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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이익은, 단군조선은 요와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웠으나 독자적인 문화가 아니라 순(舜)의 통치권 내에 들어가 중국 문화 영향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然則檀君亦必在虞廷風化之內 而東邦之變夷爲夏久矣”, 『성호사설』)고 보았다. 이익이 하(夏)문화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본 편발개수(編髮蓋首)는 이암의 『단군세기』와 『정조실록』과, 홍만종의 『동국역대총목』, 이종휘의 『東史』에도 실려 있다. 다른 사서에서는 모두 단군이 제정한 제도(『단군세기』에는 2세 단군 부루)라고 인식하고 있는데도, 오로지 이익만은 하(夏)의 예(禮)가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000여 년 동안 원시적이고 개척되지 못했던 문화는 기자 시대가 되어서야 암흑이 걷혔다는 인식(“檀君之世鴻濛未判 歴千有餘年 至箕子東封天荒始破”, 『성호사..

유교사학이 중화사관이라는 틀 속에 우리 역사를 최초로 집어넣은 사건은, 신채호가 "조선역사상 일천년 이래 제일 대사건"이라고 표현했던 고려중기 서경천도운동(1135)과 그 실패 과정에서 드러난 선도(仙道:선불습합) 세력과 유교 세력의 대충돌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이루어졌다. 승리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한 유교 세력은 문신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정치 표방을 합리화하고 유교사관 확립을 도모하였다. 한국사를 유교사관으로 해석한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배달국과 단군조선을 역사기록에서 배제하고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사를 서술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고자 하였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4) 고대사 중심무대를 한반도로 축소한 김부식과 중화사관 도입K스피릿 입력 2022.05.16 1..

민족사학에서는 고유의 신선사상을 민족종교로, 만주를 민족사의 중심무대로, 민족사의 연원을 단군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된 고고학 성과로 인해 요서지역 청구문화(홍산문화)와 요동지역 천평문화를 두 중심으로 하는 배달국이 단군조선 선행문화임이 밝혀졌으므로, 고대사인 단군조선 역사는 물론 상고사인 배달국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는 선도사학을 민족사학의 ‘원형’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생명을 존중하고 조화・평화・공생을 속성으로 하는 선도적 세계관인 홍익주의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홍익사관’이라고 명명하였다. ■ [기고] 선도 홍익사관의 전승 과정 연구(1) 홍익사관은 共生의 역사관 K스피릿 입력 2022.04.25 10:19 업데이트 2022.05.23 10:36기자명 소대봉 민족..
송나라는 명실공히 한나라 이후 한족이 세운 중국의 통일국가였다고 역사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 송나라와 대치했던 북방민족인 요나라와 금나라의 역사는 중국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거란족의 요나라와 여진족의 금나라 역사를 우리 민족사에 집어넣지 않고 중국의 역사로 넘겨주는 것은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을 엄청나게 도와주는 행위인 것이다. 보라! 중국의 통일국가였다는 송나라는 요나라와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완전 동네북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두 황제가 포로가 되어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할 정도였다. 어찌 이런 요나라와 금나라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있겠는가. ■ 성헌식의 ‘대고구리’ 송을 지배한 요(거란)·금(여진)이 중국 역사라니입력 2013-08-0..

김위현 명지대 명예교수는 '한국사로서의 금의 역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한다면서 역사학적, 민족학적, 영역적, 관계사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김 교수는 그 대표적인 근거 중 하나로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혹 고려)에서 옮겨 온 유이민이고 나라를 세울 때 협력한 발해 유민들은 곧 고구려계"라면서 "아골타 근족들의 혼인 대상 민족은 요양에 거주하던 발해 귀족의 여식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주 지역에서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나 고조선(단군조선,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까지 강대한 국가를 유지·경영하다가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 내로 위축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만주지역에서의 우리 역사는 여기서..

2006년 9월 14일 고구려연구회 주최로 열린 '동북공정 분석과 평가' 토론회에서는 금·청나라 역사를 한민족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이른바 재야사학계의 논리가 강단사학계에서 처음 나온 것이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는 20일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를 만났다.서 교수는 "중국은 한국사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중국은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 역사를 파악한다'는 반박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우리도 중국사를 해체해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 "닫힌 반도사관으론 동북공정 못 막는다"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 2006. 9. 22. 그는 "중국의 정사인 25사에 들어간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인정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전통..

우리 역사에서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독립국이 존재했던 남북국 시대가 있었다. 신라와 발해(669~926), 고려와 요(遼ㆍ916~1129), 고려와 금(金ㆍ1115~1234), 조선과 청(淸ㆍ1616~1912)이 병립한 시기가 남북국 시대였다. 우리 역사를 이렇게 인식하면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청나라도 우리 역사 일부가 된다. 이는 필자가 처음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유득공(1748~1809) 선생이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하여 발해와 신라가 병립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로 규정했다. 김교헌(1868~1923), 박은식(1859~1925) 같은 선학들도 이미 주장한 내용이다. 이 두 분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유학 사대주의에서 찾았다. 유학 사대주의를 버리니 비로소 동이족 여러 나..

이렇게 해서 ‘세 선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청 시조 포고리옹순은 조선 태조 이성계 시절 회령 지방의 여진 통치자 ‘동(童)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라는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포고리옹순은 설화 속 영웅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인 것이다. 신화는 처음부터 신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기록이다. 결국 청 황실의 시조 포고리옹순, 달리 맹가첩목아는 고려 중기부터 속속 고려에 귀부하여 고려 백성으로 살던 여진 부락에서 첨이(僉伊) 벼슬을 한 보가(甫哥)의 딸 야오거(也吾巨)라는 여인을 어머니로 하고, 이 야오거의 첫 남편인 두만(豆萬) 벼슬을 한 동휘후(童揮厚)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다. 포고리옹순의 후손인 청 황가가 지은 역사책 는 청 황실은 ‘대금부족(大金部..
오랑캐. ‘여진’은 때로는 복속하고 때로는 침탈하며 조선의 변방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이들은 조선을 제압하고 나아가 대륙의 주인이 됐다. 바로 청나라다. 그런데 이 청나라의 시조설화 ‘백두산의 세 선녀’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흡사하다. 같은 전래 설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과 여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암시하는 우리 역사의 비밀을 파헤친다. ■[새연재 | ‘異論’의 역사] ‘나무꾼과 선녀’ 설화에 얽힌 비밀 청(淸) 왕조 세운 여진족과 우리 민족의 관계를 밝히는 열쇠 전원철 미국변호사, 법학박사월간중앙 입력 2016.12.29 15:41 수정 2017.01.05 15:52 호수 201701 포고리 옹순(布庫哩雍順)을 손가마에 태우고 가는 삼성인(三姓人)들. 에 실린 삽화..

북한 함경북도와 간도 두만강연안에서 조선민족들가운데서 만주와 관련된 고기와 형태의 전설이 가장 많다. 고고학자료에 따르면 청조의 누르하지부족의 발상지는 북한함경북도의 3진과 간도지역으로 이씨조선왕실의 조상과 누르하지의 조상은 매우 밀접한 혈육관계가 있다고한다. 그러나 조선전설은 중화(대중국)사상으로 여진(麗地고려-고구려-부여의 준말여땅의 발음그대로 부른것의 변화라한다.)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분열임을 알수 있다. ■ "여진은 조선을 대함에 있어 '타민족'이 아닌 동일 민족으로 보았다"김관웅박사(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1) 여진과 두만강연안 및 조선왕실과의 조상혈통 처음에 여진은 당조시기 예맥(貊貉-黑水靺鞨이라고도 하는데 濊貊의 한갈래)에서 발전하여 나온것이며 발해가 거란에 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