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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백제

3. 백제 고고학(20) 부여 관북리 유적

대야발 2026. 1. 27. 15:30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에서는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가로 피리) 1점과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한 총 329점의 목간이 출토됐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피리' 발견…목간도 무더기 출토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2026. 2. 5. 10:22

 

 

국립부여문화연구소,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
왕궁 화장실 추정 구덩이서 횡적(가로 피리) 1점 발굴
제작 시기 파악된 목간 다수…"백제 사비기 행정 체계 파악"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횡적(가로 피리)이 출토됐다. 백제 횡적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한 사례이자, 삼국시대(7세기)를 통틀어서도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건 처음이다. 목간(글을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에 적은 것) 다수가 발굴돼 백제의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백제 횡적(가로 피리) 발굴 모습 (사진=국가유산청)
 
 
 
 

백제 ‘횡적’,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 첫 발굴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연구소에서 부여군과 함께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공개하는 조사 성과 공개회를 개최한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대지에 위치하며 사비기 왕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난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관북리 일대는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시설,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돼 사비 왕궁지로 인식되는 곳이다.

 

 

16차 발굴조사에서는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가로 피리) 1점과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한 총 329점의 목간이 출토됐다.

 

 

횡적은 백제 조당(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논의하고 조회와 의례를 행하는 정치적, 상징적 공간)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에서 발견됐다.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됐다. 출토된 곳은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나무 소재로 4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었고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횡적은 엑스레이 분석 결과 한쪽 끝이 막힌 구조라는 것이 판명돼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세로 관악기가 아닌, 가로 피리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과 일본의 사례와 비교 연구한 결과 오늘날의 소금과 유사한 악기인 것으로 확인된다.

 

 

연구소 관계자는 “횡적은 백제 궁중음악과 악기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백제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목간 329점 발굴…부여 행정 체계 파악돼

 

이번에 발굴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329점)이다. 백제 사비기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평가된다.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 출토됐으며, 간지년이 기록된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가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며 이는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의 시기다.

 

 

이외 국가 행정 문서인 인사 기록 목간, 국가재정과 관련된 장부 목간, 관등·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이 다수 출토돼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部司)와 관련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비도성의 중앙 행정 구역인 5부(部)와 방(方)·군(郡)·성(城)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목간도 다수 출토됐다.

도성 행정 단위인 ‘상·전·중·하·후부(上·前·中·下·後部)’ 5부를 기록한 목간, 지방 행정 단위인 ‘웅진·하서군’, ‘나라·요비성’ 등 새로운 지명이 확인되기도 했다.

 

인사 관리 목간(사진=국가유산청)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백제 사비기의 역사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겠다”며 “축적된 성과를 국민과 관련 학계에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가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1)

 

 

 

부여 관북리 유적서 도로 흔적…"동서-남북 길 교차한 'ㄱ'형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2024. 12. 11. 10:48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조사 결과…수레바퀴 흔적·토기 조각 등 발견
25.5m 길이 건물터 규모 확인…옻칠 가죽으로 만든 '칠피갑옷' 또 나와

 
수레바퀴 자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백제가 사비에 도읍을 두던 시기(538∼660) 왕궁터로 거론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도로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관북리 유적에서 왕궁과 관련한 건물터와 도로로 추정되는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취)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조사단은 올해 관북리 74-1번지 일대를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왕궁과 관련한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동쪽 경계 부근에서 도로와 수레바퀴가 지난 흔적이 새롭게 발견됐다.

 

도로로 추정되는 지역의 기와와 토기 조각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레가 이동하면서 파인 곳을 보수하기 위해 놓은 듯한 기와와 토기 조각 여러 점도 확인됐다.

도로는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가 교차하는 'ㄱ'자 형태로 추정된다.

다만, 도로면 일부만 확인돼 구체적인 형태와 규모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연구소 관계자는 "현재의 도로와 위치가 일치하고, 방향성도 맞아 과거와 현재의 토지 이용 양상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발견된 칠피갑옷 조각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도로 흔적은 추후 사비 왕궁의 구조와 규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왕궁과 관련이 있는 건물의 크기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2022∼2023년 진행된 16차 조사에서 확인된 건물터 3곳 가운데 1곳('2호 건물지'로 명명)은 동서로 1칸, 남북으로 8칸 규모로 길이가 25.5m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은 중심 건물 주변을 둘러싸도록 만든 장랑식(長廊式) 형태로 추정된다. 장랑식 건물은 궁이나 사찰에서 주로 확인되며 왕궁 내부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17차 조사 지역 모습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올해 조사에서는 옻칠한 갑옷의 흔적도 새로 확인됐다.

앞서 관북리 유적에서는 옻칠 가죽을 연결해 만든 갑옷인 칠피갑옷이 나왔는데, 올해 조사에서도 총 2곳에서 미늘(일정한 크기의 조각으로 구성된 갑옷의 개별 단위)과 갑옷 흔적을 찾았다.

백제 역사·문화권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된 것은 공주 공산성 이후 관북리가 두 번째다.

 

 

연화문 기와 조각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여 관북리 유적 16·17차 조사 지역 위치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는 12일 오전 10시 30분에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조사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총 17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사비 왕궁의 대략적인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왕궁 관련 시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관북리 유적은 사비 백제기의 왕궁터를 논할 때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다.

1982년부터 발굴 조사한 결과, 전각(殿閣·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뜻함) 건물이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건물터와 연못 흔적, '+' 형태로 교차하는 도로 유구 등이 나왔다.(2)

 

 

 

 

백제의 '마지막' 흔적일까…부여 관북리 유적서 옻칠 갑옷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2024. 2. 27. 10:05
 
공주 공산성 이어 두 번째…등자·말 뼈 나와 일부는 말 갑옷 추정
폐기된 유물·불에 탄 흔적도 발견…"백제 멸망 당시 혼란한 상황 유추"
 
2호 구덩이에서 나온 칠피갑옷 세부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 왕궁터로 거론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옻칠한 갑옷의 흔적이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7일 "관북리 유적 내 왕궁 시설로 추정되는 건물터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6곳의 구덩이에서 칠피갑옷 조각과 갑옷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칠피갑옷은 옻칠한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갑옷을 뜻한다.

 

 

칠피갑옷이 출토됐을 당시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백제 역사·문화권에서 칠피갑옷이 출토된 것은 2011년 공주 공산성 이후 두 번째다. 공산성 내 저수시설 터에서 가죽에 옻칠을 한 말 갑옷(마갑·馬甲) 등이 나온 바 있다.

 

갑옷 흔적은 왕궁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여겨지는 건물 주변을 조사하던 중 발견됐다.

중심 건물의 주변을 둘러싸도록 만드는 긴 건물인 장랑식(長廊式) 건물로 추정되는 일대를 살펴본 결과, 30m 범위 안에 있는 구덩이에서 갑옷 조각 등이 나왔다. 장랑식 건물은 궁궐이나 사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처음에는 매우 얇은 조각 일부만 노출돼 갑옷으로 단정할 수 없었으나, 이후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사각형의 미늘과 이를 연결한 원형 구멍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호 건물지 주변의 유물 출토 위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늘은 일정한 크기의 조각으로 구성된 갑옷의 개별 단위를 의미한다.

특히 2호로 명명된 구덩이에서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갑옷 조각이 발견돼 주목할 만하다.

 

이 갑옷은 현재 남아있는 조각의 폭이 18.2㎝, 너비는 49.2㎝이다. 미늘의 길이는 7.5∼7.8㎝, 너비는 4.2∼4.4㎝로, 미늘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은 0.2∼0.3㎝로 파악됐다.

 

주변에서는 말 안장 부속품으로 발을 받칠 수 있는 등자가 출토됐고, 인근의 다른 구덩이에서는 말의 아래턱뼈로 추정되는 동물의 유체가 확인됐다.

 

 

말 안장구(등자) 출토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구소는 "기존 공산성에서 발견된 갑옷 사례,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 상황과 갑옷 형태 등을 고려할 때 2호 구덩이에서 나온 갑옷은 말 갑옷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다른 구덩이에서 나온 갑옷 조각과 미늘도 분석하고 있다.

일부 조각은 미늘의 너비가 2∼3㎝ 정도인 것으로 추정돼 사람이 입은 갑옷일 가능성이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공산성의 경우, 구덩이를 깊게 판 뒤 갑옷을 짚 등으로 감싸 묻어둔 형태인데 관북리 사례는 조금 다르다"며 "6곳에서 찾은 갑옷 흔적이 하나의 개체인지, 여러 유물인지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뼈 중 하악골 출토 모습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면서 "관북리 유적과 공산성에서 나온 갑옷 모두 발견 당시 주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유물과 불에 탄 목탄이 있었는데, 백제 멸망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북리 유적은 사비 백제기의 왕궁터를 논할 때 유력한 후보지 중 하나다.

 

1982년부터 발굴 조사한 결과, 전각(殿閣·임금이 거처하는 집을 뜻함) 건물이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건물터와 연못 흔적, '+' 형태로 교차하는 도로 유구 등이 나온 바 있다.

유적 일대에서는 현재 16차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3)

 

 

 

 

백제 왕궁터 추정 부여 관북리 유적서 길이 60여m 대형 건물터 확인

경향신문 도재기 기자2023. 12. 1. 14:11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궁 중요 행사 공간 추정”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사비시기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대형 건물터 등을 확인했다. 사진은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건물터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백제의 마지막 도읍인 사비(부여) 시기(538~660) 왕궁터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길이 60m 이상의 대형 건물터 등이 확인됐다.

 

대형 건물터는 특히 장랑식 건물터(궁궐에서 중심 건물 주변을 둘러싼 긴 건물)로 드러나 당시 왕이 업무를 관장하던 정전 같은 중심 건물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 주목된다.

 

관북리 유적에서는 그동안 각종 유물과 대형 전각 건물터를 포함한 여러 건물터, ‘+’형으로 교차하는 도로, 연못, 각종 먹거리 저장고 등이 확인돼 왕궁터로 여겨지지만 아직까지 정전 같은 핵심 건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왕궁 관련 시설이 밀집된 관북리유적의 남쪽 일대 발굴조사 결과 3동의 사비시기 건물지와 기와, 벽돌 등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연꽃무늬 벽돌(연화문 전, 왼쪽)과 바람개비 무늬 수막새(파문수막새). 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부여문화재연구소는 “3동의 건물터 가운데 특히 1호 건물터는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만 약 60m에 이르고, 추가 조사를 할 경우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보인다”며 “1호 건물터를 포함해 2동의 건물터는 북극성이 위치한 방향인 진북 방향과 일치하도록 남북 방향으로 길게 축조됐다”고 덧붙였다.

 

또 “이 2동의 건물터는 6~7세기 고대 동아시아 왕궁 내 조당(朝堂·중요 국가적 행사가 열리던 공간)의 일부로 여겨진다”며 따라서 “장랑식 건물터 북쪽에 백제 왕의 업무 공간인 정전 같은 왕궁 내 핵심 건물이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1호 건물터 내부에서는 연꽃무늬 기와 제작용 거푸집을 활용해 찍어낸 연꽃무늬 벽돌, 바람개비 무늬의 막새기와인 파문 수막새 등이 출토됐다. 파문 수막새는 백제의 웅진(공주) 시기 왕궁터로 추정되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해 익산 왕궁리유적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는 기와다. 이밖에 건물 초석을 받치는 기초시설로 기존 건물들의 적심구조와는 다른 이례적인 적심시설, 배수로 등도 확인됐다.

 

 

부여 부소산성 아래에 자리한 관북리 유적 전경. 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굴조사 과정에서 연약한 지반을 극복하고 작업기간의 단축 등 효율적인 공사를 위한 당시의 정교한 토목기술도 파악했다”며 “4일 오후 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4)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60205102246156

 

(2) 부여 관북리 유적서 도로 흔적…"동서-남북 길 교차한 'ㄱ'형태" 2024. 12. 11.  

 

(3) 백제의 '마지막' 흔적일까…부여 관북리 유적서 옻칠 갑옷 확인 (daum.net)2024. 2. 27.

 
 

(4) 백제 왕궁터 추정 부여 관북리 유적서 길이 60여m 대형 건물터 확인 (daum.net) 2023.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