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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4. 환인은 누구인가?(1)

대야발 2024. 2. 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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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4. 환인은 누구인가?(1)

 

 

삼국유사》 〈기이(紀異)1편 고조선조에 석유환국’(昔有桓国)이 맞는지 석유환인’(昔有桓因)이 맞는지 살펴보았고, 환국이 맞다면 환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아보았다. 그러면 이제 환인은 누구인지 알아보겠다.

 

일연은 환인을 제석(帝釋)이라고 주를 달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제석(帝釋)은 원래 인드라(Indra)라는 인도 신령의 중국 역어(譯語)라고 한다.

 

집안사람들의 수명·자손·운명·농업 등을 관장한다는 가신(家神).삼불제석.

삼불(三佛)제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 무()의 신령으로서의 제석은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나오는 환인(桓因)제석을 기원으로 한다.

환인은 한자로 표기되기 이전에 하느님·수릿님이나 한님·한인 등으로 불렸을 것으로 보이고, 그 한자 표기는 불교의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또는 제석환인(帝釋桓因 : Sakra-Devanam Indra)에서 온 것이다. 제석은 원래 인드라(Indra)라는 인도 신령의 중국 역어(譯語)이다.

인드라는 리그베다(Rig-Veda) 찬가에 흔히 등장하는 천상신인데, 수미산(須彌山) 정상의 희견성(喜見城)에 있으면서 33()을 통괄하고 아수라(阿修羅)라는 마신(魔神)과 싸워 인류를 보호할 뿐 아니라 우주의 동서남북을 1개월씩 순회하면서 큰 거울로 그곳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것으로 믿어진다.

한민족은 고조선 이래, 특히 고대사회에서 각 나라별로 봄·가을에 크게 모여 천제(天祭)를 올렸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이 그런 것들이다. 여기서는 한민족의 천신을 비롯하여 여러 신령이 모셔졌다.

삼국시대 중엽 중국으로부터 유교·불교·도교가 들어와 수용되면서 이 천제의 전통은 분화와 변모를 겪게 된다. 유교의 영향으로 종래의 천제는 국가의 제례로 편입되고 의례형식은 유례화(儒禮化)하였다.

천신신앙은 이로써 국가제례로서 유례화한 것과 무당에 의해 주재되는 민간의 천신 신앙으로 분화하였다. 불교가 융성한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천신은 제석이라는 불교적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고려의 승려 일연(一然)삼국유사 三國遺事에서 단군의 할아버지인 한민족의 천신을 환인제석이라 표기한 것은 그러한 배경을 갖는다. 한편 고려시대에도 민간에서 무당이 개인신당에 제석신을 모시고 굿을 벌였음은 이규보(李奎報)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노무편(老巫篇)이 증언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천신신앙의 전통은 단절된다. 유신들은 유교의 예()에 의거하여 중국의 천자만 천제를 지낼 수 있고 그 제후국인 조선의 왕은 종묘와 사직에 제사할 뿐이라고 주장하여 임금의 천제 거행을 저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신으로서의 제석에 대한 신앙은 조선왕조의 지속된 억누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지속되어온 굿과 무()의 신도인 단골집안의 이른바 가신(家神)신앙 속에서 줄기차게 보존되어 왔다. 굿에서의 제석거리와 각 집안에서 모시던 제석신앙이 그것이다.

일제의 탄압과 광복 이후의 서양의 합리주의 내지 기독교적 가치관의 횡행 및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굿은 그 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았기에 제석거리는 여전히 굿에서 놀아진다. 반면 단골집안의 제석신앙은 주거환경의 변화와 미신타파운동에 밀려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굿의 제석거리가 아직 놀아지고는 있으나 그 신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드물고 그저 굿의 한 거리로서 적당히 놀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1996년 말 제석의 바른 인식과 전통 제석굿을 보존하기 위하여 전통제석굿보존회가 서울에서 결성되고 전통제석굿발표회를 여는 등 제석신앙의 복원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조선시대에 불사(佛師) 또는 도교식으로 천존(天尊)이라고도 불려졌던 제석은 굿판에서 부정과 청배(請陪)의 준비과장을 마치면 제일 먼저 모셔진다. 무당은 가사·장삼을 입고 허리에 홍띠를 매고 고깔을 쓴다. 황해도 지역의 제석거리에서는 거기다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바랑을 걸머지고 육환장을 짚고 손에는 바라를 들고서 논다.

그리고 제석 청배에 들어가는데, 그 끝판쯤에서 다양한 제석의 종류를 일일이 든다. 업제석·복제석·천궁제석·천존제석·일월제석·용신제석·고깔제석·업영제석·삼신제석·나옹제석·넌출제석·부군제석·도당제석·몸주제석·전안제석·후대제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제석의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성격과 면모 및 발현처를 말해 준다.

전국 각 지역의 굿에서 중반이나 후반에 적당히 편성되어 놀아지는 제석굿에는 어김없이 제석본풀이가 구송된다. 그것은 여주인공의 이름에 따라 당금애기’·‘서장애기’·‘제석님네 따님애기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천신으로서의 제석이 당금애기로 상징된 지모신(地母神)과 결합하여 삼신(三神)을 낳았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가신신앙으로서의 제석신앙도 제석본풀이와 마찬가지로 전국에 걸쳐 분포한다. 그 명칭·형태·신앙관념 등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서울 지역의 단골가정은 제석신을 흰 항아리에 쌀을 담은 형태로 다락에 올려놓고 모신다. 이 신령이 집안사람의 수명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햅쌀을 백지에 싸서 항아리에 넣고 안방에 모시고는 불사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서는 방 안 다락이나 부엌 한 귀퉁이에 쌀 또는 조를 담은 조그만 단지를 모시고 여러 헝겊조각을 단지에다 늘여놓고는 세존이라 칭하기도 한다. 안방의 벽에 주머니를 만들어 쌀 3 되가량 넣어놓고 제석주머니라 부르는 예도 있다. 칠월칠석날 아침 그 쌀을 꺼내 밥을 짓고 미역국과 함께 차려 간단한 의례를 지낸 다음 가족들과 먹는다. 그 뒤 시월 추수한 햅쌀을 잘 말려 그 빈 주머니에 다시 채운다.

남쪽지방에서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아예 대청이나 곳간에 큰항아리를 두고 햇곡식을 넣어서 이것을 제석단지·세존단지·천왕독이라 불렀다.

가신신앙의 제석신앙과 굿의 제석거리에서의 제석신의 신격은 대개 일치한다. 제석은 산신(産神수명신·생산신으로서 신앙되면서 인간 생존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기능을 지닌 것으로 믿어져 왔다.

그러나 천신으로서의 제석에 대한 신앙이 약화되고 혼란스러워지면서 제석의 기능도 변화하게 된다. 그 점은 굿에서보다 가신신앙에서 더 심한데, 가신신앙에서는 제석을 지역에 따라 부귀영화의 신령이나 조상을 위하는 신령으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제석(帝釋))]

 

 

 

 

정형진은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에서 환인이란 명칭이 불교에서 왔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우리 식으로 불렀다면 환하게 비추는 님의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환님혹은 하나뿐인 큰 신이라는 뜻의 한님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것이 한자로 기록되면서 환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바로 상제(上帝)이고 천제(天帝)요 태일신(太日神)이다. 그는 바로 하느님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환인의 명칭이 불교에서 왔을 것이라고 본다. 일찍이 조선시대 학자 안정복이 이런 주장을 했다. 그는 환인이나 제석은 법화경에 나오는 용어로 불승들의 언어라고 지적하면서 단군신화가 불교적 용어로 윤색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여러 번 병란을 겪으면서 국사와 비장의 책들이 모두 없어지고 다만 승려들이 기록한 것이 바위굴에 보존되었다가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신채호로 이어졌고, 단군신화를 조작된 신화로 본 일본의 금서룡도 이에 동조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 문정창도 신채호의 설을 받아들여 이승휴가 일연의 주를 받아들여 단군신화의 본문에 제석을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송호정 등 삼국유사고조선조를 해석하는 거의 모든 이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불교 용어라는 것은 바로 ‘sakra-devam-Indra’를 뜻과 음으로 번역한 것이다. 즉 이 말을 석제환인다라(釋帝桓因陀羅)’ 혹은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桓因陀羅)’로 번역하고 줄여서 석제환인혹은 제석천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우리말 뜻은 하늘을 주재하는 임금님이다. 이것을 한자로 옮기면 천제가 되고 우리말로는 하느님이 된다.

그렇다면 불교적인 명칭인 환인으로 윤색되기 전에는 어떻게 불렸을까? ~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천산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에서는 광명신이 최고신이었다. 그것을 우리 식으로 불렀다면 환하게 비추는 님의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환님혹은 하나뿐인 큰 신이라는 뜻의 한님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것이 한자로 기록되면서 환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출처;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421~425)

 

 

여기서 잠시 단군의 조부에 해당하는 환인에 대하여 살펴보자. 혹자는 단군의 조부가 불교적인 용어인 석제환인을 사용했다고 해서 단군신화를 위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넓은 시야에서 한민족의 기원을 찾고, 세계문화사의 시각에서 환인을 이해하면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단군신화를 후대의 위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환인의 어원을 산스크리트어의 ‘Sakrodevanam Indrah’하는 말을 한자로 음역한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또는 석제환인(釋帝桓因)’에서 찾는다. 이는 원래 고대 인도의 신화를 모은 리그베다에 나오는 군신으로서 비를 뿌리고 곡식을 자라게 하는 신이었는데, 뒤에 불교신앙 체계에 수용되어 수미산 도리천에 거주하며 사방을 진호하고 선악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런데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4세기 이후다. 그래서 그들은 단군신화는 그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비판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불전에서 제석을 환인으로만 표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을 들어 환인이란 한국 고유의 신 이름을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 주장은 공공족의 원주지가 유라시아문명의 근원지인 천산 주변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이해하면 타당한 일면이 있다. ~

단군신화는 공공족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동북지역의 곰 토템사상이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인은 공공족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 중에서 하늘의 주관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

그는 바로 상제(上帝)이고 천제(天帝)요 태일신(太日神)이다. 그는 바로 하느님이다. 아마도 공공족은 이 하느님에 대한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한임, 한님, 하나님, 하늘님등과 비슷하게 불렸을 것이다. 그런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환인이 되었을 것이다.

환인이 태양을 가리키지 않았음은 석제환인의 성격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 석제환인이 불교에 편입되기 이전의 성격이 환인의 성격과 가깝다. ~

환인은 우주의 주재자로서의 천신이고, 환웅은 그 천신의 아들 격으로 하늘에서 가장 밝은 님인 태양인 것이다.(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370~ 374)

 

 

 

 

중국인을 포함한 세계 한자전문가들이 연구해놓은 한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근거로 찾아낸 음운학적 원리로 갑골음을 연구한 최 춘태박사의 저서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동북공정에 따르면 환인과 환웅단군거서간, 朝鮮의 갑골음이 같다고 한다.

 

환인과 환웅단군거서간, 朝鮮의 갑골음이 같다!

그간 한자가 우리 겨레를 포함하는 동이족의 글이라는 주장이 수많이 있었지만, 이런 명쾌한 어학 내지 음운학적인 원리에 따른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아 심정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는 식으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음운학적으로 그 상고음이 우리말이니 그 글자가 우리 조상들이 만든 글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환인, 환웅, 단군의 갑골음이 ‘gəsər gən(ᄀᆞᄉᆞᆯ ᄀᆞᆫ)으로 신라 초기 임금의 호칭인 居西干과도 완전히 일치하며, 우리 겨레 갈래의 명칭인 와 단군이 세운 나라이름 朝鮮의 갑골음이 같은 ‘gəsər’, 단군의 도읍지 阿斯達의 갑골음이 ‘gəsər tər’ 등 한자 옛 발음이 지금도 쓰고 있는 우리말이라면 그 글자를 만든 사람은 당연히 우리 겨레며, 서로 다른 한자로 적혀 있어서 현재까지 중국 역사나 우리 민족과 다른 북방민족 역사로 알고 있는 많은 동북아상고사가 우리 겨레의 역사라는 것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NGO신문, [민족NGO신간소개]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동북공정

http://www.ngonews.kr/93693)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A0%9C%EC%84%9D(%E5%B8%9D%E9%87%8B)&ridx=1&tot=95

 

 

 

정형진,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일빛, 2006

 

 

 

최춘태, 갑골음으로 잡는 식민사학 · 동북공정, 북랩,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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