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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6) 7대 차대제(次大帝, 차대왕, 146-165년) 165년 10월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죽임. 본문

여러나라시대/고구려(고려)

1. 고구려(6) 7대 차대제(次大帝, 차대왕, 146-165년) 165년 10월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죽임.

대야발 2025. 11. 5. 16:26

 

 

 

 

《삼국사기》 권 제15고구려본기 제3  차대왕(次大王) 

 

차대왕이 즉위하다 ( 146년 12월 )

차대왕(次大王)은 이름이 수성(遂成)이고 태조대왕의 친동생이다. 용감하고 씩씩하여 위엄이 있었지만 인자함은 적었다. 태조대왕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그 때 나이가 76세였다.

 

 

관나부의 패자 미유를 좌보로 삼다 ( 147년 02월 )

2년(147) 봄 2월에 관나(貫那)의 패자(沛者) 미유(彌儒)를 좌보(左輔)로 삼았다.

 

 

우보 고복장을 죽이다 ( 147년 03월 )

〔2년(147)〕 3월에 우보(右輔) 고복장(髙福章)을 죽였다. 고복장이 죽음에 임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애통하고도 원통하도다! 내가 그 당시 선왕의 가까운 신하로서 어찌 반란을 일으키려는 무리를 보고도 잠자코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한스럽게도 선왕께서 내 말을 듣지 않으셔서 이 지경에 이르렀도다. 지금 임금은 이제 막 왕위에 올라 마땅히 정치와 교화를 새롭게 하여 백성에게 보여야 할 것이거늘, 의롭지 않게도 한 사람의 충신을 죽이려 하는구나. 내가 무도(無道)한 이때에 사는 것은 빨리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바로 처형하니,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분하고 애석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좌보 목도루가 사직하고 환나부의 우태 어지류를 좌보로 삼다 ( 147년 07월 )

〔2년(147)〕 가을 7월에 좌보(左輔) 목도루(穆度婁)가 아프다는 핑계로 나이가 많다며 벼슬자리에서 물러났다. 환나(桓那)의 우태(于台) 어지류(菸支留)를 좌보로 삼고, 작위[爵]를 올려 대주부(大主簿)로 삼았다.

 

 

비류나부의 양신을 중외대부로 삼다 ( 147년 10월 )

〔2년(147)〕 겨울 10월에 비류나(沸流那)의 양신(陽神)을 중외대부(中畏大夫)로 삼고 작위를 올려 우태(于台)로 삼았다. 모두 왕의 옛 친구들이다.

 

 

지진이 일어나다 ( 147년 11월 )

〔2년(147)〕 11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태조대왕의 맏아들 막근을 살해하자 그 동생 막덕이 자살하다 ( 148년 04월 )

3년(148) 여름 4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서 태조대왕의 맏아들인 막근(莫勤)을 죽였다. 그의 동생인 막덕(莫德)은 화가 잇따라 미칠까 두려워 스스로 목을 맸다.

 

 

태조대왕이 차대왕에게 선위한 것에 대한 사론

논하여 말한다. 옛날 송(宋)의 선공(宣公)이 그의 아들인 여이(與夷)를 세우지 않고 동생인 목공(繆公)을 세웠다. 작은 일을 차마 하지 못하여 〔나라의〕 큰 계책을 어지럽혀 여러 대의 환난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춘추(春秋)』에는 “정도를 지킴을 크게 여긴다[大居正].”라고 하였다. 지금 태조왕이 의(義)를 알지 못하고 왕위를 가볍게 여겨 어질지 못한 동생에게 주어 화(禍)가 충신 한 사람과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미쳤으니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가.

 

 

무당이 나쁜 징조를 사실대로 말하다가 죽임을 당하다 ( 148년 07월 )

〔3년(148)〕 가을 7월에 왕이 평유의 들판[平儒原]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흰 여우가 따라오며 울자 왕이 이를 쏘았으나 맞지 않았다. 무당[師巫]에게 물으니 〔무당이〕 말하기를, “여우라는 것은 요사스런 짐승으로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하물며 그 색이 희니 더욱 괴이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하고자 하는〕 말을 타일러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요사스럽고 괴이한 것을 보여주어 인간 세상의 군주로 하여금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하여 스스로 새로워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 만약 덕을 닦는다면 화를 바꾸어 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흉하면 흉하고, 길하면 길한 것이지, 네가 이미 요사스럽다고 하였다가 또 복이 된다고 하니 어찌 그렇게 기만하느냐?”라고 하고 마침내 그를 죽였다.

 

 

일식이 일어나다 ( 149년 04월 )

4년(149) 여름 4월 정묘 그믐에 일식이 일어났다.

 

 

일자가 차대왕에게 거짓으로 말하다 ( 149년 05월 )

〔4년(149)〕 5월에 다섯 개 별이 〔모두〕 동쪽 하늘에 모였다. 일자(日者)는 왕이 화낼까 두려워하여 속여 말하기를, “이것은 임금님의 덕이고 나라의 복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였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 149년 12월 )

〔4년(149)〕 겨울 12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여름에 서리가 내리다 ( 153년 06월 )

8년(153) 여름 6월에 서리가 내렸다.

 

 

여러 기상 이변이 일어나다. ( 153년 12월 )

〔8년(153)〕 겨울 12월에 천둥이 치고, 지진이 일어났다. 그믐에는 객성(客星)이 달을 범하였다.

 

 

혜성이 나타나다 ( 158년 02월 )

13년(158) 봄 2월에 혜성[星孛]이 북두에 나타났다.

 

 

일식이 일어나다 ( 158년 05월 )

〔13년(158)〕 여름 5월 갑술 그믐에 일식이 일어났다.

 

 

일식이 일어나다 ( 165년 01월 )

20년(165) 봄 정월 그믐에 일식이 일어났다.

 

 

태조대왕이 별궁에서 사망하다 ( 165년 03월 )

〔20년(165)〕 3월에 태조대왕이 별궁에서 돌아가셨다. 나이가 119세였다.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죽이다 ( 165년 10월 )

〔20년(165)〕 겨울 10월에 연나(椽那)의 조의(皂衣) 명림답부(明臨荅夫)가 백성이 견디어내지 못함으로 왕을 죽였다. 이름을 차대왕이라 하였다.(1)

 

 

 

《조선상고사》 

 

명림답부의 집권

 

단재 신채호선생은 명림답부의 집권은 고구려 귀족 공화제의 나라를 회복한 것이라고 보았다.

 

차대왕은 대조의 양위를 받아 20년간 전제정치를 하다가 연나조의(연나부 조의)인 명립답부에게 피살됐다. 〈고구려본기〉 차대왕 편이 간략하고 빠진 데가 많아서, 전제정치의 정도와 피살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에, 차대왕 편의 전문을 번역해서 실은 뒤 이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

 

이상이 〈고구려본기〉 차대왕 편의 전문이다. 끝부분에서 "명림답부가 백성들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왕을 시해하고"라고 했지만, 그 앞의 기사를 살펴보면 백성들이 견디지 못할 만한 정치는 하나도 없다. 고복장은 차대왕의 음모를 고발한 사람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고, 목도루는 차대왕과 막근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인 사람이기 때문에 쫓아낸 것이고, 신관은 태조의 꿈을 야릇하게 풀이해서 차대왕을 해하려 한 사람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고, 막근 형제는 차대왕과 대립하던 원수이기때문에 죽인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참혹하고 잔인하다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사적인 보복이고 인민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것이 다 차대왕 2년에서 3년 사이의 일이니, 약 18년 뒤인 차대왕 20년에 발생한 명림답부 반란의 유일한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이외의 기록은 일식 · 지진 · 우주현상 등에 관한 것들뿐이다. 이런 천문지리의 변화는 차대왕 정치의 시시비비와 관게없는 일이므로, 인민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럼 차대왕이 망하고 명림답부가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 차대왕이 망한 뒤에 좌보 어지류가 대신들과 함께 차대왕의 동생인 백고(신대왕)에게 왕위를 권유했다. 어지류는 처음부터 차대왕을 도와 왕위 찬탈을 계획한 수괴다. 대신들이란 것은 아마 미유 · 양신 등일 것이다. 차대왕이 즉위하기 10여 년 전부터 차대왕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왕위 찬탈을 계획했던 사조직이 차대왕과 더불어 20년간이나 부귀를 누리다가 하루 아침에 배신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 원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고구려는 원래 1인 전제주의의 나라가 아니라 귀족 공화제의 나라였다. 국가의 기밀사항도 왕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왕과 5부 대신들의 회의로 결정했다. 형벌 같은 것도 회의의 결정에 따라 처리했다. 차대왕은 부왕을 가두고 신앙의 중심인 신관을 죽인 사람이다. 그는 어지류 등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왕위에 오른 뒤에는 그들을 무시하고 군주권의 독재를 주장하며 매사를 독단적으로 집행했다. 그러자 연나부 선배의 영수인 명림답부가 자기 부의 선배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어지류 등이 이에 내응한 뒤, 태조의 붕어를 기회로 삼아 차대왕을 살해하고 귀족 공화제의 나라를 회복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림답부가 조선 역사상 최초의 혁명가라고 말하지만, 혁명이란 것은 역사적 진보를 수반하는 변동을 가리키는 것이니, 귀족공화제를 회복한 반란이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겠는가. 명림답부는 일시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효웅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혁명가라고 할 수는 없다.(2)

 

 

 

 

<주>

 

(1) 삼국사기 < 한국 고대 사료 DB

 

(2)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시공사, 232~240(제5편(1)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집권 1. 차대왕의 20년 전제정치)

 

 

<참고자료>

 

 

‘고구리’로 불러야! ‘고구려’는 중국 동북공정용 용어: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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