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신라(20) 28대 진덕왕(眞德王, 647-654년) 본문
《삼국사기》 卷第 五 新羅本紀 第 五 眞德王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 진덕왕(眞德王)
진덕여왕이 당 태종에게 태평가를 지어 보내다
진덕왕(眞德王)
제28대 진덕여왕이 즉위하여 친히 태평가(太平歌)를 짓고 비단을 짜서 [그 가사를] 수놓아 사신으로 하여금 당(唐)에 가서 이것을 바치게 하였다다른 기록에 춘추공(春秋公)에게 명하여 사신으로 삼아 [당에] 건너가서 청병케 하자 태종(太宗)이 기뻐하며 소정방(蘇廷方)을 보내기로 하락하였다 운운하는 것은 모두 오류이다. 현경(現慶) 이전에 춘추가 이미 즉위하였고 현경 경신(庚申)은 태종대가 아니고 오히려 고종(高宗)대이며 정방이 [신라에] 온 것은 현경 경신년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비단을 짜 무늬를 놓아 보냈다고 함은 청병 때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진덕여왕 때라야 마땅하다. 아마도 이때는 김흠순(金欽純)을 석방하여 달라고 청할 때의 일이다. 당나라 임금이 기뻐하며 그것을 포상하고 [진덕여왕을] 계림국왕(鷄林國王)으로 고쳐 책봉하였다.
태평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대당(大唐)이 왕업을 개창하니, 높고 높은 임금의 모책(謀策)은 더욱 창성하여진다.
전쟁을 그치니 군사들은 안정을 얻게 되고, 문치를 숭상하니 백왕(百王)의 뒤를 잇게 되었다.
하늘을 통령(統領)하매 고귀한 비가 내리고, 만물을 다스리니 물체마다 광채를 머금었다.
깊은 인덕은 일월(日月)과 비교될 만하고, 순환하는 운수는 우당(虞唐)의 세(世)로 향한다.
깃발의 번쩍임은 어찌 그리 빛나고, 징소리와 북소리 어찌 그리 웅장한가.
외이(外夷)로서 황명(皇命)을 어기는 자는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순후(淳厚)한 덕풍은 어두운 곳이나 밝은 곳이나 다 모여들며,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다투어 상서로움을 바치네.
사시(四時)는 옥촉(玉燭)과 같이 순탄하고, 칠요(七曜)는 널리 만방을 돌아다닌다.
산악[嶽]에서 보필할 재상을 내리고, 임금은 충량한 신하에게 맡기었네.
오제삼황(五帝三皇)의 덕을 하나로 하여, 우리 당나라 임금을 밝게 한다.
남산 우지암회의에서 알천공의 완력과 유신공의 위엄이 빛나다
왕의 시대에 알천공(閼川公)·임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이다 ·염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는데 이들은 남산(南山)에 있는 우지암(亐知巖)에 모여 나라의 일을 의논하였다. 이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좌중에 뛰어드니 여러 공들이 놀라 일어섰는데 알천공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호랑이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어쳐서 죽였다. 알천공의 완력이 이와 같아서 윗자리에 앉았으나 모든 공들은 유신공의 위엄에 복종하였다.
신라의 사령지
신라에는 네 곳의 신령한 땅[四靈地]이 있어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때에 대신들이 그곳에 모여서 의논을 하면 일이 반드시 이루어졌다. [사령지의] 첫째는 동쪽의 청송산(靑松山)이고, 둘째는 남쪽의 오지산(亐知山)이다. 셋째는 서쪽의 피전(皮田)이고, 넷째는 북쪽의 금강산(金剛山)이다. 이 왕 때에 비로소 설날 아침의 조례[正旦禮]를 행하였고, 또한 시랑(侍郞)의 칭호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하였다.(2)
<자료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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