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우리겨레력사 (21)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본문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
2015. 10. 22.

[한겨레] 고조선 연구(상)
윤내현 지음/만권당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하버드대 인류학과 객원교수로 가 있던 윤내현(76)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그곳 옌칭도서관에서 고조선에 관한 방대한 중국·북한·러시아 사료들과 논문·저서들을 만났다.
오늘날 한국(한반도) 고대사에 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이 윤 교수와 당시 옌칭도서관 소장 자료들의 조우, 그 이후 그의 연구에 의해 차원을 달리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윤 교수의 고조선 연구들이 여전히 논란거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고조선의 연대와 강역, 그리고 한4군의 위치, 한민족의 형성 등 한국 고대사 전반의 기존 연구나 학설, 관념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전혀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두툼한 <고조선 연구>(1994)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고조선 연구>가 20년 만에 상(총론)·하(각론) 두 권짜리 개정판으로 다시 선보인다.
먼저 출간된 상권에서 이 원로학자는 “<한국고대사 신론>(1989) 출간 이래 필자는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면서 필자의 주장에 잘못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기본 골격에는 크게 잘못이 없지만 부분적으로는 수정해야 할 점이 다소 있음을 발견했다”면서 수정작업을 거친 이 책 내용이 “고조선에 관한 필자의 최종 결론”이라고 밝혔다.
나름 치밀한 문헌고증과 고고학의 최신 성과들을 반영한 그의 파천황적 주장들은,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새롭다. 예컨대 이런 내용들.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윤 교수는 한국 고대문화의 연원을 중국 황하유역이나 시베리아 등에서 찾는 통념화한 외부 전래설이 근거 없는 고정관념·선입견 탓이라 지적한다. 실제 고조선 지역의 신석기 시대 개시는 주변 지역보다 늦지 않았으며, 청동기 문화 개시 연대는 오히려 황하유역이나 시베리아 지역보다 앞선다는 걸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들은 보여준다.
윤 교수는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한4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일제 식민사관 이래의 일본 학자들 ‘전통’을 경계하고, 만주에 대한 자국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해 만주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싶어하는 일본 학자들과 중국 동북공정 사관의 이해 일치를 다시 상기시킨다.
윤 교수는 그러나 ‘대백제’ 같은 ‘거대제국 고조선’ 주장은 배격한다. ‘상식’과 ‘통계적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헌·고고학적 고증 신봉자인 그를 이지린 등 북한 학자들 연구와 유사점이 있다거나 통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불신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또 다른 야만일 수 있다.
윤 교수의 견해를 비판하거나 반박하는 건 자유지만, 먼저 그가 이 책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제시해놓고 있는 고조선 연구 사료 판별법, 연구방법에 관한 예시들을 읽어 보라. 그러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1)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 2015. 10. 22.
고조선과 동시대 쓰여진 中 사서토대 복원.. "부여·고구려·동예 등 제후국에 의해 승계
위만조선·한사군 포함시킨 것은 명백한 오류.. 단군조선, 한반도·만주 토착인이 세운 국가"
■ 잃어버린 고대사.. 새로 쓴 고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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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지음/만권당/3만5000원 |
고조선 연구(상)/윤내현 지음/만권당/3만5000원
우리는 사실상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대사 관련 기록물들이 거의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십 차례 전란과 일본 등 외세 침략으로 고대사 기록물들이 불타 없어졌거나 강탈당했다. 그래서 고대사는 ‘뜨거운 감자’인 광복 전후사만큼이나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껏 전해오는 고조선 관련 기록물은 고려 말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정도다. 세종실록 등 조선시대 사서에 고조선이 나오긴 하나 대부분 고려 때 것들을 베껴쓴 것으로 사료적 가치는 별로 없다. 고대사 전문가인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77)가 쓴 ‘고조선 연구’는 중국 쪽 사서를 토대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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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가 중국 사서들을 토대로 만든 고조선 후기 강역도. 남쪽은 지금의 중국 베이징 부근까지 이르고 있다. 만권당 제공 |
윤 교수는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 시절 중국 사서와 북한 쪽 사서들을 접하고선 아연실색했다. 고대사 부분이 지금 남한에서 통용되는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윤 교수는 40여년간 고대사 연구에 몰입해 1994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한 데 이어 21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
윤 교수는 국내 사학계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삼국사기 등을 배제했다. 이들은 고조선 붕괴 이후 13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쓰여졌기에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는 게 윤 교수 주장이다. 윤 교수는 고조선이 존속했던 동시대나 붕괴 직후 쓰여진 중국 쪽 사서들을 토대로 고조선사를 복원해냈다.
윤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후한서, 삼국지, 송사, 남사, 요사, 양사 등 수백권을 섭렵했다. 이 가운데는 북한 학자 리지린(사망 추정)이 쓴 고조선연구(1964) 등도 있다. 윤 교수는 서문에서 고조선이야말로 한민족 사회와 문화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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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교수가 중국 사서를 토대로 작성한 위만조선과 한사군 위치를 그린 지도. 만권당 제공 |
윤 교수에 따르면 고조선 건국은 서기전 24~23세기 무렵이다. 붕괴 시기는 서기전 1세기 무렵으로 2300여년간 존속했다. 동시대 중국에서는 요, 순, 하, 상, 서주, 춘추·전국, 진, 서한 시대였다. 중국 왕조는 존속 기간이 길어야 200~300년 정도였으나 고조선은 2300여년이나 존속했다. 한 왕조가 이토록 오래 존속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변화가 적어 발전이 더뎠을 것이다.
종래 사학자들이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에 있던 작은 정치집단으로 서술하면서 부여, 고구려, 읍루, 발해 등 만주에서 일어선 나라들을 한국사에 포함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라고 윤 교수는 지적한다.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근거했다면 중국 동북쪽 나라들이 한국사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사의 출발점은 신라가 되어야 하고 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이라는 체계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조선사를 복원해보면 한민족 근거지가 만주였다는 게 더욱 분명해진다. 윤 교수는 “혹시 한국사의 영역을 만주까지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을 재구성했다면 이는 또하나의 역사 왜곡으로, 역사학자로서 큰 죄를 짓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특히 모든 한국사 개설서에서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고조선에 포함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라고 했다.
단군조선은 한반도와 만주의 토착인들(이들이 한민족을 형성했다)이 세운 한민족 국가이고, 위만조선은 중국 서한의 망명객 위만(衛滿)이 세운 나라였다. 그리고 한사군은 서한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설치한 서한의 행정구역이었다. 따라서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위치도 다르다. 이들을 하나의 명칭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조선은 위만조선에 의해 계승된 게 아니라 고조선의 제후국 즉 부여, 고구려, 읍루, 옥저, 최씨낙랑국, 동예, 한(韓)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 ‘조선열전’에 위만조선을 포함한 것은 서한의 영토였기에 그랬다고 그는 주장한다. 당시 중국 왕조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고조선을 사기에 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기자와 위만은 같은 중국 망명객이었지만 사기에는 기자에 대한 독립된 기술이 없다. 이것은 기자와 위만의 성격이 달랐음을 입증한다.
고조선의 강역 역시 중국 사서들의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와 만주 전역이었다. 서쪽으로는 베이징 근처의 난하 유역에 이르렀고 북쪽은 아르군강, 동북쪽은 흑룡강, 남쪽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에 이르렀다는 게 확인된다. 마한, 진한, 변한 즉 삼한(진국)의 위치도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지금의 요동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인정받는 이병도 역시 한민족 기원을 천신족(天神族) 환웅과 곰 토템족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꼬집었다. 중국 쪽 사서들을 검토한 결과 우리 고대사가 너무 심하게 왜곡돼 있다는 게 윤 교수의 결론이다.
세계일보, 정승욱 선임기자, 잃어버린 고대사.. 새로 쓴 고조선사, 2015. 10. 23.
<자료출처>
(1)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
(2) 잃어버린 고대사.. 새로 쓴 고조선사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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