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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 (5) "광복 80년인데 날조된 식민사관 이젠 끊어야" 본문

코리아시대/대한민국

대한민국 사회 (5) "광복 80년인데 날조된 식민사관 이젠 끊어야"

대야발 2025. 8. 10. 12:51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그릇된 역사를 옳다고 믿으며, 자신의 그릇된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의 지식에서 환류하지 않는 강단사학이 지금도 한국 교육·강단 사학계와 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거의 모든 국가기관의 상층부에 뿌리 깊게 포진해 있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대한민국 역사관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릇된 역사를 가르쳐 온 교·강단 사학은 통렬한 반성도 필요하고 항일독립항전가의 역사관을 계승한 민족사학자들께 양심적 사죄도 필요하다.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세대의 삶을 살다 간 조상이 될 우리가 지금 옳고 바른 일을 꼭 이루며 살아야만 할 이유이고 지금까지 강단사학에서는 단 한 번도 조선총독부 황국사관 청산이 언급된 적도 없다. 식민사관 청산은 지금이 가장 적기이다."

 

 

 

■ [광복 70년, 바꿔야 할 한국사] 사그러들지 않는 '식민사학 청산' 논란

세계일보 강구열 기자2015. 2. 4. 21:21
 

일제 관점서 재단.. 학계 권위·학맥 막혀 주체 역사 못세워

 

1945년 8월 광복을 맞은 역사학계의 최대 화두는 '식민사학'의 극복이었다. 일제가 식민통치 35년간 난도질한 한국사의 온전한 복원은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70년을 맞은 2015년, "식민사학을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조선총독부 사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직설적인 비난까지 있다. 이런 비판과 주장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학계 내부에서의 논쟁은 물론 소송으로 번지거나, 정치권으로 확대되기도 했었다. 강산이 일곱 번 바뀔 세월이 지나고도 '식민사학 청산'의 주장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역사학이 근대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을 무렵인 20세기 초 일본인 학자들의 막강한 영향력, 광복 직후의 정치 상황과 식민 잔재의 불완전한 청산, 주류 학계의 학맥 형성 과정을 들여다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학계의 권위주의와 소통 부재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정한론도 일본의 한국사 왜곡의 뿌리는 깊다. 17세기에 이미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펼쳤고, 19세기 '정한론'으로 이어졌다. 일본인들이 정한론을 두고 논쟁을 하는 모습.만권당 제공.

 

 

 

◆한국사에 드리운 식민사학의 짙은 그림자

 

역사학이 근대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할 무렵인 20세기 초, 역사학계는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으로 크게 양분됐다. 한국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해석할지에 대한 양 진영의 힘겨루기는 치열했다.

 

 

일본에서 한국 연구는 17세기에 이미 시작됐다. '고사기', '일본서기' 등 일본 고전을 근거로 "일본이 과거 한국을 지배했다"고 주장했고, 19세기 '정한론'(征韓論·일본이 한국을 정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식민사학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함께 본격화되어 1920년대에 이르면 체계화된다. 1925년과 1926년 잇달아 설치된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는 두 축이었다. 두 기관에 소속된 학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료만 골라 모은 '조선사'를 1937년에 완성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식민사학은 '타율성론'(한국사는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해 전개됐다), '정체성론'(조선은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를 수 없는 낙후되고 정체된 후진사회다), '일선동조론'(한국과 일본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으로 한국사를 재단했다.

 

 

신채호, 신석우, 신규식(왼쪽부터)이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찍은 사진이다. 신채호는 한국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만권당 제공

 

 

민족사학은 학문적 차원을 넘어 항일운동의 수단으로 전개됐다. 1910년대 일제의 박해를 피해 만주, 연해주 등으로 망명한 신채호, 박은식, 김교헌, 이상룡 등 독립지사가 진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특징이다. 이들은 '민기'(民氣), '국혼'(國魂) 등 정신력을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삼으며 왕조사관에서 벗어나는 발전을 보였다.

 

 

또 고대사의 무대를 만주, 중국 동북지대로까지 확대해 한국사의 자주성, 진취성을 강조했다. 신라, 발해의 병립을 '남북조 시대'로 이름 붙이고, 조선시대의 당쟁을 '붕당발전론'으로 해석해 일제의 '당파망국론'에 맞서기도 했다. 이국 땅에서 개발된 민족사학의 주요 이론은 국내의 신문, 잡지 등에 연재되며 주목을 끌었고, 일제를 긴장시켰다.

 

 

민족사학자들은 분투했지만, 식민지의 현실에서 힘의 차이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양적인 면에서 식민사학자들이 쏟아내는 연구 결과물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학, 청구학회 등을 결성한 식민사학자들과 달리 민족사학자들은 연구조직을 결성할 조건도 되지 못했다.

 

조선사편수회 야유회 1925년 설립된 조선사편수회는 식민사학을 만든 한 축이었다. 조선사편수회의 야유회 모습을 찍은 사진에 한복을 입은 참가자들도 보인다.만권당 제공.

 

 

 

◆친일경력 이병도를 정점으로 형성된 역사학계

 

광복 후 역사학계의 흐름을 짚을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이병도다. "역사를 완전히 독립된 학문으로 정착시킨 이를 꼽는다면 아마 이병도를 첫째로 들어야 할 것"이란 평가를 받는 학자였고, '누구도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학계의 1인자였던 인물이다.

 

 

1910년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한 이병도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인 이케우치 히로시와 쓰다 소키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을 맡으면서 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상당한 성과를 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광복 직후 학계의 '친일파 제명운동' 대상이 되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족사학자들이 광복 직후 정치에 참여하고, 6·25전쟁 와중에 월북, 납북되면서 학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친일파 청산문제가 잠잠해진 것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식민사학 청산을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이병도는 '공적'(公敵)과도 같은 존재다. 식민사학의 틀 속에서 형성된 그의 학설이 제자들을 통해 학계의 통설로 군림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병도의 학설에 대해 "종래에 일본인들이 세워놓은 한국사 체계의 범위 안에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식민사학이 타율성론의 근거로 삼았던 '한사군 한반도설'이다. 그는 낙랑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고 하는 등 한사군의 중심지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인식했다. 일본인 학자들과 같은 견해이며 지금도 학계의 통설이다.

 

 

한계가 분명했지만 학계에서 이병도의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었다. 1989년 세상을 떠난 뒤 나온 '역사가의 유향-두계 이병도 선생 추념 문집'이란 제목의 책에서 이런 위상은 확인된다.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이기백, 김원룡, 전해종, 이성무, 고병익, 이기동 등은 주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광복 이후 한국사 학계를 주도한 1세대 학자들이다. 이들은 이병도를 "한국문화의 연구에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하셨다", "한국사학의 수립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셨다"고 추켜세웠다.

 
 

◆"변화 거부하는 '학(學)피아'가 무섭다"

 

"스승 없이 혼자서 공부해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스승의 주장을 의심하지 않고, 그 범위 안에서만 논문을 읽다 보니 세뇌가 되는 거다." 한 중견 역사학자의 고백이다. 기존의 학설에 얽매여 건설적인 비판과 극복이 어렵다는 의미다. 학계의 토론 부재와 경직된 권위주의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식민사학 청산 주장이 반복되는 또 다른 이유다.

 

 

주류 학설에 대한 도전과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75년 10월에 '국사찾기협의회'가 발족했고, 1978년 9월에는 국사 교과서 서술상의 문제를 지적하며 소송이 제기됐다. 1981년 11월에는 국회에서 단군실존설, 고조선 영토 문제 등을 두고 토론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윤내현, 최재석 등이 고조선 성립 시기,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등을 두고 주류 학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잠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깊이 있는 토론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 역사학자는 "통설에 반하는 논문을 학회지에 싣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예 학회를 따로 만들어 버린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토론회를 해도 자기 말만 한다. 말 그대로 토론일 뿐 결과가 바뀌는 것은 없다"며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따돌림을 받은 경우가 왕왕 있다"고 전했다. 주류 학자들이 비주류 학자들과의 토론에 거부감을 보인다는 증언도 있다.

 

 

신진 학자들의 기존 학설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학계에 안정적인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득 될 게 없기 때문이다. 국립연구기관의 한 교수는 "학계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다른 이론을 주장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인데 누가 제 목소리를 내겠냐"고 꼬집었다.(1)

 

 

 

 

또 그는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세우는데 역사만큼 중요한 게 없고,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혼을 말살시키는 데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 만큼 손쉬운 게 없다고 했다"라며 "해방후 이병도·신석호가 역사매국사학에 뿌리를 박은 게 일제의 식민사관인데, '한반도임나설'이라든지 '일제 때 조선이 근대화 되었다'거나 '독도를 한·일간에 공동영유해야 한다'는 등 헛소리를 하고 있다. '독립항전가 시각과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보고 써야만 한다"라고 했다.

 

 

■ "광복 80년인데 날조된 식민사관 이젠 끊어야"

오마이뉴스 윤성효기자 2025. 2. 19. 10:33
 
김영진 전 경남도의원, 순천향대학교 석사학위 "가야고분군..." 논문서 강조

 

 

  김영진 식민사관청산가야국사경남연대 공동대표.
ⓒ 윤성효
 
 
 

"일본의 간교한 역사왜곡을 통한 관광화사업은 이미 지난 110여 년 전에 조선총독부의 치밀한 계획으로 이뤄졌던 전국의 조선 고적 유물 도굴과 보존회 조직이라는 역사 날조·조작 기록을 통해 알게 됐다.

 
 
 

눈부신 우리 오천년 역사를 날조해 내선일체의 연원을 밝힌다는 식으로 역사를 조작해 무마시켰고, 고대에 한일 관계가 '친밀'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조작해 정당화시킨 것이 바로 관광화 사업이었다."

 

 

김영진 전 경남도의원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와 한류 국제화 방안 연구-합천 다라국·남원 기문국 국명 중심으로'라는 석사학위논문(순천향대학교)에서 강조한 말이다.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처음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다라국' '기문국'이라고 하자 이는 '날조된 식민사관 기록'이라 지적하며 바로잡는 과정을 정리한 논문이다.

 

 

식민사관청산가야국사(史)경남연대 공동대표인 김영진 대표는 이 논문에서 "일본의 관광화 사업 목적은 황국사관을 이론적으로 중무장시켜 조선총독부의 총행정력을 동원해 치밀하게 서울 남산에는 조선신궁을 짓고, 충남 부여에 신궁 그리고 전국 모든 시·군에 걸쳐 1100여 개 이상의 일본신사를 세워 일제 황국사관을 대중화시켰던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옛 문화재청은 2021년 1월 김해·고성·고령·합천·창녕·남원의 7개 가야고분군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처음에 '합천 다라국' '남원 기문국'이라고 표기했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 합천 옥전 고분군을 '다라국'으로 명기했었다.

 

 

이에 경남연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식민사관'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여러 차례 기자회견뿐만 아니라 학술토론회, 성명 발표가 이어졌다. '다라' '기문'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기록이고, '가야=임나'라는 '가야국임나설' 내지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이기에 삭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문화재청은 '다라국·기문국'을 삭제하고 남원은 '운봉지역 가야정치체', 합천은 '쌍책지역 가야정치체'라고 수정 제출했다. 급기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23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회의에서 '다라·기문국'을 삭제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해 최종 확정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 경남도청
 
 

"올바른 관점의 가야국 역사를 재정립해야"

 

'다라·기문국' 기술에 대해 김영진 대표사는 "광복 후 8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사학계와 고고학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고, 학계와 역사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라며 "올바른 관점의 가야국 역사를 재정립해 국내는 물론 일본과 세계인들에게 가야의 참모습을 전파하고 싶다"라고 했다.

 

 

김영진 대표는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드러난 식민사관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자체에서 펴냈던 역사서에 대해서도 살폈다.

 

 

그는 "<전라도천년사> <부산시사> <김해시사> <가야사총론> <경상남도사>를 연구분석했는데 그중에 <경상남도사>는 식민사관으로 왜곡·조작된 결정체였다"라며 "조작·날조된 '한반도임나설, 임나일본부설'로 발간하려는 각 시·도사 발행을 저지해야만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김해시사> 제2권 전체 서술 속에 '한반도임나설(가야국=임나)·임나일본부설'로 기술한 것을 모든 곳에서 찾아내 대표적인 것만 1차 문헌사료나 고고학 유물유적을 근거로 제시해 재집필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지난해 12월 김해시사편찬위원회는 제2권을 빼고 발간을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한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세우는데 역사만큼 중요한 게 없고,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혼을 말살시키는 데에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 만큼 손쉬운 게 없다고 했다"라며 "해방후 이병도·신석호가 역사매국사학에 뿌리를 박은 게 일제의 식민사관인데, '한반도임나설'이라든지 '일제 때 조선이 근대화 되었다'거나 '독도를 한·일간에 공동영유해야 한다'는 등 헛소리를 하고 있다. '독립항전가 시각과 역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보고 써야만 한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서 식민사관으로 집필된 엉터리 역사를 삭제하고 올바른 우리 역사가 제대로 기록된 교과서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라며 "가장 쉽고 빠른 해법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목 중에서 '역사, 국어, 지리' 교과목의 비중을 가장 높게 하면 해답이 된다"라고 했다.

 

 

"광복 80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진정 광복이 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김 대표는 "아직도 광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관이 독립돼야만 진정한 광복이라 말할 수 있다. 해방 후 80년 동안 우리는 모두 조작·날조된 일본인 관점의 역사,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에 맞춰 서술된 것을 마치 대한민국의 역사인 것처럼 배워 왔다"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그릇된 역사를 옳다고 믿으며, 자신의 그릇된 조선총독부 황국사관의 지식에서 환류하지 않는 강단사학이 지금도 한국 교육·강단 사학계와 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등 거의 모든 국가기관의 상층부에 뿌리 깊게 포진해 있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대한민국 역사관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그릇된 역사를 가르쳐 온 교·강단 사학은 통렬한 반성도 필요하고 항일독립항전가의 역사관을 계승한 민족사학자들께 양심적 사죄도 필요하다.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세대의 삶을 살다 간 조상이 될 우리가 지금 옳고 바른 일을 꼭 이루며 살아야만 할 이유이고 지금까지 강단사학에서는 단 한 번도 조선총독부 황국사관 청산이 언급된 적도 없다. 식민사관 청산은 지금이 가장 적기이다."

 

 
 
  김해 대성동 가야고분군.
ⓒ 김해시청

 

 

김영진 대표는 20일 순천향대학교 미래융합대학원 글로벌한류문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이번 논문은 이영관 교수와 이덕일 교수(공동)가 지도했다.(2)

 

 

오늘 <주간 뉴스타파>에서는 리박스쿨에 이어 윤석열 정부 시절 비밀리에 추진된 또다른 역사 왜곡 현장을 공개합니다. 현직 교사와 대학교수 등 소위 뉴라이트 세력이 일본 식민사관을 담은 역사교과서를 외부의 지원을 받아 직접 제작했던 사건입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들 세력의 ‘역사교과서 제작 문건’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한 해당 교과서는 ‘교육부 검정’ 심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 [주간 뉴스타파] 윤석열 세력의 '친일 교과서' 프로젝트

뉴스타파2025. 6. 26. 17:06
 

 

https://youtu.be/dVHzVU1Q0b0

 

(※ 라이브 방송 바로가기 : https://youtube.com/live/dVHzVU1Q0b0?feature=share)

 

 

뉴스타파의 리박스쿨 사건 폭로 이후 최근 수년간 극우세력이 벌인 역사 왜곡과 공교육 침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양성한 늘봄학교 강사들은 최근까지 전국 초등학교에서 독재 정부를 미화하는 편향된 역사 수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리박스쿨 관련 단체들은 온라인 상에서 조직적인 댓글 작업 등 여론전을 펼친 것으로도 나타났죠. 하지만 이것 뿐일까요?

 

 

윤 정부 시절 추진된 ‘일제 미화’ 역사교과서 검정 계획

 

오늘 <주간 뉴스타파>에서는 리박스쿨에 이어 윤석열 정부 시절 비밀리에 추진된 또다른 역사 왜곡 현장을 공개합니다. 현직 교사와 대학교수 등 소위 뉴라이트 세력이 일본 식민사관을 담은 역사교과서를 외부의 지원을 받아 직접 제작했던 사건입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들 세력의 ‘역사교과서 제작 문건’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한 해당 교과서는 ‘교육부 검정’ 심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우리 역사를 수십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려 했던 이 계획엔 누가 참여를 했을까요? 문제의 역사교과서 필진 중엔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 소속 교사들이 등장합니다. 대한교조는 리박스쿨과 협력관계에 있던 극우 성향의 교원단체입니다. 당시 대한교조 위원장을 지낸 조윤희 교사도 필진 중 1명이었습니다. 

 

 

윤석열 충암고 동문도 역사교과서 필진 합류… ‘외부 세력’ 개입 의심

 

또 다른 필진으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충암고 동문인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재 공공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교과서 초안을 집필하면서 편향된 역사관을 여지 없이 드러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돈을 벌기 위해 매춘을 했다는 식의 내용과 함께 일제가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면서 참정권 등 혜택을 주려했다는 식민사관을 곳곳에 담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제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집필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뉴라이트 성향의 교수와 학자들이 대거 집필진에 합류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왜 일제를 미화하는 내용의 역사교과서 편찬에 힘을 보탠 것일까요.

 

 

이러한 극우세력의 역사교과서 집필 시도는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이에 부역했던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했던 역사 왜곡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은밀하게 추진된 역사교과서 검정 계획의 배후에 ‘외부 세력’이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뉴스타파는 극우세력이 벌여온 역사 왜곡과 공교육 침투 시도, 나아가 ‘역사 쿠데타’의 이면에 누가 있는지 끝까지 추적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 관련 기사 보러가기 

 

- '일제 미화' 검정교과서 제작 문건 입수...대한교조 참여 확인 (https://newstapa.org/article/mVPaS)

- 윤 정부 역사기관장이 쓴 ‘일제 미화’ 교과서 원고 공개 (https://newstapa.org/article/Rhj-j)

 

※알려왔습니다. (2025년 6월 27일, 오후 8시 30분)

대한교조는 27일 추가 해명을 통해 보도상 대한교조 소속으로 언급된 교사 3명 중 조윤희, 이○○ 외 1명은 대한교조 소속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3)

 

 

 

 

<자료출처>

 

 

(1) [광복 70년, 바꿔야 할 한국사] 사그러들지 않는 '식민사학 청산' 논란

 

 

(2) "광복 80년인데 날조된 식민사관 이젠 끊어야"

 

 

(3) [주간 뉴스타파] 윤석열 세력의 '친일 교과서' 프로젝트

 

 

<참고자료>

 

 

 

“일본, 한국 길들이려 협상 거부…‘죽창가’ 탓은 위험한 진단” (hani.co.kr)2021. 07. 07. 

 

 

 

[단독]육군이 본 한반도 최대 위협 "북한군 아닌 中북부전구" | 중앙일보 (joongang.co.kr)2020.07.02. 

 

 

 

이승만이 넘겨준 지휘권, 71년째 거의 제자리 (daum.net)2021. 07. 09.

 

 

 

[팩트체크]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도 '미 점령군'이라 했나 | 연합뉴스 (yna.co.kr)2021. 07. 06.

 

 

 

브루스 커밍스 "미국이 한반도 전쟁 못 끝낸 게 '북한 핵보유' 촉발" (pressian.com)2021. 06. 25.

 

 

 

“삥뜯는 미국, 빵셔틀 한국... 한미동맹 신화 벗어나야” | 서울신문 (seoul.co.kr)2021-03-30

 

 

 

이수혁 주미대사 "한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제는…" (mbn.co.kr)2020.06.04.

 

 

 

홍현익 "美 합참의장, GSOMIA 종료 왈가왈부? 내정간섭" - 노컷뉴스 (nocutnews.co.kr)2019년 11월 13일

 

 

 

美역사학자 "한일 청구권협정 갈등에 美 책임있어…더러운 비밀"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2019.09.24.

 

 

 

“美는 무조건 일본편… 남북 합심해 과거사·독도 문제 대응해야” | 서울신문 (seoul.co.kr)2019-09-03

 

 

 

점령군을 점령군이라 부르지 못하는 비극 - 오마이뉴스 (ohmynews.com)2021. 07. 08.

[점령군 논란에 부쳐] 75년 지나도 반복되는 오해.. 미 국립문서보관소 뒤진 학자로서 말하자면

 

 

 

광복회 "맥아더 포고문 보고 또 봐도 '점령군'" - 오마이뉴스 (ohmynews.com)2021. 07. 06.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도 인정하지 않았다"

 

 

 

임동원·정세현·이종석 "8월 한미훈련 중단해야" (daum.net)2021. 06. 15.

 

 

 

남측위 "한미연합훈련 중단해야..전작권 즉각 환수" (daum.net)2021. 02. 25.

 

 

 

"한미훈련, 예전 그대로 재개? 상상할 수 없다"

 [인터뷰] <70년의 대화> 저자 김연철 교수의 3차 남북정상회담 전망2018.02.13 

 

 

 

"중국軍, 유사시 평양 남쪽까지 전진 검토" (chosun.com)2017.12.19 

 

 

 

[미 ‘새 국가안보전략’]“압도적 힘으로 북 침략 대응” - 경향신문 (khan.co.kr)2017.12.19

 

 

 

[특파원+] 제2 한국전쟁, 1994년과 2018년 차이는 | 세계일보 (segye.com)2017-12-17

 

 

 

 

용산 미 8군 사령부, 한국 떠난다…하와이 이전 (sbs.co.kr)2008.06.05 

 

 

 

[기고] 일본의 ‘진보’와 한국의 ‘퇴보’ / 우수근 (hani.co.kr)2008-05-11 


[세상읽기] 중국인에게 하고픈 말 6가지 / 조효제 (hani.co.kr)
2008.4.25

 

 


[한겨레프리즘] 국가 대 민족 / 고명섭 (hani.co.kr)
2008.4.2

 

 


민족주의 비판 탈민족주의 그 자체가 대안은 아니다 (hani.co.kr)
2008.3.18

 

 

 

‘민주주의 주체’ 민중인가 시민인가 (hani.co.kr)2008.2.28

 

 

 

한반도 상황 무시한 ‘탈민족’ 주장 글로벌 제국주의에 악용될 수도 (hani.co.kr)2008.1.12

 

 

 

다양한 존재의 소통을 실험하라, 새 삶을 위해! (hani.co.kr)2008.2.2

 

 

 

자본지배 ‘벗어남’ 넘어 ‘극복·대체’ 노력을 (hani.co.kr)2008.2.16

 

 

 

코뮤니즘 ‘발견’하고 현실화를 ‘발명’하라 (hani.co.kr)2008.2.23

 

 

 

‘자본주의 안의 코뮤니즘’ 아닌 반자본주의로 (hani.co.kr)2008.3.1

 

 

 

‘나쁜 노마드’ 구별해야 ‘진정한 노마드’ 찾아 (hani.co.kr)2008.1.19

 

 

 

우리는 이미 실제-가상 오가는 ‘유목적 생활인’ (hani.co.kr)2008.1.26

 

 

 

세계화시대 민족주의는 아직 유효한가 (hani.co.kr)2008년 1월 12일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서울신문 (seoul.co.kr)2007-08-22 

 

 

 

한국-몽골 국가연합론 세미나|신동아 (donga.com)2007-06-07

 

 

 

실체 없는 ‘유목주의’ 이미지만 떠돈다 (hani.co.kr)2007.12.29

 

 

 

코뮨주의, 공산주의와 다른 ‘우정의 정치학’ (hani.co.kr)2007.12.13

 

 

 

민족 배제한 사회변혁 ‘순진한 발상’ (hani.co.kr)2007.12.1

 

 

 

계급-민족, 만나야 강력해진다 (hani.co.kr)2007-12-07

 

 

 

신자유주의 못 막는 ‘민족’을 땅에 묻어라 (hani.co.kr)2007.12.15

 

 

 

‘핏줄의 민족’ 버리고 ‘주체적 우리’ 고민할 때 (hani.co.kr)2007.12.22

 

 

 

[열린세상] 대통령 없애야 나라가 산다/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 서울신문 (seoul.co.kr)2007-11-23   

 

 

 

자본주의 대안은 무엇인가 (hani.co.kr)2007.11.22

 

 

 

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 (hani.co.kr)2007.11.10

 

 

 

민족 ‘신화’ 넘어 국경없는 ‘계급연대’로 가자 (hani.co.kr)2007.11.17

 

 

 

자본의 강고한 네트워크 ‘민족’ 사유로 뚫지 못한다 (hani.co.kr)2007.11.24

 

 

 

“진보파, 반미·친중에서 벗어나라” (hani.co.kr)2007년 8월 30일

 

 

 

[주장] 민족주의의 과잉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2007년 5월 11일

 

 

 

“평화·인권같은 거대담론 보통사람 삶에 기여 못해” (hani.co.kr)2007년 5월 17일

 

 

 

“과도한 민족주의, 민주주의 발전 장애” (hani.co.kr)2007년 5월 8일

 

 

 

‘무기력증 빠진 진보 지식사회’ 토론 원문 (hani.co.kr)2006-01-03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은 거짓말쟁이! (hani.co.kr)2007년 10월 12일

 

 

 

美8군사령관이 폭격 지시 확인 | 서울신문 (seoul.co.kr)2007-11-23

 

 

 

[정종욱 월드포커스] 미·일 정상회담이 남긴 교훈 | 서울신문 (seoul.co.kr)2007-11-21

 

 

 

“부시 대북정책 변화는 중국·한국 성장의 반증” (hani.co.kr)2007.11.15

‘한겨레-부산 국제심포’ 온 한반도 전문가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

 

 

그레그 “한반도 비극에 美도 일부 책임” | 서울신문 (seoul.co.kr)2007-11-09

 

 

 

前NYT기자 ‘한국전’ 책 내 “美의 ‘오만한 어리석음’ 처음 드러내”|동아일보 (donga.com)2007년 9월 23일

 

 

 

“미국산 지식이 세계를 지배한다” vs “미국의 패권은 이미 해체기다” (hani.co.kr)2007년 9월 6일

 

 

 

미국, 중국 견제 위한 북한 필요성 알게 될 것 (hani.co.kr)2007년 5월 23일

‘후광 김대중 학술상’ 수상차 방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기고] 작전통제권 환수의 기만성 / 유영재 (hani.co.kr)2007.11.7

 

 

 

강정구 교수 “작전지휘권 이양 ‘미국의 강압’이었다” (hani.co.kr)2007년 9월1일

평화·통일연구소와 ‘…한미관계 새판짜기 2’ 낸 강정구 교수홍근수 목사 고희기념문집

 

 

 

"1950년 작통권은 이양 아닌 강탈" (daum.net)2006년 12월 13일

 

 

 

日, 전쟁범죄 역사지우기 하나 (donga.com)2007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