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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간도는 통상 남부 만주 지역 중 두만강 북쪽 땅(동간도)을 뜻하지만, 압록강 북쪽도 서간도로 불려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조선과 청 나라가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만들 때 합의한 것처럼 조선 영토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서 땅을 개간하는 한국인이 급증, 간도협약 당시 동간도에만 10만 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은 간도 조선인 보호용으로 두만강 인근에 변계경무서를 설치했습니다. 1902년엔 간도관리사 종3품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노무현 정부 때 중국 “간도 영유권 거론 말라” 요구 후“외교부가 왜 국감 자료집 회수하느냐” 제보 전화신구 자료집 비교해 보니 간도 협약 기술 바뀌어파..

[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통일을 위한 숙제 간도 수복론 vs 회의론 국론 통일해야통일대박론과 간도기자명강정민 변호사·‘독도반환청구소송’ 저자 입력 2014.06.15 16:56호수 2311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5년 국회에서 ‘간도영유권관계발췌문서’라는 제목의 간도자료집이 발간되었다. ‘간도영유권관계발췌문서’는 1867년부터 1945년 사이에 작성된 일제의 기밀문서 가운데 간도영유권 관련 문서들의 번역본과 영인본을 수록한 자료집이다. 자료집 뒤에는 분량 때문에 미처 싣지 못한 기밀문서 목록이 첨부되어 있고 ‘일본 외무성 및 육해군성 문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간도 관련 핵심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면 민간은 정부가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淸, 국경 획정에 조선 대표 배제해 역관이 참석… 백두산에 정계비입력 2018-03-26 22:44업데이트 2018-03-27 00:09백두산정계비와 간도300여년 전인 숙종 38년(1712) 조선과 청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했다. 압록강변 위원군에서 조선인과 청인 사이에 살인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는 오라총관(烏喇總管) 목극등(穆克登)을 보내 두 나라의 경계를 확정 짓게 했다. 숙종은 조상들의 산소 이장 문제로 원주에 가 있던 박권(朴權·1658~1715)을 접반사(接伴使)로 삼아 함경감사 이선부(李善溥)와 함께 국경을 획정하게 했다. 그러나 박권, 이선부 등은 목극등이 늙었다면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자 주저앉았고 중인 역관 김경문(金慶門) 등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