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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우리 국사교과서는 우리 민족이 광대한 중원 대륙에서 중국 한족(漢族)과 투쟁하며 전개해온 자랑스러운 실제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안에서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왜곡ㆍ조작된 엉터리 역사를 배우다 보니 우리 국민은 위대했던 역사에 대해 아무런 자긍심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자기들의 위대했던 역사를 축소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았습니까? 자기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피해의식에 가득 찬 엉터리 역사를 배우는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심백강 원장은 사료를 통해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20여 년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선 중국측 1차 사료 발굴을 통해 우리 고대사를 정리하는 작업에..

“발해만에서 동북쪽 일대가 활동 영역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부근이 고조선의 중심지입니다. 송나라 때 태평환우기>의 기록에 여기에 ‘조선성(城)’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로는 증거가 부족한데, 사고전서>에서 노룡의 서쪽 북경 부근에 조선하(朝鮮河)가 있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조선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혹은 압록강 부근이 아니라, 발해만 부근을 중심으로 노룡과 북경-천진을 아우르는 지역,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오늘날의 보정시까지 이어진 하북성 일대라는 말씀이신데요. “그 일대가 우리 민족, 즉 동이족(조선족)의 활동무대였습니다. 물론 동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조양시를 포함하는 ..

아직도 우리 역사 학계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 중 하나가 바로 고조선(古朝鮮)의 강역(疆域) 문제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면서 우리 고대사는 그 뿌리인 출발부터 뒤엉켜 있는 형국이다. 우리 상고사(上古史)가 이처럼 부실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사료(史料) 부족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후반 일연(一然) 스님이 쓴 (三國遺事)이며, 그나마 책 한 장 분량에 그친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료는 우리 고대사를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보일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로처럼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 사학계(史學界)는 일제가 연구해 놓은(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해 놓은) 고대사(고조선사)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낙랑은 고구려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그 위치가 중요합니다. 강단사학의 주장처럼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면 고구려의 발상지는 대동강 부근이 되고, 다른 곳에 있었다면 그곳이 발상지가 되기 때문이죠. 낙랑은 한반도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현 중국의 하북성 동남쪽, 요령성(遼寧省)의 서쪽, 즉 요서 지역에 있었어요. 낙랑이 요서에 있었다면 고조선도 당연히 그곳에 있었던 거죠.” [INTERVIEW] 한국 고대사 연구에 한 획 그은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고조선, 중국 하북성 동남쪽 요서까지 지배했다” 중국 고대문헌에서 찾아낸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의 출발점인 고조선의 활동 무대가 중국 하북성(河北省) 동남쪽 요서(遼西) 지역까지 이르렀음은 물론 삼한, 부여, 고구려, 백제 또한 요서를 지배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