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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한국과 몽골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많은 문화적·심리적 공통성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관습들도 공유한다. 예컨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을 먹는다든가(중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식당이나 가게 등에 가면 한국에서는 '이모', '아제'라고 하듯이, 몽골에서는 '형', '동생'이라고 부른다거나(의제가족) 아이들이 오래 살라고 귀할수록 '개똥이' 등으로 이름을 비하하여 부른다거나 한다. 또 유난히 흰색을 많이 사용한다. ■ , 한·몽 관계를 왜곡하다 ⑧ 아리랑의 고향, 알타이와 몽골 초원김운회 동양대 교수 | 2014.02.13. 드라마 25부에서는 기양의(후일 기황후)가 황제(순제 : 혜종)에게 "저의 복수가 바로 폐하의 복수"라고 하면서 엘테무르(연철)의 제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후..

한국이 몽골의 '어머니의 나라', 이 말은 아마도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찍 과부가 된 알랑고아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특히 유목생활에서 남편이 없이 살아갈 때의 그 처절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칭기즈칸의 어머니도 알랑고아와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처절한 가난과 절망 속에서 자식을 키웠고 그 아들은 '세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칭기즈칸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몽골에게는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바로 알랑고아이며 민족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어머니의 나라가 한국일 수밖에요. 한국은 바로 고주몽의 나라이니까요.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몽골, 또 다른 한국김운회 동양대 교수 | 기사입력 2005.08.0..

본래 마한은 압록강 이남을 거의 다 점유했다. 그러다가 낙랑·진한·변한 삼국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조령 이북과 임진강 이남을 점유하게 되었다. 진·변 두 한은 명의상으로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신·불 두 조선 유민의 자치구였다. 이들은 마한에 대해 조공과 조세를 납부했다. 그러므로 낙랑 같은 적국은 아니었다. ■ 남삼한 70여 국 삼한의 소속 국가 중에서 역사 기록에 나타난 것은 70여 개다. 마한은 원양·모수·상외·소석색·대석색·우휴모탁·신분활·백제·속로불사·일화·고탄자·고리·노람·월지·자리모로·소위건·고원·막로·비리·점비리·신흔·지침·구로·비미·감해비리·고포·치리국·염로·아림·사로1)·내비리·감해·벽비리·구사오단·일리·불미·지반·구소·첩로·모로비리·신소도·고랍·임소반·신운신·여래비리·초산도비리·일난·..

몽골·만주·반도 등에 걸친 세 민족은 체질인류학적으로 얼굴과 몸매·골격이 아주 비슷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이 유학생 3000명을 포함해 3만~4만 명에 달하지만 외모에서는 한국인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몽골반점이 공통적으로 90% 이상 나타나고, 유전자 염색체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나 ‘까치가 울면 정다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몽골에도 있다. 몽골인도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를 한다. 제기차기·공기놀이·씨름 등의 민속놀이 역시 유사하다. ■ “몽골 시조 알랑 고아는 고구려 주몽의 딸”중앙선데이, 2009.05.31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 대만에 거주하는 몽골인 사학자 한촐라 교수가 1990년 한국에 도착해 한 말이다. 한촐라 교수의 제자..

“몽골제국 시대에 왕실 간 결혼 때문에 고려는 ‘사위의 나라’로 불렸다. 이제 한국은 몽골에 ‘형(兄)’이 됐다. 오늘날 몽골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한국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 그들은 한국 TV프로·음식·음악·대중문화를 즐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 한국은 몽골인의 의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몽골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인들이 한국과 몽골 사이의 역사적 고리와, 한국이 몽골의 ‘형’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주 많다.” ■ 아시아가 서구 지성 발전에 큰 역할, ‘종교의 자유’ 가치 칭기즈칸서 유래중앙선데이, 김..

마고 창세신화는 한국선도의 천지인 정신, 홍익인간 재세이화 건국이념, 신인합일 사상의 뿌리를 알 수 있게 합니다.21세기 기후위기와 분열, 분쟁으로 인해 지금의 생존방식을 유지하며 공멸할지, 인류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공존할 것인지 절대 위기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지구와 어떤 관계 설정을 해야 할까요?우리 인류는 신의 씨앗을 지닌 천손이고, 우리 안에서 그 씨앗을 깨워낼 수 있지 않은가요? ■ [마고 4편]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와 진정한 가치 회복 ··· “마고성을 떠나온 인류, 신성의 씨앗을 가진 존재들”K스피릿, 강나리 기자, 2024.08.27 마고 창세신화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입니다. ‘오미의 화’에서 알 ..

마고 창세신화를 제대로 알면 우리가 왜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 정신을 갖게 되었는지, 널리 사람과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는지 머리가 끄덕여질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세대인 아이들도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흥미진진하게 관심을 가졌으면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고 창세신화는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옛 역사를 비롯해 각 분야 지식을 집대성한 《징심록》 상‧중‧하 3교 15지 중 〈부도지〉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도지는 한민족의 시원부터 삼국시대까지를 담고 있는데 일반서점에서 찾을 수 있고, 박제상은 역사서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니 확인하면 됩니다. ■ [선도문화 1편] 창세신화 마고를 말하다 ··· 한국인이 모르는 한국의 창세신화 ‘마고’K스피릿,강..

고조선 강역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조선의 서쪽 경계 지역이 어디였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리지린은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서기전 3세기까지는 하북성 난하였다가 서기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영토를 빼앗긴 후 요녕성 대릉하 동쪽으로 축소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오늘의 중국 요녕성 개평으로 보고 있다. 윤내현 역시 발해 북안 난하 유역을 고조선의 서쪽 경계지역으로 보고 있고, 중국에게 밀려서 한때 축소되었다고 보지만 진·한(秦漢) 때 다시 난하를 국경으로 삼았다고 보는 점이 다르다. 또 리지린은 왕검성을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봤지만 윤내현은 왕검성은 위만조선의 도읍이지 단군조선의 도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

그의 고조선 연구로 교과서에서 일제가 고조선 역사를 허구화하기 위해 만든 단군 '신화'라는 말이 사라지고, 한사군이 중국 허베이성의 난하(灤河)와 요하(遼河) 하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고조선 때부터 중국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았던 한사군의 위치 지도가 교과서에서 없어졌다. 고조선의 영토가 현재의 요하에서 난하까지로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고조선을 서기전 2333년 세워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명확하게 기술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에는 다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나랏돈을 써가며 한사군의 위치를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던 대로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은 영문판 역사책을 출판한 사실이 드..

윤 교수는 이 시기 고조선 붕괴 후 동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동예·최씨낙랑국·대방국·한(삼한)·신라·백제·가야 등의 고대국가가 들어서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다퉜다고 본다. 윤 교수의 연대 구분은 기원 전후부터 약 300년 동안을 '원(原)삼국시대'로 부르며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체제의 원시적 형태로 보는 통설과 어긋난다. 윤 교수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기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열국의 역사를 통째로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열국들의 활동 영역도 남서쪽으로는 중국 요서(遼西) 지역과 상하이(上海) 등 동부 해안지역 , 북동쪽으로는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를 만큼 광범위하다. 열국들이 고조선의 뒤를 이은 만큼, 고조선이 요하(遼河) 서쪽까지 넓은 영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