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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6)중국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 본문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16)
6. 16 중국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 7000년 전~5000년 전
중국 동북지역 중에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신석기문화는 좌가산문화, 신개류문화, 앙앙계문화 등이 있다.
『중국 동북지역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포함하는 매우 광대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내부에서도 요하를 중심으로 한 요서와 요동, 눈강과 제2송화강 유역을 포함하는 송눈평원지역, 목단강, 수분하, 송화강을 포괄하는 삼강평원지역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평저토기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드넓은 지역은 공통되는 특징이 있지만 시기에 따라 각 지역별 신석기문화는 서로 다른 변천을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토기 출현기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북경 근처의 남장두유적 등에서 초창기의 토기가 확인되고 있지만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아직 이 단계의 유적이 미확인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초창기를 제외하면 이 지역은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신석기문화를 대별할 수 있다. 요하유역과 길림성의 서부지역은 요서의 흥륭와(興隆窪)·조보구(趙寶溝), 요동의 신락(新樂)하층, 후와(後窪)하층, 소주산(小珠山)하층 문화, 길림의 좌가산(左家山)1기, 서단량산1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내에서는 미송리와 세죽리 등에서 ‘之’자문토기가 출토되어 청천강이 이 토기문화권의 최남단임을 알 수 있다.
각 지역별로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之’자문토기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되며, 요서지역에 상대적으로 이른 단계의 유적이 많다.
최근 요서지역에서는 흥륭와문화보다 이른 단계에 무문과 간단한 침선문, 융기문 등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인 소하서문화 단계가 설정되고 있고, 소하서문화와 관련이 깊은 융기문을 주체로 하는 서량문화(유형) 유적도 확인되고 있어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같은 시기 삼강평원 일대는 신개류, 아포력 유적 등으로 대표되는 압날문계 평저토기문화가 발달하는데 평저토기인 점을 제외하면 ‘之’자문토기 문화권과는 전혀 다른 토기전통을 보이는 이 지역의 토기문화는 연해주 일대의 루드나야, 보이스만 문화와 관련이 깊다.
송눈평원 일대는 앙앙계유적으로 대표되는 융기선문계 평저토기문화가 발달하는데 아무르 강 유역의 노보페트로브카유적과 유사한 양상이나 세부적 차이도 있고 현재는 연대 차이도 있어 직접적인 연결은 무리이다. 이와 같이 이 지역 신석기시대 전반기에는 평저토기라는 공통의 특징 아래 지역적으로 매우 다른 토기문화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압날이나 융기문 등 침선문이 아닌 시문 방식이 기본이 되는 것은 공통되는 현상이다.
이 지역 신석기시대 후반이 되면 토기문화가 일변하는데, 기본적으로 압날이나 융기문 등의 시문방식에서 침선에 의한 시문방식으로 교체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요서지역에서는 전반기의 늦은 시기부터 매우 발달된 신석기문화인 홍산문화가 등장한다. 홍산문화는 기본적으로 이전의 ‘之’자문토기 전통을 유지하나 폭이 넓은 ‘之’자문을 종방향으로 시문하는 것이 유행하고 이외에 승문의 다양한 기형의 토기, 채도가 번성한다.
이 시기부터 요동지역과는 별개의 발전과정을 거친다. 홍산문화 이후에는 유적규모나 밀집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소하연문화가 이어진다. 요동지역에서는 소주산중층문화군으로 대표되는 침선계토기문화를 주체로 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마성자, 후와상층, 소주산중층, 오가촌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통형의 평저토기를 주체로 하는 점에서는 이전 시기와 공통되지만, 횡주어골문이나 격자문, 횡침선문 등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다양한 침선계 문양이 발달한다. 이와 함께 고형기나 채도 등 산동의 대문구문화 기물들이 요동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되기 시작한다. 이 지역에서는 신석기 마지막 단계인 소주산상층문화 단계가 되면 무문화가 진행되고, 긴 목이 달린 항아리나 배가 부른 항아리 등 새로운 기형이 발달하고, 특히 삼환족기, 고배 등 산동 용산문화 기물이 대거 유입된다.
삼강평원 일대, 특히 흑룡강성 남부지역에서는 신석기 후반이 되면 역시 침선을 주체로 하는 토기문화가 발달하게 되는데 앵가령하층문화가 대표적이다. 연해주에서는 자이사노브카문화로 불리고 있는 이 토기문화는 요녕지역 등 내륙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반도의 나선 서포항 3기·4기 문화도 크게 보아 여기에 해당된다. 이 지역에서는 횡주어골문을 중심으로 하는 침선문토기가 유행하는데, 서포항이나 금곡유적, 흥성유적, 연해주 내륙의 제(諸)유적들을 통해 볼 때 타래문이 유행하는 단계와 뇌문이 유행하는 단계로 세분될 수 있다. 기종 상에서도 늦은 단계로 갈수록 완이나 굽이 달린 토기가 등장하는 등 다양화 된다.
송눈평원 일대의 신석기 후반 단계양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융기선문토기 이후에 전개되는 토기문화가 어떠한 양상인지 불명확한 것이다. 다만 최근 융기선문토기를 계승하는 토기문화가 일정기간 존속한다는 정도만이 확인되고 있다.
중국 동북지역은 평저토기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되는 지역이며, 토기문화의 변화상이 압날과 융기문에서 침선문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요서와 요동지역이 서로 다른 전개 과정을 밟는 점, 산동과 요동지역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양상은 이 지역 토기문화 전개과정에서 특징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교류양상은 아마도 그 이동지역에서도 유사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바, 침선문토기문화의 확산이 그 것이다. 그러나 지역이 넓은 만큼 각 지역별로 전개되는 토기문화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생업형태 또한 다양하다. 중국 동북지역 전체에 걸친 침선계토기문화의 구체적 전개과정과 초기농경의 확산, 각 지역 신석기문화의 종말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임상택)』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중국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84)
<지도 1>중국 동북지방 및 한반도 북부지방의 주요 신석기시대 유적분포도
(출처;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2_0030_0040_0030)
6.16.1 길림성 좌가산문화(左家山文化); 7000년 전~5000년 전(BC 5000년~BC 3000년)
『중국 길림성 농안현에 위치한다. 송화강의 지류인 이통하(伊通河)의 북안에 위치하며 농안현성에서 동북으로 4㎞ 떨어져 있다. 좌가산문화는 1985년 길림대학과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에 의해 같은 이름의 유적이 조사된 후 명명되었다. 유적의 보고자들은 좌가산1∼3기로 크게 나누었다.
좌가산 1기 문화 토기는 협사도(夾砂陶) 위주이며 조개가루를 섞은 것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기종은 통형관이 일반적이며 소량의 고복관(高腹罐), 발(鉢)과 사구기(斜口器)가 있다. 구연부가 두터운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토기에 문양이 시문되는데, 구연부 직하부터 시문하지만 저부 쪽은 시문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양으로는 압날이나 침선의 시문기법을 이용한 평행선문과 계단상 문양이 많고, ‘人’자문, ‘之’자문, 삿자리문, 파상선문 등이 있다. 도구로는 석부나 석분, 갈돌, 갈판 등 이외에 골침, 골촉 등 다양한 골각기가 확인되며, 세석인(細石刃)도 남아 있다.
좌가산유적 1기층에서는 주거지가 1기 확인되었는데 대체로 방형을 띠며 혀 모양의 돌출식 출입구가 있다. 중앙에서 치우져 방형에 가까운 수혈식의 노지가 위치한다. 길림성 내에서 좌가산 1기와 유사한 유적으로는 농안현 원보구(元寶溝), 장령현 요정자(腰井子), 덕혜현 대청취(大靑嘴), 길림시 교외의 이도영자(二道?子) 유적 등이 있다. 심양의 신락하층문화와 유사한 면이 많으며 연대는 기원전 5000∼4000년 정도이다.
좌가산 2기 문화는 좌가산 1기 문화와 공통되는 면이 많은데, 협사도(夾砂陶)에 통형관(桶形罐)을 기본으로 하고 침선이나 압날기법의 ‘之’자문이 성행한다. 그러나 두터운 구연이 사라지고 구연에 공백부를 남기고 문양을 시문하며, 전형적인 침선계 현문, 평행선문, ‘人’자문 등이 사라지는 등 차이점도 많다. 그러나 ‘之’자문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좌가산1기와 시기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단계까지는 세석인과 석인촉(石刃鏃)이 확인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좌가산 3기 문화는 이전 시기와는 토기양상이 크게 바뀌어 대부분의 토기가 조개가루를 섞으며 좌가산문화 유물 극소량의 니질도가 확인된다. 기형은 통형관 위주이며 극소량의 사구기가 남아 있다. 문양은 토기의 상반부에만 시문되었고 주로 침선의 ‘人’자문, 삼각집선문, 격자문, 부가퇴문 등이 확인되며, 무문양의 토기가 많아진다.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4000∼3000년 정도이다. 석촉은 마제의 유엽형직기촉이 확인된다. 골침이나 골제 작살 등 다양한 골각기가 확인된다. (임상택)』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좌가산문화,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67)
6.16.2 흑룡강성 신개류문화(新開流文化); 7000년 전~6000년 전(BC5000년~BC4000년)
『중국 흑룡강성 밀산현(密山縣)의 흥개호(興凱湖)와 소흥개호 부근에 위치한 모래언덕들에 입지한 유적들에 대해 1972년 흑룡강성 문물고고공작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2기의 무덤과 10기의 어류저장공을 확인하였는데, 그 문화적 특징이 분명하여 신개류문화로 명명되었다. 하층과 상층으로 나뉘지만 대부분의 토기는 상층에서 출토되었다. 토기는 협사도 위주로 니질도는 극히 적다. 기형은 대부분 통형관 형태의 평저 심발이며 소량의 발이 있다. 문양은 주로 찍은 무늬가 압도적인데, 어린문(魚鱗文), 능형문(菱形文), 격자문(格子文), 삼각문(三角文) 등이 대표적이며 소량의 점열문과 침선문이 있다. 이러한 문양은 흑룡강 하류에 많이 알려져 있는데, 크게 보아 소위 아무르편목문에 해당된다. 도구로는 석기와 골각기가 많이 확인되는데, 석기는 눌러떼기로 제작한 양면가공 만입 화살촉과 석인촉이 대표적이며 밀개와 긁개, 뚜르개 등도 확인된다. 골각기로는 여러 형식의 골제 작살, 골제 창, 식인기(植刃器), 아촉(牙鏃) 등이 있다. 흑룡강성에는 도배산(刀背山), 만리곽통(萬里?通), 청긍포(靑肯泡), 고대자촌(高台子村) 등 완달산(完達山) 양측과 삼강평원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절대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4000년 전후이지만 주변지역과의 관련 속에서 기원전 5000년경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개류유적에서는 하층인 3층에서 확인된 어류저장공이 매우 특징적인데, 원형 평면에 직경은 0.6∼0.7m 사이이고 깊이는 1m 미만이다. 발굴 당시 내부에는 생선뼈가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상층인 2층에서 확인된 무덤은 모두 수혈식 토광묘로 단인 일차장과 단인 이차장 위주이며 다인 이차장도 소수 존재한다. 신전장과 굴장 모두 확인된다. 부장품은 작살이나 화살촉, 각종 장신구, 토기 등이 있다. 토기문양과 작살 등의 도구, 다량의 어골이 확인된 어류저장공 등의 양상을 통해 볼 때 삼강평원 일대에서 어로를 중심으로 한 생업을 기본으로 했던 집단의 문화로 생각되고 있다.(임상택)』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신개류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990)
6.16.3 흑룡강성 앙앙계문화(昻昻溪文化); 7000년 전~5000년 전(BC5000년~BC3000년)
『중국 흑룡강성 제제합이시(齊齊哈爾市)의 눈강(嫩江)변 소택지상의 사구에 위치하는 여러 유적들의 조사를 토대로 1980년에 명명되었다. 앙앙계문화 관련 유적들은 1920년대 후반 이래 알려지기 시작하여 러시아, 일본, 중국인들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1960년대에 주요한 유적들이 조사되었다. 오복(五福) C·D지점에서는 무덤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분포범위는 남쪽으로는 길림성 대안시(大安市)에 이르고 송눈평원 북쪽의 흑룡강성 의안현(依安縣)을 포괄한다.
앙앙계문화의 토기는 주로 조질의 니질도이며 평저 또는 원저관의 형태를 하고 있다. 무문양토기를 제외하면 크게 두 가지의 문양으로 대별되는데, 세융기선문과 침선의 기하문이 그것이다. 융기선문은 구연부를 중심으로 주로 평행 또는 기하학적 융기선문이 시문되며 일부에는 각목이 시문되기도 한다. 융기선은 기면에 붙이는 과정에서 생긴 파상의 굴곡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 점열문도 존재한다.
도구로는 석촉과 골각기가 현저한데, 석촉은 세석인을 이용한 석인촉과 양면가공의 삼각촉이 특징적이다. 세석인석핵도 여러 점 출토되었다. 골각기는 작살이나 골창, 골도 등이 있다. 앙앙계문화의 유적들에서는 다량의 생선뼈와 패각, 동물뼈 등이 확인되어 주로 수렵과 어로를 중심으로 한 생업을 영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앙앙계 문화는 흑룡강성 안달시(安達市) 청긍포(靑肯泡) 등에서 신개류문화(新開流文化)의 특징과 앙앙계문화의 특징이 공존하는 유물이 확인됨으로써 신개류문화와 시간적으로 근접함을 확인하였다.
대체로 기원전 4000∼3000년에 걸친 것으로 생각되며 기원전 5000년 기까지 소급된다는 주장도 있다. 액납소(額拉蘇) C유적의 패각을 이용한 측정치로는 6510±90 BP의 연대가 알려져 있다.
앙앙계문화는 토기나 석기로 보아 러시아의 노보페트로브카문화와 유사하며 같은 단계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요녕이나 길림성 서부까지 분포하는 ‘之’자문토기문화권과는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의 하나로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 신석기문화 중 하나라 할 수 있다.(임상택)』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앙앙계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51)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중국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84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좌가산문화,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267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신개류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990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앙앙계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51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2_0030_0040_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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