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3. 가야 고고학(2)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 본문
가락국으로 불린 금관가야의 왕성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금관가야의 왕궁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에서 각종 유물들, 둘레 1.5㎞의 토성을 쌓을 당시 이뤄진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대형 건물지, 각종 공방 등이 확인되고 있어서다.
베일에 쌓인 금관가야 왕성, 조금씩 실체를 드러낸다
경향신문 도재기 기자 2024. 10. 22. 16:58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성과 발표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대형 건물지, 생활공구 제작 공방 등 확인”

가락국으로 불린 금관가야의 왕성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금관가야의 왕궁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에서 각종 유물들, 둘레 1.5㎞의 토성을 쌓을 당시 이뤄진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대형 건물지, 각종 공방 등이 확인되고 있어서다. 서기 전후부터 532년 신라에 복속될 때까지 존속한 금관가야는 고령의 대가야가 부상하기 이전에는 가야연맹체를 대표하는 나라였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에서 5세기 대에 대지 확장을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을 비롯해 그동안 아궁이 시설을 갖춘 대형 건물지, 다양한 용도의 생활용 토기, 토우 같은 의례 행위물, 철을 생산하고 벼리던 야철터, 각종 생활공구 유물 등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김해 봉황동 유적의 현장 전경 일부.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김해시 봉황동에 자리한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왕궁이나 왕성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가야 대표 유적의 하나다.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봉황대 구릉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의 발굴조사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조사를 통해 배가 드나드는 접안시설, 토성, 여러 건물터, 야철터, 조개무지,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 유구가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최근 조사에서는 대지 확장을 위한 토목공사 중 지반 강화를 위해 다량의 조개껍데기를 섞어 흙을 다져 쌓은 대규모의 패각성토층을 확인했다”며 “조개껍데기를 활용한 지반강화는 최대 깊이 4m, 길이는 봉황토성의 성벽까지 이어질 경우 100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사진 땅의 주변으로 흙을 켜켜이 다져 쌓아 대지를 확장하는 방법은 경주 황룡사 터, 부여 금강사 터 등 삼국시대 절터에서 일부 확인되고 있다. 연구소 측은 “봉황동 유적은 이들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데다 조개껍데기를 섞어 쓴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5세기대에 봉황대 구릉 전체를 둘러싸는 둘레 약 1.5㎞의 토축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토목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그동안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대규모 공사 흔적 외에도 800여점에 이르는 각종 유물, 유구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금관가야 초기의 기와 10여점을 비롯해 최고 지배자급 무덤에서 발굴되는 뿔잔형 토기 조각 등이 출토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들 유물은 봉황동 유적 일대가 금관가야 지배층의 거점 공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의례 행위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토우들도 확인됐다. 인물형 토우는 물론 말·점박이물범 등을 형상화한 동물형 토우, 방패모양 등의 사물형 토우 등이다. 또 옥, 유리 구슬 등의 유물도 확인됐다.

집모양 토기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토기도 많이 출토됐는데 3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토기들이다. 또 각종 철기 유물과 함께 철광석·철괴·제철 흔적인 슬래그·바람을 불어넣는 송풍관 등 철 생산 관련 시설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밖에 대형 주거지 내부에서 아궁이가 설치된 구들 시설, 벽체의 세부 구조도 드러났다.
연구소 관계자는 “5세기대 금관가야 왕성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금관가야 전성기인 4세기대의 대형 건물지, 철 생산을 비롯한 각종 생활도구의 제작 공방 등을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향후 금관가야 왕성의 실체를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24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굴한 유물 공개 등 발굴조사 성과를 설명하는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1)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에서 대형 건물터·의례용 유물 나왔다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가야의 대형 건물지군과 의례용 유물을 다수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김해 봉황동 유적과 주변 일대에서는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주거지, 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 터인 고상건물지, 토성, 접안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기존의 조사 성과와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의 수로왕궁터 기록을 근거로, 금관가야 중심세력의 실체를 찾고, 그 실증적 자료 확보를 위해 2015년부터 매년 김해 봉황동 유적 내의 추정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시행한 2017년도 발굴조사에서는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봉황동 유적(동쪽 지점)의 전체적인 층위 양상과 가야 시기 대형 건물지군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 화로형토기, 통형기대(筒形器臺, 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그릇받침), 각배(角杯, 뿔 모양 잔), 토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을 다수 발견하였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4.5m 아래에서 기반층을 층위조사해, ‘삼한(三韓) 시대’로 불리는 원삼국 시대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문화층, 가야 시기의 건물지와 소성유구(燒成遺構,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시설물) 등이 중복된 문화층, 이후 통일신라 시기와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층 등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시행한 수차례의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기반층부터 현 지표면까지의 전체 층위의 양상을 밝혀낸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 성과가 앞으로 유적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가야 시기 문화층 조사에서는 다수의 대형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건물지들은 대체로 지름 10m 이상으로, 일정 구역 내에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건물지는 3호 건물지인데 바닥은 타원형이며 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기둥자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벽주건물지'(외곽에 벽을 돌린 형태로 벽 사이에 기둥을 세운 건물지)이다.
봉황대 진입로 개설구간의 46호 주거지(1999년, 부산대학교박물관 조사), 창원 신방리유적 5호 주거지(2005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대형 건물지군은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견된 일반 생활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인 화로형토기, 통형기대, 각배, 토우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화로형토기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수장급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통형기대는 막대기 모양의 띠(봉상, 棒狀)가 부착되어 있고, 띠 전면에 일렬로 찍혀 있는 둥근 고리무늬(원권문, 圓圈文)와 몸체에 둘러진 물결무늬, 엇갈리게 뚫은 사각형 구멍(투창, 透窓) 등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이다.


통형기대는 가야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확인되는 유물로, 생활유적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 유물들은 전년도 발굴조사에 출토된 차륜형(車輪形, 수레 바퀴 모양)토기, 구슬‧곡옥 등의 장신구류와 함께, 봉황동 유적을 점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이번 김해 봉황동 유적의 추정왕궁지 발굴조사에서는 당시 유력 계층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가야의 왕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상위 계층의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의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연차적인 전면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을 뚜렷하게 밝히고 이를 가야사 복원과 연구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조사 성과는 오는 22일 오후 2시에 김해 봉황동 발굴현장에서 공개한다.(2)
<자료출처>
(2)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에서 대형 건물터·의례용 유물 나왔다 (daum.net)2017.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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