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신라 고고학 (7) 경주 탑동유적 본문
경북 경주 탑동 주택부지에서 4∼6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고분 34기가 나왔다.
2018년 5월 9일 한국문화재재단 조사연구팀은 경주 탑동 6-1번지와 6-6번지의 면적 1천336㎡ 부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신라 전성기에 만든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 8기,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 18기,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 4기, 옹관묘(甕棺墓·독무덤) 4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경주 탑동 6-1번지에서 나온 적석목곽묘.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경주 탑동 6-1번지 3호 목곽묘. 왼쪽이 주곽, 오른쪽이 부곽이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목곽묘 가운데는 6-1번지 3호 목곽묘에서 많은 부장품이 나왔다. 이 무덤은 동쪽에 주곽(主槨·으뜸덧널), 서쪽에 부곽(副槨·딸린덧널)을 마련했다.
주곽에서는 허리에 숫돌을 찬 무덤 주인공 머리 부근에서 토기들이 발견됐고, 발 쪽에서는 비늘 갑옷과 화살촉이 출토됐다. 내부에서는 철창과 철도끼도 나왔다. 주곽보다 조금 높게 만든 부곽에는 항아리와 등자 조각, 운주(雲珠·말띠꾸미개) 같은 마구(馬具)를 묻었다.
이 무덤과 약 5m 떨어진 6-1번지 4호 목곽묘에서는 굽다리접시, 목 긴 항아리 등 신라 전기 양식으로 알려진 토기가 나왔다.
조사단은 토기 양식 등을 근거로 경주 황오동 월성로 고분군 출토품과 비교해 목곽묘 조성 시기를 4세기 중반∼5세기 초반으로 추정했다.
경주 탑동 6-1번지 목곽묘 출토품.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5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적석목곽묘에서는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달린 굵은고리 귀걸이 한 쌍을 비롯해 둥근 옥이 달린 목걸이, 은제 팔찌,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큰칼)가 출토됐다.
조사단은 "적석목곽묘와 석곽묘는 2∼3개 무덤을 나란히 배치하기도 했다"며 "혈연이나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을 동일한 묘역에 매장한 문화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국비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서는 신라고분 외에도 조성 시기를 알 수 없는 목관묘와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우물 등이 중첩해 나타났다.
경주 탑동 적석목곽묘에서 나온 귀걸이.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신라 무덤이 무더기로 확인된 탑동 일대는 신라 왕성인 월성과 왕릉급 무덤이 모인 대릉원에서 보면 남천(南川) 건너편 지역으로, 남산에서 경주평야로 나아가는 길목이다.
지난 2010년 기원전 1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수장급 인물의 목관묘(木棺墓·널무덤)가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이전까지는 문헌에 기록된 신라 건국 시기 즈음해 조성된 유력 지배자 무덤이 조양동과 사라리 같은 경주 외곽에서만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후 탑동에서는 이번 조사 성과를 포함해 기원 전후 목관묘 3기와 4∼6세기 신라 무덤 80여 기가 나왔다.
노재민 한국문화재재단 조사연구팀장은 "탑동 일원에서 원삼국시대부터 오랫동안 대규모로 무덤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탑동에서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4세기 무덤을 발견한 것이 성과로, 6월까지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고고학을 전공한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은 "탑동에서 4세기 목곽묘 여러 개가 나온 것은 의미가 크다"며 "근처에 박혁거세와 신라 초기 왕들 무덤이라는 오릉이 있다는 점에서 신라가 초기에는 이 일대에서 세력을 유지하다 나중에 남천 너머로 중심지를 이동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차 단장은 이어 "탑동에서 조금 더 조사를 진행한다면 신라 초기 역사를 구명하는 유적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대규모 고분군이 확인된 탑동 주변 일대에는 오릉 말고도 박혁거세 탄강지인 나정과 그가 처음 궁궐을 세웠다는 창림사터를 비롯해 신라 건국과 관련된 유적이 밀집한다는 점에서 향후 이 일대는 발굴성과에 따라 신라 건국의 열쇠를 품은 곳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경주 탑동 조사 지역 전경.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출처; 경주 주택부지서 4∼6세기 신라고분 34기 쏟아져(종합) (daum.net)연합뉴스. 2018. 5. 9.)
경북 경주 탑동 유적에서 삼국시대 인골 중 최장신인 180㎝의 남성 인골이 나왔다.
2021년 7월 15일 문화재청은 “한국문화재재단이 조사 중인 경주 탑동 28-1번지(탑동 유적)에서 최근 5~6세기 삼국시대 무덤 24기와 그 내부에 있던 총 12기의 인골을 확인했다”면서 “이중 2호 덧널무덤에서 180cm에 가까운 신장의 남성 인골이 나왔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삼국시대 무덤에서 조사된 남성 인골 평균 신장은 165cm다. 문화재청은 “현재 확인된 삼국시대 피장자 중 최장신이며, 보존상태 역시 거의 완벽하다”고 전했다.
특이하게도 인골에선 디스크 환자와 유사한 척추 변형이 발견됐다. 앞으로 고고학적 조사와 병리학적 연구를 통해 피장자가 어떤 육체적 일을 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인골의 직업을 확실하게 유추할 만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부장품은 대부분 토기였고, 농기구인 괭이의 날로 짐작되는 쇠붙이가 발견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인골을 연구해 신라인 생활과 장례 풍습을 규명하고, 두개골을 활용해 신라인 얼굴을 복원할 예정이다.
경주 남천과 인접한 도당산 아래쪽에 위치한 탑동 유적은 기원후 1세기 전후 목관묘를 비롯해 6세기까지 무덤이 조영된 것으로 알려진 신라의 중요한 무덤 군이다. 한국문화재재단이 2010년부터 조사를 진행해 돌무지덧널무덤 130기를 비롯한 약 180 여기의 무덤을 확인했다.
(출처; https://v.daum.net/v/20210715105102583 서울신문. 2021. 7. 15.)
경주 탑동유적 발굴지 지도
(출처; https://v.daum.net/v/20210715093728741 헤럴드경제.2021. 7. 15.)
180㎝ 거구의 신라인은 누구였을까.
5세기 때 만들어진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 발견된 180㎝의 인골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1년 7월 15일 한국문화재재단은 경주 탑동 유적의 신라 고분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이던 중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 2호로 명명한 무덤에서 키 180㎝ 정도의 남성 인골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인골 중에서는 최장신이라는 것이 문화재재단 측의 설명이다.
다만 인골의 직업을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는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부장품은 대부분 토기였고, 머리 쪽에서 농기구인 괭이의 날로 짐작되는 쇠붙이가 발견됐다. 무기류는 없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경주 탑동유적 목곽묘 2호에서 출토된 180cm 인골 사진 및 3D스캐닝 사진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강력한 지도자였을까
"바닷가의 할멈이 줄로 끌어서 바닷가에 매어두고 궤짝을 열어서 보니 어린아이 한 명이 들어 있었다. 할멈이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니 신장이 9척이나 되었고, 풍채가 빼어나며 지식이 남달랐다. 어미가 말하기를,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상이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을 배워 공(功)과 이름을 세우도록 해라”라고 하니, 이에 학문에 정진하여 땅의 이치를 겸하여 알게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 이사금)
경주 탑동유적 목곽묘 2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삼국사기』는 석탈해의 키가 9척(현재의 184㎝)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골상이 특이하다"고 말했듯이 당시 180㎝에 달하는 신장은 남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특징에 속했다. 이번 발굴에서도 무덤 24기 중 12기에서 인골이 발견됐는데, 목곽묘 2호를 제외하고는 160㎝대였다. 그렇다면 목곽묘 2호의 남성도 강력한 지도급 인사였을까.
발굴 조사 결과는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측은 "무덤 안에서 무기나 금세공품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높은 신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외국인이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덤 양식도 전형적인 5~6세기의 신라 무덤이고, 무덤 안에 외국에서 온 흔적을 보여주는 아무런 유물이 없기 때문에 신라인이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노동에 시달린 하층 노동자였나
대신 목곽묘 2호 인골의 머리맡에서는 나무 삽에 쓰이는 철기 삽날이 발견됐다고 한다. 따라서 농민이거나 노동 계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정이다. 5~6세기는 신라의 국력을 확장해나가는 시기였던 만큼 피지배층의 노동 강도는 이전보다 더욱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탑동유적 적석목곽묘 6호 출토 인골 사진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목곽묘 2호 인골의 특징 중 하나는 척추 변형 흔적이다. 디스크 환자처럼 척추가 변형돼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척추가 변형된 것인지, 아니면 무덤 안에 시신을 욱여넣는 과정에서 굽은 것인지는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골이 발견됐을 당시 얼굴이 하늘을 향하지 않았고, 관도 신체에 맞춰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관에 억지로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장이 크지만 지체 높은 귀족이 아니다 보니 기존 관에 무리하게 넣어 매장했다는 것이다.
한편 경주 도당산 아래에 있는 탑동 유적은 신라시대 중요 무덤군으로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 130기를 비롯해 180여 기의 옛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 조사한 무덤 24기는 5~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는 환두대도(環頭大刀·손잡이 끝이 둥근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는 칼) 등 철기 무기류가 발견돼 중하급 귀족의 무덤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탑동유적 적석목곽묘 7호 출토 인골 사진 [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탑동유적 적석목곽묘 9호 유구 3D스캐닝 결과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탑동 유적지는 선상지로 물길이 흐르고 점토로 된 지형이다 보니 인골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며 "다만 이번처럼 장신 인골이 온전히 보존되어 나온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재재단 측은 "향후 고고학적 조사와 병리학적 연구를 통해 유골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출처; https://v.daum.net/v/20210715154329670 중앙일보. 2021. 7. 15.)
■넓적다리 위에 놓여진 반려견
2021년 8월 경북 경주 탑동 유적에서도 의미심장한 발굴성과가 발표됐습니다.
발굴단(한국문화재재단)이 삼국시대 인골 중 최장신에 속하는 175~180㎝의 남성인골을 찾아낸 겁니다.
이 유골은 5~6세기 삼국시대 무덤 24기와 그 내부에 있던 12기의 인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노출되었는데요. 유골의 출토사실이 알려지자 세인의 관심은 삼국시대 최장신 남성의 현현에 쏠렸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남성 인골의 평균신장이 165㎝ 정도였거든요. 그런 가운데 기골이 장대한 신라인이 출현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게다가 보존상태까지 훌륭했습니다.
탑동 유적에서 확인된 최장신 인골의 양쪽 넓적다리 뼈 위에서 한 마리분의 개뼈가 확인됐다.해체된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한 마리분이었다.
그러나 최장신 인골의 확인도 중요했지만, 더 의미심장한 발굴의 양상이 포착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골의 양쪽 넓적다리 위에 개뼈가 가로질러 놓인 모습이었습니다. 이 개 또한 해체된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한마리분이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중소형견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덤 주인공이 생전에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반려견을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묻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녕 교동 39·63호 고분의 입구 쪽에 마련된 전용공간에 묻힌 순장견은 죽어서도 무덤 주인공을 지키는 경비견으로, 경주 탑동 덧널무덤에서 피장자의 넓적다리 위에 가로질러 놓인채 확인된 순장견은 피장자가 생전에 애지중지 키운 반려견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https://v.daum.net/v/20220530060009857 경향신문.2022. 5. 30.)
<참고자료>
경주 주택부지서 4∼6세기 신라고분 34기 쏟아져(종합) (daum.net) 2018. 5. 9.
경주 주택부지서 4∼6세기 신라고분 34기 쏟아져(종합) | 연합뉴스 (yna.co.kr)2018-05-09
경주서 삼국시대 최장신 '180cm' 남성 인골 발견 (daum.net)2021. 7. 15.
삼국시대 최장신 180cm 인골 발견.. 머리 모양이?[청계천 옆 사진관] (daum.net)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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