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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8)연해주의 신석기문화(沿海州의 新石器文化) 본문

지음/《환국-가사라국》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8)연해주의 신석기문화(沿海州의 新石器文化)

대야발 2024. 2. 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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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18)

 

6.18 연해주의 신석기문화(沿海州新石器文化); 10000년 전~3500년 전

 

 

연해주에서는 태토에 풀이나 동물 털을 혼입해서 저화도 소성의 고토기가 나오는 시점을 신석기시대 시작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기원전 8000년경의 우스티노브카-3, 체르니고브카-알티노브카-5 유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토기가 구석기시대 전통의 세석기와 함께 출토되기 때문에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의 전환과정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이 고토기 단계는 아직까지 하나의 고고문화로는 규정되지 않고,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단계로만 파악되고 있다.

 

이외에 연해주의 신석기문화는 토기문양을 기준으로 3개의 문화로 크게 나누고, 하부단위로 유형들을 분리하고 있다. 루드나야문화는 2개 유형, 보이스만문화는 6단계(유형), 자이사노브카문화는 3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그 외에 아직 특정한 고고문화로는 나누어지지 않았지만 상기한 문화와는 차이가 있는 유형으로서 베트카유형, 세클라예보유형이 있다.

 

루드나야문화는 압인문(押印文)토기와 융기문토기를 특징으로 하며 한카호 부근과 연해주 동해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최근 토기의 기형과 문양을 기준으로 해서 루드나야유형과 세르게예브카유형으로 분리하였다. 루드나야문화는 기원전 7000년 기 후반6000년 기까지 지속되어 보이스만문화에 비해서 이른 시기에 끝난다.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여러 형식의 다치구 압날문토기가 6개의 층서를 이루며 출토되었다. 각 층에서 출토된 유물은 같은 시간에 공존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보이스만 전체 문화에서 하나의 단계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보이스만문화는 원()보이스만 단계부터 보이스만 5단계(유형)까지 구성되어 있고, 토기기형, 문양의 형태·시문방법·시문범위에 따라서 각 단계 내에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문화는 원보이스만 단계의 기원전 6000년경부터 마지막 5단계의 기원전 4000년 기 전반까지 존속하였다.

 

베트카유형은 최근 새로이 베트카-2유적을 발굴해서 분리된 유형으로 압인·압날문토기가 대표적이다. 유사한 문양시문방법을 보이는 루드나야문화의 세르게예브카유형 토기는 구연부에만 시문되는 되는 데 반해서 이 유형은 동체부 1/2, 3/4 까지 시문되고, 압날과 압인문이 교대로 시문되어 문양대를 형성하고 있다. 연대는 기원전 5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자이사노브카문화는 자이사노브카-1유적에서 출토된 침선문토기를 기본으로 해서 설정되었다. 최근 2000년대 들어서 침선문토기와 승선문(繩線文)토기가 공반된 주거지가 새롭게 발견되었다. 또한 한카호 유역의 내륙에는 횡주어골문이 아닌 궁형문의 침선문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지역에 따라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자이사노브카유형과 한카호유형으로 나누거나, 자이사노브카문화의 지역을 넓혀서 두만강유형, 한카호유형, 목단강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이사노브카문화는 이른 시기에는 승선문 기법의 토기와 압인점선문, 늦은 시기에는 침선문토기가 주요하다. 이 문화는 기원전 4000년 기 전반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2000년 기 전반까지 지속된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연해주의 신석기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78)

 

 

 

 

 

6.18.1 우스티노브카유적(Ustinovka Site); 10000년 전(BC 8000)

 

러시아연방 프리모르스키Primorsky, 연해주 지방 우스티노브카 마을에서 하류로 약 4떨어진 곳에 있는 제르칼리나야Zerkal’naya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코로트키이 루체이KorotkiiRuchei 하천 우측의 18m 상의 단구 사면에 위치한다. 제르칼리나야 강은 시호테-알린Sikhote-Alin’ 산맥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빠져나간다. 이 유적은 1954년 지질학자 페트룬V. F. Petrun’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며, 발굴은 1963년과 1968년에 오클라드니코프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1966년에는 안드레예바Z.V. Andreeva에 의해서 조사되었으며, 이후 1980; 1981; 1984년에는 러시아 과학원 시베리아분소 고고학, 민족학 연구소에서 발굴하였다.

 

이 유적은 3개 문화층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다시 상부 문화층(1·2)과 하부 문화층(3)으로 재분류된다. 이 유적에서는 약 10만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90% 이상이 격지, 파편, 규질 응회암제 부스러기이다. 1963년 이루어진 사용흔분석 결과 격지, 응회암과 플린트제 파편 11,494, 돌날과 돌날 파편 1,139, 몸돌과 부산물 395, 나무를 가공하기 위한대팻날 3, 가죽을 가공하기 위한 긁개 17, 같은 목적의 측면날 긁개 2, 뚜르개 및 잔손질용 석기 8, 뚜르개 2, 기타 톱날과 망치돌 등으로 분류하였다. 분석된 총 13,128점의 유물 중 13,038점이 몸돌과 버려진 석재이었으며, 100점 만이 석기로 분류되었다. 일부 격지와 돌날들은 추가 잔손질 없이 사용된 것을 확인하였다. 예를 들어 1963년에 확인된 1,176점의 격지 중 사용 잔손질이 있는 격지는 133점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이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와 버려진 석재들 간의 상관관계 비율을 종합해보면 석기 제작을 위한1차 작업이 유적 밖에서도 이루어짐과 동시에 석기제작소와주거지 주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80년 발굴조사에서는 발굴 구역의 북편에서 수혈주거지가 발굴되었다. 주거지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3.4×2m의 규모에, 깊이는 36가량 된다. 주거지의 장축은 북서와 남동 방향이다. 주거지 바닥은 전체적으로 2~5정도로 황토다짐되어 있으며 일부분은 연하늘색 점토가 퇴적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거지 남벽 쪽으로는 대형 자갈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러한 돌들은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견고한 구조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접한 남동 벽에는 불땐자리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옆에 26~30크기의 연석이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몸돌은 총 265점이며, 다시 평행 박리가 적용된 몸돌군, 돌날을 떼어 내기 위해 반평행 박리 기반의 몸돌군(단일 또는 2작업 면), 방사상형몸돌 또는 원반형몸돌군, 쐐기형의 세형돌날몸돌군(좀돌날몸돌군), 직각 또는 비정형적인 박리가 진행된 몸돌군 등 5개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석기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석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긁개류(끝날긁개, 옆날긁개), 새기개, , 찌르개, 양면석기, 뚜르개, 대팻날, 자귀 등이 주로 확인된다. 이들 석기는주로 작업 날을 조성할 때 배면에서 등면으로 손질이 이루어졌다. 석기는 주로 돌날이나 돌날격지를 활용하여 제작하였다. 끝날긁개의 경우 돌날격지를 활용하여 정교하게 손질하였으며, 찌르개는 편평한 돌날상에 첨두 부분과 옆날 부분을 배면에서 등면으로 일부 손질하여 제작하였다. 새기개는 다양한 종류로 제작되었는데, 주로 돌날상에 작업이 이루어졌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새기개 중 일부를 아라야계 새기개로 보기도 한다. 칼형석기는 길이 2.5~5.8의 돌날격지와 돌날상에 정교하게 제작되어 졌다.

 

우스티노브카유적의 석기 문화는 상부와 하부, 2개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하부 문화층은 원판형몸돌, 대형 옆날긁개, 대패날, 돌날상에 잔손질한 칼형석기 등이 특징이다. 상부 문화층은 옆날긁개는 부족하지만 새기개, 긁개, 뚜르개, 외면으로 손질된 돌날찌르개, 돌날로 제작된 양면석기, 다양한 칼형석기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스티노브카유적의 두 석기군은 궁극적으로 서로 연관되어있어 갱신세 후기 18~12천 년 전 사이에 형성된 단일 문화 유형이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헌종)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구석기시대편, 우스티노브카유적,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4&idx=280)

 

 

 

 

 

6.18.2 루드나야문화(Ludnaya文化); 9000년 전~8000년 전(BC7000~BC6000)

 

루드나야문화는 루드나야 프리스탄, 마략 르발로프 유적 등의 발굴에서 압인문(押印文)토기가 확인되면서 문화의 개념이 수립되었다. 그 후에 쵸르토비 보로타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압인문토기와 함께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면서 루드나야문화의 토기 특징이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문화는 2000년대 들어와서 세르게예브카?1, 세클라예보?7 유적 등을 발굴하면서 더욱 세분화되어 기형과 문양을 기준으로 루드나야유형과 세르게예브카유형으로 분리되었다.

 

루드나야유형은 구연부에만 능형 혹은 삼각형 문양이 압인된 발형토기가 특징이다. 세르게예브카유형은 압인이라는 공통적인 시문방법이지만 토기 기형은 목이 있는 옹형이며, 능형압인문을 중심으로 해서 위 아래로 다치구 시문구로 압날문을 복합해서 시문한 문양대가 특징이다. 이 유형에는 융기문토기도 함께 출토된다.

 

루드나야문화는 한카호 부근과 연해주 동해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루드나야유형의 대표적인 유적은 루자나야 소브카?2, 루드나야 프리스탄 유적이 있다. 세르게예브카유형은 세르게예브카?1, 쵸르토비 보로타, 엘제페?3?6 유적 등이 있다.

 

주거지는 세르계예브카?1유적의 수혈주거지와 쵸르토비 보로타유적의 동굴주거지가 알려져 있다. 동굴주거지는 평면형태가 방형이며 주거지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기둥구멍이 확인되었다. 면적은 45로 두꺼운 숯 층이 주거지 내부에 퇴적되어 있다. 주거지의 모서리에는 5구의 인골이 발견되었으며, 토기 이외의 유기물로 된 유물도 대량 발견되었다. 다양한 장신구도 많이 출토되었다. 골제 장신구는 주로 드리개장식으로, 마연한 후 불에 태워서 흑갈색 빛을 띤다. 조개나 돌로 만든 장신구도 있으며, 직물도 확인되었다.

 

인골 중 4구에 대한 분석이 행해졌는데, 1213세의 유년, 5060세의 여성, 1820세의 남성, 4050세의 남성으로 밝혀졌다. 인종은 북아시아 몽골로이드의 바이칼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루드나야 프리스탄, 쵸르토비 보로타, 세르게예브카?1, 우스티노브카?8 유적 등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하여 대체로 루드나야유형은 기원전 7000년 기 후반, 세르게예브카유형은 기원전 6000년 기로 편년된다. 그러나 두 유형의 병행관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성과가 필요하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루드나야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20)

 

 

 

 

 

6.18.3 보이스만문화(Boisman文化); 8000년 전~6000년 전(BC6000~BC4000)

 

보이스만문화는 러시아 연해주의 해안가에 주로 분포하는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패총문화이다. 이 문화는 1950년대와 60년대 자레치예와 키롭스키유적에서 압날문이 발견되면서 처음 알려졌고, 1990년대 보이스만2유적을 발굴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루드나야문화와는 다치구의 시문구로 토기를 시문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대표적 유적으로 보이스만2, 루자노바 소브카 유적이 있다. 보이스만2유적은 러시아의 하산지구 동해안가에 위치한 패총이다. 유적에서는 다치구 압날문토기가 6개의 층위를 이루며 출토되었는데, 각 층에서 여러 가지 형식의 토기가 한 층위에서 출토되어 각 문화의 한 단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보이스만문화를 이 유적의 각 층을 기준으로 해서 원()보이스만 단계부터 보이스만 5단계(유형)까지로 구분한다.

 

보이스만2유적에서는 2기의 합장묘와 2기의 단장묘가 조사되었다. 묘광선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골 주위에 모닥불을 피운 자리가 발견되었다. 무덤 주위에서는 사슴뿔, 남근모양의 돌들도 발견되었다. 특히 5호분은 측와굴장(側臥屈葬)을 한 성인 남성이 묻혔으며 머리 주위에 마제석촉이 발견되었다. 4호에서는 길이가 21에 달하는 흑요석제 작살이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남성 무덤과 반대로 여성 무덤에서는 대부분 조개껍질로 만든 팔찌와 달력을 상징하는 골제품이 발견되어서 부장품의 성별에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 무덤에서는 총 15명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형질인류학적 분석결과 인종적인 특징은 캄차카유형과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된 인골의 머리뼈에서는 다양한 편두의 습속이 확인되었다. 편두는 천을 감아서 묶는 방법, 나무판자와 같은 물체로 누르는 방법 등으로 전두, 측두, 후두 등을 변형하였는데, 두개골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소아기에 만든 것이다. 보이스만의 편두 두개골은 극동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무덤 외에도 패각층 아래에서 파괴된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보이스만문화의 토기는 각 단계마다 특징에 차이가 있다. 원보이스만 단계는 첨저토기로 구연부의 단면이 괄호‘)’모양이고 구연부에만 압인문이 시문되었고, 동체부는 무문이다. 압인문의 문양은 삼각형, 원형 등 다양하다.

 

보이스만문화의 1단계는 토기의 기형과 문양 특징에 따라서 5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1류인데, 구연부가 계단식으로 표현된 평저토기이다. 저부를 제외하고 거의 전면에 다치구로 압인문과 압날문을 번갈아 가면서 시문하였다. 동체의 대부분은 하부의 좁은 대상을 제외하고 스탬프 압날과 침선 기법으로 시문하였다.

 

2단계의 토기는 구연부가 1단계와 마찬가지로 계단식이지만 구연단 폭은 일률적이다. 시문 범위는 대체적으로 동체부의 반 정도 채워진다. 압날문이 주요한 시문 방법이고, 그 사이에 점선문도 시문된다. 이 단계부터 경부가 있는 옹형토기가 나타난다.

 

3단계 토기는 1·2단계의 계단식 구연부가 축약되어 구연단이 두텁고 둥글게 표현된다. 이전 단계에서 압날 혹은 압인 기법으로 시문된 계단식 구연단이 3단계 옹형토기의 경부에 그대로 표현되고, 그 위에 단순하고 둥근 구연단이 형성되었다. 문양은 구연부에서 저부까지 전면 시문되었다.

 

4단계 토기는 구연단이 편평하고, 구연부 부근에만 시문된다. 시문기법은 압인과 짧게 눌러서 찍는 기법이다. 5단계 토기는 구연부에서는 4단계와 구별이 없지만, 완전하게 압날문토기로 전면이 시문되거나, 저부 부근에만 문양이 생략된 것, 혹은 동체부의 1/2가량이 시문되는 등 이전 단계에 비해서 동체부 시문 범위가 일정하지 않다.

 

석기는 규질편암으로 만든 양면가공 석기가 주류를 이룬다. 돌날로 만든 칼, 유엽형의 석부, 어망추, 갈돌 등이 있으며 석촉은 대부분 양면 가공한 유엽형과 삼각형이고 마연한 것도 있다.

 

골제품은 어로구가 대부분으로 작살만 100여 점 이상이 나왔는데 고정식, 조립식, 회전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보이스만2유적의 층서를 바탕으로 각 층에서 출토된 숯을 바탕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원보이스만 단계는 기원전 6000년경, 1단계는 기원전 6000년 기 전반, 2단계는 기원전 6000년 기 말, 3단계는 기원전 5000년 기 중엽, 4단계는 기원전 5000년 기 후엽, 5단계는 기원전 4000년 기 전반에 해당한다. 한반도 동북지방에도 보이스만문화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다치구 압날문토기가 특징인 서포항 1기를 보이스만 5단계와 같은 흐름으로 보기도 한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보이스만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00)

 

 

 

 

 

6.18.4 자이사노브카문화(Zaisanovka文化); 6000년 전~3500년 전(BC4000~BC1500)

 

자이사노브카문화는 러시아 연해주의 신석기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문화이다. 연해주의 최남단 하산지구(두만강 하류)의 자이사노브카-1유적에서 침선문토기를 비롯해서 새로운 형식의 토기가 확인되면서 자이사노브카문화가 설정되었다. 애초에는 침선문토기와 뇌문토기가 유적을 대표하였고, 압날·압인문토기 중심의 루드나야문화와 가장 대비되는 요소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새롭게 크로우노브카-1, 자이사노브카-7 유적이 발굴되고, 한 주거지 내에서 침선문토기와 함께 압날승선문토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레티호프카, 노보셀리셰 유적 등에서는 횡주어골문이 아닌 궁형문의 침선문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종전의 자이사노브카문화의 개념을 수정하게 하였다.

 

자이사노브카문화는 지역에 따라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자이사노브카유형과 한카호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자이사노브카문화의 지역을 넓혀서 두만강유형, 한카호유형, 목단강유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주거지는 크로우노브카-1유적의 4·5호 주거지가 가장 양호하게 잔존한다. 강에 의해서 일부 파손되었지만, 평면형태가 말각방형에 가깝고, 중앙에 노지가 설치되었다. 주거지 벽 가까운 곳에 저장구덩이도 확인된다. 그보즈제보-4유적에서는 수혈이 확인되지 않고 기둥구멍과 노지만 확인된 지상식주거지도 발견되었다.

 

토기는 이른 시기에는 압날승선문토기와 자돌점선문토기, 늦은 시기에는 침선문토기가 유행하며, 연해주 내륙에서는 남쪽 해안가 보다 더 늦게까지 침선문토기가 지속된다. 토기문양을 기준으로 자이사노브카문화를 승선문과 자돌점선문이 사용되는 전기, 침선문이 주류는 중기, 침선문이 퇴화되며 무문토기 양이 증가하는 후기로 세분하기도 한다. 자이사노브카문화는 기원전 4000년 기 중엽부터 기원전 1500년대까지 지속된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자이사노브카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13)

 

 

 

 

다음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에 있는 평저토기문화권 관련 글이다.

(평저토기문화권: 압록강 유역과 두만강 유역을 비롯한 한반도 북쪽 지역은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서 바닥이 편평한 토기가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일종의 문화코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토기는 요동지역부터 요서지역 뿐만 아니라 압록강 유역과 청천강 유역, 두만강 유역, 연해주, 아무르강 하류에서도 확인된다.)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그림 1. 평저토기문화권의 범위 평저토기문화권 전체가 완벽한 같은 문화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토기양상에서 차이가 있다. 공통점은 토기 바닥이 편평하다는 사실.)

 

필자는 한반도 동해안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평저토기가 동해안의 북부인 연해주와 더 나아가 아무르강 하류와도 관련성을 제기하였다. 결국 기온변화에 따라서 동해안을 따라서 이동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고(김재윤 2016), 특정한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렵채집민은 아주 넓은 지역에 대한 이해가 있었는데, 북극 수렵민이 수백 평방킬로미터를 포괄하는 지역을 기억만으로 지도를 그린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이다(로버트 켈리 2014).

 

이러한 이동의 결과가 물증으로 나타는 것이 일정한 범위에서 나타나는 고고문화일 것이며, 이것을 확대한 개념이 일정한 문화권이다. 물론 유물이 넓은 지역에 분포할수록, 특히 토기는 똑같은 형식으로 확인되는 예는 거의 없다. 특정한 제작 기법이나 시문방법 혹은 문양은 공통적일 수 있지만 기형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례로 편보문화의 토기는 산동반도 북신문화에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 받고 있는데, 동체부에 세로로 부착되는 세퇴문양의 요소가 북신문화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朱永剛, 1993;궈다순·장싱더, 2008). 북신문화의 세퇴문은 삼족기에 표현되지만, 편보문화에서는 동북지방의 전통적인 심발형토기에서 확인된다. 또한 소하연문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구연이 두 개인 호형토기는 소하연문화에서부터 확인되는 전형적인 기형인데, 여기에 뇌문이 시문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재지적인 기형에 하요하 유역 등에서 받아들인 문양이 그려진 것으로 파악된다(김재윤 2015b).

 

한반도 동해안에서 확인되는 신석기시대 적색마연압날문토기도 적색으로 마연하는 기법, 다치구로 찍는 기법, 구연부에만 문양을 시문하는 기법은 아무르강 하류의 말리셰보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기형 중에서 표주박형(그림 30-21)은 한반도 동해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다. 동해안에서는 유일하게 문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접시형 기형(그림 32-4)이 말리셰보 문화의 기형을 그대로 닮았다.

 

고고문화는 일정한 지역적 범주와 시간상에서 확인되는 유물과 유구의 조합(몬가이트 1951)이며, 한 지역사회로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이들이 남긴 흔적을 현대 고고학에서는 고고문화라고 부르며, 비슷한 문화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한반도 주변의 동해안과 관련된 곳이다. 이 지역과 관련된 문화권은 평저토기문화권,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 동북한문화지역 등이 있다. 또한 앞서 신석기시대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환동해문화권도 포함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넓은 범위의 문화권은 평저토기문화권(大貫精夫 1998)이다.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https://eastsearoad.tistory.com/95?category=723258)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2

 

평저토기문화권은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면서 동아시아 각 지역에 토기가 나타나게 되면서 극동에서는 평저토기가 아무르 강 하류 등에서 확인된다. 시베리아의 첨저토기, 장강 이남의 환저토기 등 각 지역에서 생긴 토기와 비교되면서 생긴 용어이다.

 

이 지역은 요서지역부터 극동까지 전체를 포함하며 신석기시대 마지막까지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문화권의 남한계선은 한반도 북부를 지나가는데, 4700B.P.년 전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첨저토기가 4700B.P.무렵에 남한 동해안에 나타나게 되면서, 동해안 중부에서 동해안북부로 변화한다(김재윤 2010c). 서북한에서는 압록강 유역에서 청천강 유역에 편보문화의 이중구연토기가 등장하는데 대체적으로 당산패총의 하층과 상층에서 평저토기문화권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다. 그 연대는 이 유적에서 확인되는 편보문화토기와 관련해서 4800B.P.년 전후로 생각된다(김재윤 2013c). 그러나 평저토기 문화권에서도 첨저토기(원보이스만 단계)도 확인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한반도 북부를 포함한 가장 동쪽지역은 평저토기문화권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토기문화권의 마지막단계가 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중구연토기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김재윤 2013c).

 

평저토기문화권에서 아무르 강 하류의 콘돈문화, 연해주의 루드나야 문화, 삼강평원의 신개류 유적 등이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大貫精夫 1998)이다. 삼강평원의 신개류 유적의 하층과 관련된 진흥 甲組 1기의 B유형(김재윤 2014b)도 포함된다. 루드나야 문화와 콘돈 문화를 중심으로 한다면 7500~6000B.P. 무렵이고 두 문화가 공통된 시간적인 연대는 7000~6000B.P. 이다. 콘돈문화의 연대는 5000~4000B.P.(메드베제프 2005)라면 연해주의 루드나야 문화 보다 훨씬 늦은 시기이다. 하지만, 말라야 가반 유적의 발굴결과 콘돈 문화가 6000B.P.(61806240B.P.)(세프코무드·후쿠다 외 2008)까지 올라간다면 이 문화가 포함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실은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의 실체는 묘연하다.

 

또한 신개류 유적은 연해주의 보이스만 문화와 비교된다. 연해주의 보이스만 문화는 2000년간 지속된 문화로 규정되었지만, 하나의 문화가 잔존하기는 너무 긴 시간이다. 그리고 원보이스만 단계부터 보이스만 2기 까지 문양의 시문방법이나 문양형태, 구연부, 기형 등이 보이스만 3~5와 차이가 있다. 특히 신개류 상층에서는 세르게예프카 유형의 특징인 융기문토기와 베트카 유형의 특징인 능형압인압날문토기, 보이스만 문화 2기의 토기 뿐 만 아니라 베트카-2유적에서 출토되는 거의 유사한 세석기가 함께 출토되고 있다. 세르게예프카 유형과 베트카 유형은 시기차이가 있지만, 연해주의 보이스만 2기와 베트카 유형은 거의 동시기에 확인되고 있다(김재윤 2014b). 그렇다면 현재의 자료는 보이스만 문화가 6단계로 나눠지지만 원보이스만, 보이스만 1~2기 및 보이스만 3~5기가 각각 다른 문화일 가능성도 있는데 좀 더 양호한 자료가 필요하다.

 

평저토기문화권에 시간상으로 아무르강 하류의 말리셰보 문화도 포함된다. 현재 알려진 말리셰보 문화의 절대연대는 8000B.P.부터 4000B.P.까지 넓은 폭을 보인다(4;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수추섬 발굴 이후의 논고에서도 말리셰보 문화가 콘돈 문화보다 이르며, 말리셰보 문화의 연대는 절대연대를 그대로 수용해서 기원전 6000년 기부터 기원전 4000년 기 후반까지로 보고 있다(메드베제프 2005: p.250). 하지만 말리셰보 문화의 연대가 넓은 폭을 보이고 있고, 8000B.P.에 근접한 연대가 1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상한으로 보기에는 불확실하다.

 

그런데 이 문화의 토기 시문 특성상 말리셰보 문화가 인접한 연해주의 보이스만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모레바 2005)을 고려해 볼 때 보이스만 문화가 시작되는 7000B.P. 정도에 말리셰보 문화가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안정적이다. 하한은 4000B.P.까지 절대연대가 존재하지만(4) 이 시점에는 신석기후기 문화인 보즈네세노프카 문화가 이미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에 하한으로 보기에는 너무 늦다. 수추섬의 말리셰보 문화 주거지에서 보즈네세노프카 유물이 확인되는데, 이와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말리셰보 문화의 하한은 조금 더 연구성과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종합한다면 단순히 아무르 강 하류와 연해주를 능형이나 삼각형문양이 중점적으로 시문되는 문화가 공통된 것을 지칭한 아무르편목문토기 문화권이라고만 단정 짖기에는 힘들다.

 

 

 

(그림 1. 동해안북부지역, 김재윤 2017)

 

 

동북한문화권은 환동해문화권의 신석기시대를 연구하면서 한반도 동해안과 동북부지방의 문화 교류를 설명해야 하는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복잡하게 삼국을 명명해야 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환동해문화권의 하위문화권으로 한반도 동해안의 북부지역으로 설정하였다(김재윤 2009c).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신석기 후기를 고찰하게 되었는데, 목단강 유역, 연해주까지 성격이 같음을 파악하였고, 신석기시대 평저토기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동북한문화권이라는 국경이 강하게 포함된 용어 보다는 동해안 북부지역이라고 앞으로 명명코자 한다. 전고에서는 이 지역을 한국사의 한 지역으로서 입장이 강했지만, 좀 더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역사적으로 지리적 배경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용어만 변화시킨 것으로 기본적인 개념에는 변화가 없다.

 

동해안 북부지역은 앞서 언급된 평저토기문화권에서도 동부지역에 속한다. 평저토기문화권은 표 29와 같이 요서지역부터 아무르 강 하류까지 포함된다. 그 중에서 두만강 유역부터, 연해주, 아무르 강 하류 및 한반도 동해안을 포함 한 지역이 평저토기문화권의 동부지역이다. 하지만 평저토기문화권의 동부지역으로 표현하지 않고 동해안 북부라고 명명한 것은 환동해문화권을 염두 한 것이다. 이 문화권은 한국사의 전체 시간대에서 한반도 동북부의 동해안 북부와 강원도 동해안이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관련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신석기시대 환동해문화권의 동해안 북부지역은 6500~6000B.P. 가장 넓은 범위이며, 5000 B.P.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강원도는 평저토기 문화권에 포함되지도 않으며, 동해안 북부에만 서포항 상층 문화 혹은 자이사노프카 문화가 존재한다.

 

한편 이 개념은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의 후반기로도 표현될 수 있지만,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은 아무르 강 하류가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5000년 전 이후의 동해안 북부 연구(김재윤 2009a;김재윤 2009b; 2009c: 김재윤 2010a; 김재윤 2012a: 김재윤 2012b: 김재윤 2015b)에서는 아무르강 하류의 신석기후기문화는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르편목문토기문화권의 개념과는 차별된다. 아무르 강 하류의 신석기시대 후기 보즈네세노프카 문화가 아직까지 자이사노프카 문화, 금곡·흥성문화와 구체적으로 비교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중구연토기, 뇌문토기, 침선문 등은 평저토기문화권의 동부지역으로서 아무르 강 하류와 동해안 북부지역이 공통점은 존재한다(김재윤 2013c: 김재윤 2015b). 하지만 뚜렷한 차이점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연해주와 아무르강 하류가 5000B.P.이후에도 같은 문화권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2,

https://eastsearoad.tistory.com/96?category=723258)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연해주의 신석기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78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구석기시대편, 우스티노브카유적,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4&idx=280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루드나야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20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보이스만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800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사전, 신석기시대편, 자이사노브카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13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https://eastsearoad.tistory.com/95?category=72325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기온변화, 수렵채집민의 이동 그리고 선사시대문화권 2,

https://eastsearoad.tistory.com/96?category=72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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