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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길림성의 고구려 유적 중국 장춘시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에서 왕건군(王建群) 소장과 저자뒤에 보이는 건물이 구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중국의 광개토대왕릉비 전문가인 왕소장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1990년 8월, 중국 북경 수도비행장에서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연길 비행장에 도착하여 발해 고분 발굴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고구려 수도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는 길림성 집안시로 발길을 옮겼다. 연변박물관 엄장록(嚴長錄) 선생이 동행하여 길을 안내했다. 아침 일찍 연길역을 떠난 천진(天津)행 급행열차는 길림역(吉林驛)까지 350km를 무려 7시간여 동안 달렸다. 길림역 한 정거장 앞의 흥융역(興隆驛) 부근에는 고구려시대의 용담산성(龍潭山城)과 함께 송화강변(松花江邊)에 자리한 부여시대의 동단산성(東團山城..
동부여의 건국과 위치 지금까지 필자는 고조선 말기부터 붕괴 이후까지의 부여 분열과 그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고대에 부여는 동부여 · 북부여 · 졸본부여 · 부여 등이 있었다.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거수국으로서 하나의 부여만 존재하였으나 고조선이 붕괴된 뒤 그 지배귀족과 거주민들이 여러 곳으로 이주함에 따라 여러 곳에 부여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위에 언급된 여러 부여 가운데 맨 끝의 그냥 부여는 고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원래의 부여로서 그 위치는 지금의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고조선이 붕괴된 뒤 이 부여는 지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북부여는 부여의 지배세력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던 부여로서 원래의 부여보다는 다소 북쪽에 있었지만 그 위치도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