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배달국(9) 6세 다의발환웅(多儀發桓雄) 재위 98년(BC 3419년~BC 3321년), 7세 거련환웅(居連桓雄) 재위 81년(BC 3321년~BC 3240년), 8세 안부련환웅(安夫連桓雄) 재위 73년(BC 3240년~BC 3167년) 웅씨가 갈라져 나간 자에 소전少典이라고 있었는데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신농(神農)씨 성은 강(姜)이다. 본문
1. 배달국(9) 6세 다의발환웅(多儀發桓雄) 재위 98년(BC 3419년~BC 3321년), 7세 거련환웅(居連桓雄) 재위 81년(BC 3321년~BC 3240년), 8세 안부련환웅(安夫連桓雄) 재위 73년(BC 3240년~BC 3167년) 웅씨가 갈라져 나간 자에 소전少典이라고 있었는데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신농(神農)씨 성은 강(姜)이다.
대야발 2026. 3. 9. 14:26
6세 다의발환웅(多儀發桓雄) 재위 98년(BC 3419년~BC 3321년)
7세 거련환웅(居連桓雄) 재위 81년(BC 3321년~BC 3240년)
8세 안부련환웅(安夫連桓雄) 재위 73년(BC 3240년~BC 3167년)
소전少典씨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안부련환웅 말기에 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신농神農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하였다. 소전의 별고에 공손이라고 있었는데 헌구로 유배되었고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웅씨가 갈라져 나간 자에 소전少典이라고 있었는데 안부련환웅의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신농神農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列山으로 이사하였는데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하였다. 소전의 별고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헌구로 유배시켰다.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 후손이다.(1)
신농神農씨(BC 3218~BC 3078)
《제왕운기》에 복희와 신농과 황제를 삼황으로 기술하였고, 신농(神農)은 성이 강(姜)이고, 화덕(火德)이다. 노(魯)에 도읍하고 염제(炎帝)라 불렀다. 어머니는 임기(任己)이다. 원년은 신사년이니, 처음으로 도끼와 쟁기 및 보습을 만들고 오곡을 심었다. 아래로 유문(楡門)에 이르니, 모두 8대이며 합하여 426년이라고 하였다.
《제왕운기》
제왕운기(帝王韻紀) 권상(卷上) > 아래 삼황(三皇)이라는 자는 묻건대 누구인가
[아래 삼황(三皇)이라는 자는 묻건대 누구인가? ○복희(伏羲) 성(姓)은 풍(風)이고, 수덕(水德)이다. 진(陳)에 도읍하고 태호(太昊)라 불렀다. 어머니는 화서(華胥)이다. 원년은 신사년이다. 상고(上古) 사람들은 그 어머니는 알았으나 아버지는 알지 못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부부를 바로잡았다. 또 8괘를 그리고 서계(書契)를 만들었으며, 집을 세우고 거문고를 만들고 소를 부리고 말을 탔다. 그 누이동생인 여와씨(女媧氏)가 그를 이었는데, 돌을 다듬어 하늘을 기웠다. 아래로 무회씨(無懷氏)에 이르니, 모두 16대이며 합하여 1,260년이다. 와 ○신농(神農) 성은 강(姜)이고, 화덕(火德)이다. 노(魯)에 도읍하고 염제(炎帝)라 불렀다. 어머니는 임기(任己)이다. 원년은 신사년이니, 처음으로 도끼와 쟁기 및 보습을 만들고 오곡을 심었다. 아래로 유문(楡門)에 이르니, 모두 8대이며 합하여 426년이다. 과 ○황제(黃帝)가 이들이다. 성은 공손(公孫)이며 토덕(土德)이고 탁록(涿鹿)에 도읍하였는데, 옮겨다니는 데 있어 일정한 장소가 없었다. 이름은 헌원(軒轅)이며, 유웅씨(有熊氏)라 불렀다. 원년은 정해년이다. 소전(小典)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부보(附寶)이다. 창힐(蒼頡)로 하여금 문자를 만들게 하고, 천부(天符)를 받아 장수(將帥)·대오(隊伍)·정절(旌節)을 두었으며, 창·갑옷·활·화살을 만들어 치우(蚩尤)를 멸하였다. 뒤에 성을 바꾸어 희(姬)라 하였으니, 왕위에 있은 것이 100년이다. ○소호(小昊) 성은 희(姬)이고, 금덕(金德)이다. 곡부(曲阜)에 도읍하였다. 이름은 지(摯), 자(字)는 청양(靑陽)이며 금천씨(金天氏)라 불렀다. 원년은 정묘년이다. 황제(黃帝)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여절(女節)이니, 왕위에 있은 것이 14년이다. 와 ○ 전욱(顓頊) 성은 희(姬)이고, 목덕(木德)이다. 위(衛)에 도읍하였다가 고양(高陽)으로 옮겼다. 고양씨(高陽氏)라 하였다. 원년은 신묘년이다. 황제의 손자로, 창의(昌意)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창복(昌僕)이다. 중(重)·여(黎)를 만들어 하늘과 땅을 맡게 하였다. 8풍(風)을 본떠서 음악을 만들었다. 재주있는 자가 8인이 있어 8개(凱)라 불렀으니, 왕위에 있은 것이 78년이다. 및 ○제곡(帝嚳) 성은 희(姬)이고, 수덕(水德)이며, 박(亳)에 도읍하였다. 고신씨(高辛氏)라 불렀고, 원년은 기유년이다. 황제의 증손으로 □극(□極註 001)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악부(握裒)이다. 구망(句芒)을 목정(木正)으로 삼고, 축융(祝融)을 화정(火正)으로 삼고, 요수(蓐收)를 금정(金正)으로 삼고, 해(亥)를 수정(水正)으로 삼고, 후토(后土)를 토정(土正)으로 삼았다. 재주 있는 자가 8인이 있으니, 8원(元)이라 불렀다. 왕위에 있은 것이 7년이며, 붕어하자 아들 제지(帝摯)가 계승하였는데, 황음무도하여 제 명에 죽지 못하였으므로 오행의 기운[五運]에 오르지 못하였으니, 그 해는 기미년이었고 왕위에 있은 것은 9년이었다.과 ○당요(唐堯) 성은 이기(伊祈)이고, 화덕(火德)이며, 평양(平陽)에 도읍하였다. 이름은 방훈(放勛), 시호는 고(高)이며 도당씨(陶唐氏)라 불렀다. 원년은 무진년이다. 제곡(帝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도(慶都)이다. 당후(唐侯)로서 승격하여 천자(天子)가 되었으므로 당(唐)을 칭하였다. 왕위에 있은 것은 100년이고, 국호 및 시호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와 ○ 우순(虞舜) 성은 요(姚)이고 토덕(土德)이며 포판(蒲坂)에 도읍하였다. 이름은 중화(重華)이며 시호는 순(舜)이니, 유우씨(有虞氏)라 불렀다. 선위를 받아 즉위하니, 원년은 무신년이다. 고양씨(高陽氏)의 7세손이며 아버지는 고수(瞽叟), 어머니는 악(握)이다. 왕위에 올라 50년을 지냈으며, 규예(嬀汭)에 살았으므로 혹자는 성을 규(嬀)라 하였다. 이라는 오제(五帝)가 일어났다.(2)
《규원사화》
신농씨 초기에 중국의 백성이 점점 번창하여 곡식과 삼베가 풍부했으며 약으로 병을 고치는 기술도 갖차게 되었다. 이것이 여러 대를 이어 계속되다가 유망 때에는 정사를 너무 급하고 엄하게 몰아붙여 처리하다 보니 제후들이 배반하고 민심도 흩어져서 세상이 몹시 어지러워졌다.(3)
《태백일사》 〈신시본기〉 에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고시씨의 방계라고 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두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4)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신농은 웅씨에서 갈라져 나간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이 강수에서 병사들을 감독하다 뒤에 열산으로 이사하였다. 소전의 별고에 공손이라고 있었는데 헌구로 유배되었고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웅씨가 갈라져 나간 자에 소전少典이라고 있었는데 안부련환웅의 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신농神農은 수많은 약초들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뒤에 열산列山으로 이사하였는데 낮에는 교역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편리하게 하였다. 소전의 별고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였으므로 헌구로 유배시켰다.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 후손이다.(5)
《사기(史記)》
史記 卷一 五帝本紀 第一 황제(黃帝)는 소전씨(少典氏)의 자손...
[황제(黃帝)는 소전씨(少典氏)의 자식으로 성은 공손(公孫)이고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 헌원의 시대가 되자 신농씨(神農氏)〔의 후손〕들은 쇠퇴하였다. 【集解】황보밀(皇甫謐)이 말했다. “『역(易)』에서는 포희씨(庖犧氏)가 죽자 신농씨가 일어나니 그가 바로 염제(炎帝)이다.” 반고(班固)가 말했다.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신농이라 불린 것이다.” 【索隱】‘세쇠(世衰)’란 신농씨 후대 자손의 도덕이 쇠퇴하고 엷어졌다는 뜻이지, 염제(炎帝) 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니, 즉 반고가 말한 ‘참로(參盧)’란 인물이며, 황보밀이 말한 ‘제유망(帝楡罔)’이란 인물이다. 【正義】『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 말했다. “신농씨는 성이 강(姜)이다. 모친은 임사(任姒)로 유교씨(有蟜氏)의 딸이며, 소전(少典)의 비가 되어 화양(華陽) 지역을 노닐다가 신룡의 머리를 보고, 감생(感生)하여 염제를 낳았다. 〔염제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서 강수(姜水)에서 자랐다. 성덕(聖德)이 있어 화덕(火德)으로 왕이 되었기에 염제라 부른 것이다. 처음에는 진(陳)에 도읍을 두었다가, 다시 노(魯)로 옮겼다. 또한 괴외씨(魁隗氏)라고도 하며, 연산씨(連山氏)라고도 하며, 열산씨(列山氏)라고도 한다.” 『괄지지(括地志)』에서 말했다. “여산(厲山)은 수주(隨州) 수현(隨縣)의 북쪽 100리에 있는데, 산의 동쪽에 바위굴이 있다. 오래전에 신농(神農)은 여향(厲鄕)에서 태어났으니, 소위 열산씨(列山氏)라고 하였다. 춘추시대에는 여국(厲國)이 있었다.” 제후들은 서로 침벌하고, 백성들을 포학하게 대하였으나 신농씨는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헌원은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신농씨에게〕 조공하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와서 복종하였다.(6)
[현장답사] 산동성 동이문화박물관 답사 #3
https://youtu.be/6nTUWTNlstM?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자료출처>
(1)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95-196쪽
熊氏之所分, 曰少典, 安夫連桓雄之末, 少典以命, 監兵于姜水, 其子神農, 嘗百草制藥. 後徙列山, 日中交易, 人多便之. 少典之別派, 曰公孫, 以不善養獸, 流于軒丘, 軒轅之屬, 皆其後也.
소전少典: 소전은 동이족 혈통으로 천황의 명을 받고 섬서성 강수에 가서 군사를 감독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곳에서 낳은 아들 중에 맏이가 ‘석년石年(염제 신농), 둘째가 ’욱勖‘이다. 욱의 10세 손이 바로 황제 헌원이다. 그런데 《사기색은》 〈오제본기〉에서는 “소전은 제후국의 국호다. 사람 이름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431쪽)
강수姜水: 강수는 섬서성 기산현 서쪽에 있는 기수를 말한다. 염제 신농이 이 강수에서 성장하였다.(중문대사전 권3). 보계시의 청강하로 보는 설도 있다. (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431쪽)
(2) https://db.history.go.kr/KOREA/item/level.do?levelId=mujw_001r_0030
下三皇者問誰歟
下三皇者問誰歟. ○伏羲風姓, 水德. 都陳, 號太昊. 母華胥. 元年辛巳. 上古人, 知其母, 不知父, 至此, 正夫婦. 又畵八卦, 造書契, 立屋, 造琴, 服牛乘馬. 其妹女媧氏繼之, 鍊石補天. 下至無懷氏, 凡十六代, 合一千二百六十年. ○神農姜姓, 火德. 都魯, 號炎帝. 母任己. 元年辛巳. 始爲斤斧耒耜, 種五穀. 下至楡門, 凡八代, 合四百二十六年. ○黃帝是.姓公孫, 土德, 都涿鹿, 遷無常處. 名軒轅, 號有熊氏, 元年丁亥. 小典之子, 母附寶. 令蒼頡, 造文字, 受天符, 置將帥·隊伍·旌節, 制戈矛·鎧甲·弓·矢, 以滅蚩尤. 後改姓爲姬, 在位一百年. ○小昊姬姓, 金德. 都曲阜. 名摯, 字靑陽, 號金天氏. 元年丁卯. 黃帝之子, 母女節, 在位人十四年. ○顓頊姬姓, 木德. 都衛, 遷高陽. 號高陽氏. 元年辛卯. 黃帝之孫, 昌意之子, 母握裒. 作重·黎, 以司天地. 效八風, 作音樂. 有才子八人, 號八凱, 在位七十八年. 及○帝嚳姬姓, 水德, 都亳. 號高辛氏, 元年己酉. 黃帝曾孫, □極之子, 母. 以句芒爲木正, 祝融爲火正, 蓐收爲金正, 亥爲水正, 后土爲土正. 有才子八人, 號八元. 在位七年, 崩而子帝摯嗣, 荒淫無道, 不善崩故, 不登五運, 方年, 己未, 在位九年., ○唐堯姓伊祈, 火德. 都平陽. 名放勛, 諡高, 號陶唐氏. 元年戊辰. 帝嚳之子, 母慶都. 以唐侯升爲天子, 故稱唐. 在位一百年, 國號及諡, 始於此. ○虞舜姓姚, 土德. 都蒲坂. 名重華, 諡舜, 號有虞氏. 受禪卽位, 元年戊申. 高陽氏七世孫, 父瞽叟, 母握. 登位五十年, 居於嬀汭, 或云姓嬀. 五帝起.
(3) 규원사화, 북애 지음, 고동영 옮김, 한뿌리, 2005, 36쪽
유망(BC2758~BC2688)은 염제 신농의 후손으로 약 500년 계속된 염제 신농국의 마지막(8세) 임금이다. 《사기색은》 〈삼황본기〉에서는 “극은 제 유망을 낳았다. 통치 기간은 모두 8대에 걸쳐 530년이었다”라고 하였고, 《사기색은》 〈오제본기〉에서는 “시대가 쇠퇴하였다는 것은 신농씨 후대 자손의 도덕이 쇠퇴하였다는 것이지 염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니 바로 반고의 ‘참로’요, 황보밀이 말한 ‘제 유망’이 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유망은 처음에 공상에 도읍하였다가 치우천황에게 쫓겨 하북성 탁록 지방으로 달아나 멸망하였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07쪽)
염제 신농(BC3218~BC3078)은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농사법을 가르쳐 주었으므로 신농이라 하고, 화덕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므로 염제라 한다. 8세 안부련환웅(BC3240~BC3167) 때 소전이 천황의 명을 받아 섬서성 강수에 가서 군사를 감독하였는데, 그곳(지금의 섬서성 보게시 상양산)에서 낳은 아들 중에 맏이가 석년(염제신농)이고 둘째가 욱(공손씨의 조상)이다. 욱의 10세 손이 바로 중국 한족의 태조인 황제헌원이다. 신농씨는 강수에서 살아 강을 성으로 삼았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07쪽)
(4)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77-178쪽
神農起於列山, 列山列水所出也. 神農, 少典之子. 少典與少皞, 皆高矢氏之傍支也. 盖當世之民, 定着爲業, 漸至成阜, 穀麻藥石之術, 亦已稍備, 日中爲市, 交易以退也.
열산列山은 일명 여산(礪山), 여산(麗山) 또는 수산(隨山), 중산(重山)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호북성 수주시 여산진이다 열산은 신농씨가 일어난 곳으로 신농씨를 여산씨 혹은 열산씨라고도 불렀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31쪽)
(5)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 주해, 정신세계사, 195-196쪽
熊氏之所分, 曰少典, 安夫連桓雄之末, 少典以命, 監兵于姜水, 其子神農, 嘗百草制藥. 後徙列山, 日中交易, 人多便之. 少典之別派, 曰公孫, 以不善養獸, 流于軒丘, 軒轅之屬, 皆其後也.
헌구軒丘는 헌원이 도읍한 곳으로 곧 유웅(有熊)을 말한다. 지금의 하남성 신정현이다. 여기에 궁산이 있는데 궁산 가까이 있는 언덕을 ’헌원의 언덕‘이라 한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431쪽)
(6) 한국고대사료집성 중국편 < 한국 고대 사료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