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대한민국 사회 (6) "남북 교류협력 방식, 근본적 점검 필요해…민간 협력 우선돼야" 본문

1998년 김대중 정부 등장으로 시작된 햇볕정책 속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그해 6월과 10월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했고, 10월 18일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1999년 1차연평해전 등 긴장 국면도 조성되었지만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고,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송되었다. 경의선 철도 및 도로가 연결되고, 장관급 회담과 경제협력이 지속되었다. 2002년 6월에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고 2003년에 금강산 육로관광이 허용되었다.
■ "남북 교류협력 방식, 근본적 점검 필요해…민간 협력 우선돼야"

통일연구원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활성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통일연구원은 16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이재명 정부 통일·대북정책 추진 방향'을 주제로 통일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조국의 해방과 자유로운 민주공화국 건설을 추구했던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며 "큰 구조 속에서 통일과 대북 정책에 당면한 현안들을 보고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발표에 나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들은 공통적으로 이재명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복원돼야 하며 민간 교류가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철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정부 정책의 변화 등으로 지난 5년간 남북 간 사회문화 협력사업들은 대부분 중단됐고 신규 사업은 제로인 상태"라며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 속에서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기존 목표와 방식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가 필요한지 근본적 점검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장 연구위원은 "민족 또는 국가 관계의 양자택일적 사고 대신 적대적 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경쟁적 관계를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는 데 교류협력의 목적과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며 민간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남북 교류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짚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이창희 동국대 북한학과 외래교수도 "통일부는 민간의 대북 교류협력을 제도적으로 적극 보장해야 한다"며 장 연구위원의 의견에 동의했다.
최규빈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은 관광, 남북 공동 어로구역 설정, 민생협력 등 대북제재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사업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재개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실장은 "남북관계의 회복과 지속 가능한 교류협력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며 "우리나라 정부는 남북 협력 재개를 위한 적극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민간에는 자율성을 부과하고 국제사회를 통한 다자 협력도 병행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1)
■ 사람들이 기억 못 하는 '금강산' 단신 기사, 지금 읽으면 충격인 이유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고, 이런 기대감은 높은 국정 지지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정 지지도의 배경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다.
사반공배(事半功倍)라는 말이 있다. 전임자가 엉망이면 일을 반만 해도 공은 두 배로 돌아온다는 표현이다. 3년 동안 입을 열면 허언이고, 대답하면 동문서답이며, 밖에 나가면 사고를 치고 안에서는 놀기에 바빴던 전임 대통령에게 지치고 실망한 국민이 후임 대통령에게 보내는 박수는 일시적일 수 있다. 초반에 하는 작은 실수 몇 개가 쌓여 사배공반(事倍功半)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성과는 없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안타까웠던 노무현의 길이다.
교육부 장관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국민통합비서관 지명과 임명을 지켜보며 나는 새 정부 출범에 걸었던 여러 기대 중에서 몇 가지는 반쯤 포기했다. 입시 준비나 취업 준비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학교, 성 정체성이나 나이, 사는 지역을 불문하고 차별이 적은 사회, 그리고 상식을 집어던진 극우세력이 사라진 '진짜 대한민국'을 보리라는 꿈은 반쯤 내려놓았다.
금강산에 연 미국계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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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3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신청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확정했다. 사진은 2006년 8월 촬영한 금강산 상팔담 |
| ⓒ 연합뉴스 |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를 향해 아직 포기하지 않은 하나의 꿈이 남아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구할 것이 예상되는 남북 대화의 재개와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이다. 외교, 안보, 통일 부문 일꾼들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아래 신문 기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금강산에도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국내에서 성업 중인 미국계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 체인점 '브라운 & 빈(Brown & Bean)'이 금강산 온정각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문화일보> 2004년 5월 7일 자 경제면에 실린 단신 기사다. 이런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TV 뉴스 헤드라인이나 신문의 머리기사로 등장하지 않고, 일간지 단신으로 전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남북 교류를 주도하고 있던 현대아산의 발표에 따르면 이 커피 체인점은 북에 생긴 최초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었고, 미국에서 직접 원료를 들여와 만든 10여 가지 커피를 팔고 있었는데 젊은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커피 한 잔에 3달러였다.
남북 교류를 주도하고 있던 현대아산 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온정각에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처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글로벌기업의 매장을 유치할 계획이었다. 북측이 이런 매장의 유치에 크게 반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소식이 단신으로 다루어질 정도로 20년 전의 남북 관계는 풍성했고, 통일에 대한 희망은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었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남북관계는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식었다. 2016년 개성공단은 가동이 완전히 중단되었고, 2020년에 북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관계에 완전한 공백도, 완전한 대화도 있었던 적은 없다. 늘 불안했고, 늘 불투명했다.
2004년에 나타났던 이런 희망적인 남북 관계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백에 가까운 단절, 파국이 예상되는 갈등, 그리고 아슬아슬한 대화 노력이 반복되고 쌓여서 만들어진 희망의 징표였다.
6.25전쟁 이후 20년간 끊겼던 남북이 다시 만난 것은 박정희 시대 중반이었다. 1972년 7월 4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통한 통일을 위해 협력할 것을 선언하였다. 물론 실천 의지는 전혀 없이 행해진 정치적 위기 극복을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중단되었던 남북 교류를 회생시킨 것은 수해였다. 1984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에 많은 비가 내려 사망 189명, 실종 150명, 재산 피해 2502억 원, 이재민 23만 명이 발생했다. 9월 8일 북한적십자회는 방송을 통해 남한에 쌀 5만 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 톤, 그리고 의약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하였고, 대한적십자사가 제의를 수용했다.
예상하지 못한 제의였고, 예상하기 어려운 수용이었다. 9월 29일부터 10월 4일 사이 지원물자가 수륙 양 통로로 남에 전달되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남은 전자제품, 손목시계, 양복 원단 등을 북에 전달했다. 북이 보내온 시멘트는 당시 건설 중이던 88올림픽고속도로 포장에 사용되었다. 이해 11월에는 남북경제회담, 1985년 9월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예술단의 교환공연이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여덟 차례의 남북 고위급 회담과 국제 스포츠대회 공동 참여 등 다양한 남북 교류가 이루어졌다. 1993년에 북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장애물이 있었지만 김영삼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북에 송환했고,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북을 방문하여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과 남의 조문 불허로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김정일 시대에도 대북 쌀 지원이라는 긍정적 이벤트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는 부정적 사건이 교차했다. 북은 고난의 행군을 맞았고, 남은 외환위기를 겪었다.
우연한 기회가 벼락 같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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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만남을 그린 현수막이 걸려 있다. |
| ⓒ 유성호 |
1998년 김대중 정부 등장으로 시작된 햇볕정책 속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그해 6월과 10월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했고, 10월 18일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1999년 1차연평해전 등 긴장 국면도 조성되었지만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고,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송되었다. 경의선 철도 및 도로가 연결되고, 장관급 회담과 경제협력이 지속되었다. 2002년 6월에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고 2003년에 금강산 육로관광이 허용되었다.
이런 파란만장한 경험을 딛고 등장한 것이 북 최초의 테이크아웃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등장이었다. 역사는 계획이나 예측한 대로 되는 것보다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에 최초의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이 등장했던 2004년에는 제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우리나라 영화 역사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Grand Prix)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유명한 경구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였다. 박찬욱 감독이 외국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우연히 머그컵에 써있던 문장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은 19세기 시인 엘리 윌콕스의 시 '고독'의 첫 구절이었다. 그는 그 문장이 시라는 것조차 몰랐지만, 그 문장이 주는 냉소적 뉘앙스를 살려 영화를 만들었다. 우연이 만든 기적이었다.
반면 2004년 같은 해에 오랜 기획을 통해 만든 상품이 실패를 안긴 사례도 있다. 스타벅스는 메뉴판에 '음악'을 추가했다.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다가 6.99달러를 내면 듣던 곡 중 다섯 곡을 골라 CD에 담아갈 수 있는 '스타벅스 뮤직카페' 1호점이 미국 산타모니카에 오픈했다. 이후 잠시 확장되던 뮤직카페는 아이튠즈의 등장과 CD 시장의 몰락으로 4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착실한 기획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우리나라가 당한 수해를 보고 북에서 쌀이든 시멘트든 구호물자 제공 의사를 전해오기를. '두 국가론'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조용하다. 휴전 이후 72년간 만났던 많은 장애물에 비해 두 국가론은 결코 장애물일 수 없다. '두 국가론'을 넘어 평화의 길로 가는 우연한 기회가 벼락같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2)
평양과학기술대학(평과대)은 북한에 있는 유일한 ‘국제사립대학’이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지난 2009년 평양에 설립된 이 대학은, 주변의 반신반의 속에서도 지난 2010년 처음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학부 200명, 대학원 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학부 100명, 대학원 20여명이 졸업한다. 박찬모 이 대학 명예총장(82·전 포항공대 총장)은 학기 중엔 평양에 체류하다 미국 매릴랜드주 자택에서 방학을 보낸다. 박 명예총장은 7일(현지시각) 워싱턴 근처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만나 “정치적이 아닌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간 교류가 가능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 박찬모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비정치적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교류를”
<한겨레> 인터뷰
워싱턴/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수정 2019-10-19 11:23 등록 2017-02-08 19:04
“북도 트럼프 좀 특이하다는 것은 아는데, 대화 기대도 있어 보인다”
“학생들은 거의 영재학교 출신…언어번역, 인공지능, 게임 개발, 무인자동차 등 연구”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한국 국적 교수 가르칠 수 없어”
“휴대폰으로 국제전화 가능…요금 비싸 주로 카톡 이용”
“외국인 규제 많이 유연해져”…“평양 거리 많이 바뀌고 주민들도 활기”
“차기 한국 정부 남북관계 개선·평화 공존 정책 마련해줬으면”

평양과학기술대학(평과대)은 북한에 있는 유일한 ‘국제사립대학’이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지난 2009년 평양에 설립된 이 대학은, 주변의 반신반의 속에서도 지난 2010년 처음 북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학부 200명, 대학원 8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학부 100명, 대학원 20여명이 졸업한다. 박찬모 이 대학 명예총장(82·전 포항공대 총장)은 학기 중엔 평양에 체류하다 미국 매릴랜드주 자택에서 방학을 보낸다. 박 명예총장은 7일(현지시각) 워싱턴 근처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만나 “정치적이 아닌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간 교류가 가능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대한 북한 쪽 분위기는 어떤가?
“기대를 좀 하는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됐으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비슷한 정책을 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이 좀 특이하다는 것은 아는데,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냐 하는 기대도 있어 보인다.”
-평과대가 이렇게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하.(웃음) 기독교 기반 사립대인데다, 영어로만 가르치는 국제학교를 내세웠으니 그랬을 것 같다. 초기엔 북한이 건물을 완공하면 빼앗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주변에 있었다. 나는 그때 북한이 탐내는 것은 교수들과 교육 프로그램이지, 건물이 아닐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평과대 교수진은 모두 몇명인가?
“의과대학(현재는 치대만 있음) 등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80명정도 되고, 직원과 가족들까지 넣으면 120명정도 된다.”
-박 명예총장은 대학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일이 굉장히 많다. 우선 강의로 컴퓨터그래픽과 가상현실을 가르친다. 대학원에서 한 학기에 한과목 가르친다. 김진경 총장은 주로 학교 운영에 관한 것을 하고, 나는 학사관계 일 등을 주로 맡는다. 3월부터 6월중순까지,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강의를 하고, 방학 때는 주로 미국에서 거주한다.”
-대학 운영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교직원은 모두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 봉사자다. 다만 숙식은 대학에서 제공해주는데, 한끼에 900여명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비만 해도 상당히 많다. 학생들도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운영비는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하는데, 주로 기독교 단체가 하고 있고 의학부는 미국에 있는 교포 의사들이 많이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포항공대 은퇴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북한 학생들의 학습 수준이나 능력은 어떤가?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제1중고등학교(북한의 영재학교) 출신으로 매우 우수하다. 특히 수학을 잘한다. 언어번역, 인공지능, 게임 개발 등 소프트웨어 쪽은 포항공대 학생에 뒤지지 않는다. 무인자동차 연구도 한다. 농과대학에선 온실에 컴퓨터를 도입해 관리하는 연구도 한다. 다만, 하드웨어 분야는 첨단기기 수입 제재와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뒤떨어지는 편이다.
-평과대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처로 한국 국적의 교수가 와서 가르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의 제자들이 와서 가르치면 교수 부족 문제를 많이 해소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 교류 등 정치적이 아닌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간 교류가 가능하면 좋겠다.”
-가장 큰 보람이라면?
“학생들이 국제학술대회와 해외 유학 및 연수를 통해 국제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이나 브라질로 유학 갔다 온 학생들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또한, 학생들도 우리가 희생적으로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늘 고마워한다. 리포트 쓸 때도 정말 우리한테 좋은 것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써놓는다.”

-북한에선 어디에 거주하나.
“평과대 캠퍼스 내의 교수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학생들도 모두 대학생 기숙사와 대학원생 기숙사에 살고 있다.”
-시장 같은 곳도 가나
“당연히 간다. 물론 북한 안내원들과 같이 가지만, 우리를 믿을 수 있으니 차에서 보통 기다린다. 평양에 마트도 여러개 생겼다.”
-미국과 전화통화도 가능한가?
“외국인 전용망이 따로 있다. 북한 주민들과의 휴대전화 통화는 못하지만 국제전화는 할 수 있다. 또, 북한 안에 있는 외국인들끼리 통화도 가능하다. 국제전화료는 좀 비싸다. 미국의 경우 1분에 5달러다. 처음엔 미국에 있는 부인과 전화로 하다가, 요새는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요새는 ‘나래’라는 이름의 현금카드를 주로 사용한다. 돈을 충전해 놓고 상점같은데서 그것으로 결제하면 된다. 많이 편해졌다.”
-외국인이 북한 원화를 사용할 수도 있나?
“당연히 사용할 수 있다. 북한 돈만 받는 백화점이나 시장에선 원화로 계란 등을 살 수 있다. 공정환율은 100원정도인데, 통일시장이나 백화점 창구에서 바꿔주는 시장환율은 변동이 있지만 1달러에 8천원정도를 준다.”
-외국인도 원화를 쉽게 바꿀 수 있다면, 다 원화로 사는 게 더 싸지 않나.
“그렇지 않다. 외교관들이 가는 고급 백화점에 가면 계란 10개에 1.25달러인데, 시장에서는 10개에 8천원원이다. 환율을 따져보면 시장에서 약간 싼 수준이다. 채소는 통일시장이 훨씬 싸고 싱싱해서 주로 거기서 많이 산다.

-지난해 북한 핵실험으로 두번의 유엔 대북 제재가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나?
”지난해 9월 초에 평양에 들어가 3개월간 생활 하면서 느낀 것은 유엔 제재 영향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여러 생필품이 상점에 없어 북한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땅콩버터나 치즈는 살수가 없었다. 규제품도 아닌데 들어오지가 않았다. 하지만 평양의 일반인들 삶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평과대도 대북 제재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평과대 대학원생의 논문연구에 필요한 기기는 많은 경우 중국에서 사 오는데 2015년에는 송금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2016년에는 중국 은행이 매우 까다롭게 굴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은 구입은 했다. 또한, 독일 괴팅겐대학 대학원, 이탈리아 브레시아대학 및 사니오 대학원의 대학원에서 입학을 허락 받은 학생들이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의 비자를 받지 못해 유학을 가지 못했다. 유학생을 보내 국제사회 경험을 쌓게 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한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평양에 돈이 돈다는 얘기가 많다. 실제 그렇다고 느끼나?
“평양 국제상품 박람회를 봄과 가을 두번씩 여는데 마지막날엔 ‘떨이’를 한다. 중국에서 가져온 물건은 되갖고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달러를 한주먹씩 갖고 온다. 외국에 가서 1만달러정도 버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도 들었다.”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러모로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많이 유연해졌다. 옛날엔 나쁜 거리 모습 안보여주려고 금방 갈 수 있는 곳도 돌아서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하철에서 비디오 찍는 것도 허용한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선군보다는 경제 쪽에 관심을 많이 두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을 혁신했는데, 미래과학자거리는 가 본 사람들이 ‘평양 맨해튼’이라는 의미에서 ‘평해튼’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금강산에 갔더니 북한 주민들이 와서 먼저 사진 찍자고 하더라. 추석 때는 그냥 북한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도 하고 그랬다. 사람들 표정이 많이 활기차 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하나도 안변했다고 하는데, 자주 안가봐서 그럴 것이다.“
-학생들한테도 변화의 조짐이 있나?
”북한의 젊은이들은 많이 변하는 것 같다. 2010년 대학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학생들은 앞에 가는 교수를 지나가지를 못하고 뒤를 따라왔다. 교수가 바쁠텐데 앞서 가라고 하면 “Sorry Sir, Thank you Sir”(죄송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오는 학생들은 이러한 봉건적 예의를 탈피한 듯 그냥 앞질러 지나간다.(웃음)
-차기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떡하든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와 다르게 대화를 하면서 천안함에 대한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해서 기대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많이 변했다. 미 국무부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하고 된 다음에 왜 달라졌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일반 시민들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같다. 그들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3)
■ ‘아리랑’으로 남북 통일한 뉴욕필
평양 이어 서울공연서도 마지막 곡으로 연주
첫 곡은 ‘애국가’…꽉찬 객석 갈채 쏟아져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공연 리허설 현장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28일 서울 공연 첫 곡은 〈애국가〉였다. 예정에 없던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관객들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어 미국의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연주됐다. 바로 이틀 전, 북한과 미국의 국가를 연주한 평양에서의 오프닝에 멋진 외교적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었다. 이로써 뉴욕필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연주한 최초의 오케스트라가 됐다.
마지막 역시 북쪽과 마찬가지로 〈아리랑〉이 장식했다. 남북한의 ‘애국가’는 서로 다르지만, ‘두 나라는 원래 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역설하는 듯했다. 평양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시민들도 붉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뉴욕필 사장인 자린 메타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공연은 음악적인 의미 말고도 정치적 의미가 가미됐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이 북한 전역에 방송됨으로써 미국에 대한 북한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을 기대한다”며 “나머지 부분은 정치인이나 양국 정부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평양공연은 계획에 없었는데 12월에 일정이 확정돼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듯이 “브라보”가 터져나왔다. 박수 소리는 평소 다른 연주회보다 거의 갑절이나 될만큼 크고 맹렬했다.
공연이 열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일 대낮 공연인데도 합창석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입장권은 진작에 매진됐다. 초대석을 제외한 일반 판매량만 1400장 가량됐다.
가수 최성수(48)씨는 “평양 공연의 열기를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어 어렵게 표를 구해서 왔다”며 “남북 관계도 오늘의 감동적인 연주처럼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욕필이 벌인 2박3일 동안의 음악외교는 남쪽 사람들의 가슴에 한가닥 희망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4)
<자료출처>
(2) 사람들이 기억 못 하는 '금강산' 단신 기사, 지금 읽으면 충격인 이유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3) 박찬모 평양과기대 명예총장 “비정치적 분야에서라도 우선적으로 남북교류를” (hani.co.kr)2019-10-19
(4) ‘아리랑’으로 남북 통일한 뉴욕필 (hani.co.kr)2008-02-28
<참고자료>
前주한미군 사령관 파격제안 "北을 동맹으로 만들자" (daum.net)CBS노컷뉴스2021. 07. 30.
"남북에 필요한 건 백신이 아닌 한미군사훈련 중단" (daum.net)2021. 06. 15.
[출범6년 김정은號 어디로 가나⓶]김영환 “北, 핵무장 빨리 끝낸뒤 경제개발 올인”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2017-12-19
[경향과의 만남]황석영 “남북 막힌 혈맥 뚫고, 백년대계 세워야” - 경향신문 (khan.co.kr)2009.3.17
남과 북의 현재를 만든 사람들 분야별 양측 주요인물 재조명 | 서울신문 (seoul.co.kr) 2008-02-28
[기고] 동아시아 공동체와 안중근 / 김영호 (hani.co.kr) 한겨레 2008.3.26
촘스키, 월러스틴, 백낙청 등 "북핵 문제 실질적 대화로 풀어야" (pressian.com) 2009.08.20.
영화로 보는 탈북 청소년들의 삶 | 서울신문 (seoul.co.kr) 2008.2.25
南은 남초 北은 여초… 그래서 ‘남남북녀’? :: 문화일보 munhwa 2008-04-14
[장정수칼럼]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의 수수께끼 (hani.co.kr) 2008.4.28
[아침햇발] 대북정책 실용적인 길 찾기 / 김종철 (hani.co.kr) 2008.5.2
남북 금속노동자 대표 평양서 만나 (hani.co.kr) 2008.5.12
남북 언론인 기사교류 늘어난다 (hani.co.kr) 2008.5.14
[김영희 칼럼] 통미봉남을 환영한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08.5.19
[김영희 칼럼] 통미봉남을 환영한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08.05.30
[김영희 칼럼] 대북 식량지원이 급하다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08.06.20
발효콩 빵공장 설비기기 북송 환영식 - 뉴스에이 (newsa.co.kr)2008.09.20
WP “美, 수용 못할 과도한 북핵검증 요구” - 경향신문 (khan.co.kr) 2008년 09월 26일
책과세상/ '금희의 여행' 감지·요거 방꽁이 무슨 말인지 아십네까? | 한국일보 (hankookilbo.com)200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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