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간도(1) - ‘간도협정은 무효→행정 착오→법리적 무효’ 9일 새 두 차례 바뀐 정부 입장 본문
‘간도협정은 무효→행정 착오→법리적 무효’ 9일 새 두 차례 바뀐 정부 입장
‘간도협정은 무효’ 명기된 국감자료집 수거후
외교부, 정례 브리핑서 “행정 착오였다” 사과
1주일 뒤 국감서 다시 ‘법리적으로는 무효’
중국 눈치보며 오락가락 대응해 논란 키워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의미있는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지난주 막전막후 <30회> [ ‘간도협약은 무효’ 국감 자료집 회수한 외교부]에서 계속됩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4/10/20/7KHHMB3PHJEIRKPPJ5KR235FWY/)
2004년 10월 초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밝힌 국정감사 자료집을 국회에 배포했다가 회수한 파문이 퍼져가는 가운데, 같은 달 14일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정례 브리핑을 가졌습니다. 반 장관은 이 자리에서 “자료 제출과정에서 실무자들 간에 행정적 착오가 있었다.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반 장관은 “간도협약은 법리적으로, 또 국제정치적으로 보는 것이 있고 복잡한 고려 요소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또 “간도협약은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로 좀 더 정확한 역사적 고증과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전에) 발표했었다”고도 했습니다.
간도협약은 을사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1909년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의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준 협약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 무효라고 하지 않고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로 후퇴한 겁니다.
1909년 9월 간도 협약 100주년을 맞아 발족한 ‘간도 영유권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국민 청원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외교부의 이 같은 입장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같은 날 청와대도 외교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도 이날 불교방송에 출연, “조약 문구라든지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간도 문제가 중국과 우리 사이의 영토와 국경 문제가 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조약이 유효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크게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외교부는 조선일보가 이 사안을 보도한 후, 브리핑을 갖기로 했다가 이를 하루 연기하면서까지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미래의 영토보다는 현재의 한·중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겁니다.
◇조약국과 아태국 논쟁
2004년 간도협약 사례는 여러 면에서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정부 내부의 검토와 토론을 거쳐 작성된 후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된 자료를 단순한 행정적 착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외교부는 국감자료집 7권 186쪽에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인 만큼 이 연장선상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188쪽에는 “1941년 이전의 중국과 일본 간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 중·일 평화조약과 별개로 간도협약은 원천무효”라는 표현을 명기했습니다.
당시 조약국은 간도 문제를 제기하면 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불가피하나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통일된 후 이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중국을 향해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더 늦기 전에 이를 제기해서 나중에 외교적 카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중국을 직접 담당하는 아시아·태평양국에서는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득실을 많이 따졌습니다. 당시 외교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는데 외교력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양국간 갈등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또, 간도에 대한구체적인 지리적 정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오히려 중국에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특히 조약국에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외교관 K 과장의 법리적 입장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외교부를 취재하면 들은 얘기 중에서 가장 솔직한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의 영토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외교력을 발휘하라는 요구가 있지만, 솔직히 우리는 그런 힘이 없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고구려사 왜곡시정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간도협약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신지지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 철판본(1907)에 실린 대한전도. 북간도가 함경북도 내에 포함돼 있다. /연합뉴스◇ 간도협약 인정한 북한
외교부는 간도협약을 인정한 북중 국경 조약도 고려했습니다. 1962년 평양에서 김일성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서명한 북한과 중국 간의 ‘조·중 변계(邊界)조약’은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으로 정해 1909년의 간도협약을 사실상 추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간도 영유권 문제를 일절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 통일이 된다면 국제법에 따라 북한이 맺은 조약을 승계할 수 밖에 없지않느냐는 판단도 있었다고 합니다.
외교부의 이런 입장과는 달리 상당수 민간 전문가들은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간도는 영영 중국 영토로 굳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당시 신형식 백산학회 회장(상명대 초빙교수·한국고대사)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간도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 회장은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도 드러나듯 간도는 명백한 우리 영토였고, 1909년의 청·일 간 간도협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무효”라며 “만일 정부가 제기하지 못한다면 국회와 학계에서라도 이 문제를 이슈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국제법)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자신의 국익에 유리한 이론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외교적 마찰’ 운운하며 이런 논의를 스스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조용한 조율’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삼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성재호 성균관대 교수(국제법)는 “영토 분쟁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해결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양쪽 정부 차원에서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간도문제는 언론과 학계 등 민간에서만 제기된 문제여서 공식적인 ‘분쟁지역’조차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9일만에 다시 바뀐 정부 입장
그런데 이렇게 ‘행정 착오’로 봉합될 것 같았던 간도협약 문제는 외교부가 다시 입장을 바꿔 주목받았습니다. 조선일보의 간도협약 보도 후 9일 만인 2004년 10월 22일 다시 열린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간도협약 청문회처럼 진행됐습니다. 한나라당의 정문헌, 최병국 의원 등에 이어 같은 당의 이성권 의원(현 국민의힘 의원)이 간도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이성권 위원
처음에 이 자료(국정감사 자료집)가 제출되는 과정과 바뀌게 되는 과정에 어떤 논의와 어떤 형태의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그래서 조약국에서는 법리적인 측면을 검토를 했고요, 그다음에 아태국에서는 여러 가지 현재의 한중관계라든지를 감안해서 했습니다.
○이성권 위원
좋습니다. 방금 법리적 측면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리적 측면이라는 것은 국제법상의 측면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예.
○이성권 위원
그렇게 얘기를 하시면 결국은 외교통상부도 국제법상으로는 인정을 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그래서 아까 아침에 노영돈 교수의 여러 가지 참고인 진술 또 여러 위원님들 말씀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측면은 제가 반복은 하지 않겠습니다. 간도협약에 관해서는 법리적으로는 무효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성권 위원
법리적으로는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지요?
이 의원은 국감 전에 간도협약에 대해 질의했을 때 외교부로부터 ‘무효’라는답변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반 장관을 상대로 “법리적으로는무효”라는 답변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는 다음날 신문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무효라고 할 수 있으나 영유권문제는 (법적 문제와) 분리해서 접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간도협약이 무효라고 해서 간도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입장이 한중 관계에 새로운 사안을 발생시킨다고 보지는 않는다”,"간도문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인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접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전했습니다.
‘순종실록’에 적힌 ‘간도협약’ 내용. 1909년 9월 4일 일본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해 간도 지역에 대한 청의 영유권을 인정했는데, 당시 대한제국은 을사늑약 체결로 외교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국사편찬위원회반 장관이 이날 국회 답변을 이용해 밝힌 ‘법리적 무효’는 9일 전의 ‘행정적 착오’와는 다른 입장으로 ‘간도 협약이 법적으로는 무효이나 간도 영유권문제는 법적인 측면과 분리해서 접근한다’는 쪽으로 정부 입장이 다시 정리됐음을 뜻합니다. 국회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당장 중국에 제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절충안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렇게 입장이 재정리된 배경에는 우리의 영토와 관련된 문제인데 나중에 우리나라에 불리하지 않게 해석될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는, 정권 차원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86 운동권 세대가 장악한 노무현 청와대에서 간도협약을 인정했다는 비판을 듣기 싫어 ‘법리적으로는 무효’라는 부분이 강조되기를 강하게 바랬다는 겁니다.
한편,당시 청와대 내부에서 중국에 “간도협약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고 반대급부로 북핵 문제 등에서 더 큰 협조를 얻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중국과 그런 방향으로 협의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외교관도 있는데, 진실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규명될 듯합니다.
◇ 2009년 간도협약 100주년 맞아 간도되찾기 운동
2004년 외교부 국정감사 당시 간도협약 관련 국감 자료집이 회수된 사태로 중요한 역사적, 외교적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전직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정부의 모든 공식입장은 어떤 비판도 소화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첫 자료집에서 무효라는 입장이 발표된 이상 그에 맞는 논리로 대응하면 좋았는데, 이를 회수해서 중국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인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전직 외교관은"간도협약을 비롯해 중국과의 여러 사안에 대해 일본 관련 문제에서 취하는 엄격함의 단 몇 분의 1이라도 가져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민간이 1.5 트랙에서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언제든 중국에 사용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로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간도협약은 2009년 간도협약 체결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간도 되찾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간도 영유권 회복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만들어져 국민청원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대표발의) 등 국회의원 50명은 이 협약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학계에서도 중국의 입장을 반박하는 회의가 다수 열리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이후 간도협약은 다시 주목받는 큰 계기를갖지 못한 채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P.S.
1. 2004년 10월 22일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는 간도협약과 관련해 노영돈 인천대 교수가 참고인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노 교수는 “(간도협약에 대한 정부의) 신중론 자체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우리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비판했는데, 되새겨 볼만하다고 생각해 소개합니다.
"(간도협약) 당시 대한제국은 제3국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조약법상 제3국에 대한 효력, 상대적 효력이라고도 하는데요. 과거부터 국제 관습법으로 확립되어 온 것이 조약은 제3국에 아무런 이익도 해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3국인 대한제국에는 그 조약 자체는 아무런 효력이 미치지 않고요, 따라서 기존의 외교적으로 진행되었던 간도분쟁은 해결된 바가 없다, 적어도 우리 측에서는 그 조약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도 협약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통상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는 신중론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더 더욱이나 동북공정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서 보면 간도문제는 우리가 당연히 제기해야 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렇지 못한 측면에서 또 정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연구가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해야 될 일이 많은 것이지 신중하다고 해서 덮어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신중론 자체도 신중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s://v.daum.net/v/20241026215816634 2024. 10. 26.
‘간도협약은 무효’ 국감 자료집 회수한 외교부
노무현 정부 때 중국 “간도 영유권 거론 말라” 요구 후
“외교부가 왜 국감 자료집 회수하느냐” 제보 전화
신구 자료집 비교해 보니 간도 협약 기술 바뀌어
파문 커지는데도 외교부는 당일 아무런 대응 하지 않아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2004년 10월 초,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됐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알고 지내던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 A 의원의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외교부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한 국감 자료집 중 한 권을 교체해야 한다며 이를 회수하고 새 자료집을 줬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느냐”는 겁니다.
다른 정부 부처도 그렇지만, 외교부는 특히 다른 나라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기에 외부로 나가는 자료를 만들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이미 배포된 국감 자료집을 바꾸려고 외교관들이 일일이 외통위 의원들을 찾아다닌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했습니다.
비밀리에 취재를 해보니, 외교부가 국회의원들에게 회수하고 새로 배포한 자료는 ‘국감 자료집 7권’이었습니다. 우선 약 300페이지에 가까운 신구(新舊) 자료집을 확보했습니다. 두 권을 나란히 놓고 한 장씩 넘겨가며 비교 했습니다. 그 결과 186쪽이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원래 배포된 ‘국감자료집 7권’ 186쪽엔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인 만큼 이 연장선상에서 간도(間島)협약은 무효”라고 했는데, 새로 배포된 자료집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4년 8월 23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고 있다. 우다웨이 부부장은 당시 우리 정부에 간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DB◇고구려사 문제에 이어 간도 문제 제기돼
2004년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이어 간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 국민의 관심이 높았던 때 입니다. 9월 3일 59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간도를 중국에 넘겨준 간도협약 무효 결의안을 제출하자 주한 중국대사관이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간도는 통상 남부 만주 지역 중 두만강 북쪽 땅(동간도)을 뜻하지만, 압록강 북쪽도 서간도로 불려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조선과 청 나라가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만들 때 합의한 것처럼 조선 영토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서 땅을 개간하는 한국인이 급증, 간도협약 당시 동간도에만 10만 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은 간도 조선인 보호용으로 두만강 인근에 변계경무서를 설치했습니다. 1902년엔 간도관리사 종3품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후, 1909년 간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했습니다. 그 대가로 만주 철도·광산 등 이권을 보장받은 게 간도협약입니다.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이 강압에 의한 무효조약이므로 이에 근거한 간도협약도 국제법상 무효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간도협약이 무효가 되면, 이론적으로는 간도협약 이전에 존재했던 한·중 국경선이 양국의 국경선이 됩니다. 국제법상 영토문제의 대체적인 시효 만료가 100년이므로 2009년 이전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당시 분출했습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목적이 간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동북공정의 33개 연구과제 중에서 12개는 한·중 변경(邊境)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 고구려사 문제로 방한한 우다웨이, 간도 영유권 문제 거론
이렇듯 간도 협약은 중국에서 볼 때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중국은 2004년 8월 고구려사 왜곡 문제 논의를 위해 방한했던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 우리 정부가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사실은 조선일보가 2004년 9월 11일자 1 면에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우다웨이는 최영진 외교부차관 등에게 “한국이 동북지방 영토 국경 문제에서 중국 정부와 국민을 우려시키는 시도가 있다”며 간도문제를 언급했다고 합니다. 우다웨이는 “간도 영유권은 중국의 중요한 관심사”라며 “한국이 이 문제를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중국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조선일보 문화부 유석재 기자가 간도 관련, 의미있는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 유 기자는 2004년 9월 9일 [두만강 이북 ‘간도는 조선땅’ 1909년 일제 제작 지도서 ‘증거’ 발견]이라는 제목의 1면 톱 기사를 썼습니다.
조선일보 2004년 9월9일자 1면 톱기사는 일본이 간도지역을 중국에 넘겨준 ‘청·일 간도협약’의 바탕이 됐던 ‘토문강=두만강’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지도가 발견됐다고 전하고 있다.일본이 간도지역을 중국에 넘겨준 ‘청·일 간도협약’의 바탕이 됐던 ‘토문강=두만강’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지도가 발견됐다는 겁니다. ‘토문강(土門江)’을 두만강(豆滿江)이 아닌 별개의 송화강 지류로 분명히 밝힌 이 지도는 1909년 ‘청·일 간도협약’ 당시 일본측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조선과 청의 국경인 토문강은 두만강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줄곧 주장해 온 중국에 대한 중요한 반박자료일 뿐 아니라 간도가 조선 땅이었음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이 서지학자 고 이종학씨의 소장자료 중에서 찾아내 공개한 이 지도는 ‘메이지(明治) 42년(1909년) 10월, 축척 40만분 1′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지도는 백두산 부근에서 동북 방향으로 흐르다가 다시 북쪽으로 꺾여 송화강과 합류하는 하천에 ‘토문강’이라는 이름을 명기해 놓았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는 ‘두만강’이라 적어 토문강과 두만강이 같은 강의 다른 이름일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1712년(숙종 38년) 세워진 백두산 정계비는 ‘압록강과 토문강을 조선과 청의 경계로 삼는다’고 적었으나 ‘토문강’을 송화강의 지류로 해석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토문강=두만강’설을 내세워 간도지역이 청나라 영토였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 간도협약은 무효
이렇듯 간도와 관련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외교부가 국감 자료집에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밝혔다가 이를 정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2004년 10월 13일 조선일보 1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1면 톱 기사로 게재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1909년 중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입장의 국감 자료집을 배포했다가 회수한 것을 보도한 조선일보 2004년 10월 13일자 1면 톱 사.우리 정부가 1909년 중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간도(間島)협약이 무효라는 입장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통상부는 이 같은 정부 입장을 밝힌 ‘국정감사자료집’을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했다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해 수거한 것으로 12일 밝혀졌다. 이 문제에 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도협약은 사실상 조선의 영토였던 간도를 일본이 중국에 넘겨준 대가로 만주 철도설치권 등 특권을 얻은 조약이다. 간도협약이 무효라면 백두산과 두만강 북쪽 지역이 우리나라 영토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외교부의 ‘국정감사자료 7권’은 186쪽 ‘1909년 청나라와 일본의 간도협약내용’마지막에 간도협약이 무효임을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 정부는 1905년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이 강박에 의해 체결된 무효조약인 만큼, 이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체결한 1909년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함”〈사진〉으로 돼있다.
외교부는 지난 5일 국정감사에서 이 자료집을 배포했다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해 자료집을 수거키로 결정, ‘간도협약은 무효’ 부분을 삭제한 새 자료집과 교환했다. 새 국감 자료집에는 “간도문제는 북한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관련돼 있는 아주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로서, (중략) 신중히 다뤄나가야 할 문제”라는 입장만 남겨뒀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지만, 최근 중국이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간도협약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이를 대외에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당일 아무런 대응 안해
외교부가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국감 자료집에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외교부는 반기문 장관 주재 실국장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조약국과 아시아·태평양국 관계자들이 수차례 대책을 논의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간도협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져 좋은 측면이 있으나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 기회에 앞으로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고, 그에 반대되는 입장도 피력돼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외교부 이규형 대변인은 이날 오전 이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로 했으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 결과 브리핑이 수차례 연기된 끝에 정부는 당일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겁니다.
<<i>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부 국정감사 자료집의 ‘간도협약 무효’ 비사는 다음주에 하편이 계속됩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s://v.daum.net/v/20241020053016236 2024. 10. 20.
'옛 간도땅' 중국 동북 3성 인구 10년간 1100만명 감소 왜?
중국 당국, 동북 3성 산아제한 전면 완화 검토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한반도와 인접해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했던 옛 간도와 만주땅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 동북 3성 인구가 10년간 1100만명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중국 CCTV 등 중국매체에 따르면 국가통계국이 전날 발표한 인구 센서스 결과 동북 3성 상주인구는 2010년 말 1억952만여명에서 지난해 말 9851만여명으로 10%나 줄었다.
랴오닝성은 4374만여명에서 4259만여명으로 2.6% 소폭 감소했다.
반면 우리 동포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했던 지린성은 2746만여명에서 2407만여명으로 12.3%,
헤이룽장성은 3831만여명에서 3185만여명으로 16.8% 감소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인구는 10년 전 13억3972만명에서 14억1178만명으로 5.38% 늘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동북 3성의 인구는 지속 감소한 것이다.
랴오닝성과 지린성 상주인구의 성비는 각각 99.7(여성 100명당 남성 수)과 99.69를 기록, 중국 내에서 이들 지역만 여성이 더 많았다.
중국 전체 인구 중 남성은 7억2334만명으로 51.24%에 달했고, 여성은 6억8844만명으로 48.76%였다. 출생 당시 성비는 111.3으로 10년전에 비해 6.8 줄어 남성으로 기울었던 무게 중심이 다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종합하면, 동포들이 몰려 살던 지린성을 중심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했으며, 그 중에서도 남성 인구가 더 많이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60세 이상 인구 비율도 랴오닝성(25.72%)이 중국 내에서 1위, 헤이룽장성(23.22%)과 지린성(23.06%)이 각각 3, 4위를 기록하는 등 고령화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전체 인구의 나이 분포를 보면 0~14세가 2억5338만명으로 전체의 17.95%, 15~59세가 8억9438만명으로 63.35%, 60세 이상이 2억6402만명으로 18.7%였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0~14세는 1.35% 포인트 증가했고, 15~59세는 6.79% 포인트 감소, 60세 이상은 5.44% 포인트 증가했다.
동북 3성 출산율은 6.08‰(인구 1000명당 출생아 6.08명)를 기록, 전국 평균 8.50‰보다 낮았다.
동북 3성의 연령별 인구 분포를 보면 고령화는 심각하게 진행 중인 반면, 신생아 출산은 평균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닝지저(寧吉喆) 중국 국가통계국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동북 지역 인구 감소는 자연 및 지리적 환경, 출산 수준 및 경제사회적 발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동북 지역은 북방에 있어 겨울철이 상대적으로 길고 춥다 보니 일부 인구가 기후가 온난한 남방으로 이주했다"고 밝혔다.
또 "동북 지역 경제는 구조조정기에 있는 반면 경제가 발전한 연해 지역에는 다양한 발전 기회와 취업 전망이 있어 동북 지역 등의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북 3성은 과거 중국의 중화학 공업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자원고갈과 산업구조 재편 등에 따라 지역 경제가 낙후되면서 젊은 층이 현지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이다.
또 북중간 국경선 1400km 가운데 지린성이 1200km, 랴오닝성이 200km를 북한과 맞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년 사이 강화된 대북 제재 역시 지역경제 발전을 저해한 요인 중 하나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닝 국장은 "동북 진흥발전을 매우 중시해 여러 주요 조치를 내놨다"면서 "앞으로 동북 지역 인구문제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인구변화에 따른 도전에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동북 3성 지역에서는 이번 인구 총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중국 최초로 산아 제한정책 전면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oohan@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옛 간도땅' 중국 동북 3성 인구 10년간 1100만명 감소 왜? (daum.net) 2021. 05. 12.
<참고자료>
간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만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黑龍江 아골타의 꿈, 누르하치의 기개가 서린 땅
http://shindonga.donga.com/Series/3/990423/13/1023998/1 2017-08-13
黑 검은 용이 휘도는 白山黑水의 땅
http://shindonga.donga.com/Series/3/990423/13/1024194/4 2017-08-13
蒙 말발굽 소리 사라진 칭기즈칸의 고향
http://shindonga.donga.com/Series/3/990423/13/1092675/5 2017-10-15
'코리아시대 > 연변조선족자치주(+연해주, 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해주(1) - “고려인 한 서린 땅… 정부는 왜 연해주 유적 방치하나” (6) | 2024.08.18 |
---|---|
연변조선족자치주(1) - [현장영상] "조선족 탄압말라!" '탈중공연합회', 中공산당 '맹비난' (0) | 2021.07.05 |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시베리아·레나강을 가다] (0) | 2018.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