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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동부 만주 삼림 속에서 살던 여진족은, 서 만주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 요 왕조가 운영하던 2원 통치조직의 효용성을 일찍이 체득했고, 1126년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했다. 중국 역사상 1126년이란 한족이 만주족 왕조에 의해 두 번째로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사건을 상징한다. 고려와 금 나라의 창건자들은 모두 옛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왕건은 신생왕국을 고구려를 본 따 고려라 불렀고, 금 나라는 실제로 만주 전체를 점거했다. 금사(金史) 기록을 보면, 완안부 시조 자신이 본래 고려(혹은 고구려)에서 왔고,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려를 신라의 후계자로 상정하여, 같은 시대의 발해 (689-926) 237년 역사를 제외한 채, 통일신라 (677-935)..

만주 쥬신의 시조이신 김함보는 금나라 태조(阿骨打)의 조상으로 『대금국지(大金國志)』,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는 신라(新羅)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김함보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주 김씨이자 안동(安東) 김씨의 시조인 경순왕(敬順王 : 김부)의 후예라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후손들이 일부는 금강산으로(마의태자 이야기), 또는 강원도 철원 땅으로, 일부는 장백산(백두산)으로 들어가서 후일을 기약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요. 시기적으로 봐서는 신라 부흥운동이 실패하자 잔여세력들이 장백산으로 만주로 이동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요.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사라진 ‘영원한 신라’의 꿈 : Millennium Sh..
말갈이라 부르든 여진이라 부르든 간에 그들과 우리는 배달 고조선 고구려를 거쳐 이어온 같은 강역의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같은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들과 우리는 ‘친척 집안’이며 일가(一家)이다. 금나라의 뿌리가 신라에서 나왔고 그 백성들이 고구려와 발해 사람들이었고 그 땅이 우리 선조들이 살던 곳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역사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전향적인 연구와 인식이 절실하다. ■ 금나라, 청나라를 세운 신라의 후예신완순 입력 2016.04.05 11:31수정 2018.11.19 23:04 금나라는 대륙 북부를, 청나라는 모두 차지했다.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여진 금(金)나라... 소중화를 자처한 조선시대의 사대주의 선비들은 소위 중화와 오랑캐라는 화이관(華夷觀)의 이분..

여기서 꼭 해두어야 할 말은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로 알던 발해와 요 그리고 금의 역사는 우리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주의 유학자들은 감히 중화를 침범한 요와 금나라를 우리나라 역사 속에 끌어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발해는 겨우 우리 역사라 했으나 요나 금은 우리 역사의 울타리 밖으로 몰아낸 것이다.지금의 중국사가 성립된 것은 청나라 때의 일이다 그 이전의 중국사는 이른바 중화민족의 역사였다. 몽고는 물론 거란(요), 여진(금)의 역사는 중국사가 아니었다. 이들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것은 청나라였다. 청은 후금이요 여진의 나라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 중국 금나라 시조된 마의태자의 후손박성수, 2006-10-25 신라 최후의..

함보가 신라의 선진문명을 가지고 여진 지역으로 가서 추대를 받아 수령에 취임했고, 그 후손이 여러 여진족을 통일하여 세운 게 금나라입니다. 당연히 신라인이 세운 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라면 여진족 중에 건국을 주도한 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보와 그 후손 아골타는 신라인이라는 것이 청나라 이전 중국문헌에 보이는 공통된 견해입니다.” 중원 대륙에서 발견되는 삼한시대 관련 유적 -낙랑군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겠지만, 지난번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주제를 ‘삼국시대’로 옮기겠습니다.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 삼한(三韓: 마한ㆍ변한ㆍ진한)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우리 민족의 주요 터전이 발해만에서 시작되는 중원 대륙이었다면..

거란은 송나라와 관계가 좋았던 고려와 전쟁을 세 차례 치르는데 이때 거란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했다. 집안에 있는 고구려 무덤 벽화 중에는 장구의 원형인 요고(腰鼓)를 그린 것이 있는데, 거란의 무덤 벽화에도 우리의 장구와 똑같은 북이 그려져 있다. 이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의 패자가 된 것이 여진족의 아골타(阿骨打)가 세운 금나라다. 그런데 금나라 역사를 기록한 ‘금사(金史)’는 아골타의 6대조를 고려에서 온 김함보(金函普)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금나라와 한국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홍산문명 VS 황하문명 4000년 전쟁내몽고 횡단 4000km 학술 르포 中 동북공정 무너뜨릴 칼과 방패를 찾아서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입력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