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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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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발굴에 이어 1998~2003년 추가 조사 결과 늑도에서는 기원전 3~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때까지 토기와 철기, 동전, 공예품 등 각종 유물 수만점이 출토됐고 섬 전체가 패총(조개무지)과 무덤, 건물터로 뒤덮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건 토기 등의 출토품 상당수가 당대 중국과 한반도, 일본 각지에서 온 다국적 유물이란 점이었습니다. 2000여년 전 늑도가 홍콩처럼 동아시아 굴지의 국제교역항이었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것입니다. 늑도 전경. 사천시와 창선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꿈의 섬이었습니다.” 김두철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가 떠올린 ‘그 섬’은 경남 사천시(옛 삼천포시) 앞에 있는 작은 섬 늑도다. 1985~86년 그를 포함한 부산대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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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은 고대 동북아의 ‘물류허브’ 였다1983년 3월 어느 날.황도훈이라는 해남의 향토사학자가 있었다. 해남문화원장을 지내면서 고향 땅을 답사하는 것을 여생의 일로 삼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군곡리 마을을 지나던 황씨의 눈길이 멈췄다. 무슨 옹관 같은 유물이 눈에 띈 것이었다. 게다가 불에 탄 흔적도 있었다. ■ 2300년 전 음식물 쓰레기장 해남 군곡리에서 확인된 뼈로 만든 연모. ‘이건 야철지 아닌가.’ 독학으로 고고학을 배우던 그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는 행장을 꾸려 서울로 올라가 서울신문사를 찾았다. “회사 논설위원 중에 해남 사람이 있었는데, 황도훈씨와 친구였지. 그 인연으로 우리 신문을 찾아온 거지요.”(황규호 전 서울신문 기자) 황 기자는 즉시 황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