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신라 고고학(1) 경주 나정유적 본문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神話, 역사가 되다… 박혁거세 탄생의 비밀 깃든 ‘나정’
동아일보 업데이트 2017년 6월 21일 05시 43분

경주 도심 남천(南川)을 건너 남산(南山) 방향으로 차를 몰자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물 댄 논 사이로 황구가 어슬렁거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탑동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를 지키는 육중한 조선시대 기와 건물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6부 촌장(村長)의 위패를 봉안한 양산재(楊山齋)다. 그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니 소나무 숲 속에 감춰진 공터가 나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기록된 나정(蘿井)이다. 나정과 불과 500m 떨어진 거리에 경애왕이 살해당한 곳이자, 신라 멸망을 상징하는 포석정이 있다. 월성과 황룡사지 등 경주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 천년왕국 신라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런 걸까.
2002∼2005년 윤세영 당시 중앙문화재연구원 원장(현 고려대 명예교수)과 함께 나정을 발굴한 이문형 책임조사원(현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기획실장)과 이지균 조사원(현 천년문화재연구원 단장)이 살짝 성토된 땅을 손으로 가리켰다.
“신라시대 ‘팔각 건물터’가 발견된 곳입니다. 신화가 역사로 바뀐 순간이죠.”
○ 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역사적 발견

“아니, 이게 왜 이런 각도로 꺾이지?”
2002년 5월 하순 경주 나정 발굴 현장. 조선시대 건립된 비각(碑閣) 주변을 시굴하는 과정에서 건물 기단 석렬(石列)을 발견한 이문형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연히 사각형 모양의 평면을 머리에 그리고 가장자리를 팠는데, 위로 꺾인 석렬의 각도는 수직이 아닌 둔각을 이루고 있었다. 서둘러 반대편 가장자리를 파보니 마찬가지였다. 석렬 주변에서는 신라시대 기와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며칠 뒤 이문형은 후배 조사원들을 조용히 주말에 불러냈다. 경주시가 본래 요청한 발굴조사 내용에서 벗어나 기와 건물의 정체를 밝혀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앞서 경주시는 낙수 피해를 막기 위해 담장 이설 공사를 추진하면서 연구원에 주변 발굴을 요청한 터였다. 갑자기 발견된 기와 건물터에 대한 성격 규명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주말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노출시킨 기단 석렬은 상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구조였다. 경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는 팔각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 더구나 팔각 건물터에서 ‘義鳳四年(의봉 4년·679년)’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됨에 따라 문무왕의 삼국통일 직후 증축이 이뤄진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석렬 내부에서는 3열에 걸쳐 초석(礎石) 40개가 발견됐다. 지표가 지속적으로 깎인 탓에 초석은 불과 20cm 깊이에 묻혀 있었다. 팔각 건물터 외곽을 둘러싼 담장도 발견됐다.
○ 나정인가 신궁(神宮)인가

나정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연꽃무늬 막새. 사진제공 중앙문화재연구원
“고허촌(高虛村) 촌장이 양산 밑 나정 우물가에 무릎을 꿇고 우는 흰말을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말은 사라지고 커다란 붉은 알만 있었다. 알을 깨고 나온 사내아이를 촌장이 데려와 길렀다. 아이는 이미 13세에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매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그가 바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나정은 조선시대부터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한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역사가 아닌 허구로만 여겼다. 그러나 신라시대 팔각 건물이 발굴되면서 나정은 역사적 실재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특히 나정에서 추정 우물터를 중심으로 한 초기철기시대 ‘제의용 환호(環濠·마을이나 제단을 둘러싼 도랑)’가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박혁거세의 건국 연대(기원전 57년)와 비슷한 시점에 나정이 신성시됐음을 보여주는 근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발굴단이 우물터로 지목한 유구가 사실은 기둥구멍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청동기시대 소도(蘇塗)처럼 환호 중앙에 커다란 나무장대를 꽂은 흔적이라는 것이다. 단, 통일신라시대 팔각 건물이 국가 제의시설이라는 발굴팀 의견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고고학·학술원 회원)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나정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박혁거세를 기리는 시조묘 혹은 김씨 시조를 기리는 신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1)
2000년전 박혁거세 부인 관련 삼국유사 기록 사실이었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2021. 4. 27. 14:35
알영부인..계룡 나타나 낳은 여자아이 씻긴 곳 동궁월지~계림 하천 '발천', 돌다리터, 도로 확인신라문화유산연구원 발굴조사, 공개
‘삼국유사’에 설화처럼 기록돼 있던 ‘신라 시조’ 박혁거세 부인과 관련된 유적이 경주 동부사적지대에서 발견돼 2000년 전 어떤 일, 어떤 모습이었을지에 관한 토론과 연구가 본격화했다.

동궁월지에서 출발한 ‘발천’이 계림을 거쳐 남천과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월정교 인근. 발천은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태어나자 몸을 씻겼는데, 닭부리 같은 것이 제거(撥)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아가 친중·친신라 사대사관으로 쓰인 ‘삼국사기’는 교과서처럼 믿으면서 왕실과 귀족사회, 민중 속의 숱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삼국유사를 ‘야사’로 치부하며 평가절하하는 것을 반성하는 모습도 나타날지 주목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주시(시장 주낙영)는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동부사적지대(발천) 수로 복원 정비를 위한 발굴작업을 벌인 결과, 신라 첫 번째 왕의 왕비 ‘알영’과 관련된 ‘발천’이라는 하천, 수로, 돌다리 터(석교지), ‘석교지’ 연결도로와 수레바퀴 자취 등의 흔적을 발굴했다고 27일 밝혔다.
▶2000년 전 얘기지만 삼국유사 기록과 일치=발천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월성 북쪽과 계림을 지나 남천에 흐르는 하천을 가리키는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유래됐다.

발천에 놓인 돌다리 터.
삼국유사 권1, ‘기이 1편’에 ‘사량리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아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을 발천(撥川)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발(撥)’자는 10여가지의 뜻이 있는데, ‘다스리다’ ‘휘다’가 주로 쓰이며, 이번엔 ‘제거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물론 귀한 인물의 탄생을 상징하므로 ‘다스리다’는 뜻을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발천이 동궁월지 근처에서 출발해 유려한 곡선을 이루다가 남천과 합류 지점에서 크게 꺾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휘다’는 의미라고 봐도 일리 없지는 않다.
동굴월지에서 계림을 거쳐 교촌마을에 이르는 길가에 실개천이 흐르는데, 지금까지는 월성(신라왕궁)의 해자 흔적 같기도 하고, 과거에는 컸을 달천의 축소판 같기도 했었다.

동궁과 월지 앞 습지.
이번 발굴조사의 새로운 성과로는 무엇보다 679년(문무왕 19년)에 만들어진 ‘경주 동궁, 월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고대 발천 수로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새로 확인된 수로는 오랫동안 알려져왔던 수로와는 다른 것으로, 이번 발굴을 통해 삼국시대에는 넓었던 하천 폭을 통일신라에 좁혀서 사용했던 양상과 고려 전기까지 사용되던 하천이 이후 폐기되는 시점이 확인됐다.
두 번째 성과로는 760년(경덕왕 19년) 축조된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보다 제작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7세기 후반 ‘석교지’를 발견한 것이다.
석교지는 너비 5.2m 정도의 조그만 하천에 비해 다리 너비가 교각을 기준으로 11m가 넘는 큰 규모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길게 다듬어 만든 돌)을 이용해 양쪽 교대를 만들고 하부에는 교각과 교각받침석 7개가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형태다. 이외에 난간석·팔각기둥·사각기둥과 청판석 등의 석재가 상부에서 흩어진 채 확인됐다.
또 석교지 남쪽과 북쪽으로 연결된 도로 흔적도 찾았다. 석교지 북쪽의 도로에는 초석(礎石)과 적심석(積心石·돌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은 돌)이 확인돼 기와집의 문지(門址·문이 있던 자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왕 3년(683년) 왕궁의 북문에서 일길찬(17관등 가운데 7번째 등급으로, 육두품 이상이 오를 수 있음) 김흠운(金欽運)의 어린 딸을 왕비로 정하고 성대하게 맞이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으로 미뤄보아 이번 도로유구의 발굴은 신라왕궁 북문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림.
도로 서쪽 경계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암거식(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땅속이나 구조물 밑으로 낸 도랑) 배수로를 설치했으며, 통일신라 석교지와 연결되는 도로는 너비 20m 정도로, 잔자갈이 깔린 도로면 위에서는 수레바퀴 흔적도 확인됐다.
한편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원장 전규영)은 29일과 30일, 양 일에 걸쳐 라한셀렉트 경주에서 ‘발천, 신라왕경의 옛물길’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발천의 발굴조사 현황과 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앞으로의 복원 정비를 위한 방향과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첫날인 29일에는 신라왕경과 왕궁, 발천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발천 발굴조사 성과, 신라왕경의 홍수와 치수 등 4건의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다음날인 30일에는 신라왕경의 배수 체계를 통해 본 발천의 의의, 중국 수당(隨唐) 시기 장안성의 수리 시스템 연구 개술 등 6건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문화재청 유튜브로 발굴 현장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경주시와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온라인 발굴 현장 공개(경주 황남동 120-2호분)를 진행한 바 있다.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인 이번 발천 발굴 현장 공개와 학술대회 역시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국민을 위해 온라인(유튜브)을 통해 볼 수 있게 기획됐으며, 앞으로도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복원 정비사업의 추진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2)
<자료출처>
(1)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神話, 역사가 되다… 박혁거세 탄생의 비밀 깃든 ‘나정’|동아일보 (donga.com)
(2) 2000년전 박혁거세 부인 관련 삼국유사 기록 사실이었다 (daum.net)2021. 4. 27.
<참고자료>
박혁거세 왕비 알영 이야기 깃든 길이 150m 고대 수로 확인(종합) | 연합뉴스 (yna.co.kr)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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