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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연해주서 고려인민족학교 운영 김 발레리아 교장, 연수차 방한…"모국 지원 절실""영화 '하얼빈'에 공감…안중근 의거 지원한 崔선생 이야기 적어 아쉬움도" 김 발레리아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 교장 [재외동포협력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후원금도 줄어 운영이 어렵지만 고려인 차세대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라서 학교 문을 계속 열어가려고 합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의 김 발레리아(64) 교장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일대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학교명을 지은 만큼 어떻게 해서든 교육을 계속 이어갈 ..
고려인 디아스포라 형성 과정함경도 떠난 농민들 연해주 정착이 최초, 20세기엔 항일 독립운동 해외 근거지로소련, 고려인 번성에 소수민족 통제나서, 고려인들 3~4주간 열차 갇혀 이송당해“노인·젖먹이, 봇짐 진채 소리없이 옮겨져”, 노벨상 작가 솔제니친 작품서 묘사도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의 집단 이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1937년 강제이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강제이주는 160년 고려인 이주역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다. 고려인들이 러시아 연해주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학계에서는 함경도에 거주하던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몰래 건너 연해주 지신허강 유역에 이주한 것을 최초로 보고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가난과 탐관오리의 수탈을 피해..
2024년 11월 20일 고려인·한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 문화 교류 행사가 러시아 연해주 아르촘에서 개막했습니다.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에 자리 잡은 아르촘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이 있고 고려인·한인 등이 많은 연해주의 도시로, 행사는 연해주 동북아평화기금, 고려인 청년 기업가단체 원동, 아르촘시, 동북아평화연대 등이 함께 마련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촘에서 20일 개막한 고려인·한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 문화 교류 행사에서 아르촘 칠성가무단이 부채춤을 선보였다. 고려인·한인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최재형 선생과 여러 고려인 선조께 아룁니다. 고려인이 이 땅에 정착한 지 160주년이 됐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조상의 보살핌으..
(하) 중화민족주의에 옅어지는 조선족 정체성연변조선족자치주 가보니 정체불명 한복 차림 관광객 몰려들고 조선족 음식이라며 떡볶이·어묵 판매한국 문화와 뒤섞여 본연의 색채 상실, 민족 정체성 갈수록 약화‘한자 우선’ 정책에 한글 간판 밀려나고 거리 곳곳 ‘중화민족’ 강조하는 조형물 관례 깨고 연변大 학교장 한족 임명도 지난달 28일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의 중국조선족민속원. 영하 10도에 가까운 추운 날씨였지만 사진사를 대동한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복을 표방한 듯한 옷을 차려입고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객들이 지난 2024년 12월 28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조선족문화원에서 한복을 표방한 듯한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색동저고리처럼..
조선족인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에서 중국 55개 소수민족과 관련한 민족 이론·정책을 연구하다 1990년대 말 ‘조선족 위기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2012년 중국 조선족 학생들을 위한 ‘정음우리말학교’를 베이징에 세우고 지금까지 2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훈민정음서 이름 딴 ‘정음우리말학교’베이징에 세워 졸업생 2000여명 배출한국어 가르치며 민족정신 고취 힘써 정신철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가 지난 2024년 12월 2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정음우리말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남한의 한국어나 북한의 조선어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학교 이름을 훈민정음에서 따와 ‘정음, 우리말’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
신형식 백산학회 회장(상명대 초빙교수·한국고대사)은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도 드러나듯 간도는 명백한 우리 영토였고, 1909년의 청·일 간 간도협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무효”라며 “만일 정부가 제기하지 못한다면 국회와 학계에서라도 이 문제를 이슈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국제법)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자신의 국익에 유리한 이론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외교적 마찰’ 운운하며 이런 논의를 스스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조용한 조율’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삼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간도협정은 무효’ 명기된 국감자료집 수거후외교..
간도는 통상 남부 만주 지역 중 두만강 북쪽 땅(동간도)을 뜻하지만, 압록강 북쪽도 서간도로 불려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조선과 청 나라가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만들 때 합의한 것처럼 조선 영토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서 땅을 개간하는 한국인이 급증, 간도협약 당시 동간도에만 10만 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은 간도 조선인 보호용으로 두만강 인근에 변계경무서를 설치했습니다. 1902년엔 간도관리사 종3품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노무현 정부 때 중국 “간도 영유권 거론 말라” 요구 후“외교부가 왜 국감 자료집 회수하느냐” 제보 전화신구 자료집 비교해 보니 간도 협약 기술 바뀌어파..
안도패총은 여수 돌산 송도, 신안 가거도, 완도 여서도 패총에 이어 지금까지 전라남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패총으로 네 번째이지만,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다량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남해안지역 전체로 보았을 때에도 매장 방식의 특징이나 대외교류와 관련된 유물 등은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남해안지역과 일본 규슈지역의 신석기시대 매장 풍습과 문화교류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각 층에서 출토된 뼈와 패각을 시료로 실시한 연대 측정 결과도 각각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2500년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각 문화층의 연대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1)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은 전남 여수시가 금오도..
인류의 진화 단계상 최초로 시신을 매장한 것은 호모사피엔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집단적인 공동묘지를 따로 만든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어패류 주로 섭취..신장 타지역보다 작아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발굴된 신석기인의 흔적.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집단무덤 유적으로는 부산 가덕도 북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장항유적이 대표적이다.이 유적에서는 인골 48개체와 돌무지 유구 90여기, 구덩이 100기 등이 발굴됐다. 인골이 출토된 경우는 장항유적 발굴 이전만 해도 전국을 통틀어 불과 33개체뿐이었다. 장항유적에서 발굴된 인골은 대체로 머리를 북쪽에 두고 있었다. 팔다리를 바로 펴거나 굽힌 상태로 묻혔는데 대다수가 굽혀묻기로 돼 있었다. 남녀의 성비는 비슷하고 연령은 유소아부터 70대의..
동삼동패총은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특징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이른 시기부터 해양 활동을 통해 일본 규슈지역까지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 1929년 일제강점기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 오이가와〔及川民次郞〕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 1963∼196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모어(Mohr, A.) 및 샘플(Sample, L.L.)에 의해 시굴조사가 그 후 2015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부산박물관 등 여러 기관에서 10여 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약 12,000년 전은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구석기시대에 비해 기후가 급속히 따뜻해집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식물 채집, 사냥,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