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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한국인에 의해 공개됐다. 완전한 형태로 30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홍도관에는 은왕조 마지막 帝王(제왕)인 帝辛(제신)이 주나라 무왕과의 국가 흥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별점을 친 기록이 은문(=갑골문과 동일)으로 기록돼 있다. ■ 고대중국 은왕조 유물 '홍도관' 공개뉴시스 박상대기자 2008. 8. 12. 10:49 【가평=뉴시스】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

상나라의 실체를 알면 더욱 확실해진다. 하·상·주의 왕조교체는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다. 지금의 개념대로라면 동이족이 한족(漢族)과 처절한 중원쟁탈전을 벌인 끝에 하나라를 무찌르고 550년 가까이 천하를 통일했다. 그것이 바로 상나라이다.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8)천하를 제패한 동이족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2008.02.01 17:14 중원통일 상나라는 발해문명의 후예 “은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 그녀는 제곡(帝곡·황제의 증손자라 함)의 둘째부인이다. 간적 자매가 목욕을 하러 가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했다. 그가 설이다.”(사기 은본기) 안양 인쉬(殷墟)에서 확인된 상나라 말기의 건축유적. 주 무왕에 의해 패배하여 분신자살..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1)상나라와 한민족 下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 2008.03.07 17:46 수정 : 2008.03.07 17:47 ‘갑골문화’ 동이족이 창조 한자는 발해 문자 였을까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빛바랜 논문 한 편을 꺼냈다. 1981년 국립 대만대 유학 시절 작성한 중국어 논문(‘渤海沿岸 早期無字卜骨之硏究’)이었다. 그는 논문 뒤편에 쓴 후기(後記)를 보여주며 추억에 잠겼다. “여기 후기에 ‘내가 병중에 초고를 완성했다(病中完成草稿)’고 했어요.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할 무렵 대장암 진단을 받았거든. 의사가 수술을 빨리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기 전에 이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 수술 날짜도 받지 않고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신들린 듯 논문을..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0)상나라와 한민족 中 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 2008.02.22 17:05은·부여는 ‘君子의 후예’ 풍류 즐기고 禮 중시 은(상) 마지막 왕 주(紂)의 악행에 대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충신의 심장을 갈랐고, 육포를 뜨고 젓을 담가 맛보게 했으며, 녹대(鹿台)를 만들어 세금으로 거둔 돈을 가득 채웠으니까. 폭군은 더 나아가 수많은 악공과 광대들을 불러놓고 주지육림의 난행을 펼쳤다.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사기 ‘은본기’) 안양 인쉬 거마갱(車馬坑)에서 발굴된 마차유적. 은(상)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주(紂)왕을 위한 변명- 주왕의 악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지만 “악공..
결국 이 모든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로 미루어 보면 BC 6000년(차하이·싱룽와 문화)부터 시작된 발해문명의 창조자들이 그 유명한 훙산문화(BC 4500~BC 3000년)를 거쳐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BC 2000년 무렵~BC 1500년·즉 고조선 시기)를 이뤘다. 그리고 상나라의 시조 설은 차하이·싱룽와 문화-훙산문화의 맥을 이은 발해문명의 계승자로서, 샤자뎬 하층문화의 주인공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설과 그의 손자 상토, 그리고 7~8대인 왕해와 상갑미 대를 거치면서 발해문명의 계승자들은 남으로 뻗어갔으며, 급기야 BC 1600년 무렵 중원의 하나라를 대파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9)상나라와 한민족(上) 경향신문 이기환선임기자 입력 : 2008.02.15 ..

이렇게 고구려의 계보는 500여 년에 걸쳐 점차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해석을 해봄직하다. 멸망 이후 돌궐에 의탁했던 유민들은 중앙아시아와 이집트, 나아가선 동유럽에까지 진출해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 ‘모든 튀르크인의 선조’라 불리는 오구즈 칸을 시작으로 호라즘 샤, 오스만 튀르크 등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제국을 일궈나갔다. 온고지신이라 했던가. 코스모폴리탄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깃들어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역사 거꾸로 읽기’가 필요한 이유다. ■ [전원철의 ‘역사 거꾸로 읽기’(마지막 회)] 고구려와 튀르크 잇는 ‘미싱링크’ 킵차크 칸국월간중앙 입력 2020.03.30 17:06수정 2020.03.31 16:34호수 202004지면318면 동아시아(요나라 vs 금나라) 대..

결론적으로 고구려가 발해로 이어진 시대에 그들의 일부는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로 가서 예맥 칸국을 세웠고, 그 영향력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너머까지 미쳤다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오늘날의 우리도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에 관한 안목을 넓히고, 동반자 입장에서 다가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전원철의 ‘역사 거꾸로 읽기’] 중앙아시아 ‘중세 300년’ 호령한 예맥 칸국월간중앙 입력 2020.02.27 14:00 수정 2020.03.16 16:35 호수 202003 지면254면 750명 유민(遺民)으로 시작한 ‘고구려 굴기(屈起)’옛 고구려 출신 7개 부족 규합해 카자흐스탄 일대에서 건국... 창업주 ‘샤드 토톡’, 연개소문 차남 남건(男建)의 후손? 중국 신장웨이우..

6세기 고대 튀르크인의 모습이 우리 선조와 닮은 까닭은?[구당서], 고구려 보장왕 가문과 유민이 서쪽 동돌궐로 갔다고 언급일부는 몽골,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동로마제국까지 진출했을 수도 ■ [전원철의 ‘역사 거꾸로 읽기’] 튀르크 14개 왕조의 뿌리, 고구려 고(高)씨 왕가월간중앙 입력 2020.01.31 10:55 수정 2020.02.11 17:06 호수 202002 지면242면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Issyk-kul) 호수 전경. 오늘날 카자흐스탄·중국 등과 국경을 맞댄 키르기스스탄 일대는 튀르크 부족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 사진:보물섬투어 오랜 세월 튀르크 민족은 여러 갈래로 존재해 왔다. 유럽의 입구 크림 반도의 타타르인, 러시아 남시베리아의 타타리스탄인, 그리고 1453년까지만 해..

"고구려의 살수는 청천강아 아니라 중국 요녕성에 있는 '혼하'다" 2018년 3월 20일 문성재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교수는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에 대한 번역, 정밀해제 연구팀의 중간 연구결과를 분석하던 중 고구려의 살수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 문성재 교수 "고구려 살수는 청천강 아닌 요녕성 '혼하'"뉴시스 신효령기자 2018. 3. 20. 18:34 "고구려의 살수는 청천강이 아니라 중국 요녕성에 있는 '혼하'다" 20일 문성재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교수는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사'에 대한 번역, 정밀해제 연구팀의 중간 연구결과를 분석하던 중 고구려의 살수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존재한..

‘소련 대표가 우리나라(중국) 길림성의 연길, 목단강, 목릉 등 부근을 북한의 영토로 획분하려고 한다. … 이 지역에는 북한 정규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지방 행정도 조선인이 주관하고 있어 실제 북한에 합병된 것과 같다. … 1948년 2월 소련은 북한과 평양협정을 체결한 것에 따라 동북 일부 지역, 즉 간도, 안동, 길림 세 지역을 조선인의 자치구로 획정해 주었다.’ [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통일을 위한 숙제 간도 수복론 vs 회의론 국론 통일해야통일대박론과 간도기자명강정민 변호사·‘독도반환청구소송’ 저자 입력 2014.06.15 16:56주간조선 호수 2311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5년 국회에서 ‘간도영유권관계발췌문서’라는 제목의 간도자료집이 발간되었다. ‘간도영유권관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