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2. 백제 고고학(4)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고분군 본문
(27)베일 속 한성백제의 비밀 품은..도심 속 '고대사 보물창고' [도재기의 천년향기]
석촌동 고분군에서 몽촌토성 쪽으로 더 올라오면 역시 공원으로 조성된 ‘방이동 고분군’이 있다. 능선을 따라 굴식돌방무덤, 돌덧널무덤(석곽묘) 등 수십기의 고분이 존재한 곳이다. 방이동 고분군은 1973년 김모씨의 집 뒷산 언덕이 무너지면서 굴식돌방무덤(현재 복원돼 있는 1호분)이 드러나 발굴 계기가 됐다.
현재 정비된 고분은 8기로, 정문에 들어서서 왼쪽의 서쪽 언덕에 1·2·3·6호분 4기가, 산책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오면 8·7·9·10호분 4기가 자리한다. 조사가 이뤄진 무덤은 1·4·5·6호분이며, 4·5호분은 복원되지 않았다.
3호분은 2016년 봉분 일부가 흘러내리면서 현재 한성백제박물관이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성백제의 무덤으로 여겨지던 방이동 고분군은 정작 조사에서 신라 토기들이 나와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학계에선 지금도 백제냐, 신라냐를 놓고 견해가 부딪히고 있지만, 최근 3호분 조사결과 등에 따라 백제가 일부를 조성하고 이후 신라가 광범위하게 재활용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백제의 ‘잃어버린 절반’ 되찾아야

고구려·신라도 건국 초기 연구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한성백제는 ‘지금도 논쟁 중’이라 할 만큼 유독 견해들이 엇갈린다. 고고학적 자료 부족과 더불어 그나마 있는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을 놓고 해석이 달라서다. 교과서 등 대중적으론 주류 학설 중심으로 정리가 됐지만 학술적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상황은 다르다.
지난 2017년에 백제사 쟁점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살펴보는 ‘한성백제사 다시 보기’란 콘퍼런스가 열렸다. 하루종일 진행된 콘퍼런스의 1주제가 ‘백제, 누가 언제 세웠나’일 정도다. 시조를 놓고 온조라는 견해부터 온조가 가공인물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건국세력의 고구려계 여부, 한성백제 왕궁이 어디인가 등이 대표적이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석촌동 고분군의 돌무지무덤, 당시 굴식돌방무덤의 전개과정을 둘러싸고 조성 배경과 주체세력, 시기, 순서 등에 대한 주장도 부딪힌다. 한 원로학자의 말처럼 ‘결정적 한 방’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끝나지 않을 논쟁이다.
그래서 관련 유적의 장기적·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중요하고, 현재 진행 중인 석촌동 고분군 발굴조사가 주목받는다. 한성백제박물관은 2015년부터 산하 백제학연구소 학예사들을 중심으로 고분군 내 1호분 옆 지역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11일 석촌동 고분군을 찾았을 때도 뙤약볕 아래 조사가 이어졌다.
때마침 백제 토기와 중국 자기편이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치영 발굴조사팀장, 최진석·윤정현 학예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발굴조사에서는 한성백제 연구활성화를 자극하는 새 자료들이 속속 나와 학계 안팎의 관심을 받는다. 남북 100m, 동서 40m 규모의 발굴현장에서는 지금까지 연접되는 돌무지무덤이 무려 20여기 발견됐고, 더 확장되는 상황이다.
또 금제 귀걸이 등 각종 유물도 출토되고 있다. 정치영 팀장은 “표토를 50㎝ 정도 긁어내면 새 돌무지무덤의 석열과 점토부 등이 노출될 정도여서 향후 더 많은 자료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문가들은 물론 지역 주민, 서울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낀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에 한성백제 유적을 추가로 등재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2015년 등재된 ‘백제역사지구’는 공주·부여·익산의 유적 8곳으로만 구성됐다.
백제사의 절반을 넘는 한성백제시대가 통째로 빠진 ‘반쪽 등재’다. 보다 온전한 백제역사지구를 위해 한성백제 유적의 추가 등재를 추진 중인 문화재청과 서울시, 송파구가 발굴조사 등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다.(1)
2017년 3월 28일 한성백제박물관은 40년 만에 ‘신라냐 백제냐’ 국적논란이 있는 방이동 고분 발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습니다.
[단독] ‘신라냐 백제냐’ 국적논란 방이동 고분 40여년 만에 발굴한다
한성백제박물관, 4월초 발굴조사 착수
1970년대 발굴 당시 한성백제 무덤 단정
나중에 출토된 토기 신라유물로 드러나
최근 백제석실분 잇단 발견에 백제무덤설 재부각
고고학계 해묵은 국적논란 종식될지 관심 모아져

이 옛 무덤떼는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해진다. 1500여년 전 무덤 잡은 자리는 옛 백제 도읍터 코앞인데, 나온 토기들은 죄다 신라의 유물이다. 그래서 30여년째 학자들 사이에 신라 무덤인지 백제 무덤인지를 놓고 국적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숲에 둘러싸여 8기의 무덤 공원이 된 서울 방이동고분군의 내력이다.
이 무덤떼는 70년대 초 한 주민이 자기 집 축대와 인접한 1호분 무덤의 돌방과 널길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뒤이어 75년 잠실 택지개발을 앞두고 문화재관리국이 1, 4, 5, 6호분 무덤을 발굴한 결과 백제, 신라 공통의 굴식돌방무덤(석실분)들이 대부분 나왔다.
조사단은 4~5세기 한성(서울)에 도읍한 초기 백제 무덤으로 점찍었다. 하지만 대부분 도굴된 상태에서 빈약하게 나온 굽다리접시, 직구호 항아리 따위의 토기 유물들이 나중에 학계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학계는 출토품도 한성백제 유물로 봤는데, 아니었다. 80년대 초까지 진행된 경주의 신라고찰 황룡사터 발굴 현장에서 방이동 출토품과 똑같은 굽다리접시, 항아리들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방이동고분군 주인이 6세기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인들이란 학설(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이 제시됐고, 결국 신라계 무덤이라는 통설이 힘을 얻게 됐다.
79년 사적 지정 당시 고분군 정식 명칭이 ‘방이동백제고분군’이었다가 2011년 명칭에서 백제가 빠진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백제설이 그냥 가라앉은 건 아니다. 최근 부근의 우면동과 하남시 감일동 등에서 한성백제의 정교한 석실무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방이동고분군 국적은 백제가 맞다는 설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인들의 석실무덤을 나중에 들어온 신라인들이 재활용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5~6세기 백제·신라 무덤 변천사에서 수수께끼의 고리가 되는 방이동고분군이 70년대 이래 40년 만에 처음 발굴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4월 첫주부터 전문가들 자문 아래 고분군의 3호분을 발굴하는 학술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최근 3호분 한쪽 면 봉토가 쓸려 내려가는 이상현상이 나타나 관리자 쪽인 송파구청이 정비를 위한 조사를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3호분은 70년대 발굴되지 않았다. 봉토, 내부 무덤방 얼개, 유물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4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신라, 백제 국적 논란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학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최병현 교수는 “70년대엔 신라와 백제 고분의 얼개, 토기의 차이점에 대한 지식이 매우 빈약한 상태로 발굴했던 만큼 이번 조사를 통해 국적 논란에 좀더 분명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2)
[역사의 향기] <12> 방이동 고분군

한성백제 시대의 고분군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송파구의 석촌동ㆍ방이동ㆍ가락동 3군데다. 이중 형태나마 남아 있는 것은 석촌동과 방이동뿐이다. 가락동 고분군은 도굴 등으로 훼손된 뒤 도시개발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방이동 고분군은 인근 석촌동과 차이를 보인다. 석촌동에는 흙무덤도 있지만 돌무덤(적석총)이 주인공이다. 이에 비해 방이동 고분 8기는 모두 흙무덤이다. 대개 고구려식 돌무덤에서 토착 삼한식 흙무덤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방이동 고분군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곳은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방이동 백제고분군'으로 이름붙었다. 하지만 일부 무덤에서 전형적인 신라토기가 출토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현재 5세기 전후 한성백제 시대 무덤 자리에 이곳을 점령한 신라인 무덤이 보태졌다는 주장에 대해, 아예 6세기 이후 신라시대 무덤들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결국 문화재청은 2011년 7월 명칭을 '서울 방이동 고분군'으로 바꿨다. 당국의 무심함은 지나칠 정도다. 현재 고분군 내 안내판에는 '시대:통일신라'로 표기하면서도 '방이동 백제고분군'이라는 과거 이름은 바꾸지 않고 있다.(3)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190615060205093 경향신문. 2019. 6. 15.
(2) [단독] ‘신라냐 백제냐’ 국적논란 방이동 고분 40여년 만에 발굴한다 : 한겨레 (hani.co.kr)2017-03-28
(3) https://v.daum.net/v/20130612171315710 서울경제. 201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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