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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조선 강역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조선의 서쪽 경계 지역이 어디였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리지린은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서기전 3세기까지는 하북성 난하였다가 서기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영토를 빼앗긴 후 요녕성 대릉하 동쪽으로 축소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오늘의 중국 요녕성 개평으로 보고 있다. 윤내현 역시 발해 북안 난하 유역을 고조선의 서쪽 경계지역으로 보고 있고, 중국에게 밀려서 한때 축소되었다고 보지만 진·한(秦漢) 때 다시 난하를 국경으로 삼았다고 보는 점이 다르다. 또 리지린은 왕검성을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봤지만 윤내현은 왕검성은 위만조선의 도읍이지 단군조선의 도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

그의 고조선 연구로 교과서에서 일제가 고조선 역사를 허구화하기 위해 만든 단군 '신화'라는 말이 사라지고, 한사군이 중국 허베이성의 난하(灤河)와 요하(遼河) 하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고조선 때부터 중국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았던 한사군의 위치 지도가 교과서에서 없어졌다. 고조선의 영토가 현재의 요하에서 난하까지로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고조선을 서기전 2333년 세워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명확하게 기술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에는 다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나랏돈을 써가며 한사군의 위치를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던 대로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은 영문판 역사책을 출판한 사실이 드..

낙랑군의 위치와 관련하여 대략 4가지 학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 낙랑군 및 고조선의 갈석산과 습수, 열수, 산수, 패수의 위치 ‘낙랑 1’은 심백강과 김봉렬 등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군 재하북성설’입니다.‘낙랑 2’는 윤내현과 이덕일 등 다수의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군 재난하설’입니다.‘낙랑 3’은 신채호와 정인보 등 민족사학자들이 주장했던 ‘낙랑군 재요동설’입니다.‘낙랑 4’는 노태돈과 송호정 등 대다수의 강단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군 재평양설’입니다.(1) 신채호선생은 한사군은 요동반도에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위씨가 망한 뒤에 한나라는 진번·임둔·현토·낙랑 네 개 군을 설치했다. 4군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삼한의 연혁에 관한 문제에 뒤지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