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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그의 고조선 연구로 교과서에서 일제가 고조선 역사를 허구화하기 위해 만든 단군 '신화'라는 말이 사라지고, 한사군이 중국 허베이성의 난하(灤河)와 요하(遼河) 하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고조선 때부터 중국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았던 한사군의 위치 지도가 교과서에서 없어졌다. 고조선의 영토가 현재의 요하에서 난하까지로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고조선을 서기전 2333년 세워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명확하게 기술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에는 다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나랏돈을 써가며 한사군의 위치를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던 대로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은 영문판 역사책을 출판한 사실이 드..

윤 교수는 이 시기 고조선 붕괴 후 동부여·읍루·고구려·동옥저·동예·최씨낙랑국·대방국·한(삼한)·신라·백제·가야 등의 고대국가가 들어서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하며 치열하게 다퉜다고 본다. 윤 교수의 연대 구분은 기원 전후부터 약 300년 동안을 '원(原)삼국시대'로 부르며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체제의 원시적 형태로 보는 통설과 어긋난다. 윤 교수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기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열국의 역사를 통째로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열국들의 활동 영역도 남서쪽으로는 중국 요서(遼西) 지역과 상하이(上海) 등 동부 해안지역 , 북동쪽으로는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를 만큼 광범위하다. 열국들이 고조선의 뒤를 이은 만큼, 고조선이 요하(遼河) 서쪽까지 넓은 영토를 ..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2015. 10. 22. [한겨레] 고조선 연구(상)윤내현 지음/만권당 1979년부..

현재 통용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크게 잘못되어 있다.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중국 기자의 후손인 준왕과 중국 망명객인 위만이 한민족을 통치했고 위만조선의 뒤를 이어 서한의 행정구역인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설치됨으로써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영토에 편입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를 이어 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저, 동예, 한(삼한) 등이 건국되었는데 고구려는 한사군의 현도군 지역에서 건국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 고대사 체계가 옳다면 고대에 한민족은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이 된다. 고구려도 중국의 행정구역인 현도군에서 건국되었음으로 중국의 역사를 계승했다는 논리를 펼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자국(기자국),위만조선, 한사군 등은 지금의 요서 지역 즉 ..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④ 발달된 기술의 금문화와 철기문화BC 25세기에 이미 도금기술, 청동·금 활용 金銅장식 제조, 金 양산하며 순금장식도 발전고조선 상징물 태양·새깃털, 삼국 금관에도 그대로 계승, 스키타이 기원설 틀렸단 증거BC 12세기엔 철기시대 열어, 철검·철거울·쇠뇌 잇단 출토, BC 7세기엔 ‘강철’까지 진화고조선은 당대최고 금속기술, 같은 문명권인 부여의 철, 장검 日 전파돼 일본刀 원형 된 듯 고조선문명은 동방에서 가장 앞서서 BC 12세기에 철기시대를 열기 시작했다.고조선문명권은 두만강 유역 함경북도 무산(茂山) 지역과 만주 무순(撫順) 지역에 세계 최대 철광산 중 하나가 부존돼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만주지역 도처에 철광석이 부존돼 있는, 혜택받은 지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