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허성관 입력 2023.07.18 22:33수정 2023.08.09 16:55

북만주 소남산 옥기, 홍산 문화보다 3천 년 앞서 < 태고사 < 시대별 주제 < 기사본문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

 

북만주 소남산 옥기, 홍산 문화보다 3천 년 앞서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글: 허성관(전 행정자치부 장관) 인천서 북만주 답사 하얼빈 공항까지 1시간 40 걸려 도착하얼빈은 고조선 장당경, 고구려 발해, 금나라 완안부 지역우수리강 옆 요하연 소남산, 신석기 유물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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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귀걸이는 북만주, 하북성, 한 땅이 같은 문화권임을 증거가 된다.

 

글: 허성관(전 행정자치부 장관)

 

인천서 북만주 답사 하얼빈 공항까지 1시간 40 걸려 도착

하얼빈은 고조선 장당경, 고구려 발해, 금나라 완안부 지역

우수리강 옆 요하연 소남산, 신석기 유물 집중적으로 전시

출토된 옥기, 중국인은 모르는 우리 선도문화 투영돼 있어

소남산 문화, 서기전 1만 5천 년 것, 우리 환국과 신시 문화

하얼빈 송화강 풍경, 현지 문화는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

 

허성관의 북만주 답사기 2

▲ 북만주 흑룡강성 박물관에서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옥결은 서기전 7000년을 아우른다.

 

① 5월 19일(금요일) 인천공항 → 하얼빈 공항 → 흑룡강성박물관

→ 안중근 의사 기념관 → 송화강

* 답사에도 운(運)이 있어야!

8시 50분에 인천공항에서 하얼빈행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6시 30분에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했다. 4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짐에서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5시 20분에 공덕에서 공항버스를 탔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항상 가벼운 설렘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인지 건강하게 다녀와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약속한 시각보다 조금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일행을 만났다.

하얼빈행 비행기는 제주항공인데 다른 항공사와는 달리 자동 수속이 되지 않아 접수대에서 직접 짐을 부치고 좌석을 배정받았다.

소형 저가 항공사이기 때문인가?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구름이 낀 날씨라 하늘 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40분쯤 지나 바다를 건넜다. 비행 항로가 화면에 나타나지 않아 중국 영토 어느 쪽으로 진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려다보니 구름이 걷혔다.

골짜기 사이로 강이 흐르고 군데군데 저수지가 보인다. 골짜기 강가에 드문드문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아직 평원에 진입하지는 않았다.

한참 지나서 내려다보니 평원이 갈색이다. 봄이라 작물이 다 자라지 않아서 녹색 평원은 아니다. 하얼빈 가까이 이르자 온통 물이다. 모내기 철이다. 10시 30분 정시에 하얼빈 공항에 내렸다. 저가 항공이라 중간에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출출했다.

하얼빈은 인구가 1,000만이 넘는 중국에서 10번째 큰 도시로 흑룡강성 성도(省都)다. 북쪽으로 송화강에 면한 도시다. 이곳은 부여와 고구려 옛 땅이고 발해 때는 막힐부(鄚頡府)였다. 고조선 세 번째 도읍이 이곳에 있었다. 장당경(藏唐京)이다.

발해가 망한 후에는 금(金)나라를 건국한 여진족 완안부(完顔部) 거점이었다. 1898년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독까지 연장하면서 러시아풍 도시로 발전했으나 1905년 러일전쟁에 패배하고 1932년 일본이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우면서 러시아 영향이 사라졌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총살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현장이 이곳이다. 저 악명 높은 인간 생체 실험 현장 731부대도 여기에 있었다.

▲ 소남산 신석기 유물 전시를 알리는 알림장.

이 큰 도시의 비행장은 참으로 한산하다. 아마도 국제화가 미진한 탓일 것이다. 한 시간쯤 기다려 답사 1진이 탄 버스에 합류했다. 머나먼 이곳 하얼빈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다. 예정한 대로 곧장 흑룡강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2014년 8월 3일 관람한 적이 있는 박물관이다. 주변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변함이 없다. 2014년에 왔을 때 동북혁명열사 공적과 발해 유물을 대대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감동이 컸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니 이번 답사 핵심 유적인 우수리강에 면한 요하현(饒河縣) 소남산(小南山) 신석기 유적 출토 유물을 모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고 소개해 놓았다.

요하소남산유지 출토유물전(饒河小南山遺址 出土遺物展)이다. 사진에서 보는 노란색 굽이는 우수리강이다. 강 오른쪽은 러시아고 왼쪽은 중국인데 소남산 유적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 소남산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돌칼.

지난 몇 년 동안 홍산(紅山)문화와 소남산문화 연구에 천착해온 동행한 정경희 교수로서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지금까지 발굴보고서나 사진으로만 보던 소남산 유지 출토 유물 실물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경우가 답사 여행에서 맞이하는 행운이다.

▲ 소남산 유적에서 나온 옥결.

옥(玉)으로 만든 장신구는 용도로 보아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로 구분되는데 서기전 7200∼6600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홍산문화 옥기 시기가 서기전 3500년까지 올라가니 소남산 옥기는 홍산문화보다 3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 학계는 요서지역 흥륭와문화(서기전 6200∼5200년)를 홍산문화 옥기의 시원으로 보다가 소남산문화를 시원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남산 옥기의 아름다움이 흥륭와 옥기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중국 학자들은 이들 옥기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정경희 교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전통 선도사상을 투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것이니 우리 눈으로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옥기는 대부분 하늘에 제사하는 천제(天祭) 때 착용하는 의기(儀器)이다. 옥기 사진은 흐릿하나 실물은 정말 아름답다.

이 옥기의 원석은 요동반도 중부에 있는 수암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수암에서 소남산까지 거리가 지금 기준으로 2000km가 넘는다. 옛 거리 기준으로는 5000리다. 아득한 태고 시기에 두 지역 사이에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특히, 소남산 문화는 서기전 1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우리 역사에서 신시 배달국 이전 환국 시대가 전설이 아니고 유물로 증명되는 역사시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교하고 멋진 옥으로 만든 칼과 토끼도 전시되어 있다.

고고학에 문외한인 필자는 박물관 1층 절반을 채운 소남산 출토 유적을 설렁설렁 감상할 수밖에 없다. 정경희 교수와 유태용 교수는 하루도 시간이 모자랄 듯하다.

▲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처단한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

흑룡강성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걸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2014년 이곳에 왔을 때는 방학 중이라 한국에서 온 학생들로 붐볐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관람객이 우리뿐이다. 전시물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현장이 유리창 너머로 뚜렷이 보인다. 누가 감히 대한민국에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가?

이 자들은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망한 지 오래된 대일본제국 충실한 신민일 것이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을까? 아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행들은 창 너머 총살 현장을 주시하면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 러시아 시절에 만든 하얼삔 중앙대로.

만달가일주점(萬達假日酒店)에 짐을 풀고 하얼빈 중앙대로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거른 탓으로 저녁을 달게 먹었다. 하얼빈에는 러시아가 경영하던 시기에 건설한 널찍한 중앙대로 가 남아 있다. 거리가 돌로 포장되어 있다.

대략 2km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송화강이 흐른다. 우리 일행은 밤이지만 송화강으로 향했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 걷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기름에 튀긴 묘한 음식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이 줄을 섰다. 생소하지만 맛이 좋았다.

만주 지역을 다니면서 송화강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오늘처럼 강변에서 송화강 밤바람을 쐬기는 처음이다. 시원하다.

어 그런데 배들이 불을 켠 채 정박하고 있다. 한강 유람선만 한 배다. 우리는 송화강 밤배를 타기로 한다. 강폭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배를 탄 강 한 가운데에 태양도라는 섬이 있고 섬 너머도 강이라 더더욱 얼마나 큰 강인지 알 수가 없다.

하얼빈은 여진족 말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송화강을 중심으로 고기잡이가 성했던 곳임을 알 수 있는 증거다. 배를 타러 가면서 보니 모래밭에 주먹만 한 까만 조개껍질이 널려 있다. 말조개라고 한다. 물고기 조개 곡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지역이니 신석기 시대에도 살기 좋은 지역이었으리라.

강 위로 케이불카가 오간다. 조명이 환상적이다. 우리 일행은 가볍게 노래도 부르고 행복하게 40여 분을 보냈다. 예정에 없던 호사다. 송화강에서 언제 밤 배를 다시 타 볼 수 있겠는가!

▲ 하얼삔의 송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만끽하였다.

 

 

 

K스피릿입력 2022.05.05 08:39 업데이트 2022.05.16 15:19 기자명최수민 안동국학원장

맥족계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은 서기전 7200년~서기전 6600년 경 소남산문화 < 기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K스피릿 (ikoreanspirit.com)

 

맥족계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은 서기전 7200년~서기전 6600년 경 소남산문화 - K스피릿

Ⅰ.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연구 현황1. 제천시설 분야의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 이론한국 고유의 신선 수행문화인 선도제천에 대한 기록이 긴 세월 한국과 중국의 문헌 속에만 흩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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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북아 선도제천문화로 바라본 한국의 마을제 문화 (2)

Ⅰ.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연구 현황

1. 제천시설 분야의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 이론

한국 고유의 신선 수행문화인 선도제천에 대한 기록이 긴 세월 한국과 중국의 문헌 속에만 흩어져 남아있고, 그 구체적인 뿌리를 밝히기엔 유물·유적 및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오랜 기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부터 중국 동북방 요서지역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홍산문화 지역에서 거대한 적석단·총과 여신묘, 옥기유물, 수행하는 형태의 반가부좌 여신상과 남신상이 발굴, 동북아 상고문화의 원류를 요서지역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시각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국 측은 화려한 홍산문화 유적과 유물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되자 후대 중국 왕조인 은상(殷商)의 선대문화로 바라보는 선상(先商)문화적 해석을 내놓으면서 중국문화의 기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국은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 정립과정에서 요하문명(홍산문화)이 요동 장백산(백두산)문화로 전파되었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백두산 서편 지역에서 40여기의 고제단군을 대대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백두산 서편 고제단군의 성격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산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점, 3층 원단이 많은 점, 환호를 두른 경우가 많은 점 등으로 보아 요서지역과 동일한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ʼ임이 밝혀졌다. 축조 연대는 당초 중국 측의 기대와는 달리 요서지역보다 오히려 수백 년 정도 빠르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중국 측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백두산 서편 만발발자 고제단 유적을 덮어서 은폐하기에 이른다. 요서 우하량 홍산문화 지역의 적석단·총이 서기전 3500년~서기전 3000년경으로 밝혀진 데 비해 요동 백두산 서편의 만발발자 고제단 유적은 이보다 500년 정도 앞선 서기전 40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져 적석단·총 유적의 기원은 요서지역이 아니라 요동 백두산 서편 지역임이 입증된 것이다. 백두산 서편 만발발자 고제단 유적은 서기전 4000년~600년경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1차: 3층원단·방대·환호, 2차: 선돌2주·적석방단·제천사)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곳은 4600여 년간 줄곧 소도 제천지로 기능하여 왔음이 밝혀졌다.

<자료 1>서기전 4000년~600년경 요동 백두산 서편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

1. 2014년 만발발자 유적 항공사진

정경희,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1)」, 『선도문화』26, 2019, 109쪽에서 인용.(구글어스, 2014년 1월 28일. 검색일: 2018년 9월 10일)


 2. 만발발자 유적 ʻ3층원단·방대ʼ의 평·단면도

정경희,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제천문화(1)」, 『선도문화』26, 2019, 122쪽.
 

3. 만발발자 유적 방대위의 ʻ환호ʼ 위치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通化市文物管理辨公室 編, 『通化萬發撥子遺址考古發掘報告』2019年 9月, 科學出版社, 北京.
 

서기전 4000년경 요동 백두산 서편 지역에서 시작된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ʼ은 다시 요서 지역으로 전해져 우하량 상층적석총 단계(서기전 3500년~서기전 3000년경)의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ʼ로 나타나게 되는데, 우하량 유적 3지점 ʻ환호를 두른 원단ʼ 형태와 우하량 유적 5지점 1호총 ʻ환호를 두른 3층원단·방대ʼ 형태가 그것이다. 우하량 상층적석총 역시 산 구릉 정상부에 입지하며 ʻ3층-원·방-환호ʼ의 형태로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류)ʼ 방식이었으니 백두산 서편 고제단군과 동일 계통이었다.

<자료 2> 서기전 3500년~서기전 3000년경 요서 우하량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

1. 3지점 : 환호를 두른 원단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牛河梁-紅山文化遺址發掘報告(1983~2003年度)』上, 文物出版社, 2012, 228~229쪽.

 

2. 5지점 1호총 : 환호를 두른 3층원단·방대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牛河梁-紅山文化遺址發掘報告(1983~2003年度)』上, 文物出版社, 2012, 312~313쪽.

 

여기에 최근 흑수백산지구 삼강평원 오소리강변의 야트막한 구릉에서 엄청난 규모의 제천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서기전 7200년~6600년경으로 편년되는 소남산 유적이다. 소남산 유적에서도 환호를 두른 적석묘·적석총이 발굴되어 맥족계 선도제천시설의 원형을 서기전 7200년경으로 소급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정경희, 「흑수백산지구 소남산문화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적석단총’의 요서지구 흥륭와문화로의 전파」, 『유라시아문화』6, 2022.)

<자료 3> 서기전 7200년~서기전 6600년경 소남산 유적의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

1. 2묘지의 무덤 및 환호 3조

이유건, 「小南山遺址2019-2020年度考古發掘新收穫」, 『中國文物報』, 2021年 3月 19日.
 

2. 2묘지의 북쪽 호형 환호

「探尋黑龍江饒河小南山遺址 開啟中國玉器起源新紀元」,『中國經濟網』, 2020年 5月 14日


최수민 안동국학원장 k-spirit@naver.com
출처 : K스피릿(http://www.ikoreanspirit.com)

 

 

K스피릿입력 2022.05.12 08:07업데이트 2022.05.19 07:22기자명최수민 안동국학원장

서기전 7200년~600년 경 요동·요서지역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한반도 남부로 이어져 < 기고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K스피릿 (ikoreanspirit.com)

 

서기전 7200년~600년 경 요동·요서지역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한반도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연구 현황-제천시설 분야요동·요서지역에서 공히 나타나는 ʻ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ʼ은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한반도 남부에서 꼭 같은 성격의 ʻ환호를 두른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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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 9. 24. 03:09수정 2012. 9. 24. 03:09 [동아일보]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daum.net)

 

네이멍구 신석기 토기에 한민족 고유의 상투가?

[동아일보]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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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 유물 연구 5개大 연합팀 "홍산문화가 中문명이라는 건 허구"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동글게 벌리고 호흡하며 수행하는 모습의 남자 인물상. 올해 5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서 발굴된 이 토기 인물상으로 홍산(紅山)문화가 한민족의 문화임이 입증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요하(遼河)문명을 대표하는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은 허구가 된다.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를 비롯한 5개 대학 연합연구팀은 26일 인천 남구 인하대에서 '동북아 고대 국제관계와 한민족의 선진 문화 역량'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 학술용역 연구결과 발표회를 연다.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밝히는 이 발표회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부분은 네이멍구 츠펑(赤峰) 시 아오한치(敖漢旗)의 싱룽거우(興隆溝)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에 대한 분석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높이 55cm인 이 인물상은 상투를 틀고 관모(冠帽)를 쓰고 있다.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다. 상투를 틀 땐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밀었는데, 이 인물상도 정수리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지금까지 홍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인물상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데 중국 한족의 문화유적에선 모자 쓴 인물상이 나온 적이 없다.

 

인물상이 수행 중인 종교 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김연성 연구팀장(인하대 경영학부 교수)은 "이 인물이 세속적 권력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훗날 고조선의 단군왕검과 같은 지도자급 존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 토템족 수행의 문화적 뿌리로 볼 수 있으며, 같은 시기에 중원지역에서는 지도자급 인물의 수행 모습을 묘사한 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

 

홍산문화(기원전 4700년∼기원전 3000년 추정)는 1980년대부터 유적과 유물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홍산문화를 포함한 요하문명은 만주에 흐르는 요하 주변에서 발원한 신석기·청동기 문명으로, 중국 문명의 기원인 황하(黃河)문명보다 1000년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만들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인물상은 그 과정에서 발굴됐다.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국학과 교수는 "중국이 홍산문화에 관심을 갖기 전인 1980년대 초까지 홍산문화는 북방인들의 문화로 간주됐다"며 "이번에 발견된 인물상을 계기로 홍산문화가 다시 북방인들의 문화로 인식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서는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 허난(河南) 성 하나라 이리두 유적과 고조선의 핵심 지역으로 추정되는 네이멍구 츠펑 시의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조개화폐를 토대로, 당시 하나라보다 고조선이 선진적인 국가역량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한다. 남 교수는 "하나라는 내륙 국가였기 때문에 바닷가에서 귀하게 채집되는 '카우리(개오지·조개의 일종) 화폐'는 해양세력이 유통시킨 화폐로 추정된다"며 "한민족은 신석기 시대부터 고래를 잡는 등 해양성이 강한 반면 하나라 유물에서는 해양활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가 간 무역에 통용되는 기축통화를 공급하는 국가는 강대국인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성규 단국대 몽골학과 교수는 발해문자와 거란문자의 유사성에 주목해, 거란이 고구려식 한자 표기법을 계승한 발해의 문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입력 : 2009-10-23 14:00:50 수정 : 2009-10-23 14:00:50

동북아 최고(最古)의 문화를 찾아서! | 세계일보 (segye.com)

 

동북아 최고(最古)의 문화를 찾아서!

 적석총 무덤에서 발견된 석인상한민족 문화의 원류를 찾아 나선 7박8일 동안 총3800km를 달려 고대 한민족의 근거지로 알려진 내몽골 오한기(敖漢旗) 지역에 동북아 최고(最古)의 소하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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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총 무덤에서 발견된 석인상

 

 

한민족 문화의 원류를 찾아 나선 7박8일 동안 총3800km를 달려 고대 한민족의 근거지로 알려진 내몽골 오한기(敖漢旗) 지역에 동북아 최고(最古)의 소하서 문화, 신석기시대의 흥륭와 문화, 조보구문화유적 등을 둘러보았으며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홍산 문화지역 등을 답사하였다.

 

왼쪽에 무덤을 덮었던 판석과 중앙에 적석총구덩이가 드러나 있다.

 

무려 9000년 전까지의 아득한 옛 유적이지만 실제 현장을 확인하니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하였으며  박물관을 둘러보며 발굴 유물을 대하니 더욱 진한 감동을 느꼈다.

 

제단전경

 

사각의 제단과 적석총돌무지들이 널려있다.

 

 

소하서(小河西)문화 (BC7000년- BC6500년)

요하문명 최고(最古)의 소하서(小河西)문화 (BC7000년- BC6500년)를 오한기(敖漢旗) 박물관 왕택(王澤)연구원의 안내로 어렵게 답사하였다.

이 지역은 워낙 오지라 우리나라사람은 거의 접근이 불가능하며 현지인조차도 마을 사람들 외에는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찾기 어려운 지역으로 사진으로는 최초로 소하서 문화를 촬영하게 되었다.

발굴계기는 정부의 문화재 신고정책에 의해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과거부터 동네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돌무더기에 제사를 지냈으며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돌무더기를 파헤쳐보니 제단위에 7기의 적석총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둘레는  사각으로 되어있고  판석, 화산석 얼굴, 옥팔찌 등이 발견되었다.

흥륭와(興隆?)문화유적(BC6200~5200)

흥륭와 유지의 표지석. (몽골어와 한자로 각각 되어있다)

 

흥륭와 유지의 현재모습과 발굴당시의 모습

 

세계최초의 결상이식을 한 사진

 

 

발굴된 각종 옥기들

 

 

빗살무늬 토기

 

발굴된 타다 남은 열매(가래나무胡桃楸)

 

내몽골 오한기(敖漢旗) 지역에 있는 흥륭와(興隆?) 문화유적(BC6200~5200)은 중국학계에서 100대 발굴로 기록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이라 부른다.

신석기시대 최대 규모의 취락지로 175기의 집터가 계획적으로 조성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무덤에는 빗살무늬토기, 옥기와 함께 사람과 돼지를 합장한  순장(殉葬)흔적이 있어 동이족의 은나라의 풍습과 연관이 된다.

또한 175기중 5기가 홍산 문화(BC4500년~BC3000년)의 집터인데 이것은 흥륭와 문화와 홍산 문화가 같은 문화의 명맥을 잇고 있고는 증거인데 바로 이홍산문화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동이족과의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특히 흥륭와 문화에 주목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윤석하 (사진작가) 2908y@naver.com
사진 원본은 http://www.beautia.co.kr/ (昔河사진문화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006.10.24뉴스메이커 696호

[조명]사라진 단군의 진실을 복원하라 - 주간경향 (khan.co.kr)

 

[조명]사라진 단군의 진실을 복원하라

사학계 한민족의 원류 ‘홍산문화’에 초점… “동북공정 깰 수 있는 열쇠” 주장‘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광활한 요하의 ‘홍산문화’가 국내 사···

weekly.khan.co.kr

사학계 한민족의 원류 ‘홍산문화’에 초점… “동북공정 깰 수 있는 열쇠” 주장

<우실하 교수 제공>

 

‘요하문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광활한 요하의 ‘홍산문화’가 국내 사학계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한민족의 기원과 함께 상고시대에 사라진 고조선과 단군의 진실을 밝혀줄 단초가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이곳 유물은 중국이 국가적 명운을 걸고 진행중인 동북공정을 저지할 한민족의 비기라는 게 일부 재야 학자의 주장이다.

홍산문화 지역에서 출토된 옥으로 만든 유물. <국학원 제공>

 

기원전 3500년께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통상 청동기대에나 출현 가능한 흔적이다. 무엇보다 가면과 옥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는 주장이 잇따라 이곳이 단군신화 속 곰 토템을 지닌 웅족(웅녀)과 고조선(청동기 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신석기 시대)이 자리했던 곳이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청동기 문명을 갖고 이주한 환인족(부계사회)과 웅족(모계사회)의 결합을 통해 단군조선이 건국됐다는 설이다. 문제는 여지껏 이를 확증할 사료가 없다는 점. 하지만 재야 학자들은 이를 대신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정황증거를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붉은산 인근의 후기 신석기문화

위_ 삼좌점 터에서 발굴된 성벽. 움푹 튀어나온 ‘치’ 는 고구려 고유의 축성양식을 연상시킨다.
아래_ 삼좌점 발굴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형 집터. 대문과 문설주는 물론 곡식창고까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곳 60여 채의 군락은 매우 드문 큰 규모로 파악된다. <국학 학술원 제공>

 

이와 같은 주장에 불을 댕긴 대표적 학자는 우실하 항공대 교수. 문화·사상사를 통해 한민족 원류를 밝히는데 힘써온 그는 “홍산문화를 직접적으로 단군조선 원류로 거론하긴 아직 이르지만 우리 민족 정체성의 근거가 그곳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라며 조심스럽게 화두를 던졌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홍산문화 전문가도 “결국 중국은 이곳을 한민족 원류로 인정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대체 홍산문화란 무엇인가. 홍산(紅山)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의 동북방에 인접한 산의 이름. 몽골인은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붉은 산’을 의미한다. 실제로 철 성분이 많은 바위산으로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이 붉은산 인근에서 중국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 적석총(塚) 등 삼위일체의 거대 후기 신석기문화가 발견됐다. 상식을 깨고 국가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흔적이다. 홍산문화란 명칭은 적봉시 홍산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발견된 대규모 유적은 넓게 퍼져 있다. 요녕성, 내몽골, 하북성 경계 연산(燕山) 남북과 만리장성 일대를 포괄한다.

우 교수에 따르면 그 시작은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겸 고고학자인 도리이 류조우(鳥居龍藏)가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많은 신석기 유적과 돌로 쌓은 묘(적석묘) 등을 발견한 것. 이것이 후대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 적석총 유적이다.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다. 하지만 당대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중국 동북성 남부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이 1400km의 요하 모습. 이 강을 중심으로 요서와 요동이 나뉜다. <국학 학술원 제공>

 

이후 20세기 초 중국에 온 프랑스 예수회 신부 에밀 리상(Emile Licent·1876~ 1952)도 22곳의 신석기 유적을 발견했지만 류조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글만 남겼다. 그러나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중이던 고고학도 양사영(梁思永·철학자 양계초의 아들)은 이 글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1930년 귀국한 양사영은 그해 겨울, 왜소한 체구로 동북지방 한파를 뚫고 적봉으로 향했다. 중국 중앙연구원 고고분과 담당자로서 내몽골 임서 일대와 흑룡강 등 동북지방에서 잇따른 신석기 유적 발견을 바탕으로 본격적 발굴작업을 계획한 것. 하지만 정세불안과 건강 악화로 발굴이 지연되다 1934년 ‘열하고고보고(熱河考古報告)’로 학계에 첫 보고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보고서엔 “동북 4성(요녕·길림·흑룡·열하성) 발굴작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썼다. 오늘날 동북공정의 첫 삽을 양사영이 뜬 셈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발굴은 일본인 손에 의해 이뤄졌다. 일본 고고학의 아버지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가 주인공. 대규모 발굴단을 끌고와 발굴을 진행했는데 만주족과 몽골족이 내몽골 동부에서 발원, 중국과 역사적으로 독립했음을 밝히는 게 목적이었다. 일본편입이 목표였다.

 

‘천부경’의 비밀 간직한 유적들

위_ 삼좌점 유적지의 문설주들은 매우 정돈된 모습으로 고대 국가의 통치력을 연상시킨다.
아래_ 삼좌점 유적터의 곡식창고. <국학 학술원 제공>

 

처음 청동기 문명 발굴에 초점을 맞춘 발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시대 이전(신석기 시대)으로 옮아갔다. 신석기 주거지 31곳과 옥구슬 380여 기, 골기(骨器) 33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 1955년 홍산문화라 이름 붙일 당시까지도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1982년 능원현과 건평현(建平顯) 경계 ‘우하량(牛河梁)’에서 유물이 대거 발굴되며 세계 언론은 ‘미지의 왕국’이 등장했다고 요란을 떨었다. 일본 신문 ‘아사히’ ‘마이니치’도 ‘5000년 전 신비의 왕국이 베일을 벗었다’고 대서특필했다. 발굴은 인근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홍산문화의 특징은 새로운 신석기문화라는 것. 황하 유역 앙소문화 등과 서로 영향을 미치며 경쟁관계에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덕분에 세련된 채도문화와 거석문화, 세석기문화와 빗살무늬토기 등이 뒤섞여 있다. 무엇보다 요하지역은 만리장성 이북으로 전통적으로 이민족 역사의 장이었다. 우실하 교수는 “퉁구스계열 토착세력의 흔적으로 이를 웅족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중국 측은 이를 전설의 인물 황제와 손자인 고양씨 전욱 계통 문명으로 설정해 억지로 중화문명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사실 누가 이 문명의 주인이라 단정하기보다 동북아 공동문명권의 모태문화로서 공동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이 에게해 문명을 그리스만의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고구려 축성방식의 원형도 발견

홍산문화지역에서 출토된 원형제단. 천손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학원 제공>

 

단군조선 건국의 밑바탕을 이룰 가능성이 농후한 홍산문화. 우 교수에 따르면 이곳에는 민족 최고 경전인 ‘천부경’의 비밀도 숨어 있다. ‘1, 3, 9, 81’을 내포한 유물이 수없이 발굴된다는 얘기다. 천제단과 무덤, 사당구조가 3층인 점, 용 모양 곡옥이 9개 한 세트를 이룬다는 점도 그렇다. 천제단구조도 그렇다. 이곳에서 발견된 천제단은 자금성의 천단과 구조가 동일한데 천단은 한족이 아닌 청나라 때 만주족이 건설한 것이다. 천단은 북방 샤머니즘 고유 사유체계인 ‘3수 분화의 세계관’을 형상화한 것으로 첫 번째 원이 9개의 대리석, 마지막 원이 81개 대리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 원형제단도 비슷한 구조다. 이는 음양 2분법적 중국 고유 사유체계와 다르다.

무엇보다 적석총 무덤양식은 바로 고구려의 그것이다. 현재 일반인에게 유일하게 공개되는 우하량 제2지점에선 지금도 직경 20~30m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과 적석총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중국측도 홍산문화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1973년 장강 하류에서 앙소문화(황하문명)보다 이른 시기의 하모도문화가 발견되면서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하모도문화로 설정했지만 우하량유적(홍산문화) 발견 직후 이를 엮어 중국 3대 문화로 보고 있다. 특히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칭하며 중화문명의 새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요녕성 박물관 앞에 ‘3황5제 시대는 다민족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바탕을 이뤘다’고 적고 홍산문화를 고양씨 전욱 계통 문명으로 못박았다. 이는 동북공정의 하부공정인 웅녀공정, 고구려공정보다 진일보한 움직임이다.

주목할 점은 홍산문화 바로 위층 하가점 하층문화. 황제족(한족)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홍산문화층 위에 중국 최초 국가인 하나라보다 앞선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다. 고조선의 자취를 좇는 학자들은 이를 고조선 출범과 연계시킨다. 청동기를 개발한 3000여 명 환웅세력이 웅족과 결합해 강력한 국가체제를 다진 것으로 추정하는 것. 고조선 건국연대인 기원전 2333년은 이 지역 청동기의 추정연대인 기원전 2400년 무렵과 거의 일치한다. 일단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곳이 고조선 초기 강역이었다는 점에선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최근 홍산일대를 답사하고 돌아온 유임현 국학학술원 사무총장은 “일부 중국학자들은 ‘이곳 유적 중 일부를 대동강 일대에서도 봤다’고 증언했다”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그들도 이곳이 기존 한족 문명권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 “이곳은 중국 송대 이후에야 중국 양식의 무덤이 발견되는 고구려 비사성 자리였다”며 “과연 중국의 역사 문화권인지 의심스럽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예로부터 중국 사서들이 외국인으로 분류했던 동이족의 원형이 이곳에 묻혀 있다는 게 유 사무총장의 해석이다. 그는 “중국측 교수가 ‘모호한 유적이 발굴되면 이전에는 그냥 덮어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고 전해 이와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지난 10월 초 홍산의 모습. 전봇대와 고압선탑이 전경을 망치고 있다. <국학 학술원 제공>

 

중국 하나라보다 앞선 청동기 유물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최근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음하 상류 ‘삼좌점 유적’. 하가점 하층문화로 추정되는 이곳의 발굴은 극비리에 이어져 올해 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유 사무총장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보고 돌아와 전한 이곳 실상은 가위 충격적이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적석묘는 50~70㎝ 원을 중심으로 사방 20여m까지 확장될 만큼 거대해 제단과 구분되지 않는다. 완벽한 형태의 우물과 60여 채의 집터,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된 성곽은 고구려의 그것과 다름 없다. 부족회의 장소로 추정된 모임장소와 석회를 이용한 담벽 등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곡식창고와 문설주까지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데 특히 내성 북쪽 성벽의 ‘치’가 눈길을 끈다. 성벽이 쑥 튀어나왔다 들어간 치는 적을 수비하는데 유리한 양식으로 고구려 특유의 것이라 한다. 축성방식도 초기 고구려 축성방식보다 살짝 뒤져 있다. 곳곳엔 해독되지 않은 상형문자들이 널려 있다.

고조선 시대와 겹치는 하가점 하층에서 출토된 청동투구(위), 홍산문화지역에서 출토된 여신상. 가부좌를 튼 채 두손을 다소곳이 모은 형상은 중국 여타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는다. <국학 학술원 제공>

 

하지만 이와 같은 진일보한 시각에 대한 기존 국내 사학계의 반응은 다소 조심스럽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는 “객관적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민족적 이해가 엇갈려 극단주의로 흐를 수 있다. 개연성과 토대를 충분히 확립해야 한다”면서도 “정신사적 흐름 연구와 바른 역사인식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연구로는 동북공정 못이겨”

반면 대표적 재야 사학자로 분류되는 윤내현 단국대 교수는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우리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빈발하는데 어떻게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역사를 중국학자에게 이해시키겠느냐”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기존 사학계 연구로는 동북공정을 극복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윤 교수는 하가점 하층문화에 대해선 “독자적 문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주와 요서·요동을 합한 공통의 문화”라며 “북경 근처 갈석산까지 고조선 영토였음을 감안하면 연관성을 추측할 수 있지만 한반도 내에서 발견되는 구석기 문화 등도 간과하면 안 된다”며 중립적 견해를 견지했다.

모두 취합해도 A4용지 한장을 넘기기 힘들다는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기록들. 유일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유적들은 어떤 해결점을 제시할까. 한민족 기원과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비밀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민족 정체성 확립과 남북한 통합, 나아가 중국의 동북공정을 저지하는 가장 좋은 대처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동북공정 속에 그려진 고조선

중국이 고구려는 물론 발해, 나아가 고조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신화가 중국신화의 영향을 받은 중국문화의 반영이라 주장하는 중국 사학계의 주장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자 동래설 등을 근거로 고구려 이전 단계에서부터 중국사에 우리 민족사가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해 중화적 우위성을 강조하고 고조선-고구려로 이어지는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것이다.

조법종 우석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태양 숭배 신화인 ‘탕곡신화’와 ‘명이’라는 표현이 조선(朝鮮) 명칭의 기원이라 주장한다. ‘산해경’에 나타난 탕곡이 조선의 명칭이며 ‘주역’에 나오는 명이가 은나라 시대 조선 명칭이란 것이다. 또 3황5제 신화 속 황제의 후손인 전욱고양의 신화가 동이족 문화이고 곧 고구려 문화라 주장한다.

이런 중화우월주의는 ‘기자 동래설’에서 극에 달한다. 은말 주초 은나라 신하였던 기자가 동쪽으로 피난해 조선의 왕이 됐다는 기자조선설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중원민족이 동북민족의 원류가 된 계기로 설명한다.

이는 1차 동북공정 중 장벽파의 ‘기자여기자조선연구’에서 본격화됐다. 기자조선은 은나라 후예가 조선반도에 세운 지방정권으로 실재했던 철학가·정치가인 기자에 의해 중국 동북사가 시작됐다고 본다. 또 기자조선은 주·진의 속국으로, 이후 위만조선은 한의 속국으로 분류한다. 민족적 기원으로는 숙신·예맥·동호계로 동북지방을 3분하고 ‘모두 중국 역사 범주에 존속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중국 측 주장은 우리 민족과 관련된 구체적 역사를 보편성과 연결지어 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국내 학계의 반론. 무엇보다 단군신화를 중국신화에 나타난 ‘신성한 존재의 출현이 초인간적 상황 속에 전개된다’는 일반론을 바탕으로 중국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하고 있다. 단군신화 속 곰 숭배 사상이 한국 신석기문화 속 고아시아족의 특징임을 망각한 것이다.

또한 중국사료인 ‘상서대전’ 등에 기록된 기자동래설은 다른 사서에선 일절 언급되지 않았고 조선시대 일부 유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고조선의 청동문화는 중국과 계통이 다른 비파형동검과 돌널무덤 및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논리상 맞지 않다. 최근 일부 국내 학자들은 오히려 위만조선이나 한군현 등을 고조선 서쪽 변방에 자리한 고조선의 속국이라 보고 있다.

한편 중국 측 동북공정에 대해선 학계·정치권의 자성 목소리가 높다. 김정배 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관심이 많은데도 고조선에 관한 연구가 부진한 것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해석을 과감히 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아비판한 바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도 “동북공정의 문제는 단순히 역사왜곡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정치·외교력 부재를 드러낸 것”이라며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이버 의병이 역사 지킨다


민족혼과 정신을 되살리자는 사이버 의병들의 활동 모습. 친근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추구한다. <국학신문 제공>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한민족에겐 늘 구세주와 같은 손길이 있었다.
격분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와 운명을 함께한 ‘의병’이 그것이다.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온라인’ 등 문명의 이기와 더불어 힘을 얻은 ‘사이버 의병(cafe.daum.net/ cybershinsi)이 그들이다.

현재 1만여 명에 달하는 사이버의병은 초·중·고·대학생은 물론 40~50대 중년층까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하고 있다. 활동할 때는 황금색 태양 속 붉은 ‘삼족오’가 그려진 복장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 삼족오는 고구려 벽화나 유물에 그려진 세발 달린 까마귀. 한민족이 천손임을 보여주며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정신을 상징한다.

다음카페에 둥지를 틀고 역사왜곡 시대에 민족정기를 바로잡자고 의기투합한 사이버 의병. 활약상도 눈부시다. 심지어 ‘네어버 지식in’엔 ‘유행어·신조어’로 분류돼 ‘온라인을 통해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누리꾼을 지칭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들이 활동을 개시한 것은 2003년 12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동북공정)을 저지하기 위한 국학원청년단의 ‘고구려지킴이’ 발족이 시발점이다. 이후 누리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졌고 지금은 고구려사 지킴이를 넘어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승화됐다. ‘동북공정 저지 활동’ ‘태극기 생활문화 만들기’ ‘국조 단군 알리기’ ‘개천절 살리기’ ‘대한민국 국학 바로 알리기’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굵직한 두 건의 성과도 올렸다. 우선 지난 9월 국학원이 중심이 된 ‘동북공정 저지 대국민 기자회견’ ‘국민대회’가 첫 번째 개가. ‘한민족 정체성 찾기 1000만인 서명’도 이어졌다. 올 10월에는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은 개천절 행사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대한민국 생일파티’라는 주제로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개천절 행사를 벌인 것.

“개천절이 어느새 국가 수장인 대통령도 외면하는 일부 종교행사로 치부되고 지난 20년간 언론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했다”는 현실을 뒤집을 수 있도록 ‘고개숙인’ 개천절의 의미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전통복식 대신 코스튬 플레이를 통해 동북공정 반대를 문화적으로 승화시키고 대형 떡 케이크를 마련해 나눠 먹는 등 개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장예령 사이버의병 단장은 “거창한 것은 아니고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정신을 갖고 활동한다”면서 “스스로 민족 정신사에 대한 자긍심을 지니자는 것인 만큼 누구나 활동 가능하며 온라인 카페가입으로 정회원 자격이 부여된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오상도 기자 sdoh@kyunghyang.com>

 

 

입력 2008. 2. 24. 08:01수정 2008. 2. 24. 08:01

<인터뷰> 요하문명 연구 우실하 항공대 교수 (daum.net)

 

<인터뷰> 요하문명 연구 우실하 항공대 교수

"요하문명은 고조선의 뿌리..中 '문명공정'에도 경각심 가져야"(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중국이 고조선 이전의 상고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요서(

v.daum.net

"요하문명은 고조선의 뿌리…中 '문명공정'에도 경각심 가져야"

지난 1983년 랴오닝(遼寧)성 젠핑(建平)현과 링위안(凌源) 사이의 뉴허량(牛河梁)에서는 기원전 5천500년 전의 제단, 여신전, 여신상, 적석총 등이 대거 발굴돼 전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3황5제 시대를 운운하는 신화시대였던 기원전 3천500년에 이미 초기국가 진입단계의 대규모 유적이 발견된 것은 고대국가발전단계를 황허(黃河) 유역의 하(夏)에서 시작해 상(商)과 주(周)로 이어지는 것으로 봤던 역사학계의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뉴허량유적은 훙산(紅山)문화, 더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뉴허량유적지는 최근 광산개발업자들의 불법채굴로 훼손된 사실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끌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을 황제(黃帝)족으로 설정하고 중화민족의 시조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요하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이 황제족의 후손으로 중화민족으로 일원으로 보는 역사해석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들 지역에서 등장한 단군과 주몽은 당연히 황제의 후예가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깃털에 불과하며 중국의 고대문명탐원공정(古代文明探源工程)이 몸통이라고 지적한다.

우 교수는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21세기 중국의 '대중화주의건설'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은 그의 일환으로 동북지역의 민족문제와 역사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문명공정을 반박하기 위한 논리로 국경이 없었던 시절의 과거 문명 주도세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요서지역에서 발견된 적석총, 피라미드식적석총, 빗살무기토기, 비파형청동검은 중원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한반도와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바로 요하문명이 중원에서 발상한 문명과는 달리 주로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래된 동북아문명의 시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원전 2천∼1천500년 시기에 형성된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는 고조선문화로 이어졌으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이(齒)를 갖춘 석성'과 비파형청동검은 고조선문화의 상징이면서 비슷한 시기 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특유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 교수는 "이러한 특징을 갖춘 요하문명은 동북아 모든 국가들의 공통적 시원문화로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근원으로 삼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협소한 영토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역사를 흐름과 교류로 보는 '열린 역사관'과 '열린 민족주의'를 한.중.일 국가들이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입력 2001.03.22 00:00

"중국 대문구 문화 일군 동이족=고조선족" | 중앙일보 (joongang.co.kr)

 

"중국 대문구 문화 일군 동이족=고조선족" | 중앙일보

"중국 대문구(大汶口) 문화의 주인공은 고조선족이었다. "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64) 교수가 최근 나온 『한국학보』(제102호)에서 이런 주장을 해 주목을 끌고 있다. 신교수는 이 논집의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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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문구(大汶口) 문화의 주인공은 고조선족이었다. "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64) 교수가 최근 나온 『한국학보』(제102호)에서 이런 주장을 해 주목을 끌고 있다. 신교수는 이 논집의 「고조선 '아사달' 문양이 새겨진 산둥(山東) 대문구 문화 유물」이라는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아직 우리에겐 생소한 '대문구 문화' 는 중국의 룽산(龍山)문화 이전에 이미 산둥반도에 존재했던 동이(東夷)계 문화다. 중국의 고고학계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다. 그 시기는 BC 4300~BC 2200년께로 추정된다.

이 대문구 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바로 대동강 유역에서 살던 고조선족이라는 게 이번 주장의 골자다. 중국학계의 학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이족〓고조선족' 으로 보는 것. 그는 이곳에서 나온 아사달 문양(사진 가운데 윗부분)이 그 증거라고 확신했다.

1961년 이곳에서 출토된 다량의 형이형 토기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신교수는 이 팽이형 토기는 고조선 전기(신석기)문명 특유의 토기 형식이며, 여기에 새겨진 아사달 문양이야말로 고조선과의 연관성을 증거하는 결정적 자료라고 주장했다.

이 상형(象形)문양을 풀이하면 결국 '아사' 는 아침의 고조선어고 '달' 은 산을 뜻하는데, 이를 합쳐 하나의 '아사달' 로 표시하면 고조선 말에 의한 나라와 수도 이름을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팽이형 토기를 제작해 쓰던 대문구의 동이족은 고조선족이라는 해석이다.

신교수는 이런 주장을 이른바 '고조선문명론' 이라는 거대한 가설 속에서 분석한다. 그는 이번 논집보다 먼저 나온 『한국민족의 형성과 민족사회학』(지식산업사)이란 책에서 "세계 4대 문명인 황허(黃河)문명에 버금가는 '고조선 문명' 이 BC 2400년을 전후로 대동강에서 랴오허(遼河)의 서쪽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 걸쳐 형성됐다" 는 가설을 제기했다.

대문구 문화는 바로 이런 고조선 문명권의 영역 하에서 고조선족의 후예들이 세운 문화라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지금껏 학계에선 누구도 한 바가 없어 논쟁거리가 될 것 같다.

정재왈 기자

 

 

등록 2016.10.07 15:06:19수정 2016.12.28 17:44:53

[인터뷰]사라 넬슨 교수 "암사동 유적지 남다른 가치…유네스코 등재 힘 보탤 것"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

 

[인터뷰]사라 넬슨 교수 "암사동 유적지 남다른 가치…유네스코 등재 힘 보탤 것"

출토 유물 당시 문화 중심 입증…변두리에 유적 더 있을 것옥 발견에 주목… 선사시대 문화 수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 한국 문화 중국과 엄연히 달라…고고학계서 중요 역할 할 것 【서울=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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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입력 2013. 1. 18. 12:09수정 2013. 1. 18. 12:09

[서울스토리]한강변에서 돌도끼를 든 6000년 전 그를 만났다 (daum.net)

 

[서울스토리]한강변에서 돌도끼를 든 6000년 전 그를 만났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 본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6000년 전으로. 별이 쏟아진다. 불타는 장작 위로

v.daum.net

 

 

 

입력 2017.06.16 20:55 수정 2017.07.14 04:46

울산 원형제단, 홍산문화 영향받았나...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

 

울산 원형제단, 홍산문화 영향받았나...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서기2017 미사협 전국순회강연, 울산편 "울산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과 관련이 깊은 곳...""식민사관 전파에 식민사학계는 물론 언론까지 공모하여 가세...""울산서 홍산문화와 똑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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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2017 미사협 전국순회강연, 울산편

 

"울산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과 관련이 깊은 곳..."

"식민사관 전파에 식민사학계는 물론 언론까지 공모하여 가세..."

"울산서 홍산문화와 똑 같은 원형제단이 나왔다..."

 

울산서 발견되는 수 많은 유물 유적들,

홍산문화 영향 받았을까...

정 소장은 이를 증명하는 다양한 유물을 소개했다.

먼저 전파과정의 증거로써 조개류를 제시했다. 홍산지역의 흥륭와 문화에서 나온 조개와 연해주 아무르 강에서 발견되는 조개류가 같다고 했다. 이는 교류의 증거라고 했다. 또한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그 축치반도에서 사는 축치족의 고래암각화와 울산 것을 비교하면서 고래잡이 풍습은 축치족에서 기원했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이마뉴엘 알키 아나키 박사의 견해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암각화에 대하여 최고의 석학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울산을 두 세차례가 거쳐가면서 남기고 간 말이 있는데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해양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근거로 우리나라에는 고래와 관련해서 반구대 암각화 단 한 개뿐이고 연습해서 조각한 암각화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축치반도의 선주민들이 울산지역으로 내려와서 새겨놓고 갔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로 울산이 동해와 남해의 교류지점이라는 것과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들었다. 동해안에서 해류를 따라 내려와서 머물기가 아주 좋은 곳이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울산이 신석기문화의 보고가 되었다고 했다. 특히 7천년 이전 것으로 보이는 개운포開雲浦 지역의 신석기 유적은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했다.

▲ 러시아 축치반도의 고래암각화와 울산의 암각화 고래가 판박이다. 배제대학교 스페인어 학과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축치족은 우리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민족이다. 언어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이외에 장승, 무당 굿, 온돌 문화 등으로도 간접증명된다.

 

이어 홍산문화의 옥결(귀고리)과 강원도 고성 문암리와 울산 처용리에서 출토된 옥결이 비슷한 것을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증거로 제시했다. 특히 학계에서 거의 다 홍산문화의 영향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처용리에서 나온 옥결은 중국 요녕성의 수암에서 난 옥으로 추정했다. 또한 사천에서 나온 옥결은 서기전 5천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옥이 발견된 지역을 보면 동해안을 따라 해안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 소장은 이어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토제여인상을 제시했다. 울산에서 홍산지역에서 발굴된 것과 상징이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 여러 가지 토제 물들을 소개했다. 더구나 대규모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거기에 홍산문화 것과 같은 돌널무덤(석관묘)이 나왔는데 이는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증거라고 했다.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도 발견되는데 이것도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원형제단으로 보이는 유적이라고 했다. 울산 방기리 알바위 원형제단인데 둘레가 43미터라고 했다.

중국학자들이 와서 보고 갔는데 집단적으로 제사를 지낸 유적으로써 중국 홍산문화의 영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홍산문화의 마름모꼴 암각화와 울산 천전리 암각화를 비교했다. 그리고 사슴과 기타 동물문양 그림기법이 거의 같다고 했다. 사슴은 당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섬김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그려진 장소가 아주 신성한 곳이라는 것이다. 정 소장은 홍산문화지역의 암각화를 수도 없이 둘러보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정 소장이 내린 결론은 울산의 모든 신석기문화는 홍산지역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 울산 방기리에서 발견된 원형제단. 정상태 울산홍산문화연구소장은 이 원형제단이 중국 내몽골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중국인 학자들도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증해 본 결과 홍산문화에서 왔다는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홍산문화가 우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다차원 적인 근거가 제시되어 주목된다.

 

울산지역의 유물, 유적들,

오히려 홍산문화에 영향준 개연성 높아...

정 소장의 이날 발표에 대하여는 많은 이견이 제기된다. 먼저 정 소장은 주요 근거로 외국인 학자들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국중심의 역사관을 철저히 바탕에 깔고 우리지역의 역사문화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 학자들은 역사, 문화, 고고학, 인류학 등 기타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일제시기 황국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 쪽에서 보면 조선총독부식민사관이다. 홍산문화에 대하여 가장 먼저 손을 댄 자들이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 관학자들이다. 도리이유조(鳥居龍藏)가 대표적이다. 조선은 만주의 일부분이라는 만선사관에 따라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는 가운데 적봉지역 홍산문화 유물을 발굴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박물관에 가면 적봉시에서 가장 먼저 발굴한 홍산 옥결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이런 유물도 모두 황국사관에 맞추기 위함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 소장은 이탈이라 학자의 주장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러시아 캄차카지역 위에 있는 축치반도의 축치족이 내려와서 새긴 것이라는 것이다. 축치반도 고래잡이 암각화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고래가 새겨진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가 유일하다는 것이 이유다. 고래암각화는 중간과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암각화가 없고 완성된 모양의 반구대 암각화만 있다는 것이다. 중간과정이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외국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정 소장은 포항에서 부터 전남 남원에 이르기 까지 ‘방패형’ 암각화가 띠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물론 습작도 있다고 했다. 수백에서 수천 년간의 세월을 잇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 같은 암각화이고 같은 시대 주민들이 새겼을 수밖에 없는데도 고래잡이 암각화와 방패형 암각화를 별개로 보고 반구대 암각화만 떼어서 외국산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고래잡이가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가 축치반도의 고래 암각화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치족의 기원은 어디일까. 축치족의 기원을 알아내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 될 수 있다. 배제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축치족은 우리말의 ‘춥지’,‘추워’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언어학 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중간에 머문 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지역에는 우리의 장승과 똑 같은 문화를 지금도 갖고 있으며 무당들이 우리와 흡사한 굿을 하고 있다.

더구나 축치족이 우리나라에서 나간 것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온돌을 들 수 있다.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온돌은 우리 고유문화의 하나인데 울산지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함경도, 연해주, 캄차카 반도 그리고 알류산 열도 및 북미로 이어지는 온돌 띠가 형성되어 있다. 온돌문화를 갖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북으로 이주했고 중간 중간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부족이 다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부족으로 축치족 외에 길약족이 대표적이다.

▲ 홍산문화와 울산의 석관묘가 똑 같다. 정 소장은 석관묘의 원조가 홍산문화라고 했으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원조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석관묘(돌널무덤)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 필자의 선친先親도 석관묘에 안장된 바 있다.

 

유물의 양으로 보나 분포면적으로 보나 홍산문화가 울산지역 신석기문화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 증거도 만만치 않은데 자동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역발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정 소장 스스로 소개 한 것에 더하여 외국으로부터 암각화의 백과사전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사냥만 새겨져 있지 않다. ‘백과사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암각화에 나오는 모든 소재가 다 새겨져 있을 만큼 다양하다.

이것이야 말로 암각화의 원조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세계전역으로 퍼져나가 암각화 문화를 심어 놓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시기 또는 그 이전의 문화로 평가되는 고인돌과 연개 시키면 더욱 확실해 진다. 고인돌은 우리나라만 빼 놓고 외국인 학자들은 고인돌의 원조가 우리라고 한다. 특히 중국의 양식 있는 학자들은 우리가 원조라고 한다. 전라도 지역이라고 한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와 울산의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가 같은 시기, 같은 문화권 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볼 때 종합적인 사고가 충분히 가능하다.

▲ 충북 소로리에서 발견된 약 1만5천년된 볍씨. 야생 볍씨가 아니라 야생볍씨를 개량한 인공 볍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구나 현대 물농사 볍씨와 같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시대가 너무 많이 올라가 조금 내려서 국제학계에서 인정했는데 1만 2천년 선에서 정했다고 한다. 물 벼농사 볍씨라면 여기에 따라 붙는 밥을 해먹는 토기, 저장토기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는 정착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양 제국주의 고고학에서는 흔히 신석기 시대를 8천년경으로 잡는다. 그런데 그 보다 4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대에 우리는 이미 벼농사를 짓고 살았다. 서양 기준으로 말하면 이 때는 구석기 시대다. 결국 서양 고고학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사관에 맞게 만들어져 있는지 드러나는 사건이 소로리 볍씨 발굴이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탁월한 태고사 관점...

이것을 실증해 보인 사람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신용하 명예교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제학계가 인정한 충북 소로리 볍씨가 최소한 1만2천 년 전의 것이라는 것에 착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태고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이른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이어주는 증거로 동굴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중부만 하더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동굴이 1천여 개가 넘는 다고 한다. 이러한 동굴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신 명예교수는 지난 서기2015.05.02.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조선단군학회가 주관한 학술발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신 명예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당시의 기후변화, 지형, 구석기, 신석기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동아시아 문명은 한반도에서 태동했다고 결론 내렸다. 기후 변화에 따라 한반도인들이 북상했고 현재의 홍산문화지역에 정착하여 홍산문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로 대변되는 고래잡이문화도 우리가 원조라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 년 전의 고래잡이배와 닮은 배가 경남 창녕에서 발굴된 것에 주목하면 이러한 결론이 일방적인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13.10.23 16:38

울산에 홍산문화가 있다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iusm.co.kr)

 

울산에 홍산문화가 있다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홍산문화란 기원전3500년 전후에 중국 동북지역의 젖줄인 요하유역의 내몽고자치구 적봉을 주심으로 꽃피운 신석기시대의 원시문화를 일컬음이다. 이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행문화이다.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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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1편)과연 홍산이 우리문화일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홍산문화(1편)과연 홍산이 우리문화일까

우하량 오한기의 홍산문화 1983년 중국최초의 신묘가 출현하는데 5천년전 홍산문화로 요녕성 조양시 우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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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인문 지리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홍산문화(2편)사라진 홍산-용이 등장하여 조상을 찾았다고 흥분하는 중국인들

우하량 출토의 옥기는 183건으로 선명한 시대와 지역특성인데 동물성옥기가 주로 사실을 기초로 신화적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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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桓國)의 홍산문화 대륙의 요녕지역에서 홍산문화(紅山文化)가 발견되었는데 화하족의 문명이 아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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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 고대 황하중류로 전해져서 새(鳥)로 둔갑한 고대한국의 아사달문양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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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서쪽 제천 유적의 발견 통화 만발발자 유적ㅣ환웅이 태백산 신단수에 온 기록과 일치ㅣ정경희 교수의 놀라운 연구

https://youtu.be/VJT_4OVxFS0?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KBS 역사스페셜 – 만주대탐사,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 KBS 2009.8.29 방송

https://youtu.be/zwxhFb4Z_fs?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이덕일의 한국통사] 8천년 고조선 뿌리 요하문명 홍산문화 하가점 하층문화 상층문화 신석기 시대 신락문화 앙소문화에 관한 개념 정리

https://youtu.be/WQguW2AdM6s?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요서 고고학 - 복기대 교수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히스토피아]

https://youtu.be/h_4W93B15R4?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홍산문화_ 이 문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2부ㅣ역사이다

https://youtu.be/hr-_wjlzmt4?list=PLRAmvpNm4pmk-9thWqaZWsYbtqUc1ohNJ

 

 

[단군신화의 새로운 이해 (2)] 홍산문화는 황제의 문화다

https://youtu.be/KCNqOT2ooJA?list=PLRAmvpNm4pmmRSyCOBUipzw4lmxC6bFH-

 

 

<참고자료>

 

훙산 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Hongshan culture - Wikipedia

 

 

하강문명과 홍산문화 (naver.com)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홍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홍산후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우하량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동산취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소하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석붕산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앙앙계유적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신개류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소주산문화

 

 

다원커우 문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대문구문화

 

 

용산문화와 양저문화 (naver.com)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용산문화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양저문화

 

 

서울 암사동 유적(서울 巖寺洞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암사동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한국고고학사전(2001)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세죽리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鳳山 智塔里 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운서동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 삼목도Ⅲ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능곡동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대천리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조동리유적

 

 

신석기시대편 - 문화유산 지식e음 (nrich.go.kr)-수가리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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