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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연해주에 들어선 최초의 고대 국가는 발해(渤海)였다.” 2012년 10월 블라디미르 쿠릴로프 러시아 극동연방대 부총장이 산운 장도빈 선생 기념비 제막식 때 남긴 연설이다. 사실 연해주는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한반도의 역사 강역이었다. 1일 러시아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성터에서 김동훈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왼쪽)와 니콜라이 클류예프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선사고고실장이 2014년 발굴된 ‘제사 유구’를 살펴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위구르계 토기가 출토됐다. 콕샤롭카=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1일(현지 시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400km를 달리자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너른 평원이 나타났다. 궁벽한 시골마을 콕샤롭카다. 가슴 높이까지 자란 풀..

■ 연해주 크라스키노 염주성 유적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 러시아 극동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블라디슬라프 볼딘 박사는 지난 12년간 발굴 내용을 종합한 결과, 염주성은 성·사찰복합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식 표현을 번역한 성·사찰복합체란 곡식의 번창을 기원하는 제사장인 사직(社稷)과 유사한 개념으로 성 내부시설이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러시아 측은 1980년 염주성 북서지역에서 대규모 사찰터를 발견하고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2007년부터 총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러시아 극동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가 발해 염주성 사찰터에서 발굴한 내용을 토대로 제작한 금당복원도와 우물평면도, 사찰터평면도의 모습./자료제공=동북아역사재단 러시아..

발해는 거란에 항복한 직후에 연해주 일대와 함경도 일대에서 복국(復國)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국력이 남아 있었다. 929년에 대연림은 후발해국을 세워 화북의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938년에 정안국이 압록강 하류에서 건국됐다. 995년에 올야국(兀惹國)이 건국됐으나 금방 멸망했다. 1029년에 흥요국은 요와 전투를 벌이면서 고려와도 교류했으나 결국 다음해 멸망했다. 1116년에는 고영창이 대원국(대발해)을 세웠다. 발해인은 거의 200년 가까이 복국운동을 한 특이한 사람들이다. ■200년간 이어진 발해의 나라 되찾기 활동, 후발해국·정안국·을야국·대원국 등 세웠지만..2021. 7. 12. 09:05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57) 발해의 복국운동동국대 명예교수 사마르칸트대 교수 중국 지린성..

제1대 고왕의 뒤를 이은 제2대 무왕(武王, 재위 719∼737) 대무예와 제3대 문왕(文王, 재위 737∼793) 대흠무(大欽茂) 시기는 발해 역사의 전반기에 해당하며, 영토 확장과 제도 ‧ 문화면에서 큰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무왕은 인안(仁安)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고, 시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치(武治)에 큰 업적을 남겼다. 무왕이 727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는 여러 나라를 주관하고 여러 번(蕃)을 총괄하며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남은 풍속을 가졌다고 하였다. 『신당서』에는 발해가 부여 ‧ 옥저 ‧ 조선 등 바다 북쪽 여러 나라를 얻었다고 하였다. 이렇듯 무왕의 활발한 영역 확장은 필연적으로 주변국과 마찰을 야기하였고, 마침내 발해가 당나라와 무력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무왕 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