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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54) 제6공화국 : 김대중정부(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1998년 6월 16일 소 500마리, 10월 27일 소 501마리,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 방북' 본문

코리아시대/대한민국

대한민국 (54) 제6공화국 : 김대중정부(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1998년 6월 16일 소 500마리, 10월 27일 소 501마리,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떼 방북'

대야발 2025. 7. 8. 16:23

 

 

 

 

 

 

이른바 '소떼 방북'은 정 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27일 소 501마리를 몰고 두 번째 방북길에 올라 민간 기업인 처음으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소떼 방북 효과는 대단했다. 남북 민간교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고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초석이 됐다.

 

 

■ 1001마리 소떼와 83세 정주영…휴전선 활짝 열린 영화 같은 장면[뉴스속오늘]

양성희 기자2025. 6. 16. 06:00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방북길에 오른 모습./사진=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
 
 
 
 
 

"20세기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전위예술 작품"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7년 전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일을 가리켜 이렇게 평가했다.

 

 

이른바 '소떼 방북'은 정 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27일 소 501마리를 몰고 두 번째 방북길에 올라 민간 기업인 처음으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소떼 방북 효과는 대단했다. 남북 민간교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고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초석이 됐다.

 

 

 

1998년 6월16일 소를 태운 트럭들이 줄지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는 모습. /사진=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

 

 

 

"한 마리가 소가 1000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간다."

 

 

1998년 6월16일 방북길에 나선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지역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태어났는데 17세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했다. 무슨 일을 하든 서울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때 북한에서 들고나온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소 1001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향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같이 말한 것이다. 방북길에 오른 그의 나이는 83세였다.

 

 

정 회장이 소떼 방북을 기획한 건 1992년부터였다. 충남 서산 소재 현대서산농장에 소 150마리를 들인 뒤 방목을 지시했다. 방북 당시 농장 70만평 초원엔 3000여마리 소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1998년 6월16일 소를 태운 트럭들이 줄지어 북한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소떼 방북길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흰색 트럭 수십 대가 줄줄이 소들을 싣고 판문점을 차례로 지났다. 정 회장은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지나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외신도 역사적인 순간을 생중계하며 "남북한 휴전선이 개방됐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소떼 수송에 드는 41억7700만원 상당의 비용은 현대그룹이 부담했다.

 

 

방북 직전 임진각에서 정 회장은 "이번 방문이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현실이 됐다. 남북 대치를 상징하던 판문점을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이후 남북사업의 길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2차 방북도 빅 이벤트였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1998년 10월30일 밤 정 회장 숙소 백화원초대소를 찾으면서다. 김 위원장은 "명예회장 선생이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직접 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과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남북 협력 사업 등을 논의하면서 약 45분간 면담을 진행했다.

 

 

정 회장 방북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리고 경제 협력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2차 방북 직후엔 금강산 관광이 시작돼 1998년 11월 금강산으로 향하는 금강호가 첫 출항 했다. 이후 육로 관광의 길도 열렸다. 경제협력 논의는 향후 개성공단 건립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성과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북한 평양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남북관계 개선, 평화통일에 뜻을 모았다.(1)

 

 

 

 

1998년 6월16일 오전 9시6분쯤 50여대의 트럭에 나뉘어 실린 소 500마리가 판문점을 넘어 북쪽을 향했다. 그 선두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있었다.

 

 

소떼 방북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 27일 소 501마리를 이끌고 다시 북으로 향했다. 두 차례에 걸쳐 총 1001마리의 소가 전달된 셈이다. 정 회장은 2차 소떼 방북에서 "1000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태자"고 제안했고 501마리를 보내며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 줄지어 판문점 건넌 소 '1001마리'… 선두엔 정주영 회장 [오늘의역사]

강지원 기자2025. 6. 16. 07:37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사진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떼를 끌고 북한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현대그룹 제공
 
 
 
 
 

1998년 6월16일 오전 9시6분쯤 50여대의 트럭에 나뉘어 실린 소 500마리가 판문점을 넘어 북쪽을 향했다. 그 선두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있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2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소 팔아 소 보낸다'… 정주영 회장, 북으로 향한 이유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군사분계선을 모두 넘은 것은 오전 9시21분쯤이었다. 이어 오전 10시쯤 정주영 회장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소가 실린 트럭에는 "나는 소를 몰고 왔습니다"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정주영 회장의 이른바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선 행보였다. 그가 북한으로 향한 이유는 명확했다. 어린 시절 강원도 통천에서 자란 정 회장은 17세에 부모님 몰래 소를 팔아 상경했다. 훗날 정 회장은 이때를 떠올리며 "소 한 마리를 몰래 팔아 서울로 와서 돈을 벌었으니 이제는 천 배로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남한 경제가 휘청이던 시점 정 회장은 민간 차원에서 남북 간 신뢰 회복과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겠다는 실천적 결단을 내렸다.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사진은 1998년 6월16일 소떼 방북을 앞두고 서산농장에서 키운 통일소를 끌고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1000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 더"… 소떼가 건넌 평화의 길


 

이날 북한으로 전달된 소 500마리 중 상당수는 임신 중이었는데 정 회장의 지시로 '통일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담아 선별된 것이었다. 북측도 정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며 극진히 맞이했고 소들은 개성 인근 축산시설로 이동해 사육됐다. 이 장면은 국내외 언론에 실시간으로 보도되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떼 방북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 27일 소 501마리를 이끌고 다시 북으로 향했다. 두 차례에 걸쳐 총 1001마리의 소가 전달된 셈이다. 정 회장은 2차 소떼 방북에서 "1000마리는 마침표 같으니 한 마리를 더 보태자"고 제안했고 501마리를 보내며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정 회장은 2차 방북에서 북한 측의 선 제안으로 김정일과 만나기도 했다. 외부 인사를 만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김정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층 속도가 붙으며 빠르게 진전됐다. 이를 통해 많은 실향민이 북한의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다. 또 남북 정상회담과 개성공단 추진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출발점이기도 했다. 북한은 정 회장의 방북을 "동포애의 지극한 실천"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노동신문은 그를 "기업가의 탈을 쓴 애국자"라고 소개했다.

 

 

정 회장의 소떼 방북은 민간이 나서 국가 간 대화를 유도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정부가 아닌 개인이,권위가 아닌 진심이 남북을 연결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비록 정 회장은 염원하던 통일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2001년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소떼 방북'은 경제인으로서 이익을 넘어 한 민족의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2)

 

 

 

<자료출처>

 

 

(1) 1001마리 소떼와 83세 정주영…휴전선 활짝 열린 영화 같은 장면[뉴스속오늘] (daum.net)

 

 

(2) 줄지어 판문점 건넌 소 '1001마리'… 선두엔 정주영 회장 [오늘의역사]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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