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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 문화유산 (16) ‘혼천의’ 본문

남국/조선

4. 조선 문화유산 (16) ‘혼천의’

대야발 2025. 9. 21. 16:15

 

 

 

 

■ 봉화가 낳은 조선 천재 학자 '괴담 배상열'은 누구?

[봉화=뉴시스] 김진호 기자 2024. 8. 20. 11:08
 
16세에 천문 관측 '혼천의(선기옥형)' 제작
'서계쇄록' 등 본격적인 산서(算書) 저술
21일 봉화군청소년센터 대강당서 학술대회
 
흥해배씨 녹동리사 괴담종택 기탁 '혼천의(선기옥형)'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는 21일 경북 봉화군 청소년센터 대강당에서 '괴담 배상열'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괴담 배상열의 학문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봉화가 낳은 천재 학자 괴담 배상열의 천문과 지리, 역학과 산학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뤄질 전망이다.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은 봉화에서 태어났다.

15세 전후에 독학으로 깨우쳐 천문과 지리, 역학과 산학에 뛰어났고, 23세 때 대산 이상정 문하에서 배운 뒤로는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30세 나이로 요절했지만 '도학육도(道學六圖)', '서계쇄록(書計鎖錄)', '사서의의(四書疑義)', '성리찬요(性理纂要)', '사서찬요(四書纂要)', '계몽도해(啓蒙圖解)', '심경품목(心經稟目)', '을수제요(乙數提要)'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그는 16세에 천문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 선기옥형)'를 만든 이후 21세와 27세에 다시 제작하고 수정하는 등 천문 분야에서 놀라운 천재적 역량을 발휘했다.

 

 

흥해배씨 녹동리사 괴담종택 기탁 '서계쇄록' 하편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8세 때 편찬한 '서계쇄록' 하편은 수론(數論)에서 시작해 각종 산법(算法)에 이르기까지 두루 아우른 본격적인 산서(算書)로 배상열의 수리 사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앞선 시기에 나온 최석정의 '구수략(九數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구체적인 산법과 운용 측면에서 형이상학적 색채를 철저히 탈피하였다는 점에서 18세기 말 조선 지식인들의 변화된 수리 사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관련 분야 전문 연구자 5명이 참석해 괴담 배상열 생애와 교유관계는 물론 성리학과 역학, 천문 및 수리 사상에 대해 총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박권수 충북대 교수는 배상열의 생애와 교유관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상수학적 우주론 연구를 전체적으로 소개한다.

이영호 성균관대 교수는 배상열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완성한 '도학육도'를 통해 그의 생애 후반기 학문의 주축이었던 주자학적 사유를 고찰한다.

 

 

 

흥해배씨 녹동리사 괴담종택 기탁 '서계쇄록' 하편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엄연석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장은 배상열의 역학과 성리학을 아우르는 도상학이 조선 후기 역학과 성리학에서 지니는 특징과 지위를 규명한다.

 

김상혁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조선의 혼천의 제작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피고, 그 가운데 적도환(赤道環)에 28수 별자리를 그려 넣은 배상열 혼천의만이 지닌 특징을 밝힌다.

 

강민정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은 18세기 초 최석정의 '구수략'과 비교 분석해 '서계쇄록'의 수리 사상이 지닌 특징을 살펴본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봉화가 배출한 괴담 배상열 선생은 천문과학 분야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했을 뿐만아니라 성리학에도 깊은 이해를 보이며 특출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고 말했다.(1)

 

 

 

 

■ [뉴스속 인물]조선 천문학자 ‘남병철’…달에 새긴 첫 한국인 이름

최호경 기자2024. 8. 20. 17:01
 
IAU, 한국인 이름 처음 부여
조선 후기 최고 수준의 천문학자
남병철 혼천의 170여년 만에 복원

 

이름 없는 달 뒷면 충돌구(크레이터)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이 붙었다. 주인공은 조선 시대 천문학자 남병철 선생이다.

19일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진호 교수 연구팀은 ‘남병철 충돌구(Nam Byeong-Cheol Crater)’란 명칭이 14일 국제천문연맹(IAU)의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름이 붙은 충돌구는 1659개로 늘었다. 앞서 연구팀은 국제협력 연구 중에 달 뒷면에 특이한 자기장을 띠는 이름 없는 충돌구를 발견하고, IAU에 남병철 선생의 이름을 신청했다.

 

 

남병철 충돌구 지점 [사진제공=경희대학교]

 

 

 

남병철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천문학자, 수학자다. 본관은 의령이다. 1817년(순조 17년) 서울 안국동에서 태어났고, 1837년(현종 3년) 21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기에 중용돼 예조판서를 비롯한 요직을 지냈고, 철종의 총애를 받았다. 1859년(철종 10년) 홍문관 대제학과 관상감을 통솔하는 관상감제조를 겸직했다. 관상감은 천문학·지리학 등의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그와 3살 터울인 동생 남병길 또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다. 두 형제는 조선 시대 천문학의 끝을 장식한 인물로 평가된다. 두 형제가 천문학과 수학에서 이룬 업적은 세도정치 폐해가 극에 달한 1850~1860년대에 이뤄졌다. 정치·경제·문화 등 전반적인 부문에서 조선이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인식되는 시기에 두 학문에만 유달리 높은 성취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부족하다.

 

 

저서로는 추보속해(推步續解)·의기집설(儀器輯說)·해경세초해(海鏡細草解) 등이 있다. 1862년(철종 13년)에 편찬된 천문서 ‘추보속해’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유학자가 도달한 천문학적 이해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케플러의 타원궤도 운동론을 적용해 태양과 달의 운동, 월식과 일식, 항성의 이동 등 5가지 항목의 계산법을 이 책은 설명한다. 추보속해는 조선 후기 한국의 천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1859년(철종 10년)에 집필한 ‘의기집설’은 각종 천문기구의 구조와 사용법을 담았다. 혼천의(渾天儀)·간평의(簡平儀) 등 10가지 천문의기(天文儀器)를 분류하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또 서양식 자명종 시계인 ‘험시의’를 비롯한 기계시계의 구조와 원리를 밝혔다. 남병철은 “프랑스만 해도 시계공이 1000여명이나 되고, 각종 기계시계의 연 생산량이 1만2000개에 달한다”며 조선의 시계 공장제도에 대해 아쉬움을 이 책에 드러냈다.

 

 

 

의기집설, 남병철 혼천의 [사진제공=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천문연구원]

 

 

 

남병철은 이 책에서 새로운 혼천의 제작법을 소개했는데, 문헌으로만 전해온 ‘남병철 혼천의’가 170여 년만인 올해 초 성공적으로 복원되기도 했다. 지난 2월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은 ‘남병철 혼천의’ 복원 모델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기구에는 장소를 옮기며 천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관측의 기준인 북극 고도를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 아울러 고도, 방위 측정, 황경과 황위, 적경과 적위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기존 혼천의와 차별적이다.

 

 

복원을 주도한 천문연 고천문연구센터 김상혁 책임연구원은 "남병철 혼천의는 전통 혼천의 중에서 실제 천체 관측이 가능하도록 재극권(극을 바꿀 수 있도록 설치한 고리)을 탑재한 세계 유일의 과학기기"라며, “과거의 천문기기를 복원함으로써 당시의 천문관측 수준을 이해하고 천문 기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했다.(2) 

 

 

 

 

■ 문헌으로만 전해진 조선 후기 '남병철 혼천의' 복원

이채린 기자 2024. 2. 29. 12:04
한국천문연구원이 복원한 남별철의 혼천의.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문헌으로만 전해졌던 조선 후기 천문학자인 '남병철' 혼천의가 170여 년만에 되살아났다. 혼천의란 지구, 태양, 달 등 여러 천체의 움직임을 재현하고 그 위치를 측정하는 기기로 현대천문학으로 넘어오기 이전까지 표준이 된 천체관측기구다.

 

 

한국천문연구원은 김상혁 책임연구원과 민병희 책임연구원이 남경욱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과 함께 조선 후기 천문 유산인 남병철의 혼천의를 복원한 모델을 제작했다고 29일 밝혔다. 

 

 

남병철은 19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당시 오늘날 한국천문연구원에 해당하는 천문학 관서인 '관상감' 고위직으로 재임하며 천문학에 관심을 뒀다. 1850년대 후반 각종 천문의기 제작법과 사용법을 정리해 책 '의기집설'을 썼다. 책에서 동아시아에서 그동안 제작됐던 혼천의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혼천의에 대한 제작법과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연구팀이 복원한 혼천의가 바로 이 의기집설에서 남병철이 설명한 혼천의다. 문헌으로만 전해질 뿐 실물은 남아있지 않았다. 김상혁 책임연구원은 20년 전 남병철의 혼천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2년부터 연구팀을 꾸려 의기집설 내용을 번역해 기초 설계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복원을 시작했다. 

 

 

남병철의 혼천의는 조선시대에서 쓰이던 기존 혼천의를 보완하고 관측에 편리하도록 개량한 천문기기다. 남병철 혼천의는 장소를 옮겨가며 천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관측의 기준이 되는 북극 고도를 조정하는 기능을 갖췄다. 기존 혼천의는 북극 고도를 관측지에 맞게 한번 설치하면 더 이상 변경할 수 없었다.

 

 

또 남병철 혼천의는 특별한 고리가 설치되어 있어 상황에 맞는 천체 관측이 가능하다. 고리를 조절하면 지구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천체의 위치를 표현해 적경과 적위를 측정할 수 있다. 고도와 방위 측정이 가능하며, 태양의 운동을 기준 삼아 사용되는 황도좌표계의 황경과 황위를 측정할 수 있다. 

 

 

김상혁 책임연구원은 "남병철의 혼천의를 복원함으로써 당시의 천문관측 수준을 이해할 수 있고 천문 기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면서 "우리 선조의 우수한 과학문화재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복원된 남병철의 혼천의는 올해 하반기에 국립과천과학권에서 특별 전시될 예정이다. (3)

 

 

■ 중·이슬람양식에 전통 접목한 ‘간의대’… 세종이후 매일 밤 천문 관측[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2023. 9. 8. 08:57
 
■ 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 (21) ‘관상감’이 남긴 천문과학 유산
천체 운행 측정한 ‘혼천의’
일종의 천문시계 기능
지구본 모양의 우주본 ‘혼상’
당시 최고의 과학 결정체
해그림자로 시간 아는 해시계
앙부일구는 절기도 알게 해줘
측우기는 강우량 측정장비
현대적 계측기와도 비슷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간의대와 각종 천문 관측기구들

 

관상감 관원들은 조선 천문 과학의 유산들을 남겼는데, 우선 간의대를 꼽을 수 있다. 경복궁의 경회루 북쪽에 설치된 석축 간의대는 높이 6.3m, 길이 9.1m, 넓이 6.6㎡의 천문관측대였다. 이 간의대에는 혼천의, 혼상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간의대와 주변 시설물들은 중국과 이슬람 양식에다 조선의 전통 양식을 혼합한 것이었는데, 1438년(세종 20년) 3월부터 이 간의대에서 서운관(관상감) 관원들이 매일 밤 천문을 관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간의대에 설치된 혼천의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기계로 중국 고대 우주관 중 하나인 혼천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혼천의는 천구의와 함께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시계장치와 연결된 것으로써 일종의 천문시계 기능을 하고 있었다. 또 간의대에 설치되었던 혼상은 일종의 우주본으로 지구본처럼 둥글게 되어 있으며, 둥글게 만든 씨줄과 날줄을 종이로 감싼 모양이다. 어설프게 보이는 이 천문관측기는 당시로는 최고의 과학적 결정체였다.

 

이 외에도 간의대에 방위와 절기, 시각을 측정하는 도구인 규표와 태양시와 별의 시간을 측정하는 일성정시의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종 시계와 측우기, 활자

 

천문학의 발전은 시계의 발명을 가져왔다. 당시의 시계는 해시계와 물시계로 대표되는데, 해시계는 앙부일구·현주일구·천평일구·정남일구 등이 있었으며, 물시계는 자격루와 옥루가 있었다.

 

해시계를 일구(日咎)라고 한 것은 해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구들은 모양과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인 앙부일구는 그 모양이 ‘솥을 받쳐놓은 듯한(仰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이것은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규모가 작은 일종의 휴대용 시계였고 정남일구는 시곗바늘 끝이 항상 ‘남쪽을 가리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장영실 등이 만든 앙부일구는 단순히 해시계를 발명했다는 측면 외에 더 중요한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다른 나라의 해시계가 단순히 시간만을 알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앙부일구는 바늘의 그림자 끝만 따라가면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게 해주는 다기능 시계였기 때문이다. 또한 앙부일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구로 된 해시계였다. 앙부일구가 반구로 된 점에 착안해서 그 제작 과정을 연구해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해의 움직임뿐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지구 구형설이나 지동설에 따른 것이 아니라 혼천설에 따른 것이었다.

 

해시계는 이처럼 조선의 시계 문화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기능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해시계는 해의 그림자를 통해 시간과 절기를 알게 해주는 것이었기에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물시계였다.

 

물시계로는 자격루와 옥루가 있었다.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보장치가 달린 이 물시계는 일종의 자명종 시계다. 1434년 세종의 명을 받아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고안한 자격루는 시, 경, 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종,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1437년에는 장영실이 독자적으로 천상시계인 옥루를 발명했고, 세종은 경복궁에 흠경각을 지어 옥루를 설치했다. 옥루는 중국 송·원 시대의 모든 자동시계와 중국에 전해진 아라비아 물시계에 관한 문헌들을 철저히 연구한 끝에 고안한 독창적인 것으로서 중국이나 아라비아의 시계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시계·물시계와 더불어 천문학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뜻깊은 발명품은 측우기였다. 측우기는 1441년에 발명되어 조선시대의 관상감과 각 도의 감영 등에서 강우량 측정용으로 쓰인 관측 장비로, 현대적인 강우량 계측기와 유사하다. 이는 갈릴레오의 온도계나 토리첼리의 수은기압계보다 2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기상 관측 장비다. 측우기의 발명으로 조선은 새로운 강우량 측정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를 농업에 응용하게 되어 농업기상학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또 강우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조선의 ‘위대한 손’ 장영실과 세종의 과학 혁명

 

조선 천문 과학을 논하자면 장영실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세종의 과학 정책을 현실화시킨 ‘위대한 손’이었기 때문이다.

 

장영실에 대해 ‘세종실록’은 그의 아버지가 원나라 소항주(蘇杭州) 사람이며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동래현의 관노 신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영실의 성씨를 감안할 때, 그의 아버지는 원나라 사람이긴 했지만 몽골인이 아닌 한족이었고, 장영실이 관노였다는 사실을 통해 그의 어머니는 관비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장영실은 몽골 지배 시절의 한족 아버지와 고려 동래현에 예속된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는 뜻이다.

 

동래의 관노 신분인 장영실을 궁궐로 불러올린 사람은 태종이었고, 그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본 사람은 세종이었다. 세종은 관노 신분이었던 장영실을 종3품 대호군의 벼슬까지 주면서 능력 발휘를 독려했다.

세종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장영실이 일궈낸 과학적 쾌거를 열거하자면 대표적으로 혼천의, 혼상,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간의대, 갑인자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장영실 혼자 이 일을 해낸 것은 아니었다. 주로 정초와 정인지, 세종 등이 이론과 원리를 설명하고 이순지·김담 등이 수학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천이 현장을 지휘했다. 하지만 실제 이 기계들을 제작한 기술자는 장영실이었다.

 

장영실이 세계 과학사에 빛나는 업적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뛰어난 지도력과 안목 덕분이었다. 학문은 물론이고 기술적인 측면에도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세종은 측우기의 제작에 왕세자를 직접 참여시키는 열성을 보였는가 하면,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학자와 기술자를 등용하기도 했다. 장영실은 세종의 그와 같은 실용적 가치관에 힘입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조선은 과학 혁명을 이룰 수 있었으며 15세기 문예부흥을 구가할 수 있었다.

작가

 

■ 용어설명 - 혼천설(渾天說)

중국 고대에 형성된 우주 개념 중 하나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주의 원리에 대해 개천설과 혼천설이 대립했는데, 개천설(蓋天說)에서는 우주의 모양에 대해 하늘이 땅 위를 덮고 있는 형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혼천설에서는 땅은 둥글고 하늘은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형태라고 주장한다. 또 개천설에서는 하늘의 중심을 북극으로 설정하고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이 회전하며, 하늘과 땅은 평면이라고 주장한다. 혼천설은 하늘과 땅을 곡면으로 설정하고 천체의 모양을 달걀 모양이라고 주장하며 개천설의 한계를 극복한다.(4)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40820110821894

 

 

(2) https://v.daum.net/v/20240820170116362  

 

 

(3) https://v.daum.net/v/20240229120412503

 

 

(4) https://v.daum.net/v/20230908085712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