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15)바이칼 일대의 신석기문화 본문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15)
6. 15 바이칼 일대의 신석기문화; 7000년 전~6000년 전(BC 5,000년~BC 4,000년)
다음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김동훈의 2011년 논문 〈시베리아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유적과 문화 –프리바이칼 소해협과 자바이칼 울란우데의 주요유적을 중심으로–〉의 신석기문화 부분이다.
『시베리아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유적과 문화 –프리바이칼 소해협과 자바이칼 울란우데의 주요유적을 중심으로–
……
2. 시베리아 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문화
시베리아는 소비에트 성립 이후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권 구분에 따라서 자우랄, 서시베리아, 남시베리아, 동시베리아, 극동지방, 북동아시아 등 6개의 권역으로 세분되며, 자연환경에 따라서는 크게 서시베리아 평원지대, 사얀-알타이 산맥지대, 중부시베리아 고원지대, 동북아시아지역 등의 지형대로 구분된다. 이중 본문에서 언급하는 바이칼 일대는 지역권으로는 동시베리아에, 자연환경으로는 중부시베리아 고원지대의 남쪽에 위치한다.
……
2.2.2 바이칼 일대의 신석기문화
1880년 비트콥스키가 키토이 하천에서 발굴을 시작하면서 키토이 신석기시대 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러시아혁명 전기에 주로 러시아 지질학회가 앙가라 강 유역의 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면서 키토이문화를 확인하였고, 1920~1960년대 오클라드니코프에 의해 앙가라 댐 수몰지구 조사, 부리야트지역 조사 등 체계적인 발굴이 실시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이르쿠츠크 고고학조사단이 무덤유적 및 주거유적을 발굴하였다. 자바이칼에서는 19세기에 처음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된 이후 1980년대부터 이바니시나에 의해 다양한 문화기가 정리되었다.
19세기 말 고고학 발굴을 통해 알려졌으며, 시베리아 고고학의 서장을 여는 역할을 하였다. 프리바이칼지역은 바이칼 호수부터 앙가라 강 유역까지를 일컫는데, 이르쿠츠크주 및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서부, 크라스노야르스크 내부의 에벤키자치구 남부 등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역들을 포함한다.
2.2.1.1 키토이문화; 7000년 전~6000년 전(BC 5,000년~BC 4,000년)
<그림 1>키토이문화 출토유물(최몽룡 외 2003:167)
신석기시대 중기에서 말기에 걸친 문화로 프리바이칼에서 최초로 정식 발굴된 고고문화이다. 1880년도 비트콥스키에 의해 명명된 이후, 시베리아고고학이 프리바이칼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된 문화이다. 키토이문화의 고분은 부정형의 얕게 판 토광(석판 설치 예는 거의 없음), 신전앙와장, 시신 주위에 뿌린 황토, 토기는 적은 양만 출토되나 낚시 바늘 등 어로도구가 많이 출토된다는 사실, 골제 원통막대기·물고기형 장식품·새머리가 새겨진 골제 조각 등의 장식품 출토라는 특징이 있다. 연대는 B.C. 5,000년 기~B.C. 4,000년 기 중반이다.
2.2.1.2 이사코보문화; 7000년 전~5000년 전(B.C. 5,000년~B.C. 3,000년)
<그림 2>이사코보문화 출토유물 (최몽룡 외 2003:170)
오클라드니코프에 의해 발굴된 이사코보 고분을 통해 명명되었고, 앙가라 강 유역에 주로 분포하며 고분 자료가 다수이다. 신전앙와장으로 묘광은 깊지 않으나 시신 주위 및 상부를 석판으로 덮었으며, 일부 석판은 지상으로 노출되어 마치 즙석한 것처럼 보인다.
2,2,1,3 세로보문화; 6000년 전~5000년 전(B.C. 4,000년 기 중반~B.C. 3,000년)
<그림 3> 세로보문화 출토유물(최몽룡 외 2003:177)
주로 단인장이며, 시신 주변에 황토의 흔적이 확인된다. 사냥과 관련된 유물이 공반 출토되는데, 삼각형 석촉이 거의 모든 무덤 안에서 날 부분이 발쪽을 향한 채 군집되어 발견되었다. 시신의 발끝에 놓인 토기는 높이·구경 20cm 내외의 첨저 포탄형으로 토기 표면의 망상문으로 보아 표면을 그물 같은 것으로 덮어서 두드린 것으로 추정되며, 그 외 구연부 근처에 공열문 혹은 단사선문이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B.C.5,000년 기 후반~B.C.3,000년 기 중엽 사이에 존속한 고고문화이다.
토기의 형식과 문양은 이사코보문화와 매우 유사하며, 다른 문화와 달리 주거지가 다수 발견되었다. 이사코보문화와 비슷하게 토광을 파고 그 둘레를 석판으로 돌린 것이지만 석판이 더 크고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어 일부 석판묘로 볼 수 있는 것도 존재한다. 첨저포탄형의 토기 중 일부에서는 저부를 향한 삼각형 파수가 존재한다. 토기 표면은 그물같은 것을 덮어서 표면을 만든 후 정면구로 정면을 하고 구연부에는 반관통 공열문을 시문한 경우와 긴 사선문이 횡렬로 압인되고 구연부에 각목이 된 경우로 구분된다. 낚시바늘·작살·물고기모형·어망추 등 어로도구가 다수 발견되었다. 후기 세로보문화에는 판암계 석제의 낚시바늘 몸통에 골제·목제·판암계의 낚시바늘 끝을 달아 조립한 조합식 낚시바늘이 확인되어 한반도 신석기시대 조합식 낚시바늘과의 유사성이 주목된다. 주거유적에서는 돌로 외곽을 돌린 노지, 훈제고기와 절인 물고기를 저장하기 위한 대형 저장공이 확인되었고, 주거지는 원추형 천막이나 막사형의 지상가옥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B.C. 4,000년 기 중반~B.C. 3,000년 기 말엽이다. 세로보문화 이후에는 초기청동기시대인 글라즈코보문화가 이어진다.
2.2.2 자바이칼 지역의 신석기시대
자바이칼은 프리바이칼과 인접한 서부 자바이칼(부리야크자치공화국)과 동쪽의 아무르 강 상류에 속하는 동부 자바이칼(치타주)로 구분된다. 자바이칼지역의 신석기시대는 대형의 자갈과 소형의 격지가 주가 되는 석기제작기법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끈을 이용해서 압인한 문양이 초기의 토기에서부터 말기까지 지속되어 다른 지역보다 승석압인문이 빨리 출현하기에 자바이칼지역이 승석압인문의 발생지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매장풍습은 대부분 굴신장이며,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의 유물에서 중기 신석기시대까지 문화양상은 큰 변화 없이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 근거로 몽골과 자바이칼지역의 경우 후기 구석기시대 최말기에서부터 문화가 지속되고, 또 현생 원주민의 문화와 일면 유사성이 보인다는 점에서 퉁구스-만주어족의 기반인 동시베리아-극동원주민의 기원이 신석기시대로 소급된다고 보기도 한다.
……
5. 맺음말
러시아 시베리아동부 프리바이칼 소해협 일대와 자바이칼 울란우데 근교와 남쪽 캬흐타 지방을 중심으로 한 2010 시베리아 동부 유적분포현황조사를 통해 주요 유적의 현황을 파악하고, 유적에 관한 자료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번 공동연구를 통해 느낀 점을 정리하며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시베리아 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유적과 민속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시베리아 동부 중에서도 일부인 바이칼 주변만 하더라도 광대한 영역이다. 그나마 프리바이칼에서는 앙가라 강 주변과 바이칼소해협 일대를 중심으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자바이칼 또한 셀렌가강과 러․몽 국경 일대에 대한 조사가 행해져 지역문화상이 잘 정립되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러시아학계가 기조사한 성과의 국내학계 소개 및 공동연구 등 이 일대 유적․유물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프리바이칼․자바이칼 일대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문화,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판석묘문화 등의 선사문화에서부터 역사시대의 흉노 평지성과 고분군 등 동북아시아역사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반도와의 관련성이 확인된다.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이르쿠츠크 고고학고환경연구소, 이르쿠츠크 대학,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부리야트학술센터 등 연구기관과의 접촉을 통해 자료 수집 및 공동연구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자바이칼 지역 원주민인 에벤키 샤만의 전통주거에서 확인되는 솟대와 장승 등의 의례용구는 현재 우리의 민속신앙과 너무도 유사하다. 17세기 러시아인의 동진(東進)으로 인해 인구와 영역이 급격히 줄고 있는 시베리아일대 원주민의 전통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민속학에서 막연하게 한민족의 시원으로 언급하는 바이칼 일대 원주민들의 전통문화가 더 이상 소멸되기 전에 우리의 시각으로 조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한반도와 시베리아의 문화교류는 단선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온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끊임없는 문화적 교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고고학 문화요소의 단순한 유사성에만 집중하여 문화적 전파나 이동을 말하기 전에 시베리아 고고학의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기본연구가 선행될 때 민족문화의 기원과 형성 등 올바른 역사상이 정립될 것이다.』
(출처; 김동훈, 시베리아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유적과 문화 –프리바이칼 소해협과 자바이칼 울란우데의 주요유적을 중심으로– , 러시아연구 제21권 제2호)
다음은 블로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에서 기술한 키토이문화, 이소코보문화, 세로보문화와 바이칼의 오른쪽, 만주와 가까운 지역에서 고토기가 출토된 우스티-칼렌가 유적 내용이다.
『2019. 2. 12. 17:26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키토이문화1: 분포범위와 연대, 무덤
키토이문화는 바이칼 유역에서 흘러나가는 앙가라 강의 상류와 바이칼의 남쪽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주거유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무덤 유적 위주로 유적이 알려져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치클로드로 유적, 우스티 벨라야 유적, 키토이 유적, 로코모티브, 포파노보 유적 등이 알려져 있다.
연대는 대체적으로 7000~6000년 전 사이이다(표1).
바이칼유역 - 키 토 이 문 화 |
로코모티프 (Локомтив) |
22a호 | ГИН3333 | 뼈 | 6370±60 | 5240 | 마모노바·수레르취츠키이 1986 |
22호 | ГИН3331 | 뼈 | 6700±180 | 5640 | |||
23호 | ГИН4033 | 뼈 | 6740±180 | 5550 | |||
10호 | ГИН3030 | 뼈 | 6780±80 | 5580 | |||
28호 | ГИН4035 | 뼈 | 6820±100 | 5620 | |||
24호 | ГИН4034 | 뼈 | 6830±80 | 5630 | |||
8호 | ГИН3329 | 뼈 | 6870±70 | 5750 | |||
포파노보 (Фофаново) |
3호 | ГИН4128 | 뼈 | 6350±50 | 5220 | ||
7호5유체 | ГИН4131 | 뼈 | 6450±50 | 5320 | |||
2호 | ГИН4127 | 뼈 | 6720±70 | 5600 | |||
7호6유체 | ГИН4130 | 뼈 | 7000±60 | 5880 | |||
7호 | ГИН4129 | 뼈 | 7040±100 | 5920 |
표 1. 유라시아의 각 지역별 신석기시대 시작연대(김재윤 2018 재인용)
키토이문화의 무덤은 토광묘(구덩이를 파고 묻음, 관의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장법(무덤에 시신을 부장하는 방법)이다.
크게 홀로 묻히는 단인장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묻히는 다인장도 있다.
또 단인장(그림2)인데, 시신을 안치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구분을 한다. 하늘을 보고 사지를 쭉펴게 묻은 앙와신장이다. 그런데 한국과는 다르게 골반에 손을 교차한 형태가 있다.
그림 1. 우스티-벨라야 유적 1호 무덤
그림2. 치클로드롬 유적의 무덤
다인장은 남녀를 함께 묻은 경우, 키가 큰 남성의 가슴에 어린아이를 올린 경우 등도 있다.
치클로드롬(그림2) 유적에서는 남녀합장묘로서 사람을 층층히 묻은 경우도 있다. 아래층에는 여성3인, 위층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중앙에는 나이든 남성이 묻은 경우다.(한국에서 이런 현상은 없다)
특히 키토이문화의 장법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대립구도(그림2)인데, 두 사람을 묻을 경우 서로 나란히 묻지 않고, 각각 머리와 다리가 대립구도를 이루게 묻는 경우가 있다.
또한 머리뼈만 없이 매납되는 경우도 있다.
이 문화의 무덤에서는 황토가 아주 두텁게 발려서 확인된다.
부장품은 남녀가 구분되는데, 남자무덤에서 부장품이 더 풍부하다고 알려졌다. 특히 낚시바늘이 남자무덤에서 많이 출토된다.
키토이문화의 무덤도 무덤 1기씩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을 이루어서 확인된다(그림3).
그림 3. 우스티-벨라야 유적의 무덤 분포도(무덤은 구릉위에서 확인되었다)
한국에서는 각 시대를 막론하고 인골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의 토양특징 때문인데, 유기물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패총이나 늪지대에서 확인된 경우는 뼈, 가죽, 유기물질 등이 남아 있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283?category=826927
『2019. 2. 21. 16:38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키토이문화의 토기
바이칼 유역에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를 통틀어 토기가 많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토기는 확인된다.
바닥이 뾰족하거나 약간 둥그스럼한 토기가 출토된다.
토기 문양은 망상문(그물문양이라는)이라고 불린다.
망상문이라 불리는 문양이 찍힌 토기는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에 전 시기에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몽골, 카자흐스탄 등지에도 있다.
키토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키토이 유적에서 출토된 사진이다.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그림1).
그림 1. 키토이 유적 출토 토기
그림 2는 샤만카 2 라고 하는 바이칼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다.
그림 2. 샤먄카 2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62호 출토,
В.И. Базалийский 2012, ПОГРЕБАЛЬНЫЕ КОМПЛЕКСЫ ЭПОХИ ПОЗДНЕГО МЕЗОЛИТА – НЕОЛИТА БАЙКАЛЬСКОЙ СИБИРИ: ТРАДИЦИИ ПОГРЕБЕНИЙ, АБСОЛЮТНЫЙ ВОЗРАСТ 인용)
역시 망상문이다. 그러나 그물문양을 찍었다기 보다는 나무판에 줄을 감아서 만든 도구로 두드렸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런 문양을 타날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이칼 유역의 망상문은 그냥 그렇게 중앙아시아에도 알려져 있음으로 그 용어를 씌는 것이 혼돈을 막을 수 있다.
바이칼 유역에는 토기가 많지 않다. 동아시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토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바이칼 유역 이남, 몽골, 중국신강, 카자흐스탄)과 중간 정도의 특징일 수 있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287?category=826927
『2019. 2. 22. 21:00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키토이문화의 무덤 부장품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문화인 키토이문화의 무덤에서는 토기가 많이 부장되지는 않는다.
바이칼 유역 신석기시대 전 시기를 통틀어서 토기가 많이 출토되지 않는다.
그 대신 물고기 잡는 도구가 많이 확인된다.
낚시바늘과 작살이다.
특히 낚시 바늘은 ‘결합식 낚시바늘’(사진 1, 그림 1-1~16)이다.
사진 1. 키토이문화의 결합식 낚시
그림 1. 키토이문화의 낚시바늘과 작살
사진 1에서 바늘이 있는 쪽은 뼈, 그렇지 않은 쪽은 돌로 제작되었다.
돌로 제작된 부분의 끝에 홈을 파서 바늘과 축을 연결할 때 끝으로 묶어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이칼 유역에서는 키토이 문화에서만 확인된다.
그런데, 이 유물(사진 2)은 한반도 남해안과 동해안에서 출토된다.
한반도 고유의 유물로 생각했으나, 바이칼 유역에서도 출토됨으로
완전히 한국만의 신석기문화유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사진 2. 한국 울산 세죽 출토
또한 이 문화에서는 대형작살이 대단히 많이 부장된다( 그림 1-17~19)
양쪽에 미늘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고 한쪽에만 미늘이 있는 것도 있다.
그림 3. 석촉과 석도
키토이문화에서는 석촉도 많이 출토된다. 석촉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루에 끼우는 부분이 U자모양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양쪽이 각각 길이가 다르게 확인되는데 (그림 3-1~3) 바이칼 유역에서는 이 문화에서만 확인된다. 그림 3-8~10은 석도이다.
도끼 가운데는 옥석(사진 3)으로 제작된 것이 많다. 주로 키토이강과 벨라야 강 상류에 원산지가 알려져 있다.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 이후 순동이 출토되는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도 출토되는데, 이 문화의 것이 좀 더 편평하다.
사진 3. 키토이문화의 석부(옥석으로 제작됨. 마연이 아주 잘되어 있다)
뼈로 만든 검이 있다(그림 4-3). 끝부분이 약간 들어가게 만든 것(그림4-3)과 그렇지 않은 것(그림 이 있다.
그림 4. 키토이문화의 조합식 검(1,2)과 골검(3)
또한 필자가 가장 분석하고 싶은 유물은 바로 조합식검(그림 4-1,2)이다.
조합식 검은 동물의 곧은 뼈(주로 사지골)에 한쪽 혹은 양쪽에 홈을 내어 타제석인을 끼워서 만들었다.
이 유물은 실제로는 시베리아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다.
아마도 조합식 검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서로 다른 물질을 결합해서 만든 것이다.
원시 무기의 형태이다.
그런데 이 유물은 청동기시대 청동검이 등장할 때 까지 이 지역에서 계속해서 사용된다.
물론 후기구석기시대에 ‘무기’라고 하는 전쟁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있지는 않았겠지만
무기의 형태를 갖춘 유물은 이미 후기구석기시대에 만들어져서 순동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필자는 시베리아를 상징하는 여러 유물 가운데 하나는 조합식 검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식 검은 바이칼 유역의 것을 모아서 다시 한 번 더 설명하겠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288?category=826927
『2019. 12. 5. 17:45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키토이문화의 인간형상물
……
7000~6000년 전 바이칼 유역의 키토이문화에서 확인된 인간형상물은 얼굴형과 얼굴몸통형이다. 라스푸티노 유적(그림 9)과 치클로드롬 유적(그림 16)에서 출토되었다. 라스푸티노 유적은 토광묘 무덤으로 2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인간형상물은 1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은 앙가라 강의 좌안에 있다. 앙가라 강의 하류에 위치한다. 유적은 강의 단구대 위에 위치하는데, 유적의 동남쪽이 강과 접하고 있어서 무너지고 있어서 유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오클라드니코프 1976).
빨간 점은 치클로드롬 유적, 노란점은 라스푸티노 유적의 위치이다.
그림. 키토이문화의 인간형상물 출토무덤유물(오클라드니코프 1976; 1974 필자재편집; 김재윤 2019)
라스포티노 1호 무덤에서는 인골이 확인되었는데, 인골 주변에서 작살, 낚시바늘, 조합식석인검(그림 17;23;24)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인간형상물은 석제로 제작된 얼굴모양(그림 16)의 조각품이 출토되었다. 길이 12cm, 너비 6cm가량으로 푸른빛의 대리석제 혹은 석회암으로 제작된 것이다. 정수리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발굴자는 이를 머리 땋은 모양으로 본다. 눈코입이 표현되었다. 작은 돌로 문질러서 제작되었다. 처음부터 목부분 없이 머리만 제작되었다(오클라드니코프 1976).
치클로드롬 유적은 앙가라 강의 상류에 위치하는데, 지류인 이르쿠트 강에서 높이 120m의 곶의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카이스카야 산의 말단부를 경계로 크게 서쪽과 동쪽 두 구역으로 유적은 구분되는데, 그 중 동쪽 지역의 무덤은 많이 파손되었다. 유적은 1897년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 1927년부터, 1997년까지 모두 87기가 발굴되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무덤도 50기정도 남아 있다. 키토이문화의 무덤으로 알려졌다(오클라드니코프 1974; 바잘리스키이 2012)
1948년에 발굴된 5호 무덤은 3인의 합장묘로, 앙신직지장이다(그림 1). 가장 왼쪽은 여성이고, 그 옆에는 남성 2인이 함께 묻혀 있었다. 부장품은 주로 중앙에 있는 남성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키토이문화의 낚시와 석촉, 긁개, 흰색 옥으로 제작된 도끼 등과 함께 뼈로 제작된 사람 모양이 확인된다. 같이 출토된 낚시의 축부(그림 10-13)는 석제품으로 머리 부분이 납작하고, 반대부분이 꼭지처럼 튀어 나왔다. 인간형상물(그림9)은 머리 부분이 둥글고 몸통은 배가 불룩하게 나온 원통형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얼굴과 몸통만 표현되어서 얼굴몸통형으로 볼 수 있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374?category=826927
『2019. 5. 30. 11:32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이사코보 문화 1
바이칼 유역의 키토이문화 이후의 문화로 알려진 문화이다. 주로 무덤유적이 알려져 있고, 앙가라 강에서 이 문화의 유적이 확인된다.
이사코보문화에서 확인된 유물은 바닥이 뾰족한 첨저토기로 망상문토기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망상문(그물문)토기라고 하지만, 필자는 타날문이라고 본다(사진1,2).
타날문은 나무판자 같은 박자에 끈을 감아서 만든 도구를 토기표면에 두드려서 생긴 것이다.
사실은 토기제작기술과 관련되어 있지만, 문양으로도 보기도 한다.
사진 1. 이사코보문화의 토기
사진 2. 이사코보문화의 토기: 박자흔 표시
사진(1)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타날문을 남기게 한 박자의 흔적이 보인다.
사진(2)는 필자가 대략 그 모양을 표시한 것이다.
박자의 너비가 비슷한 걸로 봐서 아마도 하나의 박자를 사용했다.
토기의 구연부(입술부의)끝까지 박자로 두드렸다.
구멍은?
박자로 두드린 후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박자를 두드린 이유는 토기를 좀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구멍은 일종의 문양이다. 기능과는 관련 없는 개인 혹은 집단의 표식 같은 걸로 볼 수 있다.
다른 유적에서도 구멍문양이 확인되면 집단표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인 취향일 것이다. 이름하여...개취.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이다.
왜냐하면 집단표상으로 볼 만큼 많이 토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표상 즉 문화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 좀 더 확대해서 바이칼 유역 전체의 토기는 바닥이 뾰족한 토기이며, 타날문 혹은 망상문양이 지속적이다.
이 특징은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토기 특징으로 뒤에서 이야기 하게 될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을 따라서 경계에 있는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가 전해진 일종의 코드?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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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3. 21:1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시베리아 신석기문화: 이사코보문화 2
2. 무덤에서는 무엇이 출토되었을까?
그림 1. 우스티-이다 1 유적의 무덤
위의 도면은 시베리아 바이칼 유역 신석기문화인 이사코보 문화의 무덤입니다.
우스티-이다 I 이라고 하는 유적이다.
이 사람은 조합식석인검(그림 1-2)과 석인칼(그림 103) 두 자루 이상과 와 함께 토기, 석기가 함께 묻혔다. 또 화살통 꾸러미도 통째로 넣었고, 활도 넣었다.
무덤의 양식 혹은 형식 그러니까 무덤을 일컫는 명칭은 토광묘이다.
토광을 파고 아무런 관(나무관:목관묘, 돌널관: 석관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광의 뚜껑은 석판으로 덮었다.
인골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사지를 쭉 뻗고 하늘을 보고 있는 상태를 ‘앙와신장(仰臥伸葬)’이라고 한다.
우선 토기는 앞서 말한 타날문양 혹은 박자로 두드려서 생긴 흔적이 남아 있는 뾰족한 바닥의 것이다.
석기는 타제석기로 아마 multi 기능이었을 것이다. 프로필 그림이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뾰족한 부분도 송곳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그림에서 위쪽 가로뱡향이 날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잔손질이 많이 되어 있음으로...
조합식석인검과 조합식석인도는 동물뼈의 사지골에 홈을 파서 석인을 끼운 것이다.
자세히 보면 그림 1-2에 아래쪽에 뼈 부분의 단면이 그려져 있다. 양쪽에 홈을 판 것이다. 그 안에 돌을 얇게 떼어내어서 만든 석인(blade)를 차례대로 끼워 넣었다.
그림 1-3은 굽은 뼈이다. 굽은뼈라서 그런지, 뼈의 한쪽만 홈을 팠고 그 안에 돌날 5점을 끼워 넣었다. 나중에 이지역의 청동기시대인 카라숙 문화가 되면 청동검이 나오는데, 그 때도 직인의 검과 굽은 검이 출토된다.
일단 위의 유물은 이름이 각 각 다른데, 검(sword)과 칼, 도(knife)이다.
두 유물의 구분은 날이 양쪽으로 있는지, 혹은 한 쪽만 있는지 이다.
그래서 아직은 필자가 두 유물을 각각 구분해서 이름 부르고 있는데 ,,, 연구가 많이 진행되면 또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이 유물의 분포범위는 상당히 매우 넓다.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시끄러운 홍산문화에도 있고, 그 보다 더 이른 흥륭와 문화에도 있다.
자세한 부분은 나중에 쓸 예정이다.
그럼 화살과 화살통은?
자세히 보면, 시신의 오른쪽 다리 바로 옆에 작은 돌들이 여러 점 놓여 있다.
이것은 화살촉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지런하게 한 방향으로 놓여 있겠는가?
그건 화살통을 통째로 넣어서다.
잘 썩는 유기물질로 제작된 자루와 화살통은 없어졌지만.
석촉은 타제(즉 뗀석기)로 제작되었다.
잠깐, 타제라고 해서 구석기시대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타제와 마제석기(간석기)는 물론 마제석기가 늦게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타제석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아직 구석기시대적 사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가는 방법으로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떼어 내는 방법으로 석기를 만드는 이유는 그건 돌의 재질과 그 재질에 따른 적합한 제작방법의 차이에서 생겼기 때문이다.
마제석기는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방법이 아니다.
이미 후기구석기시대에 가는 방법으로 석기를 제작하고 있다는 것을 학계에서는 안다.
(필자는 신석기시대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가 그걸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설명한다.)
그림 2. 이사코보문화의 석촉과 석창
다시 돌아가서,
이 문화의 석촉(그림 2)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옴폭하게 들어간 것(그림 2-1,2,4,6~10)과, 튀어 나온 것(그림 2-3,5) 두 가지가 있다.
보통 한국에서는 그 부분이 튀어나온 것은 청동기시대가 되어야 나온다. 그러나 마제석촉이다. 그러나 이 시베리아에는 타제로도 저렇게 자루끼우는 부분(경부 혹은 슴베)가 튀어나온 것이 있다.
또 왼쪽 어깨부위(그림 1)에 놓여 있는 4개로 분리된 막대기 같은 것도 있다.
이건 무엇?
이건 활이다. 이사코보 문화의 무덤에서는 시신 어깨부위에서 활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이사코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라고 한다.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정보가 부족해서 구체적으로 적지는 못한다. 좀 더 정보 수집이 되면 적겠다.
아래 사진의 길쭉한 나무 유물이 이사코보문화의 활이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320?category=826927
『2019. 11. 28. 14:13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시베리아 바이칼 신석기문화의 인간형상물...야누스?
올해 2월에 시베리아 후기구석기시대의 말타 유적에서 출토되는 비너스상에 대해서 설명드린 바 가 있다.
맘모스의 상아로 제작되었고 대부분 여성상이며, 남성은 페니스 모양으로 남겨진 것에 대해서 설명드렸다.
그럼 신석기시대는 어떨까?
현재까지 자료로는 후기구석기시대와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일단 오늘은 아주 특이하게 생긴 하이브리드 혹은 야누스라고 할 수 있는 유물을 소개해 드리겠다.
시베리아는 그 범위가 아주 넓은데, 동서로는 대체로 우랄 산맥의 동쪽부터 바이칼 유역 부근까지 정도라고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호수라고 알려져 있는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한 앙가라 강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분포한다.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문화라고 해도 주로 이 강 주변의 문화가 좀 잘 알려져 있을 뿐이다. 시베리아의 청동기문화에 비해서는 신석기문화가 알려진 바가 적은 편이지만, 중요한 점도 내포되어 있다.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 세로보 유적의 위치이고, 그 옆을 흐르는 강이 앙가라 강이다. 구글 지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이브리드 모습 혹은 야누스 모습의 인간형상물은 세로보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1957년에 ‘오클라드니코프’ 라는 러시아의 연구자(러시아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림)가 조사했는데, 앙가라강에서 하류에 위치한다.
세로보 유적의 12호에서 출토되었다. 일종의 석관묘인데, 무덤구덩이에 돌덩어리를 깐 경우도 있고, 돌로만 덮은 경우도 있다. 12호에는 무덤의 중앙에만 납작한 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인골은 남성으로, 머리는 약간 돌아가고 등은 땅을 향했는데, 무릎이 틀려 있는 점으로 보아서 측신장일 가능성이 있다. 이 남성의 부장품은 크게 오른쪽 무릎 부위와 오른쪽 어깨 부위에서 주로 확인된다. 인간형상물도 오른쪽 무릎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반대쪽 무릎 쪽에서는 화살대가 확인되었다(1976). 남성의 두개골에는 사슴이빨과 비버의 뼈 등으로 제작된 치레걸이가 확인되었는데, 뼈로 제작된 일종의 두부 장신구 혹은 머리에 쓰는 모자가 착장된 채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깨부위에서 출토된 유물도 화살촉, 박편석기, 석부, 골각기, 토기등이 출토되었다. 왼쪽 어깨부위에서도 활시위가 출토되었고, 조합식석인검도 함께 부장되었다. 왼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석제 화살촉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는데, 화살통을 그대로 부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로보 12호에서 출토된 인간형상물은 2점이 확인되었는데, 한 점(길이 7.1cm)(그림 13-21)은 머리와 몸통이 간단하게 표현된 것이다. 머리는 둥글고, 동체부는 원통형으로 하반신의 마무리는 부채꼴모양으로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에는 눈과 입이 약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른 한 점(그림 13-22,33, 사진)은 인간과 동물이 한몸으로 표현되었다. 유물은 길이가 대략 34cm 정도로, 사람과 동물이 결합된 신부(10cm)와 꼬리로 표현된 하부(14.3cm)로 나눌 수 있다. 신부는 납작한 판상의 동물과 인간형상물이 한 몸으로 제작된 것인데, 인간형상물의 왼쪽어깨부터 하반신까지 동물형상물과 합체되어 있다. 인간형상물이라고 해도 몸통은 동물과 같이 문양이 표현되어서 동물의 몸통에 사람머리가 붙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동물은 입을 벌리고 있는데, 오클라드니코프는 곰이라고 특정했다. 꼬리는 곡선을 이루며 반원모양인데, 끝에 사람 얼굴이 붙어 있다.
(뼈의 종류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길이가 30cm 넘는 골제품을 한몸으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아주 대형동물의 뼈일 가능성이 크다)
세로보 12호 무덤과 출토품(김재윤 2018)
세로보문화는 대략 5200~4800년 전 후의 바이칼 유역의 마지막 신석기문화로 알려졌다.
물론 이 이전에도 두 점 가량의 인간형상물이 출토되지만, 이상하게 바이칼 유역에서는 인간형상물은 이 문화이후로 집중해서 출토된다.
그리고 여성형상물도 보이지 않는다. 성을 표현하지 않는다. 후기구석기시대 비너스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와 같이 토제로 제작된 유물도 출토되지 않는다. 계속 공개해 드리겠다...』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시베리아 바이칼 신석기문화의 인간형상물...야누스?
https://eastsearoad.tistory.com/372?category=826927)
『2020. 1. 7. 16:19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신석기시대
바이칼지역의 제일 오래된 토기
필자가 앞에서 쓴 포스팅의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인 키토이문화, 이사코보문화, 세로보문화는 프리바이칼지역의 문화이다. 바이칼호수의 왼쪽 지역인 앙가라 강과 레나 강 상류의 신석기문화이다.
그런데 키토이문화는 최근의 연구성과로도 8000년 전부터 시작된다.
동북아시아에서 신석기문화가 10000년 전 이전부터 시작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늦다.
위의 이야기는 조건을 붙이면 맞고, 프리바이칼 지역을 시베리아 전체로 확대하면 틀리다.
자바이칼 지역 즉 바이칼의 오른쪽, 만주와 가까운 지역에는 고토기가 출토되기 때문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약간 설명을 드렸는데, 우스티-칼렌가 라고 하는 유적이 있다.
필자는 포스팅 하기 전부터 이 유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포스팅을 먼저 하지 않은 이유는 이 유적의 층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유적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85년인데, 그 때 논문에서는 전혀 층위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유적을 한국에 알린 것은 일본에서 동아시아 고토기 문제로 심포지움이 열리게 되면서이다.
이러한 연유 때문에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유적은 2007년에 측정된 7개의 절대연대와 함께 다시 발표된다(Yaroslav V. Kuzmin and Viktor M. Vetro 2007).
좀 더 정확하게 우스티-칼렌가 12유적의 7층에서 고토기가 출토된다(그림1).
그림 1. 우스티-칼렌가 12유적의 7층 출토토기((Yaroslav V. Kuzmin and Viktor M. Vetro 2007)
그림2. Natalia Tsydenova, Henny Piezonka 2015
이 유적의 연대는 7개의 AMS측정연대가 있는데, 12000~10000년 전 사이에서 확인된다(그림 2).
하나의 예는 늘 공격을 받는다. 우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바이칼 지역에는 그림1와 같이 고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이 여러 개 존재한다(Natalia Tsydenova, Henny Piezonka 2015).
아래 그림3에는 붉은색 동그라미와 흰색 동그라미가 함께 표시된 유적이 후기구석기시대 석기가 출토되면서 고토기가 함께 출토되는 지역이다. 흰색 동그라미는 고토기가 출토되는 유적과 비슷한 연대이지만, 고토기는 없는 유적이다. 붉은색 동그라미만 표시된 유적은 고토기만 출토되는 유적인데 10000년 보다 늦다.
그림 3. 자바이칼지역의 고토기 출토유적((Natalia Tsydenova, Henny Piezonka 2015).)
위의 유적을 절대연대로 표시한 그래프(그림 4)이다. 가장 아랫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림 4. 자바이칼 지역의 기후변화(왼쪽), 고토기 유적(가장 오른쪽)과 같은 기간에 토기는 나오지 않지만 석기만 출토되는 유적(중간)
토기는 바닥은 뾰족하거나 둥글다(그림 1). 태토는 사질성으로 석영, 식물성 유기물질 등이 혼입되었다. 토기의 크기는 크게 두종류인데, 대부분 구경(토기의 입구지름)이 구경:12~14cm, 높이 26.5~29.5cm인데, 대형 토기는 구경이 26.5~39.5cm, 높이: 35.5~38.5cm이다.
토기의 그림은 왼쪽은 주로 바깥에서 보이는 면, 오른쪽은 주로 안에 보이는 것을 그린다.
토기는 바깥에 문양이 있는 것(그림 1-1,2,4~7)과 없는 것(그림 1-3)도 있다.
빗처럼 생긴 도구를 보통 다치구라고 한다. 참빗처럼 생겼을 꺼라고 추측한다.
이 다치구를 지그재그로 찍어서 문양을 그린 것이다.
토기의 내면에는 가로 방향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짚이나 식물성 풀 혹은 다른 도구로 가로 방향으로 토기 내면을 다듬은 흔적이다(그림 5).
그림 5. 우스티 칼렌가 12유적의 7층 토기(Natalia Tsydenova, Henny Piezonka 2015
토기 태토에 식물성 유기물질 즉 풀이 혼입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를 가지고 AMS연대측정도 했다(그림 2에는 AMS측정 material이 표시되어 있다).
동북아시아의 고토기에도 식물성 유기물질이 혹은 동물성유기물질이 혼입되어 있다. 아무르강 하류와 중류(셰프코무드·얀쉬나 2012,), 눈강(王立新 2018)에서는 주로 풀이 들어가 있다. 연해주의 고토기에는 풀 보다는 사슴털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클류에프·모레바2014)가 최근에 있다.
자바이칼 지역의 고토기 하한(가장 늦은 경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드리겠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385?category=826927
<참고자료>
김동훈, 시베리아동부 바이칼 일대의 고고유적과 문화 –프리바이칼 소해협과 자바이칼 울란우데의 주요유적을 중심으로– , 러시아연구 제21권 제2호
블로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키토이문화1: 분포범위와 연대, 무덤, 2019.02.12.
https://eastsearoad.tistory.com/283?category=826927
키토이문화의 토기, 2019.02.21.
https://eastsearoad.tistory.com/287?category=826927
키토이문화의 무덤 부장품, 2019.02.22.
https://eastsearoad.tistory.com/288?category=826927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키토이문화의 인간형상물, 2019.12.05.
https://eastsearoad.tistory.com/374?category=826927
이사코보 문화 1, 2019.05.30.
https://eastsearoad.tistory.com/318?category=826927
시베리아 신석기문화: 이사코보문화 2, 2019.06.03.
https://eastsearoad.tistory.com/320?category=826927
세로보문화의 조합식석인검, 2019.07.27.
https://eastsearoad.tistory.com/335?category=826927
시베리아 바이칼 신석기문화의 인간형상물...야누스?, 2019.11.28.
https://eastsearoad.tistory.com/372?category=826927
바이칼지역의 제일 오래된 토기,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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