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대한민국 (104) 제6공화국 : 윤석열 정부(2022년 5월 10일~2025년 6월 3일) 2023년 7월 19일 채상병 사건 본문
대한민국 (104) 제6공화국 : 윤석열 정부(2022년 5월 10일~2025년 6월 3일) 2023년 7월 19일 채상병 사건
대야발 2025. 7. 30. 16:21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쯤 속보가 날아들었다. 한반도에 들이닥친 기습폭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수색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포7대대 본부중대 병사가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실종됐다. 실종된 해병은 2022년 3월 입대한 채모 상병(당시 일병). 그를 찾기 위해 해병대와 소방당국이 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날 밤 11시 7분쯤 보문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채 상병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군이 국민 생명을 지키는 작전을 한 것을 나무랄 순 없지만, 이때 해병대원 투입 작전은 지나치게 '무리한 수색'이었음이 서서히 밝혀졌다. 채 상병이 동료 해병대원 5명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손을 잡고 일렬로 줄지어 한 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채 상병 말고도 장병 4명이 수색 도중 강물에 떠내려갈 뻔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①: 박정훈은 어쩌다 항명수괴가 되었나
작년 7월 실종자 수색하던 채상병의 순직
박정훈 대령, 사단장 등 8명 책임자 지목
이첩 동의하던 장관, 용산과 연락 후 선회
국방부, 박정훈을 항명수괴로 몰며 입건
편집자주
다시 여름이,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7월 집중호우 때 해병대 병사가 거친 물살에 휘말려 순직했습니다. 그 죽음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바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터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해 7월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채 상병 순직 후 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은 왜 사단장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누가 과연 수사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잘 모르셨다면, 한국일보의 트릴로지 기사만 보면 전모를 다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나눠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속보] 예천서 산사태 수색하던 해병대원 실종'
지난해 7월 19일 오전 9시쯤 속보가 날아들었다. 한반도에 들이닥친 기습폭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수색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여단 포7대대 본부중대 병사가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 실종됐다. 실종된 해병은 2022년 3월 입대한 채모 상병(당시 일병). 그를 찾기 위해 해병대와 소방당국이 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날 밤 11시 7분쯤 보문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채 상병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군이 국민 생명을 지키는 작전을 한 것을 나무랄 순 없지만, 이때 해병대원 투입 작전은 지나치게 '무리한 수색'이었음이 서서히 밝혀졌다. 채 상병이 동료 해병대원 5명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손을 잡고 일렬로 줄지어 한 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채 상병 말고도 장병 4명이 수색 도중 강물에 떠내려갈 뻔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해병대 수사단 "혐의자는 8명"

누가, 왜 이렇게 무리한 수색작전을 지시했던 걸까. 구명조끼를 입었거나,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는 아니었을까. 과연 어느 지휘라인까지 책임을 물려야 하는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 박정훈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 사망 이튿날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익사 사고 발생 경위 △안전장구(로프·구명조끼 등) 미휴대 경위 △강물 입수 경위 △제대별 지휘관 및 안전통제 간부의 업무상 과실 여부를 밝히는데 집중했다.
수사단은 당시 현장 간부들과 생존 해병 등을 8일 동안 조사한 끝에 채 상병 사망은 인재(人災)라고 결론 내렸다. ①지휘관(중·대대장)의 작전준비가 미흡한 탓에 임무수행에 필요한 안전장구를 휴대하지 못했고 ②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전이 실시됐으며 ③상급자의 지적으로 현장의 지휘관이 지휘부담을 느껴 허리 아래 수중 수색을 지시한 것이 채 상병 사망 원인으로 지목됐다.
책임자로 간부 8명이 거론됐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소장) △박모 7여단장(대령진) △최모 포병11대대장(중령) △이모 포병7대대장(중령) △장모 본부중대장(중위) △노모 중위 △김모 상사 △박모 중사가 그 대상이었다. 박 대령은 지난해 7월 28~30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하고 결재도 받았다.
이때까지 상황으로만 보면 군과 국방부 차원에서 할 일은 다했던 셈이다. 남은 건 7월 31일 국회에 채 상병 사망 경위를 보고한 뒤, 해병대 수사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나서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는 일뿐이었다.
수사단장, 항명의 수괴가 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뭐가 꼬이기 시작한다. 바로 7월 31일이다. 그날 일정은 갑자기 취소됐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전 장관은 통화 직후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는 걸 보류하고 언론브리핑도 취소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국회 보고도 취소됐다.
이 전 장관은 이어 오후 1시 30분 채 상병 사건 관련 현안 토의를 열었다. 참석자는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이었다. 참석자들의 군 검찰 진술 등을 종합하면 이 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정 전 부사령관에게 '경찰 이첩은 법무관리관과 협의해 나의 출장 복귀 이후에 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토의 직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 8월 3일 귀국했고, 이첩 보류 지시는 김 사령관을 통해 박 대령에게 전달됐다.

박 대령은 이 지시를 단순히 '이첩을 멈추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5회에 걸친 유 관리관과의 통화, 김 사령관과의 독대 이후 '사건 인계서에서 죄명과 혐의자를 빼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튿날인 8월 1일 김 사령관과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등이 배석한 해병대 간부 회의에서 "수사 과정에서 상급제대 의견에 따라 사건의 혐의자를 변경하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며 "언론 등에 노출되면 BH(대통령실)와 국방부는 정치적·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박 대령은 결국 이 전 장관이 귀국하기 전날인 8월 2일 오전 11시쯤 사건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 "이첩을 중단하라"는 김 사령관 지시도 듣지 않았다. 김 사령관은 이 전 장관과 함께 해외에 있던 박 전 군사보좌관에게 상황을 알렸고, 결국 이 전 장관은 박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과 수사를 지시했다. 곧이어 수사에 나선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의 수괴(首魁)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적용했다. 수사서류를 이첩한 해병대 1광수대장 등을 모두 항명한 것으로 보고 집단항명죄를 선택한 뒤, 그 우두머리로 박 대령을 지목한 셈이다. 군형법상 집단항명 수괴는 △적전인 경우 사형(다른 법정형이 없음) △전시·사변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그 밖의 경우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직접 사건 회수한 국방부
결국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저녁 직접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순식간에 항명범으로 몰린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의 전방위 수사를 받았고, 해병대 수사단 조사기록도 국방부 조사본부가 맡아 전면 재검토했다.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조사본부는 8월 14일 재검토 중간 보고에서는 노 중위 등 초급 간부 2명을 제외한 임 전 사단장 등 6명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으나, 결국 8월 20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과 국방부 검찰단 의견을 받아들여 최모 중령과 이모 중령 혐의만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8월 24일에는 이런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재이첩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8월 30일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군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자 10월 6일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령은 이첩을 보류하고, 이첩을 중단하라는 정당한 명령을 받았는데도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박 대령이 "이 전 장관이 '사단장을 형사처벌 대상에서 빼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사유로 상관명예훼손 혐의도 적용했다. 이후 박 대령은 지금까지 중앙군사법원에서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투스타(소장·사단장) 입건 의견을 밝힌 대령(수사 책임자)을 '항명의 수괴'로 몰았다가, 무리하다 싶으니 다시 '항명범'으로 규정한 군의 조치는 과연 정당한 일이었을까. 군은 어떤 외부의 압력 없이, 오롯이 자체적 판단으로만 박정훈 대령을 군사재판에 세우자고 판단한 것일까.
여기서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이 불거진다. 국방장관 결정을 하루 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지를, 모두들 떠올리게 됐다. 결국 한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순직은 수사책임자의 항명죄 누명 논란을 거쳐, 권력 핵심부가 개입됐을 수 있는 '수사외압 의혹'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의 '발단' 부분이다. 그럼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어떤 식으로 채 상병 사망 수사 과정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걸까. 수사외압 의혹의 전개 과정으로 넘어가자.(1)
■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②: 결정적 순간마다 드리운 용산의 그림자
모든 동기를 설명하는 정황: VIP의 격노
대통령실 직간접 개입의혹 갈수록 커져
'대통령→용산 떠들석→사건반전' 반복
편집자주
다시 여름이,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7월 집중호우 때 해병대 병사가 거친 물살에 휘말려 순직했습니다. 그 죽음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바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터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해 7월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채 상병 순직 후 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은 왜 사단장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누가 과연 수사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잘 모르셨다면, 한국일보의 트릴로지 기사만 보면 전모를 다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나눠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의 발단 부분을 살펴보는 기사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①: 박정훈은 어쩌다 항명수괴가 되었나'에서 이어집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1713370001482)
앞의 기사에서 병사 순직의 경위를 캐던 수사 책임자가 '항명 수괴'로 낙인 찍힌 과정을 살펴봤다. 한 숭고한 병사의 희생이 '항명'과 '외압' 같은 군 내부의 반목으로 변질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선, 다시 시계를 지난해 7월 31일로 돌려야 한다. 이날이 바로, 수사 외압 의혹에서 불거진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수도 있는 'VIP(대통령) 격노설'이 불거진 날이어서다.
VIP 격노로 이첩 보류됐다?
"김계환 사령관이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수사단장이 '정말 VIP 맞습니까?' 하자,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습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해 8월 28일 군검찰에 낸 진술서를 통해, 대통령의 그림자가 최초로 드러났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뿐 아니라, 국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사건 이첩 보류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VIP 격노설을 퍼뜨린 사람으로 지적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뭐라고 해명했을까. 김 사령관은 이튿날 군검찰 진술에서 "피의자가 항명 사건을 벗어나기 위해 지어내고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의 주장은 망상"이라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되면서 'VIP 격노설'은 생명력을 유지하게 됐다.
처음엔 박 대령만 'VIP 격노설'을 들은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김계환 사령관이 VIP의 심기를 해병대 내부에서 여기저기 다 얘기하고 다녔을 단서들이 포착됐다. 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박 대령뿐 아니라, 다른 해병대 고위 간부들이 김 사령관으로부터 'VIP 격노설을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IP 격노설을 얘기한 적 없다"는 김 사령관 등의 주장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VIP 격노설을 거짓말이라고 했던 김 사령관은 21일 국회 청문회에 이르러선 "공수처 수사를 받는 사안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며 발을 빼기에 이른다.
격노설·외압설을 뒷받침하는 통신기록
여기에다, 대통령실과 군 관계자들이 수사외압 의혹 기간에 주고받은 통신기록을 보면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 내선 전화를 받고, 직후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은 이후 박 전 군사보좌관·이 전 장관 등과 통화했고, 유재은 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이첩 방법이 있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통신기록을 확인한 박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채 상병 사건 관련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고, 이 격노가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실 내부와 국방부 등으로 전달돼 이첩 보류 지시가 이어졌다고 의심한다.
대통령이 격노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군에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분노는 수사외압 의혹을 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를 설명하는 동기(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 대령 측은 '격노설'의 최초 전달자로 이 전 장관 또는 임 전 비서관을 의심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오전 11시 57분 박 전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김 사령관과 연락을 했다. 박 전 군사보좌관 휴대폰으로 이후에도 수차례 김계환 사령관과의 통화 기록이 남아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장관이 들은 얘기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을 타고 전달된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임 전 비서관의 경우 같은 날 오후 2시 56분 이 전 장관과 11분 넘게 통화했고, 같은 날 오후 5시 김 사령관과도 3분 넘게 연락했다.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회의에 참석한 인물이다.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고, 이 전 장관은 "외부 개입 없이 독자적 판단으로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414000003420)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414450005603)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314560001806)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0213520002254)
• 또 김계환이... 'VIP 격노설' 들은 세 번째 내부자 있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914520001612)
윤 대통령, 기록 회수·재배당도 관여?

통신기록이 가리키는 건 이첩 보류 지시 전후의 수상한 흐름뿐만이 아니다. 경찰에 인계한 사건 기록 회수와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착수에까지, 대통령실 관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통화기록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날은 지난해 8월 2일이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이 이 전 장관 지시를 어기고 임성근 전 사단장 등의 혐의를 인정한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인계한 시점이다. 수사단이 이날 오전 11시쯤 사건 기록을 넘긴 뒤, 윤 대통령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18분 동안 이 전 장관과 통화했고, 오후 1시 25분에는 임 전 비서관과 4분 이상 통화를 나눴다. 그 전후 임 전 비서관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유 관리관 등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도 경찰 측과 사건 기록 회수와 관련해 소통했다.
유 관리관은 이날 오후 1시 51분 사건 기록 회수와 관련해 경북경찰청 수사부장과 통화했고, 결국 국방부 검찰단은 저녁 7시 20분쯤 경찰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하는 데에 성공한다. 임 전 비서관, 이 전 비서관, 유 관리관은 사건 기록 회수 전에는 잦은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회수 직후 연락이 뚝 끊겼다. '미션'이 성공(회수 완료)했음을 보여주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군인 사망 등의 원인이 되는 범죄 수사를 민간경찰이 맡기로 한 뒤 이첩 뒤 회수는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실이 전방위적으로 사건 기록 회수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 전 장관과 유 관리관은 "국방부 검찰단의 자체 판단으로 사건 기록이 회수됐다"고 설명해왔다.

윤 대통령의 통화기록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건 재검토에 착수하기 전날에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8일 오전 7시 55분 이 전 장관과 48초간 통화했다. 이후 임 전 비서관은 나흘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이 전 비서관 및 박 전 군사보좌관과 연락을 재개했다. 박 전 군사보좌관은 이날 오후 국가안보실에 파견을 나가있던 군인과 10여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뒤 박경훈 전 조사본부장 직무대리와 번갈아 통화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 내선 전화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받은 이 전 장관은 통화 직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해,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는 걸 보류하고 언론브리핑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국방장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내선 전화 발신자도 윤 대통령 혹은 윤 대통령 지시를 바로 받은 청와대 참모라고 가정한다면, ①이첩 보류 지시 ②사건 기록 회수 ③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착수 등 수사 외압 의혹의 결정적 장면마다 '윤 대통령의 통화→군 수뇌부와 대통령실의 집중적 연락→사건 흐름의 극적인 변화'라는 패턴이 매번 관찰되는 것이다. 단순히 핵심 관계자들의 전화 횟수나 빈도가 많아서, 이 사건을 '수사 외압 의혹'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현재까지는 외압의혹이 주로 통화기록을 통한 '정황 증거'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실제로 그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아직까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의심을 뒷받침해주는 진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재은 관리관은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임기훈 전 비서관이 '경북경찰청에서 저에게 전화 올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진술했다. 임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2일 오후 1시 42분 유 관리관과 2분 이상 통화했고, 유 관리관은 그 직후 경북경찰청과 전화를 했다. 결국 대통령실이 경찰에 기록 회수에 개입했을 거란 정황은 확인된 셈인데, 공교롭게도 임 전 비서관은 유 관리관과 통화 직전인 오후 1시 25분 윤 대통령과 4분 넘게 통화했다. 윤 대통령이 기록 회수를 지시했거나 미리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 관리관의 공수처 진술 또한 결이 다르지 않다. 유 관리관은 올해 4~5월 공수처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 이시원 전 비서관과의 연락에 대해 "군 사법정책에 관해 논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장관이 지난해 7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한덕수 국무총리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최소 40회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본보 보도에 대해 "잼버리 사태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 것"이라는 정부 측 해명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유 관리관이 사건 기록 이첩 방법 등에 대해 이 전 장관에게 보고를 했던 만큼 이 전 비서관과도 관련한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011380005989)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116100000621)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3115370001069)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909380001187)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819460001930)
혐의자 축소에 항명 수사까지?

박 대령 항명 수사에 대통령실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확인이 필요하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해 8월 3일 오후 2시쯤 박 대령을 압수수색했는데, 공교롭게도 압수수색 전후로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과 세 차례에 걸쳐 총 7분간 전화를 주고받았고, 이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했다. 유 관리관, 이 전 비서관,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저녁에도 연쇄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전 검찰단장이 지난해 8월 8일 임 전 비서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6분 넘게 통화한 흔적도 발견됐다.
비록 통신기록은 확보되지 않았으나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책임이 있는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줄여 발표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공수처는 이미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로부터 박 전 군사보좌관이 혐의자 축소를 압박하는 등 조사본부 뜻만으로 재검토가 흘러간 건 아니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외압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공수처가 최대한 물증을 많이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수처는 이첩 보류 지시-사건 기록 회수-혐의자 축소 등 수사 외압 의혹의 결정적 사건마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특히 'VIP 격노설'의 경우에는 전달 통로로 꼽히는 김계환 사령관 또한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은 내용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관계자를 조사해 윤 대통령이 격노를 한 게 맞는지, 격노를 들은 다른 사람은 없는지 등을 가려내야 한다. 하지만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은 엇갈리고 있고, 이 전 장관 측은 "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공수처 조사에서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통신기록만으로 각종 의혹을 밝혀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선 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공수처는 이를 위해 올해 초 국방부 등을 압수수색해 자료를 확보하고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기초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최근에는 김 사령관 등 해병대 고위 간부들과 유 관리관과 박경훈 전 직무대리 등 국방부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공수처는 사실관계를 더욱 면밀하게 파악한 뒤에 이른바 '윗선'인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이종섭 전 장관, 임기훈·이시원 전 비서관 등을 소환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선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들의 행위가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916070005100)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819460001930)
여기서 갑자기 드는 의문. 대통령실, 국방부, 군 관계자들은 왜 그렇게나 힘을 합쳐 채 상병 사망 책임자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박정훈 대령의 수사 결론을 무리하게 뒤집으려고 했을까. 대상과 범위를 미리 특정하지 않는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가 아니라면, 모든 범죄 의혹은 '왜'라는 동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가설이 바로 '임성근 구명설'이다. 특히 박 대령 측에서 이런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에 가해진 모든 압력이 임성근 당시 해병1사단장의 이름을 빼기 위함이었다는 의심이다.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3부작 기사의 마지막 편에서는, 바로 이 동기 부분을 살핀다.(2)
■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③: 누구를, 왜 지키려고 했던 걸까
정권 위협할 정도로 커진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사실이면 범행 동기도 문제
박정훈 측 '임성근 구하기 있나' 의심
임성근 "대통령 내외와는 친분 없다"
편집자주
다시 여름이,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7월 집중호우 때 해병대 병사가 거친 물살에 휘말려 순직했습니다. 그 죽음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바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터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해 7월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채 상병 순직 후 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은 왜 사단장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누가 과연 수사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잘 모르셨다면, 한국일보의 트릴로지 기사만 보면 전모를 다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나눠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이번 회차는 3부작으로 이뤄진 전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앞선 두 기사에서 ①병사의 사망 경위를 밝히는 수사가 갑자기 항명 사건이 된 경위 ②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전개된 과정을 알아봤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171337000148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108100004811)
3부작의 마지막은 '도대체 왜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수뇌부들이 한몸처럼 나서 박정훈 대령의 수사 결과(해병1사단장 등 8명을 책임자로 지목)를 바꾸려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의혹의 '동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특히나 이렇게 권력 수뇌부가 개입된 권력형 의혹의 경우엔, 문제 행동과 관련한 동기와 지시가 없을 수 없다. 보통은 권력형 의혹의 등장인물들은 △거스를 수 없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숨겨진 이권이나 밀착 관계에 따라 △또는 무언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것(권력·이권 등)이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 재판에서 나온 관련자의 통화기록 덕분에, 지난해 7월 말에서 8월 중순 사이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수뇌부가 언제 어떤 식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지는 대부분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남은 것은 그들이 그 연락 과정에서 어떤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야 했는지다. 바로 이게 앞으로 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사단장을 빼야 했던 이유는

윤석열 정부는 채 상병 사건으로 인해 큰 곤욕을 겪었다.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고, 최근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이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과 관련이 높다. 그 덕에 다수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이용해 '채상병 특검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이 이렇게 정권의 위기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지적했듯, 군 수뇌부가 해병대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냥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냈으면 될 일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이 해병대 조사단 결론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인계서를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가 과하게 적용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국방부 조사본부로의 사건 이관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해병대 수사단과 국방부 조사본부의 결론이 다르면 군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찰로의 이첩은 보류됐고, 경찰에 넘어갔던 사건 기록은 회수됐으며, 사건을 재배당받은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 등을 혐의자에서 제외했다.
이 부분에서 박정훈 대령 측과 정치권은 '임성근 구명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혐의자에서 임 소장을 제외하려고 압력을 넣은 것이란 얘기다. 박 대령이 그렇게 의심하는 정황 증거는 이렇다. 박 대령은 지난해 군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7월 30일) 이종섭 장관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하니 장관이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느냐'라고 질문했다"고 진술했다. 또 "유재은 관리관도 8월 1일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인계서를 본 이후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업무상과실치사 죄명도 빼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임성근 구하기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
임성근 소장을 경찰 이첩 대상에서 빼려는 시도가 해병대사령관보다 더 위쪽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는 단서도 존재한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단계에선 임 소장도 책임을 지거나 보직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군검찰 진술 등을 종합하면, 임 소장은 지난해 7월 28일 오전 10시 김 사령관을 만나 보직 관련 논의를 했고, 김 사령관에게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사령관은 이어 7월 31일 오전 11시 17분 임 소장을 해병대 사령부로 분리 파견했다. 분리 파견이란 인사조치를 하기 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듯, 비위 의혹자를 부대로부터 빼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단장(임성근 소장)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됐던 분위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갑자기 바뀌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이날 낮 12시쯤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단장을 정상 출근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김 사령관은 임 소장의 분리 파견을 취소했다. 임 소장은 이어 낮 12시 54분 전산으로 휴가를 신청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휴가 신청이 석연치 않다고 본다. 파견 명령을 받고 출근을 안 했는데 갑자기 파견이 취소되는 바람에, 소급해서 휴가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이 같은 날 오후 1시 30분에 이 전 장관 주재로 열린 현안 토의에 참석해서 작성한 메모를 보면 '보고 이후 휴가 처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정 전 부사령관은 군검찰 조사에서 "회의가 끝난 후 사령부로 복귀하던 중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으로부터 '1사단장에 대해 휴가는 하루, 내일부터 정상 출근'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수뇌부가 임성근 소장의 안위를 지속적으로 챙긴 정황은 계속 있다. 박 전 군사보좌관은 지난해 8월 1일 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지난해 8월 2일에는 "1사단장은 직무 수행 중인지요?"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김 사령관은 첫 번째 메시지에는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두 번째 메시지에는 "출근해서 임무 수행 중"이라고 답했다.
이런 정황이 이어진 끝에 임 소장은 결국 혐의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국방부 조사본부(군의 최고위 수사기관)는 지난해 8월 20일 해병대 수사단과는 달리 임 소장 등 6명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임 소장 등 6명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중간보고 결론을 뒤집은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이 임성근 소장 구명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임성근 구하기' 주장은 터무니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종섭 전 장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한 이유에 대해 "초급 간부까지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하기는 과했다는 독자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지난해 군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7월 30일) 장관님께 '현장 통제 간부들까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했던 간부들은 그때의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씀드렸다"며 "장관님께서도 '나도 현장 통제 간부들이 가장 큰 고민이라, 국회·언론 설명을 중단시키면 많은 리스크가 있겠지만 중지시키는 게 맞겠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장관의 독자적 결정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이다.
이종섭 전 장관도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해 7월 30일) 법무관리관의 조언 등을 듣지 않고 성급하게 해병대 수사단 조사의 결론에 결재를 한 게 후회스럽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박 대령 측은 이런 주장이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거짓 진술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임성근 소장은 자신을 구하려는 '모종의 시도'가 있었다는 것에 어떤 입장일까. 임 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천공과는 친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실이 사단장 하나 지키려고 정권이 날아갈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하자, 임 소장은 "(저도) 궁금하다"고 답했다.
공수처는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기록을 찾아오고 재조사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임 소장 개인의 구명을 위한 것인지 △이종섭 전 장관의 독자적 판단인지 △아니면 국방부의 윗선에서 정권에 미칠 타격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책임자 범위를 축소한 조치인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외압 의혹 수사의 남은 숙제들

경찰도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지난해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사건 기록을 이첩받은 경북경찰청은 채 상병 사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인 지휘 권한 여부, 채 상병 사망 당일 지침과 업무 일지 등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지난달 임성근 소장을 두 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 만약 경찰에서 임 소장을 검찰에 송치하면 해병대 수사단에 힘이 실리는 것이고, 불송치하면 이첩 보류 지시와 사건 기록 회수가 정당하다는 의미라 이 전 장관 쪽에 유리한 결론이다.
박정훈 대령은 별도로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는 중이다. 중앙군사법원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공판을 진행하면서 김계환 사령관,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유재은 관리관 등을 증인신문했다. 내달 열릴 공판에서는 정종범 전 부사령관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이 예정돼있다. 재판부는 증인 신문 내용과 군검찰단의 주장을 따져 박 대령의 항명이 정당했는지를 따져볼 예정인데, 박 대령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수사 외압 의혹은 다소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만 추모하면서 여생 보내게 해달라"
"7월 19일이면 저희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수사에 진전이 없고 엄마의 입장에서 염려가 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날 물속에 투입을 시키지 않아야 될 상황인데 투입을 지시했을 때 구명조끼는 왜 입히지 않은 채 실종자 수색을 하라고 지시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고 꼭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 저희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채 상병의 모친이 꾹꾹 눌러쓴 이 편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보여준다. 죽지 않았어야 할 군인이 사망한 경위, 사고와 관련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만약 그 책임 추궁의 과정을 특정한 국가권력이 일부러 방해하거나 왜곡하려 했다면, 이는 국가기강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군인이 부당한 지시로 목숨을 잃었다면, 군인이 억울하게 자신의 권한을 침해 당하고 누명을 쓴 게 맞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도 결국 국가권력뿐이다. 그래서 공수처, 군사법원, 경찰이 내릴 결론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야권은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권과 대통령실은 지나친 정치공세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기문란과 정치공세 사이, 진실은 어떤 쪽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진행 중인 사후수습 과정에선 작년 7월과 8월에 있었던 '수사 외압 의혹'과 같은 불상사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채 상병 어머니의 피를 토하는 외침에 국가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이 나라 군과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달려 있다.(3)
<자료출처>
(2)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②: 결정적 순간마다 드리운 용산의 그림자 (daum.net)
(3) 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③: 누구를, 왜 지키려고 했던 걸까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