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신라 고고학(4) 경주 덕천리 유적 본문
경주 덕천리유적은 2004년 6월부터 3만5천여㎡에 달하는데, 박 승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은 "덕천리 유적이 원삼국시대 대규모 분묘군임이 확인됨으로써 이 유적이 초기신라 사로국의 모체가 되는 새로운 집단으로 파악된다"며 "이를 통해 1∼3세기 초기 신라의 형성과정과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다수의 오리모양토기와 마형대구 호형대구는 피장자의 신분을 과시하는 위세품으로 이를 통해 덕천리 유적의 정치적 지위를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경주대 이근직 교수(신라사)는 "덕천리 유적 발굴성과를 존중한다면, 이들 유적을 남긴 주인공은 돌산 고허촌 혹은 사량부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 덕천리 유적 일대가 돌산 고허촌의 중심지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경주 덕천리유물 '신라건국 밝혀질까' 관심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영남일보 경주=임준식기자 2006. 10. 26. 08:05
[쿠키 사회] 경부고속철도 경주통과 구간 완공을 앞두고 또다시 내남면 덕천리 구간에서 신라 건국시기인 사로국(斯盧國) 시대의 유적이 대량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요청에 따라 2004년 6월부터 3만5천여㎡에 달하는 덕천리 유적 발굴에 나선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은 25일 현장에서 정징원·이청규 문화재위원과 김성구 국립경주박물관장, 이희준 경북대 교수, 김권구 계명대 교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지도위원회를 열고, 발굴유구 및 출토유물의 성격 등에 대한 설명과 향후 유적의 처리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박승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연구실장)은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29기와 원삼국시대 목관묘와 목곽묘 등 235기, 삼국시대 이후 도로유구 및 구상유구 등 36기 등 모두 300여기의 유구가 확인됐다"면서 "또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 원삼국시대 오리모양토기 등 유물 2천347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 책임조사원은 또 "덕천리 유적이 원삼국시대 대규모 분묘군임이 확인됨으로써 이 유적이 초기신라 사로국의 모체가 되는 새로운 집단으로 파악된다"며 "이를 통해 1∼3세기 초기 신라의 형성과정과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수의 오리모양토기와 마형대구 호형대구는 피장자의 신분을 과시하는 위세품으로 이를 통해 덕천리 유적의 정치적 지위를 파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경주대 이근직 교수(신라사)는 "덕천리 유적 발굴성과를 존중한다면, 이들 유적을 남긴 주인공은 돌산 고허촌 혹은 사량부 세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이 덕천리 유적 일대가 돌산 고허촌의 중심지였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신라 초기 사로 6촌에서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앞세워 건국한 것은 기원전 57년. 신라 6촌 및 촌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이름이 기록돼 있고, 이 가운데 이번에 유적이 발견된 곳은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촌장 소벌도리)으로 알려진 곳이다. 6촌은 이외에도 알천 양산촌과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들 6촌도 나중에는 부(部)로 명칭이 바뀌고, 사로국이 나아가 '진한 6부(辰韓六部)'가 된다. 박혁거세 옹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고허촌장은 양산 기슭에 올라 나정에서 말이 하늘로 오르고, 그곳에서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바로 혁거세라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신라 건국에서 돌산 고허촌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1)
경주 덕천리 유적의 신선로형 토기


신라와 가야가 태동해 발전하기 시작하는 서기 1-3세기 무렵, 지금의 경상도 지역은 소백산맥과 바다가 둘러싼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동시대 다른 지역과는 문화가 뚜렷이 구별되는 고고학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토기 문화를 보면, 한강유역과 호남지방에서는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나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 같은 '투박한' 토기가 주류를 이루던 서기 3세기 무렵, 소백산맥 동남쪽에서는 장식성이 짙게 발휘된 토기류가 다수 제작되고 있었다.
오리를 형상화한 토기가 있는가 하면, 지금의 가마솥 뚜껑과 모양이 거의 같은 뚜껑 갖춤 항아리형 토기가 있고, 쫑긋한 귀 모양 돌기를 어깨 양쪽에 붙인 양이부호(兩耳附壺)라는 토기도 발견된다.
이 시대 토기류 중에서도 장식성이 특히 돋보이는 것으로는 오리 모양 토기와 함께 '신선로형 토기'가 꼽힌다. 그 모양이 요즘 음식점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신선로를 닮았다 해서 이런 명칭을 얻은 듯하다.
이 토기는 아래로 가면서 바깥으로 벌어지는 받침대 위에다가 세숫대야 같은 몸체를 올려 놓음으로써 글자 그대로 화로와 흡사한 느낌을 준다.
몸체는 다시 바닥 부분을 위로 밀어올린 것처럼 만든 다음, 그 한복판에는 커다란 원형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런 구멍에는 마개가 덮여 있는 게 상례다.
경부고속철도 구간에 편입된 경주 덕천리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이 공사를 앞두고 발굴을 실시한 결과 3-4세기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곽묘 80여 기에서 이와 같은 신선로형 토기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최종규 경남고고학연구소장은 신선로형 토기에 대해 "와질토기(瓦質土器)가 소멸하고 도질토기(陶質土器가 등장하는 3-4세기라는 한정된 시기에만 유행한 와질토기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이 토기는 언제부터 학계에 알려졌으며, 누가 이런 명칭을 붙였을까?
최종규 소장은 "내가 국립경주박물관에 근무하던 70년대도 그런 명칭이 있었던 같으나 확실치는 않다"고 말했다.
60년대 이후 각종 고고학 발굴에 관여해 온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또한 "고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나 내 스승인 삼불 김원룡 선생이 쓰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지만 자신은 없다"면서 "신선로 비슷하다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되지만, 확실히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조 전 소장은 그러면서 "내 기억으로는 70년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주해 발굴한 김해 양동리 유적에서 신선로형 토기가 출토되자 이 토기가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창원대박물관이 조사한 울산 중산리 유적, 경주박물관 등이 조사한 경주 황성동과 조양동 유적에서 신선로형 토기는 몇 점이 출토됐다.
발굴이 아닌 경로를 통해 입수된 신선로형 토기도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는 출처가 어딜까?
증언을 종합할 때 현재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바로 그 덕천리 유적이다.
최종규 소장은 "덕천리는 고 한병삼 관장이 일찍이 주목했던 곳"이라면서 한 전 관장이 경주박물관장으로 재임할 때는 덕천리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이처럼 드물게만 보고되던 신선로형 토기가 경주 덕천리 유적에서는 대량으로 나오고 있다. 역시 희귀성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오리 모양 토기만 해도 덕천리 유적에서는 한 무덤에서만 3점을 한꺼번에 토해 내기도 했다.(2)
<자료출처>
(1) 경주 덕천리유물 '신라건국 밝혀질까' 관심 (daum.net) 2006. 10. 26.
(2) 경주 덕천리 유적의 신선로형 토기 (daum.net)2006.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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