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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아직도 우리 역사 학계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고조선(古朝鮮)의 강역(疆域) 문제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우리 고대사는 그 뿌리인 출발부터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우리 상고사(上古史)가 이처럼 부실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사료(史料) 부족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후반 일연(一然) 스님이 쓴 (三國遺事)이며, 그나마 책 한 장 분량에 그친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는 우리 고대사를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보일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로처럼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 사학계(史學界)는 일제가 연구해 놓은(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해 놓은) 고대사(고조선사)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동부여의 건국과 위치 지금까지 필자는 고조선 말기부터 붕괴 이후까지의 부여 분열과 그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고대에 부여는 동부여 · 북부여 · 졸본부여 · 부여 등이 있었다.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거수국으로서 하나의 부여만 존재하였으나 고조선이 붕괴된 뒤 그 지배귀족과 거주민들이 여러 곳으로 이주함에 따라 여러 곳에 부여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위에 언급된 여러 부여 가운데 맨 끝의 그냥 부여는 고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원래의 부여로서 그 위치는 지금의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고조선이 붕괴된 뒤 이 부여는 지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북부여는 부여의 지배세력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던 부여로서 원래의 부여보다는 다소 북쪽에 있었지만 그 위치도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