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신라(8) 13대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262-284년) 본문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2 미추(味鄒) 이사금(尼師今)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 미추왕 죽엽군(未鄒王 竹葉軍)
알지의 성을 김으로 하고 7대손 미추가 처음 왕위에 오르다
금상자에서 나왔으므로 김(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구도(仇刀)라고도 한다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2)
김알지의 7세손 미추가 왕위에 오르다
미추왕 죽엽군(未鄒王 竹葉軍)
제13대 미추니질금(未鄒尼叱今)미조(未祖) 또는 미고(未古)라고도 한다.은 김알지(金閼智)의 7세손이다. 대대로 현달하였고 또한 성덕(聖德)이 있었으므로 첨해(沾解)의 자리를 물려받아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지금 왕의 능을 속칭 시조당(始祖堂)이라 한다. 대개 김씨로써 처음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후대 김씨 왕들이 모두 미추를 시조로 삼았으니 마땅하다. 왕위에 오른 지 23년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능은 흥륜사(興輪寺) 동쪽에 있었다.(3)
《한국열국사연구》
서기 262년에 미추이사금이 통치자가 되자 박씨 · 석씨와 더불어 김씨 왕이 등장하게 되었다. 미추는 어머니가 박씨였으므로 신라 왕실과 관계가 없는 혈통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신라가 왕위 계승에 개방적이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서기 307년에는 나라 이름을 신라로 고쳤는데, 이 시기까지는 신라의 초기로서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4)
<자료출처>
(4)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449-450쪽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신라문화의 ‘북방기원설’ 재론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
신라-가야 적석목곽분 주인은 선비모용씨: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09/09/25
사대주의의 뿌리 신라의 '걸사표'와 닮은꼴: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09/11/07
[역사추적]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족?: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08/12/03
스키타이족 기원과 신라의 김알지 왕족: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0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