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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달국(1) 1세 환웅천왕(거발환居發桓환웅) 재위 94년(BC 3898년~BC 3804년)(1)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 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본문

신시배달국시대/신시배달국

1. 배달국(1) 1세 환웅천왕(거발환居發桓환웅) 재위 94년(BC 3898년~BC 3804년)(1)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 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대야발 2026. 3. 9. 10:48

 

 

 

 

 

1세 환웅천왕 재위 94년(거발한居發桓환웅, BC 3898년~BC 3804년)

 

 

《삼국유사三國遺事》 卷 第一  紀異 第一  古朝鮮王儉朝鮮

 


환웅(雄)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고,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신단수(神壇樹; 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 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고 한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말한다.}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雄)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 {즉 태백(太伯)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다.} 신단수(神壇樹; 神檀樹) 밑에 내려와 신시(神市)라 하고 이에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악(善惡) 등 무릇 인간의 삼백 육십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1)

 

 

 

《제왕운기(帝王韻紀)》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신시’, ‘배달’이라는 이름은 안 나오고, ‘환웅천왕’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하였다.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 본기(本紀)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는데 환웅(桓雄)이라 하였다. 〈환인이 환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땅으로〉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 [弘益人間]?” 라고 하였으므로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명을 데리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분을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2)

 

 

 

《기언記言》

 

조선후기 성균관 제조,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인 허목(許穆)(1595, 선조 28~1682년, 숙종 8)의 《기언記言》 에는 “신시가 처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치니,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였다.”라고 하여 ‘환웅’이 ‘신시’로 바뀌었고, ‘배달’이라는 나라 이름은 안 나온다.

 

 

상고(上古)의 구이(九夷)가 살던 시절 초기에 환인씨(桓因氏)가 있었고, 환인이 신시(神市)를 낳았다. 신시가 처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치니,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였다.

신시가 단군(檀君)을 낳으니,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거처를 정하고, 호를 단군이라고 하였으며 처음으로 국호(國號)를 두어 조선(朝鮮)이라고 하였다. 조선이란 ‘동쪽 끝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3)

 

 

조선 팔도의 땅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중국에서 볼 때 연(燕)과 제(齊)의 밖에 있다. 처음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시(神市 환웅(桓雄))가 처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니 백성들이 그에게 귀부하였다. 신시가 단군(檀君)을 낳으니, 박달나무 아래에 살았기 때문에 단군이라고 이름하였고 처음으로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였다. 조선이란 ‘동방의 해가 뜨는 곳’이란 뜻이다. …(4)

 

 

 

《규원사화》

 

북애의 《규원사화》에는 ‘신시’가 도읍지 이름이 아니고 환웅천왕의 다른 이름인 ‘신시씨’로 나오고, ‘배달’이라는 나라 이름은 안 나오지만 모든 무리들이 천왕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한 큰 주신은 네 번째로 환웅천왕에게 명을 내려 “이제 사람과 그 밖의 만물을 다 만들었으니, 수고하여 만든 것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무리를 이끌어 인간 세상에 내려가 하늘을 이어받아 가르침을 세우고, 만세토록 후손의 모범이 되게 하라”고 했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천하에 펴라”고 명했다.

환웅천왕은 기쁘게 명을 받들어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풍백과 우사와 운사 등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의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태백산이 곧 백두산이다.

모든 무리들이 천왕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곧 신시씨이다. 초목이 돋아나고 금수가 생긴 후 또 십만 년이 지났다.(5)

 

 

 

《환단고기》

 

《환단고기》에 신시배달국 기사는 《삼성기 전 상편》, 《삼성기 전 하편》, 《태백일사》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에 나온다.

《삼성기 전 상편》에는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백산과 흑수 사이 지역에 내려오셨고, 천부인을 지니고 오사를 주관하시어 세상에 교화를 베풀고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였고,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렸다고 나온다.

 

《삼성기 전 하편》에는 1세 환웅천황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웅녀 기사, 10세 갈고환웅과 14세 치우천왕의 기사 그리고 신시역대기가 나온다. 《밀기》와 《사기》를 인용하였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진역유기》, 《삼성밀기》, 《설문해자》, 《춘추》, 《조대기》, 《운급》 〈헌원기〉, 《한서지리지》, 《대변경》, 《삼한비기》, 《밀기》, 《관자》, 《사기》, 《상서》, 《위서》, 《선가서》, 《천문지》, 《고려팔관잡기》 등의 사서를 인용하였다.

1세 환웅천왕이 천부인 세 개를 갖고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곰족과 호랑이족의 기사, 웅녀 기사, 1세 환웅천황과 5세 태우의환웅, 6세 다의발환웅, 태우의환웅의 막내 아들인 태호 복희씨 기사, 14세 치우천왕의 기사가 나온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는 신시시대 환웅천황, 안부련환웅, 사와라환웅, 자오지환웅(치우천왕) 때의 기사가 나온다.

 

 

《삼성기 전 상편》

 

《삼성기 전 상편》에는 환웅씨가 환국을 계승하여 백산과 흑수 사이 지역에 내려오셨고, 천부인을 지니고 오사를 주관하시어 세상에 교화를 베풀고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고 한다. 배달국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널리 개척하였고,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렸다고 나온다.

 

뒤에 환웅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

3·7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 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팔괘를 그으사 올 것을 알며 상을 잡으사 신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스러운 이들과 뭇 철인들이 보필하도록 하시더니 웅씨 여인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6)

 

 

《삼성기 전 하편》

 

1세 환웅천왕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웅녀 기사가 나온다.

 

환국의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환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 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하고 하셨다.

 

 

때에 반고라는 자가 있어 괴상한 술법을 즐기며 길을 나누어살기를 청하매 이를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물과 보물을 꾸리고 십간십이지의 신장들을 이끌고 공공, 유소, 유묘, 유수와 함께 삼위산의 라림동굴에 이르러 군주가 되니 이를 제견이라 하고 그를 반고가한이라 했다.

 

 

이에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며, 병을 주관하고, 선악을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으니 널리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

때에 한 곰과 한 범이 이웃하여 살더니 일찍이 신단수에서 빌었다. “원컨대 변하여 신계의 한 무리가 되어지이다.”하니, 환웅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가르쳐 줄지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주술로써 몸을 바꾸고 정신을 바꾸었다. 먼저 신이 만들어 놓은 영혼을 고요하게 하는 것을 내놓았으니 즉,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라. 이에 경계하여 가로대 “너희들 이를 먹고 햇빛을 백 일 동안 보지 않으면 쉽사리 인간다움을 얻으리라.” 하니, 곰과 호랑이의 두 무리가 모두 이를 얻어먹고 삼칠일 동안 기하였는데 곰은 기한을 잘 지켜서 타이름을 따르매 모습을 얻게 되었지만, 범은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어서 금지하는 바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이들의 두 성질이 서로 닮지 않았기 때문이라.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곳이 없었으므로 단수의 무성한 숲 밑에서 잉태하기를 간곡히 원하였다. 그래서 임시로 변화하여 환이 되고 그와 더불어 혼인하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호적에 실리게 되었다.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과 신고를 가르치시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서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때에 구환은 모두 삼신을 한 뿌리의 조상으로 삼고 소도를 관리하고 관경을 관리하며 벌을 다스리는 것 등을 모두 다른 무리와 더불어 서로 의논하여 하나로 뭉쳐 화백을 하였다. 아울러 지혜와 삶을 나란히 닦으면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구환은 모조리 삼한에 통솔되고 나라 안의 천제의 아들은 단군이라고 불렀다.

 

 

《밀기》에서 말한다. 환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족이 있어서  걱정거리였다. 환웅은 마침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만들고 전계를 베풀어 무리를 모아 서약을 시켜 선악을 상주고 벌하는 법을 갖게 하였다. 이로부터 슬그머니 토벌하여 벌할 뜻을 품었다.

 

 

이때에 무리의 이름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풍속도 오히려  점점 달라졌다. 원래 살던 무리는 범 무리였으며 새로 살기 시작한 것은 곰 무리였다. 범 무리의 성질은 잔인한 짓을 즐기며 탐욕이 많아서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곰 무리의 성질은 어리석으며 또 자만에 쌓여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비록 같은 굴에 산지는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날로 멀어지기만 해서 일찍이 서로 도울 줄도 몰랐고 혼인도 터놓고 한 적이 없었다. 일마다 서로 따르지 않았고 모두가 하나같이 그 길을 같이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곰 무리의 여추장환웅이 신과 같은 덕이 있다함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찾아가 뵙고 말한다. “원컨대 한 굴에 함께 사는 저희들을 위하여 굴 하나를 내려주시고 신계의 무리로 받아주옵소서.” 하니 환웅이 이를 허락하시고 저들을 받아들여 아들을 낳고 산업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범 무리는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로 내쫓았다. 환족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7)

 

 

 

신시력대기(神市歷代記)

 

배달환웅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분의 이름이다. 그 도읍한 곳을 신시라고 한다. 뒤에 청구국으로 옮겨 18세, 1565년을 누렸다.

 

1세를 환웅천황이라 하며 또 거발환이라 하닌 재위 94년에 120세까지 사셨다.

 

2세는 거불리환웅이니 재위 86년에 102세까지 사셨다.

 

3세는 우야고환웅이니 재위 99년에 135세까지 사셨다.

 

4세는 모사라환웅이니 재위 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는 태우의환웅이니 재위 93년에 115세까지 사셨다.

 

6세는 다의발환웅이니 재위 98년에 110세까지 사셨다.

 

7세는 거련환웅이니 재위 81년에 140세까지 사셨다.

 

8세는 안부련환웅이니 재위 73년에 94세까지 사셨다.

 

9세는 양운환웅이니 재위96년에 139세까지 사셨다.

 

10세는 갈고환웅 또는 독로한이라 하니 재위 100년에 125세까지 사셨다.

 

11세는 거야발환웅이니 재위 92년에 149세까지 사셨다.

 

12세는 주무신환웅이니 재위 105년에 123세까지 사셨다.

 

13세는 사와라환웅이니 재위 67년에 100세까지 사셨다.

 

14세는 자오지환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15세는 치액특환웅이니 재위 89년에 118세까지 사셨다.

 

16세는 축다리환웅이니 재위 56년에 99세까지 사셨다.

 

17세는 혁다세환웅이니 재위 72년에 97세까지 사셨다.

 

18세는 거불단환웅 혹은 단웅이라 하는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8)

 

 

 

《태백일사》 〈신시본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1세 환웅천왕이 천부인 세 개를 갖고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고 한 기사, 곰족과 호랑이족의 기사, 웅녀 기사, 5세 태우의환웅, 6세 다의발환웅, 태우의환웅의 막내 아들인 태호 복희씨 기사, 14세 치우천왕의 기사가 나온다.

《진역유기》, 《삼성밀기》, 《설문해자》, 《춘추》, 《조대기》, 《운급》 〈헌원기〉, 《한서지리지》, 《대변경》, 《삼한비기》, 《밀기》, 《관자》, 《사기》, 《상서》, 《위서》, 《선가서》, 《천문지》, 《고려팔관잡기》 등의 사서를 인용하였다.

 

 

《진역유기》의 신시기에서 말한다.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성되고 만물이 각각 그 자리를 가짐을 보시더니 곧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이를 주곡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때는 아직 농사의 방법도 잘 갖춰지지 않았고 불씨도 없음이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산에 들어가니, 다만 교목(喬林)들만 거칠게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는 것을 오래도록 침묵하며 말없이 보고 서 있는데 홀연히 큰 바람이 숲에 불어 닥치자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일어나면서 서로 부딪쳐 비벼대며 불꽃을 일으키는데 번쩍번쩍하고 불길이 잠깐동안 일어나더니 곧 꺼졌다.

이에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이것이로다. 이것이로다. 이것이 곧 불을 얻는 법이로다〉 라고 말하며 돌아와 오래된 홰나무 가지를 모아다가 서로 비벼 불을 만들었으나, 다만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다음날 다시 교목들의 숲에 가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깊이 생각에 잠겼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줄무늬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지라 고시씨(高矢氏)는 크게 한마디 외치면서 돌을 집어 던져서 이를 맹타했다. 그러나 겨냥이 틀려서 바위의 한쪽에 돌이 맞아 번쩍하고 불을 냈다.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돌아와 다시 돌을 쳐 불씨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백성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쇠를 녹이는 기술도 일어나더니 그 기술도 점차로 진보하게 되었다.

 

 

환웅천황(桓雄天皇)은 또다시 신지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대저 신지씨(神誌氏)는 세세토록 명령을 전하는 직잭을 맡고 출납헌체(出納獻替)의 임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다만 목소리에 의존했을 뿐 일찍이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 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에 나갔는데 갑자기 튀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으나 둘러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어지러이 흐트러져 연결되었으나 향한 곳은 절로 확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 기록해 남기는 방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 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문자의 시작이라 한다, 그런데 후세에는 연대가 까마득히 흘러서 태고문자는 다 사라져서 존재치 않는다. 아마도 역시 그 만들어 놓은 것이 아직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찍이 듣기로 〈남해도南海島의 낭하리郞河里의 계곡 및 경박호鏡珀湖의 선춘령先春嶺과 저 오소리烏蘇里 사이의 바깥쪽 암석 사이에서 언젠가 조각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범梵자도 아니고 전篆자도 아니며 사람들이 알 수가 없는 것〉 이라 했으니, 이게 신지씨가 만든 옛 문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떨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이 강하지 못함을 새삼 한탄한다.

 

 

환웅천황께서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시켜 새와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의 해를 제거하도록 하였지만 백성들은 아직 동굴이나 흙구덩이 속에 살았기 때문에 밑에선 습기가 스며 올라오고 밖에서는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켰다. 또한 새·짐승·고기 등을 급하게 쫓아버려 점차로 도망가서 숨어버리니 잡아서 먹는 데에도 불편하였다.

이에 우사雨師 왕금영王錦營으로 하여금 사람의 살 곳을 만들게 하고 소·말·개·돼지·독수리·호랑이 등의 짐승을 모아 목축 이용을 관장케 하고, 운사雲師 육약비陸若飛로 하여금 남녀의 혼례의 법을 정하게 하고 치우治尤는 곧 세세토록 병마도적兵馬盜賊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치우治尤, 고시高矢, 신지神誌의 후손들은 지극히 왕성하게 번영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야九治를 만들어 동銅과 철鐵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함으로써 도극刀戟 · 대궁大弩을 만들고 사냥과 정벌, 전쟁의 무기로 삼았다. 생각컨대 신으로부터 멀리 있는 바깥의 여러 족속들은 대궁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컸던 듯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한 지 오래 되었다. 때문에 저들은 우리 종족을 가리켜 〈이夷〉라고 했다. 《설문》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큰 것으로부터, 활로부터 나온 글자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 함이 이것이다. 공자의 《춘추》에 이르러 이의 이름을 마침내 융적과 나란히 오랑캐의 호칭이라 했는데 애석한 일이다.(9)

 

 

 

《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람은 많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더니 서자부 대인 환웅이 민정을 두루 살펴 듣고 천계에서 내려와 지상에 광명 세상을 열고자 하셨다.

이때 안파견 환인이 금악산과 삼위산과 태백산을 두루 살펴보시고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태백산은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로다.” 라고 하셨다. 이에 환웅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제 인간과 만물이 제자리를 잡았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를 거느리고 몸소 하계에 내려가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 부권을 세우라. 노인은 부축하고 어린이는 이끌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여 사도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려 깨우쳐서 자손만대의 홍범으로 삼을지어다.” 하셨다.

그리고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시고 세상에 보내어 다스리게 하셨다. 환웅께서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처음으로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한다.

또한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시고 주곡, 주명, 주형, 주병, 주선악 하게 하시고 인간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재세이화 홍익인간하시니 이분이 환웅천왕이시다.(10)

 

 

 

이때 웅족과 호족이 이웃하여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와서 기도하며 환웅께 “하늘의 계율을 지키는 신시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청하였다. 환웅께서 신령한 주문으로 체질을 개선시켜 신명을 통하게 하셨다. 또 삼신이 내려 주신 물건으로 신령한 삶을 얻게 하시니 바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매였다.

그리고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이것을 먹을지어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하여야 스스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르게 구제하며 진정한 사람다운 인격을 갖춘 대인이 되리라” 하셨다.

웅족과 호족 양가는 이것을 먹고 삼칠일 동안 삼가며 스스로 수련에 힘썼다. 웅족은 굶주림과 추위와 고통을 참으며 하늘의 계율을 준수하고 환웅과 한 언약을 지켜서 건강한 여자의 모습을 얻었으나 호족은 거짓과 태만으로 하늘의 계율을 어겨 끝내 천업을 함께 이루지 못하였다. 이것은 두 부족의 천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웅씨족 여성들은 고집이 세고 어리석음이 지나쳐서 이들과 혼인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매양 신단수 아래에 함께 모여 주문을 읽으며 아기를 가져 환웅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환웅께서 임시로 이들을 환족 백성으로 귀화시켜 살 곳을 주시고 환족 남자와 혼인하게 하여 자녀를 낳게 하시니 이로부터 모든 남녀가 점차 인륜의 도를 얻게 되었다.(11)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태백산이 북쪽으로 달려가 우뚝 솟은 장엄한 모습이 비서갑 경계에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물을 등지고 산을 안고서 다시 꺾어져 감돈 곳이 있는데 바로 대일왕께서 천제를 올리시던 곳이다.

세상에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환웅천왕이 이곳에 순행하여 머무시면서 사냥하여 제사 지내실 때 풍백은 천부경을 거울에 새겨 진상하고 우사는 북에 맞추어 둥글게 춤을 추고 운사는 백 명을 칼로 무장시켜 제단 밑에 늘어서서 지켰다.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러 산에 가실 때 의장이 이처럼 성대하고 엄숙하였다. 이 산의 이름이 불함이다. 지금은 완달이라 하는데 그 음이 비슷하다.(12)

 

 

 

묘환苗桓은 환국시절 구황족의 하나로 배달 신시가 개천되자 처음으로 토의 중정의 덕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웅족과 호족이 서로 다투던 때는 환웅천황께서 아직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이다. 묘환은 환국시절 구황족의 하나로 그 땅은 옛적에 이미 우리 환족이 유목과 농경을 하던 곳이다. 배달 신시가 개천되자 처음으로 토의 중정의 덕으로 다스렸다. 1이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운동이 쌓여 그 궁극에 천지의 결실하는 음 기운 10이 성립하고, 이 10이 크게 열려서 만물이 다시 양 기운 1로 통일된다. 이러한 1과 10의 순환 운동 속에서 천지의 참마음이 생겨난다.(13)

 

 

 

옛적에 환웅천황께서 천하가 광대하여 한 사람이 능히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이에 풍백과 우사와 운사를 거느리시고 농사 왕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관하게 하시고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1년으로 삼으셨다. 이것이 바로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에 계시는 상제님께서 남겨 주신 법도이다.

그러므로 천황께서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세우고 그 품고 계신 뜻을 전하는 글을 지으시니 그 〈염표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 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본성은 본래 신의 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천지광명의 뜻과 대이상을 성취하는 홍익인간의 길을 갈지어다.(弘益人間)

 

이때부터 소도가 건립되어 도처에서 볼 수 있었고 산상과 웅상이 산꼭대기마다 세워졌다.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이 둥글게 마을을 이루고 네 집이 정전의 단위를 이루어 농사를 짓고 조세는 20분의 1을 바쳤다. 사시가 고르고 풍년이 들어 집 밖에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으니 온 백성이 기뻐하여 태백환무라는 노래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14)

 

 

 

 

<주>

 

 

(1) 삼국유사 < 한국 고대 사료 DB

古記云, “昔有桓 謂帝釋也. 庻子桓雄數意天下貪求人世. 父知子意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遣徃理之. 雄率徒三千降於太伯山頂 即太伯今妙香山. 神壇樹下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糓·主命·主病·主刑·主善惡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在世理化.

 

 

(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제왕운기(帝王韻紀)》 권하(卷下) >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제왕운기 < 고려시대 사료 DB

初誰開國啓風雲, 釋帝之孫名檀君. 本紀曰, ‘上帝桓因, 有庶子, 曰雄云云. 謂曰, “下至三危太白, 弘益人間歟.” 故雄, 受天符印三箇, 率鬼三千, 而降太白山頂神檀樹下, 是謂檀雄天王也云云.’ 令孫女飮藥, 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據朝鮮之域, 爲王. 故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 皆檀君之壽也. 理一千三十八年, 入阿斯達山, 爲神, 不死故也. 竝與帝高興戊辰, 經虞歷夏居中宸. 於殷虎丁八乙未, 入阿斯達山爲神. 今九月山也, 一名弓忽, 又名三危, 祠堂猶在. 享國一千二十八, 無奈變化傳桓因. 却後一百六十四, 仁人聊復開君臣 一作, 爾後一百六十四, 雖有父子, 無君臣.

 

 

 

(3) 한국고전종합DB, 《기언記言》 제32권 외편 / 동사(東事) 1, 단군세가(檀君世家)

한국고전종합DB

上古九夷之初。有桓因氏。桓因生神市。始敎生民之治。民歸之。神市生檀君。居檀樹下。號曰檀君。始有國號曰朝鮮。朝鮮者。東表日出之名。…

 

 

 

(4) 한국고전종합DB, 《기언記言》 제48권 속집 / 사방(四方) 2, 관서지(關西誌)

한국고전종합DB

朝鮮九域之地。在海隅。燕齊之外。初無君長。有神市始敎生民之治。民歸之。神市生檀君。居檀木下。號曰檀君。始有國號曰朝鮮。朝鮮者。東方日出之名。…

 

 

 

(5) 북애 지음, 고동영 옮김, 규원사화, 조판기, 18~19쪽

一大主神, 乃四命桓雄天王曰: [如今, 人物業已造完矣. 君可勿惜厥勞, 率衆人, 自降落下界, 繼天立敎, 爲萬世後生之範.] 乃授之以天符三印曰: [可持此, 敷化於天下.] 桓雄天王, 欣然領命, 持天符三印, 率風伯 雨師 雲師等三千之徒, 下降太白之山 檀木之下. 太白山者, 卽白頭山也. 衆徒推爲君長, 是爲神市氏. 自草木托  禽獸滋生以來, 又十萬年也.

 

 

(6)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7쪽

後, 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培達.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呪願有功, 服藥成仙. 劃卦知來, 執象運神, 命群靈諸哲爲輔. 納熊氏女爲后定婚嫁之禮, 以獸皮爲幣. 耕種有畜, 置市交易, 九域貢賦. 鳥獸率舞, 後人奉之爲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神市之季, 有蚩尤天王, 恢拓靑邱.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7)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30-40쪽

桓國之末, 安巴堅下視, 三危, 太白皆可以弘益人間. 誰可使之. 五加僉曰, 庶子有桓雄, 勇兼仁智, 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 可遣太白而理之. 乃授天符印三種, 仍勅曰, 如今人物業已造完矣. 君勿惜厥勞, 率衆三千而往, 開天立敎, 在世理化, 爲萬世子孫之洪範也.

時, 有盤固者好奇術, 欲分道而往請, 乃許之. 遂積財寶, 率十干十二支之神將, 與共工, 有巢, 有苗, 有燧. 偕至三危山, 拉林洞窟, 而立爲君. 謂之諸畎. 是謂盤固可汗也.

於是, 桓雄率衆三千, 降于太白山頂,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 雨師, 雲師, 而主穀, 主命, 主刑, 主病, 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時, 有一熊一虎, 同隣而居. 嘗祈于神壇樹, 願化爲神戒之氓, 雄聞之曰, 可敎也. 乃以呪術, 換骨移神, 先以神遺靜解靈, 其艾一炷, 蒜二十枚, 戒之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二族皆得而食之, 忌三七日, 熊能耐飢寒, 遵戒而

得儀容. 虎則放慢, 不能忌而不得善業. 是二性之不相若也.

熊女者無與爲歸故, 每於壇樹下, 呪願有孕. 乃假化爲桓而使與之爲婚, 懷孕生子有帳.

桓雄天王, 肇自開天生民施化, 演天經, 講神誥, 大訓于衆. 自是以後, 蚩尤天王, 闢土地, 採銅鐵, 鍊兵興産. 時, 九桓皆以三神爲一源之祖, 主蘇塗, 主管境, 主責禍與衆議一歸爲和白. 竝智生雙修爲居佺, 自是九桓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 乃號曰檀君王儉.

密記云, 桓國之末, 有難治之强族, 患之. 桓雄乃以三神設敎, 以佺戒爲業, 而聚衆作誓, 有勸懲善惡之法. 自是密有剪除之志.

時, 族號不一, 俗尙漸歧, 原住者爲虎, 新住者爲熊, 虎性嗜貪殘忍, 專事掠奪. 熊性愚愎, 自恃不肯和調, 雖居同穴, 久益疎遠, 未嘗假貸, 不通婚嫁, 事每多不服, 咸未有一其途也. 至是熊女君聞桓雄有神德, 乃率衆往見曰, 願賜一穴廛, 一爲神戒之盟. 雄乃許之, 使之奠接生子有産. 虎終不能悛, 放之四海. 桓族之興始此焉.

 

 

(8)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43-45쪽

倍達, 桓雄定有天下之號也. 其所都曰神市, 後徙靑邱國,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一世曰, 桓雄天皇, 一云, 居發桓. 在位九十四年, 壽一百二十歲.

二世曰, 居佛理桓雄, 在位八十六年, 壽一百二歲.

三世曰, 右耶古桓雄, 在位九十九年, 壽一百三十五歲.

四世曰, 慕士羅桓雄, 在位一百七年, 壽一百二十九歲.

五世曰, 太虞儀桓雄, 在位九十三年, 壽一百一十五歲.

六世曰, 多儀發桓雄, 在位九十八年, 壽一百十歲.

七世曰, 居連桓雄, 在位八十一年, 壽一百四十歲,

八世曰, 安夫連桓雄, 在位七十三年, 壽九十四歲.

九世曰, 養雲桓雄, 在位九十六年, 壽一百三十九歲.

十世曰, 葛古桓雄, 又曰, 瀆盧韓, 在位一百年, 壽一百二十五歲.

十一世曰, 居耶發桓雄, 在位九十二年, 壽一百四十九歲.

十二世曰, 州武愼桓雄, 在位一百五年, 壽一百二十三歲.

十三世曰, 斯瓦羅桓雄, 在位六十七年, 壽一百歲.

十四世曰, 慈烏支桓雄, 世稱, 蚩尤天王, 徙都靑邱國, 在位一百九年, 壽一百五十一歲.

十五世曰, 蚩額特桓雄, 在位八十九年, 壽一百一十八歲.

十六世曰, 祝多利桓雄, 在位五十六年, 壽九十九歲.

十七世曰, 赫多世桓雄, 在位七十二年, 壽九十七歲.

十八世曰, 居弗檀桓雄, 或云, 檀雄, 在位四十八年, 壽八十二歲.

 

 

(9)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68-171쪽

震域留記, 神市紀云, 桓雄天皇, 見人居已完, 萬物各得其所, 乃使高矢禮, 專掌餽養之務, 是爲主穀. 而時, 稼穡之道不備, 又無火種爲憂. 一日, 偶入深山, 只看喬木荒落, 但遺骨骸, 老幹枯枝, 交織亂叉, 立住多時, 沈吟無語, 忽然大風吹林, 萬竅怒號, 老幹相逼, 擦起火光, 閃閃脇脇, 乍起旋消, 乃猛然惺悟, 曰是哉! 是哉! 是乃取火之法也. 歸取老槐枝, 擦而爲火, 功猶不完.

明日, 復至喬林處, 徘徊尋思, 忽然一個條紋虎, 咆哮躍來, 高矢氏, 大叱一聲, 飛石猛打, 誤中岩角, 炳然生火, 乃大喜而歸, 復擊石取火. 從此, 民得火食, 鑄冶之術始興, 而制作之功, 亦漸進矣.

桓雄天皇又復命神誌赫德, 作書契. 蓋神誌氏, 世掌主命之職, 專掌出納獻替之務, 而只憑喉舌, 曾無文字記存之法. 一日, 出衆狩獵, 忽見驚起一隻牝鹿, 彎弓欲射, 旋失其懿, 乃四處搜探, 遍過山野, 至平沙處, 始見足印亂鎖, 向方自明, 乃俯首沈吟, 旋復猛惺曰, 記存之法, 惟如斯而已夫! 惟如斯而已夫!

是日, 罷獵而歸, 反復審思, 廣察萬象, 不多日, 悟得創成文字. 是爲太古文字之始矣. 但後世, 年代邈遠, 而太古文字, 沒泯不存, 抑亦其組成也. 猶有不便而然歟. 亦嘗聞, 南海島郞河里之溪谷, 及鏡珀湖先春嶺, 與夫烏蘇里以外岩石之間, 時或有發見彫刻, 非梵非篆, 人莫能曉, 此非神誌氏之所作古字歟. 於是, 而更恨吾國之未振, 吾族之不强也.

桓雄天皇使風伯釋提羅, 雖除鳥獸蟲魚之害, 而人民猶在洞窟土穴之中, 下濕外風之氣, 逼人成疾. 且禽獸蟲魚之屬, 一經窘逐, 漸自退避藏匿, 不便於屠殺供饋. 於是, 使雨師王錦營造人居, 主致牛馬狗豚雕虎之獸, 而牧畜利用, 使雲師陸若飛, 定男女婚娶之法焉. 而治尤則世掌兵馬盜賊之職焉. 自此, 治尤高矢神誌之苗裔, 繁衍最盛, 及至治尤天王登極, 造九治以採銅鐵, 鍊鐵以作刀戟大弩, 以狩獵征戰, 賴以爲神, 遠外諸族, 甚畏大弓之威, 聞風膽寒者久矣.

故, 彼謂我族爲夷. 說文所謂夷从大从弓, 爲東方人者, 是也. 乃至孔丘氏, 春秋之作, 而夷之名, 遂與戎狄, 幷爲腥宥之稱, 惜哉!

 

 

 

(10) 환단고기,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357-359쪽

時, 族號不一, 俗尙漸歧, 原住者爲虎, 新住者爲熊, 虎性嗜貪殘忍, 專事掠奪. 熊性愚愎, 自恃不肯和調, 雖居同穴, 久益疎遠, 未嘗假貸, 不通婚嫁, 事每多不服, 咸未有一其途也. 至是熊女君聞桓雄有神德, 乃率衆往見曰, 願賜一穴廛, 一爲神戒之盟. 雄乃許之, 使之奠接生子有産. 虎終不能悛, 放之四海. 桓族之興始此焉.

 

 

(11) 환단고기,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359-361쪽

時, 有一熊一虎, 同隣而居, 常祈于神壇樹 ,而又請於桓雄, 願化爲天戒之氓. 雄乃以神呪, 換骨移神, 又以神遺得驗靈活, 乃其艾一炷, 蒜二十枚也. 仍戒之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自由成眞, 平等濟物, 便得化人踐形之大人者也. 熊與虎兩家, 皆得而食之, 忌三七日, 務自修鍊, 而熊耐飢寒痛苦, 遵天戒, 守雄約, 而得健者之女容, 虎則誣慢不能忌, 違天戒而終不得與之贊天業. 是二姓之不相若也. 熊氏諸女, 自執愚强而無與之爲歸, 故每於壇樹下, 群聚以呪願, 有孕有帳, 雄乃假化爲桓, 得管境而使與之婚, 孕生子女, 自是群女群男, 漸得就倫

 

 

(12) 환단고기,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429쪽

太白山北走, 屹屹然立於斐西岬之境, 有負水抱山, 而又回焉之處. 乃大日王祭天之所也. 世傳, 桓雄天王, 巡駐於此, 佃獵以祭. 風伯天符刻鏡而進, 雨師迎鼓環舞, 雲師佰劍陛衛. 盖天帝就山之儀仗, 若是之盛嚴也. 山名曰不咸, 今亦曰完達, 音近也.

 

 

(13) 환단고기,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359-361쪽

熊虎交爭之世, 桓雄天王, 尙未君臨. 苗桓乃九皇之一也. 在昔, 已爲我桓族, 遊牧農耕之所, 而及神市開天, 以土爲治. 一積而陰立, 十鉅而陽作, 无匱而衷生焉.

 

 

(14) 환단고기, 역주 안경전, 상생출판, 437쪽

昔者, 桓雄天王, 思天下之大, 非一人所能理化.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刑主病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作曆以三百六十五日, 五時, 四十八分, 四十六秒, 爲一年也 此乃三神一體上尊之遺法也. 故, 以三神立敎, 乃作布念之標, 其文曰,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自是, 蘇塗之立, 到處可見. 山像雄常, 山頂皆有, 四來之民, 環聚墟落, 四家同井, 二十稅一. 時和年豊, 露積邱山, 萬姓歡康之, 作太白環舞之歌, 以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