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환국과 신석기문화(17)

6.17 아무르 강 유역의 신석기문화; 17000년 전~6000년 전

 

『아무르 강은 최상류의 실카 강과 오논 강을 포함해서 길이 4350㎞에 달한다. 몽골고원 북부에서 발원하여 블라고베셴스크 부근에서 제야 강과 부레야 강이 합류하고, 하바롭스크시 부근에서 송화강과 우수리 강이 합류한 후 북동류하여 사할린 앞바다로 나가는데, 대략 제야 강까지를 상류, 하바롭스크시 부근까지를 중류, 니콜라옙스크항까지를 하류로 나눈다. 주로 아무르 강 하류와 중류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아무르 강 하류는 최근 새롭게 분리된 마린스카야문화를 비롯해서 오시포브카문화, 말리셰보문화, 콘돈문화, 보즈네세노브카문화가 있고, 아무르 강 중류는 노보페트로브카문화, 그로마투하문화, 오시노오제로문화가 있다.

 

아무르 강 하류의 가장 이른 토기문화는 오시포브카문화로 원시고토기의 가샤유적을 대표로 하는데 기원전 15,000∼9000년 사이에 속한다. 마린스카야문화는 하바롭스크 수추 섬 유적을 통해서 가장 최근에 밝혀진 신석기문화로 기원전 7천 년 기 후반∼6천년기로 편년된다. 말리셰보문화와 콘돈문화는 최근 문화의 서열에 상반되는 견해가 제시되어 좀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말리셰보문화의 토기는 다치구로 압인문이 시문되고, 표면에 적색 마연된 것이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연해주의 보이스만문화와 관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문화는 기원전 6000~3000년경까지 제시된 연대 폭이 크다. 콘돈문화는 능형압인문이 시문된 평저토기가 특징으로, 기원전 4000년 기 말의 하바롭스크 콘돈-포치타유적을 대표로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바롭스크 말라야 가반유적 발굴을 통해 콘돈문화가 말리셰보문화에 선행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무르 강 하류의 가장 늦은 신석기시대 문화는 기원전 3000년 기를 중심으로 하는 보즈네세노브카문화로 연해주의 자이사노브카문화와 병행한다. 아무르 강 하류와 연해주의 이른 시기 신석기문화는 상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후기 신석기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진척된 연구가 없다. 시문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어골문, 타래문 등의 문양형태가 공통적인 점 등은 연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아무르 강 중류는 아직까지 유적조사가 미비해서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문화인 노보페트로브카문화와 그로마투하문화가 기원전 9000년 이전까지 올라가며, 오시노오제로문화가 기원전 3000년경으로 그 사이의 공백 기간이 길다. 각종 세석기와 함께 고토기,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는 노보페트로브카문화는 한반도의 융기문토기문화와 관련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로마투하문화에서도 일부 융기문토기와 함께 다치구 압인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쐐기형몸돌, 돌날, 긁개 등도 많이 출토되었다. 두 문화는 여전히 신뢰할만한 방사성탄소연대가 없고 연대 하한이나 문화 분포에 대한 연구도 미비해서 재고찰할 여지가 많다. 아무르 강 중류의 가장 늦은 신석기문화는 오시노오제로문화로 아무르 강 하류의 보즈네세노브카문화, 연해주의 자이사노브카문화와 병행한다. 보즈네세노브카문화 토기와는 달리 돌대가 여러 줄 부착되는 특징이 있는데, 앙앙계(昻昻溪)문화의 토기와 유사하다.

 

아무르 강 하류에 말리셰보문화와 콘돈문화가 존재할 때 아무르 강 중류에는 어떠한 신석기문화가 영위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고, 말리셰보문화와 콘돈문화와의 관계, 콘돈문화의 절대연대 등도 최근 아무르 강 하류의 조사에서 상반되는 견해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풀어야할 문제가 많다. 하지만 한반도 신석기문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로써 적극적인 자료 활용과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28)

 

6.17.1 오시포브카문화(Osipovka文化); 17000년 전~10000년 전(BC15,000년∼BC8000년)

 

『아무르 강 하류역에서 갱신세 말기에 후기 구석기 전통과 함께 토기를 공반하는 전환기 단계를 오시포브카문화로 부른다. 오시포브카문화 유적들은 아무르 강 하류와 우수리 강을 따라서 550㎞ 반경 안에 위치한다. 이 문화의 가장 북쪽 경계는 아무르 강 하류의 북동쪽으로 훔미 유적이 있는 예브로노-고린스키 지질고고학지구이고 남쪽 경계는 우수리 강 하류의 요하(饒河)이다. 특히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하바롭스크 시내에서 중국 국경까지의 지역은 헤흐치르(Khekhtsir) 지질고고지구로 70개 이상의 오시포브카문화 유적이 알려져 있고, 그중 56개 유적은 서로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오시포브카-1, 가샤, 훔미, 곤차르카-1, 노보트로이츠코예-3·7·10·14·17, 오시노바야 레치카-10·16 유적이 이 문화에 속한다. 특히 헤흐치르에서 오시포브카문화 유적이 많이 조사되었는데, 노보트로이츠코예-3·10·14·17, 곤챠르카-1∼4, 오시노바야 레치카 유적 등이 해당된다.

 

가장 이른 오시포브카문화층에서는 주거지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이동식주거지와 유사하다. 주거지는 3.5×4.5m, 5×1.7m의 장방형으로 내부구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외에 훔미유적에서 보이는 반수혈식 주거지도 이 시기에 보인다.

 

오시포브카문화에서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은 14개소 이상인데, 오시포브카-1, 가샤, 훔미, 곤챠르카-1·3, 고샨, 아무르-2, 노보트로이츠코예-3·7·10, 오시노바야 레치카 10·16 등이다. 그중에서도 토기 기종의 다양함이나 양으로 보아서 가장 중요한 유적이 곤챠르카-1유적이다.

 

이 문화의 토기 특징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태토에 풀을 섞어서 성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샤모트’(내화토)가 혼입된 경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샤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태토에서는 풀을 넣은 경우가 알려졌지만 그러한 토기는 일부이고 대부분은 샤모트가 혼입되어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외에 태토에서 플린트, 석영, 혈암과 드물게는 석영과 장석도 확인된다.

 

토기기형은 발형평저(鉢形平底) 위주이다. 가샤유적에서 출토된 심발형평저토기는 표면에 세로방향으로 시문구로 정면한 흔적이 잘 남아 있다. 곤챠르카-1유적의 토기는 구연부가 직립하거나 약간 내만한다. 유일하게 복원된 기형은 구경이 기고 보다 많이 넓은 발형토기이다. 구연단에는 공열문, 융기문이 시문되며, 동체부는 다치구에 의한 지그재그 문양이 시문되거나 문양이 생략되기도 한다. 시문에는 회전식 시문구나 다치구 혹은 나무막대기나 판에 줄을 감아서 만든 도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석기는 세석인몸돌, 세석인, 다양한 모양의 양면조정첨두기, 긁개, 석부 등이 있다. 세석인몸돌은 양면석기로 제작된 것 중에서도 유베쓰[湧別]기법과 작은 자갈돌을 소재로 해서 정면한 세석인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긁개는 평면 삼각형인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석재는 이암, 옥수석, 각섬석 등이다. 이 밖에 대형 어망추, 굴지구, 화살촉 등이 있고, 부분적으로 마연된 석부도 확인된다.

 

토제 및 석제의 예술품과 우상물(偶像物)도 있다. 예술품은 주로 석제의 목걸이, 펜던트 등이고, 우상물은 돌로 만든 새, 흙으로 빚은 곰, 남녀의 성기를 양쪽 끝에 조각한 석제품 등이 있다. 이 문화의 연대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5,000∼8000년 사이에 해당한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오시포브카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99)

 

 

6.17.2 말리셰보문화(Malishevo文化); 8000년 전~6000년 전(BC6000년~BC4000년)

 

『말리셰보문화는 아무르 강 하류에 있는 보즈네세노브카유적의 신석기시대 층위 중 가장 하층 문화에 근거하여 설정된 문화이다. 말리셰보문화는 토기문양의 시문방법 때문에 연해주의 보이스만문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들은 대부분 우수리 강 하류에서 아무르 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시간적·지역적으로 전기와 후기 두 그룹으로 나뉜다. 전기는 아무르 강 하류의 남서쪽 유적들이고, 후기는 북동쪽 유적들이 많다. 전기는 가샤, 고샨, 말리셰보, 사카치 알리얀, 카자케비체보, 브이치하, 셰레메티예보, 아무르스키 사나토리 유적이 있고, 후기에는 북동쪽 유적들로 수추, 칼리노브카, 말라야 가반 유적 등이 속한다.

 

주거지는 대체적으로 말각방형이나 원형에 가까우며, 크기는 소형(30∼60㎡), 중형(70∼110㎡), 대형(150∼180㎡)으로 나뉜다. 수혈의 깊이는 1.5m가 넘는다. 주거지 중앙에 1∼3개의 노지가 설치되었으며, 출입시설이 확인된 적이 없으나 지붕 위에 중앙 연기통을 통해서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전통은 극동의 원주민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토기는 다치구로 압인된 발형평저(鉢形平底)이며 표면은 적색 마연되었다. 문양은 전면에 시문되거나 동체부 하단까지 시문되어 있으며, 동체부에는 점열로 이루어진 사선문과 곡선문을 수평으로 시문하였다. 이 밖에 구연부와 동체부에 승선문(繩線文)기법으로 시문한 첨저토기도 있다. 수추섬 1·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첨저토기는 평저토기와는 다른 또 다른 전통의 존재를 보여준다.

 

예술 및 의례품으로 인물, 동물, 새, 혼합형의 소형 토제 소조물이 있고, 장신구는 석제 걸개, 목걸이, 고리, 구슬 등 다양하다. 문양이 시문된 방추차도 많이 출토되었다. 수추섬에서 출토된 방추차 중 하나는 소용돌이 곡선문이 깊게 새겨져 있다.

 

말리셰보문화의 연대는 사카치 알리안과 북동 그룹의 유적을 기준으로 기원전 6000년 기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말라야 가반과 수추섬 유적의 말리세보문화 방사성탄소연대는 기원전 5000년 기 후반과 4000년 기 전반에 해당한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말리셰보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40)

 

 

6.17.3 노보페트로브카문화(Novopetrovka文化); 13000년 전~9000년 전(13,000∼9000 BP)

 

『아무르 강 중류의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문화로 노보페트로브카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밝혀졌다. 콘스탄티노브카와 세르게예브카 유적이 대표적이며, 세석인석기와 융기문토기가 공반하는 특징을 지닌다. 노보페트로브카문화의 주거지는 콘스탄티노브카유적에서 8기, 노보페트로브카유적에서 25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말각방형의 수혈식이며 기둥구멍도 중앙과 벽 쪽에 있다.

 

토기의 출토양은 그리 많지 않은데, 노보페트로브카 8호주거지에서 원통형토기가 발견되었다. 태토에 굵은 모래, 자갈, 식물줄기 등이 섞였고, 구연부는 직립하거나 약간 외반하고 융기문이 횡방향으로 부착되었다. 내부에서 외부로 반관통한 공열문토기도 있다. 이러한 융기문토기가 한반도의 융기문토기와 유사해서 상호관계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외에 토기가 깨어진 뒤 수리한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어진 무문양토기도 있다.

 

석기의 가장 큰 특징은 쐐기형 몸돌과 프리즘형 몸돌에서 떼어낸 돌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돌날석기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날 부분에만 중점적으로 세밀하게 잔손질되어 있다. 특히 화살촉이 대표적 돌날석기로 양면을 중점적으로 잔손질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화살촉 가운데는 슴베가 있는 것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이다. 석기 중에는 여러 가지 용도가 복합되어 있는 것도 있다. 칼은 새기개, 긁개 등과 함께 복합되고, 긁개와 새기개, 뚜르개와 천공구 등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문화의 연대는 1970년대 데레뱐코에 의해서 기원전 6000∼5000년경으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아무르 강 하류의 고토기 발견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연대가 상향되어 기원전 10,000년 이전으로 보고 있으며, 방사성탄소연대값은 13,000∼9000 BP로 측정되었다. 노보페트로브카문화는 아무르 강 하류의 오시포브카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고 기원이 동일하다는 주장도 있다.(김재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노보페트로브카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600)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2007.11.20.ㅣ뉴스메이커 750호

 

강줄기 따라 수많은 문화·유적 분포… 중류 ‘평저 융기문 토기’ 한반도서도 출토

 

 

 

아무르 강 유역 유적 분포도

 

 

나는 아무르 강을 보면 ‘아, 물이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모스크바에 유학할 때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르’라는 명칭이 이주 한인들이 너무 힘들고 목이 마를 때 그 강물을 보고 “아, 물이다”라고 말한 연유로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다. 아무르 강 하류의 니브흐인들은 그 강을 다-무르, 즉 큰 강이라고 불렀고, 더 하류 쪽의 에벤크(에벵키)인들은 이를 차용하여 아마르 혹은 아무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러시아인들이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무르 강이 되었다. 아무르 강은 그 물 흐르는 것이 검은 용과 같다 하여 흑룡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이칼 동쪽의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하는 아무르 강은 동쪽으로 흘러 아무르 주와 하바로프스크 주를 지나 타타르 해협으로 흘러나간다. 아무르 강은 전체 길이가 2824㎞로, 상류·중류·하류로 크게 구분된다.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제야 강 하구까지, 즉 블라고베시첸스크 시까지가 상류, 이곳에서 우수리 강까지, 즉 하바로프스크 시까지가 중류, 그리고 이곳에서 동해의 타타르 해협까지가 하류다.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교통로

 

아무르 강 유역에는 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나나이족을 비롯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도 이 강을 따라 살고 있다.

 

아무르 강은 동북아시아 북방지역의 교통로이자 젖줄과도 같았다. 사시사철 동북아시아의 북방을 동서로 연결했으며, 또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풍부한 음식물을 제공해주었다. 여름이면 배를 타고 아무르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아주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빙판길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한반도와,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가 일본과 각각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아무르 강과 그 지류에는 동해의 타타르 해협에서 올라오는 연어로 인해 강이 물고기로 넘쳐났다. 이곳의 주민들은 여름 한철의 연어잡이로 겨울을 준비했다. 연어는 이곳 주민들의 주식이었고, 의복과 신발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았다. 아무르 강에는 철갑상어도 많이 서식한다. 주변의 산악지역에는 곰과 사슴 등 수많은 동물도 서식한다. 그 때문에 아무르 강 유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에 아무르 강 중류와 하류에는 수많은 고고학 문화가 발전했다. 하류 지역에서는 이미 1만3000년 전에 토기를 사용했다. 가샤 유적에서 출토한 이 토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른 토기 중의 하나다. 더 하류로 가면 수추 섬 유적이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3년 동안 러시아와 공동 발굴조사를 한 유적이다. 길이가 약 4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이 섬에서는 신석기시대 전 기간의 주거지가 약 120여 기 확인되었다.

 

이 섬 안에는 환호가 있어 사람과 영혼이 거주하는 지역이 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는 물론이고 사람 형상과 동물 형상을 한 다량의 토우도 출토되었다. 토기 중에는 번개무늬 토기가 있는데, 6000~7000년 전의 토기에 지금 우리가 쇠 울타리, 베개, 담장의 그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모양의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 덕분에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리안 루트 상에 분포한 대표적인 암각화인 레나강 상류 카축의 암각화(사진|김문석기자)와 아무르 강 유역 시카치-얄랸 암각화(사진|정석배교수), 그리고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왼쪽부터)

 

발해, 중·상류까지 진출 주장도

 

또한 아무르 강 하류 지역에는 ‘아무르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토우도 있으며, 토기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도 있다. 나나이인들이 사는 시카치-알랸 마을 주변에는 암각화 유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과 사슴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새긴 바위들이 아무르 강변을 따라 수없이 널려 있다.

 

나나이인들은 이 암각화를 매우 신성하게 여긴다. 태초에 사람이 3명 있었다. 그들은 카도라는 남자와 쥴치라는 여자를 만들고, 나중에 마밀쥐라는 처녀를 만들었다. 카도는 하늘에 해가 3개 있어 너무 뜨거워 살 수가 없다면서 2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를 기념하여 마밀쥐가 암석에 그림을 그렸고, 쥴치가 이제 사람들이 내 남편이 2개의 해를 죽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나나이인들은 이 신화의 내용대로 시카치-알랸 암각화를 자신들의 조상들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르 강 유역에서 발굴한 세칭 ‘아무르의 비너스’(왼쪽)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3000년 전) 토기의 조각들. |정석배 교수

 

아무르 강 중류 지역에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노보페트로브카 유적이 있는데, 평저 융기문 토기와 돌날로 만든 석기가 특징을 이룬다. 비슷한 평저 융기문 토기가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전기 유적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강원도 오산리 유적과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 그리고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신석기문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바이칼 지역이나 중국의 중원문화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시기에 이미 환(環)만주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에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는 발해가 아무르 강 중류의 제야 강 지역까지 진출했고, 어쩌면 더 서쪽으로 아무르 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곳은 발해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이 그린 발해의 강역도 범위를 많이 벗어나는 지역이다. 그 개요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서기 3~4세기부터 7~8세기까지 아무르 강 유역에는 대체로 소흥안령-부레야 산맥을 경계로 하여 그 서쪽과 동쪽이라는 두 개의 큰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서쪽은 지금의 블라고베쉔스크 시가 위치하는 제야 강 너머까지의 저지대에 미하일로브카 문화가 존속했고, 동쪽에는 하바로프스크 시를 중심으로 하는 아무르 강 중·하류 지역에 나이펠드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나이펠드 문화는 아무르 강의 지류인 제1송화강과 우수리 강의 저지대에 분포하는 중국 지역의 동인문화를 포괄한다.

 

이 두 지역은 유물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 서쪽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장란형의 동체가 있는 호형 토기와 구상의 동체에 목이 있는 병형 토기가 많은데, 모두 격자타날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수제다. 나이펠드 문화에는 동체가 길쭉한 화병형과 심발형 계통의 토기가 많으며, 모두 어깨 부문에 침선문과 다치구 압인문이 시문되어 있다. 모두 수제다. 그 외에도 물레에서 보완 손질을 한 구연이 나팔 모양으로 크게 벌어진 화병형 토기가 있는데 역시 어깨 부분이 침선과 다치구 압인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보이지 않는 환옥과 은고리가 결합된 귀고리가 많다.

 

 

 

아무르 강 수추 섬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로 인해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린다. 한반도와도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번개무늬토기(왼쪽)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수추 섬에서 발굴한 석환과 곰상.

 

서쪽 8세기 문화에 고구려 토기 등장

 

여기에서 미하일로브카 문화는 사료에 나오는 몽골어계의 실위고, 나이펠드 문화는 퉁구스어계의 흑수말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 의견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기 8세기쯤에 이곳의 정치적 양상이 바뀌는데, 발해의 건국과 관련한 사건이 그것이다.

 

8세기쯤 발해의 건국과 함께 아무르 강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흑수말갈이 발해의 압박을 받고 서쪽으로, 그러니까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8세기쯤부터 나이펠드 문화의 요소가 확인된다.

 

한편, 조금 후에 그러니까 서기 8세기 중엽 이후에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는데 바로 트로이츠코예 문화다. 이 문화는 말갈계의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토기를 함께 보이고 있다.

 

말갈계 토기는 어깨 부분에 볼록한 융기대가 장식되어 있고, 간혹 동체가 격자타날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어깨 부분의 융기대는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와 흑수말갈의 나이펠드 문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던 요소다.

 

바로 이 문화를 그 러시아 고고학자는 발해의 문화로 파악한다. 실제로 크로이츠코예 문화에 보이는 어깨가 융기대로 장식된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 토기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확인되며, 그 외에도 철제 창이나 찰갑, 대도, ‘단검’ 등은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발굴 조사한 연해주의 체르냐치노 5 발해고분 유적에서 나온 것과 동일하다. 발해의 영역 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 하겠다.

 

아무르는 흐른다. 그 물길을 따라 도처에 유적이 분포하고, 전설과 신화가 잠들어 있다. 오래전에는 한반도의 것과 매우 유사한 토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던 흑수말갈과 실위의 실체가 성큼 다가왔고, 그에 따라 발해도 점차 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아무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이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때다. 더욱이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고고학>

(출처; [특별기획]뉴스메이커 750호,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2007.11.20.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6049&p_date=)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28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오시포브카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099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말리셰보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740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 노보페트로브카문화,

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600

 

[특별기획]뉴스메이커 750호,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2007.11.20.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6049&p_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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