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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9) 10대 산상제(山上帝, 산상대제, 산상왕, 197년-227년) 209년 환도성 천도 본문

여러나라시대/고구려(고려)

1. 고구려(9) 10대 산상제(山上帝, 산상대제, 산상왕, 197년-227년) 209년 환도성 천도

대야발 2025. 11. 9. 22:42

 

 

 

 

《삼국사기》 권 제16고구려본기 제4  산상왕(山上王) 

 

산상왕이 왕위에 오르다 ( 197년 05월 )

산상왕(山上王)은 이름이 연우(延優) 또 다른 이름은 위궁(位宮)이다.이고,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위서(魏書)』에는 “주몽의 후손 궁(宮)이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이 태조대왕[大祖]이다. 지금의 왕은 이 태조의 증손인데 역시 태어나면서 사람을 보는 것이 증조 궁과 비슷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비슷한 것’을 불러 ‘위(位)’라고 하므로 이름을 위궁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었기에 연우가 왕위를 이었다.

 

처음에 고국천왕이 죽었을 때에 왕후 우씨가 비밀리에 〔왕의〕 상(喪)을 알리지 않고 밤에 왕의 동생 발기(發歧)의 집으로 가서 말하기를, “왕이 후손이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이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발기는 왕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정하는 운수는 돌아가는 곳이 있으므로 가볍게 의논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부인이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어찌 예(禮)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후는 부끄러워하며 곧 연우의 집으로 갔다. 연우가 일어나서 의관을 갖추고, 문에서 맞이하여 자리로 안내하고 술자리를 베풀었다. 왕후가 말하기를, “대왕이 돌아가셨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발기가 연장자로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겠으나, 첩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난폭하고 거만하며 무례하여 당신을 보러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연우가 더욱 예의를 갖추며 친히 칼을 잡고 고기를 썰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다쳤다. 왕후가 치마끈을 풀어 다친 손가락을 싸매주었다. 돌아가려 할 때 연우에게 일러 말하기를, “밤이 깊어서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까 염려되니, 그대가 나를 궁까지 바래다주시오.”라고 하였다. 연우가 그 말에 따랐다. 왕후가 손을 잡고 궁으로 들어가서, 다음날 새벽이 되자 선왕의 왕명이라 속이고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연우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발기가 이를 듣고 크게 화가 나서 병력을 동원해서 왕궁을 포위하고 소리쳐 말하기를, “형이 죽으면 아우가 잇는 것이 예이다. 네가 차례를 뛰어넘어 왕위를 빼앗는 것은 큰 죄이다. 마땅히 빨리 나오너라. 그렇지 않으면 처자식까지 목베어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연우가 3일간 문을 닫고 있고, 나라 사람들도 또한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발기는 〔상황이〕 어려운 것을 알고 처자를 거느리고 요동으로 도망가서 태수 공손탁(公孫度)을 보고 알리기를, “나는 고구려 왕 남무(男武)의 친동생입니다. 남무가 죽고 아들이 없자 나의 동생 연우가 형수 우씨와 모의하고 즉위하여 천륜의 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 때문에 분하여 상국에 투항하러 왔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병사 30,000명을 빌려주어, 그들을 쳐서 난을 평정할 수 있게 해주소서.”라고 하였다. 공손탁이 그에 따랐다.

 

연우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 병력을 이끌고 막게 하니, 한의 군사가 크게 패배하였다. 계수가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배자를 추격하니, 발기가 계수에게 호소하여 말하기를, “네가 차마 지금 늙은 형을 해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계수는 형제간의 정이 없었을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연우가 나라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일이지만 당신은 한때의 분노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발기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럽고 후회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달아나 배천(裴川)에 이르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계수가 소리 내어 슬피 울며 그 시체를 거두어 풀로 덮어 매장하고 돌아왔다.

 

왕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계수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고 가족[家人]의 예로 대접하고 또 말하기를, “발기가 다른 나라에 병사를 청하여 자신의 나라를 침범하였으니 죄가 막대하다. 지금 그대가 그를 이기고도 놓아주고 죽이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거늘, 그가 자살하자 통곡하며 매우 슬퍼하는 것은 도리어 과인더러 도리가 없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계수가 안색이 바뀌며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지금 한 마디 아뢰고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계수가 대답하기를, “왕후가 비록 선왕의 유명으로 대왕을 세웠더라도, 대왕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으신 것은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경의 의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은 대왕의 미덕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시신을 거두어 둔 것입니다. 어찌 이것으로 대왕의 노여움을 당하게 될 것을 헤아렸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일 어진 마음으로 악을 잊으시고, 형을 상례(喪禮)로써 장사지내신다면 누가 대왕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까? 신은 이미 말을 하였으니 비록 죽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관부에 나아가 죽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앞자리에 앉아 따뜻한 얼굴로 위로하며 말하기를, “과인이 불초하여 의혹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 그대의 말을 들으니 진실로 잘못을 알겠다. 그대는 스스로 자책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왕자가 절하니 왕도 역시 절하였으며 매우 기뻐하며 자리를 파하였다.

 

 

우씨를 왕후로 삼다. ( 197년 09월 )

〔원년(197)〕 가을 9월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발기의 시신을 받들어 모셔오게 하여, 왕의 예로써 배령(裴嶺)에 장사지냈다. 왕이 본래 우씨로 인하여 왕위를 얻었으므로 다시 장가들지 아니하고 우씨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

 

 

환도성을 쌓다 ( 198년 02월 )

2년(198) 봄 2월에 환도성(丸都城)을 쌓았다.

 

 

사면령을 내리다 ( 198년 04월 )

〔2년(198)〕 여름 4월에 나라 안의 두 가지 사형죄 이하는 사면하였다.

 

 

질양에서 사냥하다 ( 199년 09월 )

3년(199) 가을 9월에 왕이 질양에서 사냥을 하였다.

 

 

산상왕이 자식을 얻는 꿈을 꾸다 ( 203년 03월 )

7년(203) 봄 3월에 왕이 아들이 없어 산천에 기도하였다. 이달 15일 밤에 꿈에서 하늘이 말하기를, “내가 너의 소후(少后)로 아들을 낳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왕이 잠에서 깨어나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꿈에 하늘이 나에게 이와 같이 타일렀는데 소후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느냐?”라고 하였다. 파소(巴素)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뜻은 예측할 수 없으니 왕께서는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을파소가 죽고 고우루가 새로 국상이 되다 ( 203년 08월 )

〔7년(203)〕 가을 8월에 국상 을파소가 죽으니 나라 사람들이 통곡하였다. 왕이 고우루(高優婁)를 국상으로 삼았다.

 

 

산상왕이 주통촌 여자를 찾아가다 ( 208년 11월 )

12년(208) 겨울 11월에 하늘에 제사지낼 돼지[郊豕]가 달아났다. 담당자가 이를 쫓아서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렀는데 머뭇거리다가 잡지 못하였다. 20세쯤 된 여자가 있어 얼굴이 아름답고 요염하였는데, 웃으며 앞서서 돼지를 잡은 다음에야 쫓던 사람이 잡을 수 있었다. 왕이 듣고 이상하게 여겨, 그 여자를 보려고 신분을 감추고 가서 밤에 여자의 집에 이르러 시종을 시켜 알렸다. 그 집에서는 왕이 온 것을 알고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왕이 방으로 들어가 여자를 불러서 상관하려 하자, 그 여자가 아뢰기를, “대왕의 명을 감히 피할 수 없으나, 만약 다행히 자식이 생기면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자정 무렵이 되어 왕이 일어나 궁으로 돌아왔다.

 

 

왕후가 주통촌 여자를 해치려 하다 ( 209년 03월 )

13년(209) 봄 3월에 왕후가 왕이 주통촌 여자에게 행차한 것을 알고 이를 질투하여, 몰래 병사를 보내 죽이려고 하였다. 그 여자가 듣고 알게 되어 남자 옷을 입고 도망해 달아나니 추격하여 해치려고 하였다. 그 여자가 묻기를, “너희들이 지금 와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왕의 명령이냐, 왕후의 명령이냐? 지금 내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실로 왕이 남겨준 몸이다. 내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왕의 아이[王子]도 죽일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병사들이 감히 해치지 못하고 와서 그 여자가 한 말을 보고하였다. 왕후가 화가 나서 반드시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 그 여자의 집에 가서 묻기를, “네가 지금 임신하였는데 누구의 아이냐?”라고 하였다. 〔여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첩은 평생 형제와도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히 다른 성씨의 남자를 가까이 하였겠습니까?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는 실로 대왕이 남기신 몸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위로와 증여를 매우 후하게 하고 이내 돌아와 왕후에게 말하니 〔왕후가〕 결국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왕자 교체가 태어나다. ( 209년 09월 )

〔13년(209)〕 가을 9월에 주통촌(酒桶村)의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왕이 기뻐서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늘에 제사지낼 돼지[郊豕]의 일로 시작하여 다행스럽게 그 어미를 얻었으므로 그 아들의 이름을 교체(郊彘)라 하고, 그 어미를 세워 소후를 삼았다. 처음에 소후의 어머니가 아이를 배고 아직 출산하지 않았는데 무당[巫卜]이 점을 쳐서 말하기를,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다.”라 하였다. 어머니가 기뻐하고 아이를 낳자 이름을 후녀(后女)라 하였다.

 

 

환도로 도읍을 옮기다 ( 209년 10월 )

〔13년(209)〕 겨울 10월에 왕이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교체를 왕태자로 삼다 ( 213년 01월 )

17년(213) 봄 정월에 교체(郊彘)를 세워 왕태자로 삼았다.

 

 

후한의 평주사람 하요 등이 투항해오다. ( 217년 08월 )

21년(217) 가을 8월에 한(漢)의 평주(平州) 사람 하요(夏瑤)가 백성 1천여 가(家)를 데리고 투항해 오니 왕이 이들을 받아들여 책성(柵城)에 안치하였다.

 

 

지진이 나고 혜성이 나타나다 ( 217년 10월 )

〔21년(217)〕 겨울 10월에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났으며, 혜성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일식이 일어나다 ( 219년 02월 )

23년(219) 봄 2월 임자 그믐에 일식이 일어났다.

 

 

기이한 새가 왕궁 뜰에 모이다 ( 220년 04월 )

24년(220) 여름 4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 뜰에 모여들었다.

 

 

연불이 태어나다 ( 224년 )

28년(224)에 왕손 연불(然弗)이 태어났다.

 

 

산상왕이 사망하다 ( 227년 05월 )

31년(227) 여름 5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산상의 능[山上陵]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산상왕이라 하였다.(1)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산상제(山上帝) 원년(197년) 아우 계수를 보내어 공손탁을 쳐부수고, 현도와 낙랑을 쳐서 멸함으로써 요동이 모두 평정되었다.(2)

 

 

 

■ 요동성의 상실과 제2환도성으로 천도

 

공손탁은 한나라 말기의 영웅이었다. 그는 한나라가 망할 징조를 읽고 요동태수 자리를 얻은 뒤 요동에서 왕이 되기를 꿈꾸었다. 이때 요동의 본토는 차대왕이 점령한 뒤였기 때문에 고구려의 소유였다. 한나라 요동은 지금의 난주로 옮겨져 영토가 매우 협소했기 때문에, 공손탁은 항상 요동 땅의 고구려 영역을 엿보고 있었다. 그런 중에 발기의 항복을 받자 매우 기뻐하며, 정예병 3만 명을 동원한 뒤 발기의 투항군을 선봉대로 삼아 고구려에 침입했다. 그는 차대왕 시절 북벌군의 대본영이었던 제1환도성에 들어가 읍락을 불사르고 휩쓴 다음, 비루강 쪽으로 향하여 졸본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연우왕은 동생인 계수를 신치 즉 전군 총사령관으로 삼고 항전하여 한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좌원까지 추격했다. 곤궁해진 발기는 계수에게 "계수야! 네가 어찌 큰형을 죽이려하느냐? 불의한 연우를 위해 큰형을 죽이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계수가 "연우도 불의하지만, 너는 외국에 항복하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조상과 부모의 강토를 유린했으니 연우보다 더 불의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크게 후회한 발기는 배천(비류강)에 가서 자살했다.

 

발기는 일시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매국의 죄를 지었다. 계수의 한마디에 양심이 돌아와서 자살했지만, 그가 팔아버린 오열홀 즉 요동성은 회복되지 못하고 공손탁의 소유가 되었다. 결국 공손탁은 요동왕을 자칭하고 요동 전역을 요동 · 요중 · 요서 3군으로 나누고, 바다 건너 동래의 여러 군(지금의 연태 등지를 포함)을 점령하여 한때 위세를 떨쳤다. 연우왕은 지금의 환인현 혼강 상류인 안고성으로 환도성을 옮기고 그곳으로 천도했다. 이곳이 제2환도성이다.(3) 

 

 

 

<주>

 

(1) 삼국사기 < 한국 고대 사료 DB

 

(2)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563쪽

 

(3) 조선상고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249-251쪽(《조선상고사》 제5편(2) 고구려의 중쇠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의 대 중국 패전 1. 발기의 반란과 제1환도성(지금의 개평)의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