맥도널드 작전참모장은 "갑자기 포탄이 날아와 옆 동료가 숨졌는데 13분 후 현장에 나가 사격했다", "쉬울 것 같나? 바깥에서는 몰라도 우리는 그 용기를 안다"고 말했습니다.

 

 

북의 포격에 불붙은 포 7중대 진지. 방사포 공격에 숨지 않고 정훈장교 이성홍 대위가 촬영했다. 연평도 포격전의 상징과도 같은 붙 타는 자주포도 교전 중에 이 대위가 촬영한 것이다.

 

 


비록 서정우, 문광욱 해병을 잃었지만 연평부대는 맹렬하게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래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벌어진 사건은 분명히 연평도 포격전입니다. 전사한 두 해병이 묻힌 곳도 대전 현충원의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입니다. 연평도 평화공원에는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피탄 충격에 날아가 소나무에 박힌 고 서정우 해병의 정모 앵카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부르는 공식 명칭은 연평도 포격 도발입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고 하면 주체는 북한군 4군단이고, 객체는 해병대 연평부대입니다. 연평부대는 수동적으로 당했다는 뜻이 됩니다.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하면 해병대 연평부대는 북한 4군단에 맞서 싸운 주체가 됩니다. 연평부대는 제 자리를 지키며 싸웠고, 총구도 북한 4군단이 먼저 내렸습니다. 연평부대는 먼저 맞았지만 받아쳐 끝을 봤습니다. 오늘은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기가 아니라 연평도 포격전 10주년입니다.

 

 

● 연평도 포격전으로 가다 멈춘 사연

해병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부르자는 건의를 2012년 처음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쟁 범죄 여부를 조사하던 때라 국방부는 "ICC 결론이 나올 때까지 도발로 칭하라"고 정리했습니다.

 

2015년 들어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ICC는 '관할권 없음'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북한 4군단의 포격을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노린 전쟁 범죄라고 단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니 ICC가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무력 행사가 정당하다는 결정은 아니어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재조사는 가능한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때마침 해병대가 연평도 포격전 개명을 국방부에 요청했고, 국방부는 긍정적으로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ICC가 애매한 의견을 낸 터라 우리 정부가 자체적으로 2010년 11월 23일을 정의하면 되는 사정이었습니다. 5주년을 앞두고 "연평도 포격 도발의 공식 명칭을 포격전으로 바꾼다"는 기사가 여럿 나왔습니다. 기자도 대변인에게 "'연평도 포격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기사를 써도 되느냐"고 물었고, 대변인은 "그렇게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국방부는 해병대만 내부적으로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부르고, 정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로 칭하기로 정리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기준은 변함없습니다.

 

 

● 추모식 명칭도 제각각

오늘(23일) 연평도 포격전 10주년 행사는 대전 현충원과 연평도 평화공원에서 열렸습니다. 해병대는 대전 현충원 행사를 '연평도 포격전 전투 영웅 10주기 추모 행사'라고 명명했습니다. 국방부는 같은 행사를 '연평도 포격도발 10주기 추모 행사'로, 보훈처는 평화공원 행사를 '연평도 포격도발 10주기 추모식'으로 부릅니다. 해병대만 연평도 포격전이라고 부르고, 중앙 정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고 명명했습니다.

 

 

2018년 현충일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앞서 강조했지만 대전 현충원에는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이, 연평도 평화공원에는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위령탑이 있습니다. 포격 도발 전사자 묘역, 포격 도발 전사자 위령비는 없습니다. 서정우, 문광욱 해병은 포격전 중 전사했습니다. 포7중대는 2010년 11월 23일 영웅적으로 싸웠고, 이후로 한동안 얼음처럼 차가운 자주포 안에서 먹고 잤습니다. 북한군이 또 쏘면 동시에 반격해 적진을 지도에서 지우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누가 봐도 포격전입니다.

 

 

 

연평도 평화공원에 조성된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위령탑

 

 


일각에서는 포격전으로 명명하면 북한의 불법적 도발의 성격이 옅어진다고 걱정합니다. 4군단은 도발했고, 연평부대는 도발에 굴하지 않고 포격전을 치른 것입니다. 포격전이라 불러도 도발의 성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NLL 인근을 국제 분쟁 지역화하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포격 도발이라고 부른 들 NLL은 평화 지역이 되지 않습니다.

 

 

벌써 10년입니다. 10년을 포격 도발로 살았으니, 내년부터라도 정부가 포격전이라고 명명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연평부대원들은 그 흔한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훈장은 못 줬지만 그들이 치른 포격전을 포격전이라고 불러서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1)

 

 

 

■ [섬, 하다] 15주기 앞둔 연평도 포격전…그날의 흔적은 지금도

이나라 기자2025. 7. 14. 15:02
 
포탄 7발이 400여채 피해…샌드위치 패널·밀집구조가 화재 키워
“포성 들리면 밥 먹다 말고 나가요”…15년 지나도 일상 속 긴장감
 
▲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지붕이 주저 앉아 있었고, 콘크리트 벽은 곳곳이 가라져 있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2025년 6월 23일 오전 10시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안보교육장. 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내려 앉은 민가 세 채가 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금이 간 벽 사이로 철골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바닥에는 깨진 장독대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붉게 녹슨 액화석유가스(LPG) 통이 쓰러져 있었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탄이 직격한 민가의 잔해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부서지고 있어요. 골절된 뼈에 핀을 박듯이 철제 빔을 설치해 벽이 버티고 있는 거예요."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가 연평도 안보교육장에 보존된 피해 민가 앞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64)는 철제 빔이 덧대어진 벽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같이 설명했다.

당시 북한은 연평도에 약 1시간 동안 170여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이곳을 포함해 면사무소 창고, 수협, 우체국 등 민간지역 7곳에 포탄이 떨어졌다. 피해 주택은 400여 채, 그중 52채는 전소되거나 붕괴됐다. 주민들은 빠르게 대피했지만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숨졌고, 40여 명이 다쳤다.

 

 

연평도는 전체 면적의 80%에 군사 시설이 들어서 있다. 군부대는 북쪽에 집중돼 있고, 주민들은 남쪽 일부 지역에 모여 살아간다.

 

 

"연평도 집들은 옆집하고 처마가 붙어 있을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 있어요. 마당도 없고, 집 앞이 바로 도로죠."

 

 

빽빽한 주거 구조 탓에 포탄이 몇 발만 떨어져도 피해는 불덩어리처럼 커졌다. 당시 연평도 대부분 집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한 집에서 불이 나면 옆집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하지만 민간 소방차는 단 한 대뿐이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발생한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 안 해설사가 안보교육장 2층 전시관에서 포격전 이후 피해 복구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지금도 마을 곳곳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 외벽에 슬라브 지붕을 얹은 집들이 눈에 띄는데, 모두 포탄으로 무너졌던 주택을 정부가 복구한 것이다. 모양도 색도 비슷해 당시 피해를 입은 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는 포격 당시 어머니가 연평도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포격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연락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한참 지나 연락이 닿았는데 다행히 대피소에 계셨다고 하셨죠."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도 긴장 속에 일상을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도 포성 소리가 들리면 밥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가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연평도에는 대피소가 10곳 있다. 비상식량, 취사실, 비상진료소, 와이파이까지 갖춰져 있어 일주일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평소엔 주민들이 사물놀이 연습하고 색소폰 연주하는 동아리 모임 장소로 쓰인다.

 
 
 
▲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 해병대, 해군 모든 군인을 믿어요. 지금까지도 잘 지켜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 지켜줄 거라 믿습니다."(2)

 

 

 

 

<자료출처>

 

 

(1) [취재파일] 2010년 11월 23일..'연평도 포격전'인가, '연평도 포격 도발'인가

 

 

(2) [섬, 하다] 15주기 앞둔 연평도 포격전…그날의 흔적은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