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2. 환국 2.3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환단고기桓檀古記』이야기〉 <10-1>~2.4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사 유물, 고조선은 신화 아닌 역사〉 본문
《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2. 환국 2.3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환단고기桓檀古記』이야기〉 <10-1>~2.4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사 유물, 고조선은 신화 아닌 역사〉
대야발 2024. 2. 18. 11:05《우리 겨레 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2. 환국
2.3 2014년 7월 1일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 - 안경전安耕田 STB상생방송 이사장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0-1>
『지난 1년 계속돼 온 『환단고기』이야기는 이번 호와 다음 호로 마무리된다. 이 기획이 우리 역사에 대한 모두의 관심을 촉발하는 한 계기가 되기를 본지는 기대한다. 연재를 마치며 본지는 전 CNN 기자 조 카포라렐로가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 안경전 이사장에게 보내온 질문과 안 이사장의 답변을 두 차례로 나눠 싣는다.
“『환단고기』를 통해 한국의 고대 문명, 세 왕조 7천 년 역사의 실체가 밝혀졌다”
-『환단고기』의 기운으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역사광복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2013년 10월 미국 뉴욕 대동연회장에서 열린 『환단고기』 북콘서트. 안경전 이사장의 강연 모습. 작은 사진은 조 카포라렐로 전 CNN기자
안경전 이사장은 자신의 30년 연구 결정체인 『환단고기 역주본』을 펴낸 직후부터 이 책을 안고 한민족사 알리기 ‘대장정’에 나섰다. 2013년 초에서 2014년 중반까지 1년 여 동안 서울 부산 등 국내 10여 개 도시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주 지역으로 이어진 ‘환단고기 북 콘서트’가 그것이다. 안 이사장의 『환단고기』 강연 나아가 ‘잃어버린 우리 역사’ 이야기는 역사학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민족사에 대해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대중의 관심과 열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환단고기』를 통해 새로이 빛을 보게 된 한민족의 뿌리 역사와 국통맥國統脈(환국에서 시작해 대한민국까지 아홉 굽이로 이어진 국가 정체성의 진실) 이야기는 국적을 넘어 외국인에게도 대단히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미주 지역 강연을 통해 한민족사의 진면목을 듣게 된 미국 유력 매체의 한 언론인이 안 이사장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세계적인 뉴스방송 CNN의 전직 기자인 조 카포라렐로(Joe Capolarello)가 그 사람이다.
카포라렐로 기자는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전하는 안 이사장의 열정적인 스피치에 감명과 충격을 받았다”면서 “강연 내용을 토대로 미국에서 역사 다큐멘터리 혹은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안 이사장에게 한국(고대)사에 대한 20여 개 항목의 질문서를 보내 왔다.
지난 해 여름 이후 1년 동안 본지를 통해 안 이사장의 역사 이야기 대담을 끌어온 본지는,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카포라렐로 기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안 이사장의 답변을 옮기는 것으로 연재를 맺는다. 편집상 주요 질문을 추려내되 질문의 원안과 순서는 그대로 두었다. 안 이사장의 우리 역사 이야기 1차 연재는 끝나지만 오히려 이것이 우리 역사에 대한 한국인 모두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작지만 큰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 박정하註.
4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 전에 환국의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는가.
고대 한국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것이 중국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이다. 만리장성 밖에서 발굴된 홍산문화는 동북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문명으로서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문명이다. 그래서 지난 백년 동안 발굴이 계속되어 온 이 홍산문화를 학계에서는 소위 ‘제5의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몽고 유적지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과 사료가 중국에는 전혀 없어 발굴 현지에 가보면 홍산문화는 ‘신비의 왕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홍산문화는 중국 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그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5,5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 시대를 넘어 신석기시대에 걸친 문명이다.
이 새로운 문명의 흔적이 드러남으로써 우리들이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인류문명의 기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이 문명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이 한국의 고대사서인 『삼국유사』라는 책에 나온다. 옛날에 환국과 그 뒤를 이은 배달국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중앙아시아의 천산 지역에 있던 환국에서 환웅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동방에 와서 신시라는 수도를 정해 배달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 후 단군조선이 배달에 이어 건국됐다는 내용이 그 가운데 간단히 소개돼 있는 것이다.
중국 문화권에는 홍산문화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이 없어서 이 문명을 발굴만 하고 해석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우하량에서 나온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라든지 여신을 모신 사원, 제사장의 무덤에서 나온 옥기류, 상당히 발전된 축성술을 보여주는 석성 등으로 미루어 중국 역사학자들도 고국古國 즉 국가 성립의 모든 기반이 이미 당시에 확고히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처럼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홍산문화 발굴로 중국 학계에서는 그들의 중화문명의 태동을 새롭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의 중화문명이 황하문명 뿐 아니라 북방문화의 두 가지 요소로부터 탄생하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홍산문화를 요하 유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요하문명이라고도 하며 또 발해가 고대문명의 탄생과 교류에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여 발해문명이라도 한다.
홍산문화의 발굴로 당혹스러워 하는 것은 중국 학자들 뿐 아니다. 그 동안 일본 식민사학의 전통적 해석을 그대로 추종해온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환국과 신시배달,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부정해 왔다. 그러나 홍산문화의 발굴로 그들이 신화로 치부하고 있던 옛 한국문명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1983년 우하량 유적지가 발굴되었을 때 그 동안 중국에서 신화로 믿어오던 삼황오제 시대가 실제로 발굴됐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중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옛 한국 문명의 존재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는 기록이 전해져 왔다. 바로 『환단고기』라는 이름의 문헌으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천년에 걸친 시기의 다섯 사람이 남긴 역사기록들을 묶어 편찬한 책이다. 이 책에는 환국과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기록이 실려 있다.
이처럼 홍산문화라는 고고학 유적과 역사 문헌 두 가지 모두가 옛 한국 문명의 존재를 입증해주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환국과 배달, 고조선의 역사는 결코 신화도 전설도 아니다.
여기서 하나 추가로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한반도에는 구석기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일제가 물러난 이후 수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한국에는 분명히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1만 2천 년 전의 볍씨 알갱이도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매우 오래 전에 벼농사가 지어졌음이 입증되었다.
이는 한반도에서 신석기시대가 1만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로부터 인류 문명의 개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5천여년 전에 홍산문화와 같이 발전된 문명이 출현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황하문명을 건설한 것은 동이족이다. 상나라가 바로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으며 중국인들이 중화문명의 시조로 생각하는 인물들은 실제로는 중국의 화하족이 아닌 동이족인 경우가 많다. 5500년 전의 인물로서 팔괘를 그려 우주와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였던 동양철학의 시조 태호복희, 중국에서 농경과 의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신농, 이들이 동이족이라는 역사 기록이 있다.
『환단고기』에서는 복희가 배달국의 왕자였다고 한다. 동이족은 내몽골로부터 만주와 하북성, 산동성에 걸친 중국 북방을 지배하였던 고대 한민족의 조상이다. 중국의 고대 사서에 동이족의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문명이 동이족의 영향 하에 탄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 동이족이 홍산문화로부터 연원한 족속이었음은 물론이다. 용과 봉황을 함께 신성한 동물로 신봉하였던 용봉문화가 그것을 입증해준다.
홍산문화라는 지칭이 곧 고대 한국 문명을 가리키는 이름인가.
일본마저도 한국의 전통 사서로 인정한 삼국유사에 근거해 볼 때 홍산문화라는 이름 역시 고대 한국 문명을 가리키는 것(한국의 일부 학자는 발해문명이라고 부른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고대 문명을 총체적으로 가리키거나 나타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홍산문화는 현재 중국 내몽골 동남부, 요령성, 하북성 북부를 중심으로 발해 연안을 끼고 한반도까지 그 영역이 걸쳐 한민족이 이룩하고 발전시킨 문명이다.
요령성 우하량에서 발굴된 총묘단의 3대 유적과 함께 이집트의 피라미드 보다 천 년이나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피라미드 유적(전면에 제단이 설치되었으며 폭 60m의 사각형 기단에 높이 10m 정도인 7층으로 아직 미발굴 상태이다)은 세계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피라미드 문화의 원조로 해석되고 있다. 이집트나 중동 수메르 문명권의 지구라트, 중남미 마야, 아즈텍 문명 등의 모든 초기 피라미드 유적은 통치자와 백성이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천단이다. 그런 피라미드의 원형이 5500년 전 우하량에서 여신전과 함께 발굴돼 나온 것이다.
이 고대 문명에 대한 기록이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중국의 학자들은 일단 홍산문화를 가리켜 ‘신비의 왕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인된 기록인 삼국유사에서 홍산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근거와 단초를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유사가 고기古記라는 옛 사서를 인용해 전하고 있는 ‘옛적에 환국이란 나라가 있었다(석유환국昔有桓國)’는 기록이다.
최초의 나라 환국은 우주 광명을 체험하고 살았던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이 고대 문명, 곧 환국은 배달, 조선으로 그 나라의 정통성이 계승됐다. 지금부터 6천 년 전 인류 기후와 환경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때 환국은 동과 서로 분화됐다. 당시 동방으로 온 인물이 환웅이다. 환웅은 앞서 환국의 제왕인 환인으로부터 명을 받아 동방 백두산에 와서 도시국가 신시를 열었다. 한국의 고대사를 밝힌 역사서인 『환단고기』는 이렇게 환웅이 새로이 연 나라의 이름이 배달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나중에 단군왕검이 조선이라고 하는, 세 번째 문명국을 건설했다.
단군조선은 옛 조선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유사는 중국 역사서인 위서(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의 역사: 왕침 저)를 인용해서 삼국유사가 지어진 당시(3세기 중반)로부터 거슬러 무려 2천 여년 전에 단군이 있었고, 그가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조선이라 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중국의 요堯임금(BCE 2350여년) 때다.
삼국유사 고조선조 기록 원문 | 중국 사서인 위서를 인용하여 환국과 신시배달, 옛 조선에 대한 기록은 홍산문화의 문헌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한국 고대 문명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며 그 영역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고대 문명은 환국 배달 조선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를 전해주는 사서가 『환단고기』이다. 『환단고기』에서는 인류 최초의 나라이자 동서 인류 최초의 문명국인 환국의 시조와 정치, 문화, 생활상, 그리고 고대 환국 사람들이 지녔던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 나라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등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지금으로부터 9천2백 년 전에 건국됐다. 중앙아시아 동부, 천산을 중심으로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걸쳐 12나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방 한민족의 두 번째 나라인 배달은 그 도읍이 신시로 지금의 백두산 근처로 기록돼 있다. 한민족의 세 번째 왕조 단군조선은 중국의 흑룡강성 하얼빈을 중심으로 건국됐다. 그 수도인 아사달은 ‘아침이 밝아오는 광명의 땅’이란 뜻이다.
한국 고대 문명은 환국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환국이 앞서 본 것처럼 지금부터 6천 년 전 기후환경의 변화로 나비의 두 날개처럼 동과 서로 분화되는 극적인 대전환기를 맞이한다. 이때 동방으로 분화되어 백두산 아래 터전을 잡은 것이 바로 배달이다. 그 강역의 중심이 된 산이 백두산이다.
반면 환국 문명이 서쪽으로 분화되어 나가 자리 잡은 것이 오늘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된 수메르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물론, 5천여 년 전 이집트 문명,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등 모든 유럽과 중동 문화의 총체적 근원이 수메르 문명이란 것이 최근 밝혀졌다.
오랫동안 관련 학계에서는 서양 문명의 근원인 수메르가 과연 5천~6천 년 전에 어디서 왔느냐가 관심이었다. 지난 1백여 년 동안 수메르의 쐐기문자 수만 점이 발굴됐는데 일단 그 내용에 따르면 수메르인은 동방의 하늘산 즉 천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 그동안 더는 알아낼 수 없었다. 천산과 수메르의 뿌리인 동방 문명의 구체적인 실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홍산문화가 발굴되고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북아에서 5500년 멀리는 9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 유적이 지난 1백여 년 동안 계속 발굴됐다. 그 유적과 유물이 밝혀주는 역사는 『환단고기』의 내용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들이었다. 『환단고기』의 내용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환단고기의 삼성기 상권과 하권, 태백일사의 환국본기에 의하면 중국 고대문명은 물론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되는 수메르 문명의 출원지가 바로 환국이다.
오늘 한국이라는 이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도 인류가 세운 최초의 나라인 환국에서 왔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 상권의 첫 문장 ‘오환건국 최고(吾桓建國 最古)’라는 구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첫 나라를 선포하고 기록한 것이다. 환국은 광명한 삶을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았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광명을 뜻하는 환국이라 했다. 환국은 12개 나라의 연합체였다(지도 참조).
홍산 |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에 있다. 이 일대에서 처음으로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이후 홍산문화라는 명칭이 붙었다.
환국은 3,301년 동안 역사가 지속됐다. 오늘의 과학주의, 실증주의 사관은 유물론적 편향이 있어서 역사적 사실들의 이면, 즉 인류의 정신문화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역사서들은 태고 문명이라 하면 그저 움집에서 열매나 따먹고 소박하게 살던 문화로 그려낸다. 그러나 환국 시대 사람들의 삶은 모두가 광명한 삶을 지향하면서 누구나 무병장수하던 장수문명을 누리던 것이었다.
환국을 계승한 환웅의 배달 문명은 초기 도시국가로 시작됐다. 14세 자오지환웅, 곧 동방의 천자이던 치우천황 때는 산동성, 하남성, 강소성 등 지금 중국의 동부 지역을 배달국의 영토로 삼으며 제국을 이루었다. 배달에 이어 국통을 계승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에 단군조선을 세웠다. 환국과 배달과 단군조선은 동북아 대륙을 통일하고 다스린 제국이었다.
고대 한국은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했는가?
20세기 동북아 최대의 역사유적 발굴 사건이 일어났다. 현재 중국 영토 내 요서 지역의 신석기·청동기 문화 발굴사업, 나중에 홍산문화라 불리게 된 그것이다.
1908년 홍산 일대 유적과 유물을 처음 발견한 이는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이다. 그 후 프랑스인 에밀 리쌍(E.Licent)도 1922년부터 1924년 사이 내몽골 적봉赤峰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지 22곳을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던 1935년 동아시아 고적조사단을 만들어 예의 홍산 일대 본격 발굴에 들어간다. 일본이 무력침공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문화를 침탈하려는 야욕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이 같은 탐사 결과 출토된 유적을 일단 ‘홍산후紅山後 유적’이라 불렀다.
중국 역사학계가 이 유적을 조사, 발굴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인 1980년대부터다. 이윽고 1983년 요령성 건평현建坪縣 우하량牛河樑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세계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이곳 유적지에서는 신전과 제단, 돌무덤 등이 함께 발굴됐다. 연대로 보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었다. 이런 까닭에 홍산문화는 ‘제5의 문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홍산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중국은 오래 전부터 황하문명이 최고最古라고 주장해 오던 ‘황하 중심의 문명 전파론’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다중심多中心 문화발전론’이란 것을 내놓았다. 더욱이 홍산문명이 한국의 고대 문명을 일군 주인공인 동이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이것이야말로 중국의 요하문명’이라고 외치고 있다.
고대 환국은 얼마나 오래됐고, 어떻게 붕괴되었는가.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보면 조선 왕조 이전에 고려가 있었고 고려 이전에 신라와 대진국(발해)의 남북국시대가 있었다. 또 그 이전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4국시대가 있었다. 이들 네 나라는 북부여로부터 기원해 갈라진 것이었다.
북부여는 진시황이 중국을 다스리던 시기 세워진 나라로 바로 이 나라가 한국의 고대 국가인 단군조선을 계승한 것이다. 앞서 단군조선은 2천여 년에 걸쳐 모두 47명의 단군들이 통치한 나라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단군조선은 그보다 앞선 배달국을 계승했고, 배달은 또한 그보다 앞선 환국에서 나왔다.
?환단고기?에는 환국과 배달의 존속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배달은 기원전 3900년에 세워져 기원전 2333년까지 역사가 이어졌다. 또 환국은 배달보다 앞서 3,300년 정도 존속한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환국의 역사는 기원전 7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환국은 12국의 연방으로 존재했다. 그 12국 각각의 이름이 ?환단고기?에 그대로 전한다. 이들 12국 중 일부는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도 그 이름이 보인다.
중앙아시아 일대를 강역으로 삼았던 환국 시대를 종식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후의 변화였다. 학자들에 의하면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부터 수천 년 전에는 오늘날처럼 건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우량이 풍부해 대단히 살기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에는 적당한 비가 내려 질 좋은 초원이 유지되고 살기 좋은 곳이 곳곳에 산재한다.
환국의 기후가 전반적으로 건조화 되고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주민이 환국의 동과 서,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배달을 세운 환웅족의 이주는 동쪽으로 옮겨간 경우이며 나중에 수메르 문명을 세운 수메르인들은 환국에서 서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환국이 사라지고 그 지역이 건조화 되면서 그 일대에는 물을 구할 수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나 초원에만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전과 같은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고 기원전 1천 년 후반의 흉노 같은 유목국가가 등장하여 실크로드를 지배하기 전에는 부족지배 형태가 국가 체제를 대체했다.
최근 내셔날 지오그래픽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것처럼 환국문명의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 동방 바이칼호 지역에서 인류 문명의 기원을 찾는 역사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그 연구결과가 기대된다. 아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환국이 실재했음을 입증하는 유적과 유물은 앞으로 더 발굴될 것이다.
한국의 고대 문명의 유적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가. 누구든지 그곳을 자유롭게 찾아볼 수는 있는가.
홍산문화 유적지는 누구든 방문이 가능하다. 바이칼호와 그 주변국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은 중국의 요령성 박물관, 내몽골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유적지의 경우 중국 정부가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라거나 유적지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다. 이는 마치 과거 일본의 왕릉들이 일반인에 개방되었다가 그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한반도의 백제계나 신라계의 것으로 판정되면서 개방을 하지 않게 된 것과 같다. 일본 정부는 일본 왕가의 뿌리가 한국의 역대 왕가로 귀속되는 것을 염려해서 일본 왕릉을 자국 국민에게도 개방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고대 문명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오늘날 지도에서 살펴보면 어떤 지역들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한국 고유문화 혹은 고유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대 한국에서는 신을 섬기고 신의 뜻과 가르침을 모든 삶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의 가르침에 따라 삶을 꾸려갔기 때문에 이를 신교神敎문화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한국의 전통에서 일신一神이 아닌 삼신三神으로 불리었다. 세 분의 신이 아니라 한 분의 신이 세 가지 방식으로 인류와 역사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삼신의 원리에 따라 한국의 고대 역사는 환국-배달-단군조선의 3단계, 세 시대로 진행됐다.
나아가 한국 고대사의 세 번째 왕조, 곧 단군조선은 그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를 삼한관경제라고 한다. 삼한관경제는 4,300년 전 단군왕검이 우주의 근본법칙인 3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진한, 번한, 마한의 세 강토로 나누어 다스린 국가 경영체제를 말한다.
단군왕검은 대단군으로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을 통치했다. 요서 지역에 있던 번한과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각각 부단군이 맡아 통치하였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天一)을, 번한은 땅의 정신(地一)을, 진한은 천지의 주인이요 중심인 인간(太一)을 상징한다.
우하량 제2지점 여신묘 유적 | 현재 보호 시설공사로 일반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렇게 유적 관리를 하여 일부 공개하는 경우도 있으나 개방하지 않고 발굴 뒤에 다시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국가 경영체제로 단군조선의 도읍 역시 당연히 세 곳이었다. 진한의 수도는 아사달로 지금의 하얼빈이다. 번한의 수도는 안덕향으로 지금의 중국 하북성 당산시, 마한의 수도는 백아강으로 지금 북한의 평양 지역이다. 그보다 앞서 번성했던 배달국의 수도 신시神市는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인 백두산 주변의 광활한 땅이다.
단군조선 이후에도 줄곧 한국은 3수 원리를 중시해 왔다. 자연의 순환과 질서체계도, 또 극미한 원자에서 광활한 대우주의 구성과 본질 등도 이 3수 원리에 바탕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14년 7 30일 〈9천년 한민족사의 위대한 증언―안경전 STB상생방송 이사장의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10-2>
『“기존 역사학계는 왕족이나 부족의 유적, 유물을 발굴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그 역사가 이러하다 저러하다 인식하려 합니다. 그것이 실증주의 사학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고 옳지 않은 방식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에는 반드시 우주관·신관·인간관·인생관 등 그 문명을 만든 주인공들의 정신문화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해서 시대를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9천 년 한국사의 진실을 보게 하는 대한사관大韓史觀으로 식민사관 떨쳐내야”
지난 호에 이어 조 카포라렐로 전 CNN 기자가 한국 고대사와 관련해 안경전 이사장에게 보내온 질문과 이에 대한 안 이사장의 답변을 게재한다.
유교가 환국桓國에서 유래됐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환국은 인류 최초의 국가이자 시원문명으로 한마디로 황금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고대 문화권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은 광명한 인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우주의 대大광명을 직접 체험하며 사는 것을 지향했고 이를 삶의 가치 가운데 가장 중시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을 다스리며 광명한 삶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인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통치자도 환인桓仁이라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환국 문명에서 갈려 나간 수메르 문명에서도 최고 지도자를 ‘인’이라고 했습니다.
유교는 그보다 훨씬 뒤에 공자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자는 본래 중국 은나라의 제후국인 송나라의 왕 미자의 후손입니다. 혈통을 따져 올라보면 그는 정통 동이족입니다. 그런데 이미 동서양에 두루 잘 알려진 것처럼 공자의 으뜸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바로 인仁 사상입니다. 이것이 유교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 인 사상이 동방의 환국-배달-조선에서 나온 것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생각과 학설에 대해 스스로 ‘술이부작述而不作’(『논어論語』 「술이述而」)이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새로 지은 게 아니라 “옛 것(=일찍이 배달과 고대조선 동이족이 갖고 있던 예악문화)을 좋아해서 그 문화의 정수를 정리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공자 자신의 이 말에서 우리는 유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 문명이 유•불•선을 넘어 수메르 기독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근거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류 최초 문명인 환국 사람들은 천신天神을 섬겼습니다. 천신은 하늘의 하나님이란 뜻이고 동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상제라 불렀습니다. 천신, 상제의 뜻과 가르침이 정치, 교육, 문화 등 당시 모든 이들의 삶의 이념이고 규범이었습니다. 그러한 뜻과 가르침은 상제가 계시啓示해준 「천부경」에 집약돼 있습니다. 81자로 이뤄진 천부경은 인류 문명사 최초의 경전입니다. 인류의 문화와 사상과 영성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문화혁명을 낳게 한 기폭제였습니다.
천부경은 1에서 9에 이르는 수數를 기반으로 우주의 구성과 변화원리, 하늘땅과 인간의 관계,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 등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천부경은 동양의 사상적 원천이라 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모태가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서 문명이 모두 천부경을 통해 계시된 ‘우주의 수의 법칙’으로 구성됐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문명도 종교도, 특히 저 기독교의 원천이라 할 수메르 문명 역시 천부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 문명의 근원이라 하는 수메르 문명은 일찍이 환국 사람들이 천산을 넘어가 개척했는데 여기서 환국 문명이 바로 천부경에 바탕해 이뤄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며 현 오마바 대통령의 주요 자문역인 이홍범 박사의 저서 『아시아 이상주의』에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낙서(좌)와 마방진(우) | 낙서의 의미와 전파 과정을 연구한 미국의 수학자 프랭크 스웨츠Frank Swetz은 낙서가 서양으로 전해져 마방진(magic square)을 낳았다고 한다. 그는 서양 수학의 밑바탕을 구축한 고대 바빌로니아, 그리스, 이집트 시대에는 마방진의 개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동서 문명이 천부경 혹은 환국 등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는 어떤 것들입니까.
천부경이 드러내는 우주 수학의 비밀에서 3과 7은 인간의 혼(soul)과 신(spirit)을 구성하는 천지의 생명 원리로 파악됩니다. 당장 수메르 문명에 이 두 가지 숫자를 중시한 여러 흔적들이 나타납니다. 수메르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로 피라미드 문화의 원형으로 꼽히는 지구라트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 9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하늘에,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낸 천제天祭문화의 유산입니다.
그 제단 구조를 자세히 보면 먼저 제단이 일곱 계단으로 돼 있습니다. 또한 일곱 주신主神들에게 제를 지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저 유명한 바빌론 궁전의 천상天上정원도 일곱 단段으로 돼 있습니다. 이러한 수메르 문명의 일곱 주신 사상은 동방의 전통적인 칠성七星사상과 호응합니다.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인디언 박물관에 가보면 한 원주민 추장의 옷이 전시됐는데 그 날개 깃털이 77개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우주 수학의 눈을 통해서 그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3위 일체와 그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이삭-야곱의 3대代 문화,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가 삼신三神을 만나고 아기를 낳아서 이스라엘 문명이 시작됐다는 구약의 기록 등에서 우리는 3수 문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야곱이 열두 명 아들을 두었고 이들이 12지파를 구성한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섰던 환단고기에서 전해주는 환국의 12개 문명국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동서의 종교 문명, 인류의 4대 문명 등은 그 구성원리가 환국 때 경전인 천부경, 그 천부경이 보여주는 우주 수학에서 왔습니다. 당연히 천부경을 모르면 어떤 종교든 문명이든 그 뿌리와 성격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르의 지구라트 복원도(출처: 문명의 창세기) | 수메르에서 시작된 지구라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함께 인류 제사문화의 위대한 유산이다. 고대 인류는 공통적으로 제천행사를 거행하였고, 그 때 필요한 신전의 기단으로 지구라트를 지은 것이다.
추장의 모자에 꽂힌 77개의 깃털은 신교의 칠성 신앙이 북아메리카 인디언에게도 전파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대 한국 문명이 인류 문화에 “이상주의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이상理想이란 어떤 것입니까.
환국시대부터 내려온 천부경의 천부天父사상과 신교神敎의 광명문화에는 우주의 틀을 보게 하는 우주 사상과 함께 인간과 종교의 근본 가르침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깨달음의 진리를 전하는 천부경에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인간이란 뜻의 태일太一사상입니다.
신이 현상계에 자기 모습을 나타낼 때는 삼신三神으로 드러내는데 실제로 그 삼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하늘, 땅, 인간입니다. 이 셋이야말로 살아있는 삼신인 것입니다. 이렇게 실체화된 삼신은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일체一體 관계에 있는데 이를 천부경에서는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인일은 천지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모신 인간에 대한 고대 문명의 뛰어난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태일의 참뜻이 나옵니다. 본래 천지부모는 당신의 궁극의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순환하는데, 바로 그 천지의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태일입니다. 천지부모와 하나 되어 미래 이상 문명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참된 자녀인 것입니다. 태일이야말로 이상적인 인간으로 인류 역사와 문명의 방향을 한없는 광명으로 이끄는 주인공이요 주체입니다. 이러한 태일사상이 온 인류의 이상이 되어 모든 사람이 태일이 되기를 지향하는 삶, 그것이 한국 고대 문명이 보여주는 이상주의 문화입니다.
태일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세계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양 관점에서 보아 인류 근대사의 출발점이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문명의 발달사라는 시각에서 본 것입니다. 인류 정신사에서 볼 때 사실 근대사는 동방, 한반도에서 열렸습니다. 19세기 후반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東學운동 나아가 동학이 못다 이룬 사명을 완성해가는 참동학 운동이 그것입니다.
동학의 메시지는 시천주侍天主, 즉 동방땅에 오시는 참하나님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이제 온 인류가 후천개벽을 넘어 저 옛날 환국 사람들이 누리던 천지광명 가득한 새 세상을 맞게 됩니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천지의 주인(天主)이신 상제님을 받들고 앞날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동학은 환국, 배달, 조선 삼성조의 황금시절 문화를 이은 동북아 광명사상의 전통에 맥이 닿아 있습니다.
동학의 주창자 수운 최제우는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무극대도無極大道의 가르침을 받고 고대 이후 인류가 잊고 살았던 제천祭天문화를 다시 열었습니다. 상제님이 새로운 가을개벽 세상을 여신다, 상제님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메시지가 동학에 의해 선포됐습니다. 가을세상, 가을개벽 세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 아닌 정신문화의 역사에서 볼 때 이 같은 동학의 출현이야말로 근대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구분선이 될 것입니다.
동학이 선언한 새 세상에서는 주문수행이 보편화되고 모든 사람이 신성한 인간으로, 위대한 철인哲人으로 거듭나 광명한 삶을 살아갑니다. 광명한 삶을 살아가는 천지의 아들·딸, 그가 바로 태일이며 다른 말로 대한大韓이고 나아가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고대 한국 문명에서 제시된 이상적 인간형인 홍익인간은 ‘천지의 웅대한 뜻인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태일이 되기를 꿈꾸고 천지의 꿈을 이루어 나가려는 이들이 바로 참동학의 일꾼들입니다. 안타깝게도 동학은 그 의미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 정부와 외세의 폭압에 의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후천개벽 소식을 전하고 이상적인 새 세상을 건설하는 사명을 증산도가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 9천년 역사·문화의 결정체인 증산도를 참동학이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대 문명이 그렇게 오래 되고 우수한 것인데도, 대다수 한국인이 그러한 고대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인들은 자기 역사가 얼마나 자랑할 만한 것인지 실제로 잘 모릅니다. 가령 아직도 민간신앙 등과 함께 남아 있는 도교道敎의 원형도 동방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인데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진시황이 신선이 산다는 곳을 찾도록 대규모 탐사대를 여러 번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탐사대의 목적지가 바로 한반도였다. 제주도에는 이 탐사대와 관련된 유적지도 있습니다. 도교의 원형이 되는 신선술神仙術이 한국에서 유래했음을 알게 하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유교를 개창한 공자 역시 동이의 땅, 즉 한반도를 군자가 사는 곳이라며 그리워했는데 이는 ?논어?에 기록된 사실史實입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중국 문화의 연원이 사실은 옛 한국 문명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엄연히 기록으로 나와 있는 고대 한국문명의 존재와 그 우수성에 대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알지도 못합니다. 알고 있다 해도 반신반의합니다. 이처럼 슬픈 현실은 한마디로 중국 중화사관과 일본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이 끼친 악폐에서 생겼습니다. 악의惡意 가득 찬 역사 날조와 집요한 왜곡 작업이 오늘 역사를 보는 한국인의 눈을 가리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중화사관, 식민사관이란 어떤 것인가.
중화사관은 중국이 처음부터 문명의 중심이었으며 주변 족속들은 모두 오랑캐였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가 중국 주변으로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앞에서 본 역사의 증거들과 배치된다. 중국문명의 태동에는 홍산문화로 대변되는 북방문화와 동이족 문화가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에 심어놓은 식민사관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도록 만들었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일제는 한국의 정신, 역사, 문화, 전통을 지극히 열등한 것으로 변질시키려 했다. 식민 지배를 정당화, 영구화하려는 획책이었다. 그러면서 집요하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폄하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자조적인 역사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고대 한민족의 활동과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도외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관변 사학자들이 주장하듯 단군조선의 역사는 신화이거나 기껏해야 부족국가들의 연맹이었을 따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 도망쳐 온 한낱 망명자인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BCE 194)과 그것을 점령하고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한사군 등 날조된 역사에서 한국사가 비로소 본격 시작됐다는 그릇된 인식도 고착됐다.
식민사관에 의해 벌어진 더 큰 패악은 그처럼 비뚤어진 역사 인식의 틀을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한국 사회에 계속 통용하게 하고 후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7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강단사학자들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한국 역사의 틀을 견지한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떠들어 온 역사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자기들이 차지해온 자리와 기득권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쓴 초중고 교과서가 어떻겠는가.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역사교육을 맡은 강단사학자들이 그것을 그대로 한국인에게 학습케 한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고대 한국문명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다.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 속 한사군(2013) | 동북아역사재단이 2007년도부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 무려 1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해서 영문으로 발간한 것으로 ‘2100년 전 한국인은 한나라의 식민지 백성이었고, 그 한사군은 한강 북쪽에 있었다’고 말한다.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그대로 되새김질하고 있는 한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고질적 병폐를 보여준다.
한국의 고대사가 사료가 있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들도 있는데 왜 공식 역사로서, 특히 학문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 한국은 물론 세계 역사학의 주류 역시 앞서 말한 식민사관 및 서구에서 생겨난 실증주의 사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는 물질의 문명사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것이 응집돼 있습니다. 정치, 종교, 건축, 생활문화, 자연관, 우주론, 인간의 내면세계, 마음과 영성문화, (우주에 창조주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신관, 경제와 화폐문제, 정치 제도, 국가 간 교류와 이해관계 등등…. 역사를 제대로 보고 알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살펴보는 총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학이란 어떤 것입니까? 유적과 무덤 발굴, 거기서 나오는 결과로만 역사를 판단합니다. 한마디로 유물론에 입각한 실증주의 사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편협한 시각이고 옳지 않은 방식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에는 반드시 우주관•신관•인간관•인생관 등 그 문명을 만든 주인공들의 정신문화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해서 시대를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태곳적 황금시절인 환국의 전통에서 실로 소중했던 지혜들―우주관, 인간론, 신관, 인류문화의 구성 원리, 우주수학의 체계, 우주수학을 담은 천부경 81자의 참뜻 같은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대 환국의 역사 자체는 물론 나아가 환국과 서양 수메르 문명의 관계, 동서 문명의 총체적인 참모습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세계 사람들이 고대 한국 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점을 인식 혹은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그것은 기존 역사관의 한계 때문입니다. 근대 역사관은 크게 19세기에 등장한 실증주의 구舊사학과 20세기에 전개된, 역사가의 적극적인 해석을 중시하는 신新사학으로 구분됩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철저한 문헌고증과 다양한 해석 등으로 역사학에 많은 성과를 갖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두 역사관은 이제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인류는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한 시점을 맞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인류 문명의 황금시절이던 환국-배달-조선 등 고대 한국문명을 올바로 해석하는 데 더더욱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해석하던 기존 사관들을 대신할 대안 같은 것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인류에게는 기존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과 서, 과거와 미래가 소통하고 융합하는 이른바 ‘대통일의 역사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신교사관 혹은 대한사관大韓史觀입니다. 9천 년 역사를 가진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인 신교神敎를 바탕으로 혹은 신교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구사학과 신사학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점은 살리는 제3의 새로운 역사관, 그것이 신교神敎사관입니다. 신교는 환국시대 이래 환족의 이동과 함께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 나가 인류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문화이고 종교이고 사상입니다. 고대문명에 대한 연구는 신교의 역사관으로 볼 때 그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당시의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지금 남아 있는 문화 유적과 기록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고대 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저 홍산문화가 기존 역사관으로는 쉽게 파악되거나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우하량에서 발굴된 돌무덤, 신전, 제단의 유적들, 지구촌 여러 곳의 지구라트와 피라미드들, 미국의 몽크스마운드나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의 고인돌도 모두 신교문화의 정수精髓인 천제를 이해할 때 그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장 한국의 강단사학계에서도 신교의 우주론, 인간관, 신관을 근거로 홍산문화를 해석하는 학자가 아직은 거의 없습니다.
신교사관, 대한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간을 단순히 신의 피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천지광명을 체험하고 천지의 뜻과 목적인 이상세계를 성취하는 역사의 주체로 본다>는 점입니다. 대한사관은 역사 해석을 넘어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까지 밝혀주는 시각이요 인식의 새로운 틀입니다. 나는 대한사관이야말로 지난 오랜 세월 지구촌 인류를 괴롭혀 온 식민사관과 대결사관, 유물주의사관과 실증주의사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 대한사관에 대해서 언젠가 반드시 따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천자天子의 상징인 용龍과 봉鳳의 형상물(좌로부터 C자용龍, 웅룡熊龍, 옥봉玉鳳) | 이들은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것 보다 그 시대가 훨씬 앞선다.
세계는 그렇다 쳐도, 한국 정부는 왜 고대 한국 문명이 세계 최초라는 점을 인식 혹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까.
먼저 한국의 역사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 그 생생한 실정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오랫동안 중국 민족이 하늘과 상제님의 대행자를 상징하는 용봉龍鳳문화의 원조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중국과는 아무 관계없던 저 만리장성 북쪽, 동방족의 생활 터에서 뜻밖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인류 문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홍산문명 혹은 요하문명이 그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중국인들이 주장하던 5천 년 전의 용봉문화 흔적보다 훨씬 앞선, 무려 7천 년 이상 된 용봉문화 유적과 유물들이 발견됐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중국 정부와 학자들은 재빨리 ‘만리장성 밖의 북방문명도 중국 문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맞춘 이론적 배경도 함께 마련하는 작업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중국은 55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들 소수민족의 독립을 막고 계속 중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두기 위해 <한족 아닌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도 모두 중화문명권에 속한다>고 선언하고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만들고 실제 그것을 추진해 왔습니다.
먼저 1980년 이래 중국의 서북쪽 위구르족 지역이 중화문명권이라 주장하며 위구르족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철저히 탄압해 왔습니다. 이것이 서북공정西北工程입니다. 또 1986년에는 티베트 역시 중국의 한 지방정부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러고는 티베트인들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남공정西南工程입니다. 나아가 중국은 최후의 야심작으로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했습니다. 만리장성 동북쪽의 고구려, 발해 등 대한민국의 옛 영토였던 넓은 지역이 과거 중국의 지방정부 영역이라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그 또한 중화문명권으로 편입시키는, 후안무치한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 한국 정부에서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을 배정해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속된 학자들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쪽으로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재 한국의 사학계와 교육계, 관계官界는 그동안 식민사관에 매달려온 이들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받고 영향을 받은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류를 이룬다는 것은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이나 역사 주제와 관련해 (설사 그 내용이 진실이더라도) 그들과 배치되는 이론이나 주장은 아예 공식 교육과정에 채택되지 못합니다. 반면 식민사관에서 왜곡된 내용만이 공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입되고 있습니다.
환국-배달-고대조선 이후 고대 한국 문명은 어디로, 어떻게 연결됩니까.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세워진 환국에서 시작된 고대 한국 문명은 배달을 거쳐 단군조선까지 무려 7천여 년 동안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기원전 2333년 건국된 이래 무려 2,047년 동안 존속했던 단군조선은 서서히 힘을 잃고 결국 해모수라는 인물이 세운 북부여北夫餘로 국가의 맥이 이어졌습니다.
북부여가 비록 나라의 맥을 계승했지만 단군조선의 전 영역을 물려받지는 못했습니다. 한민족의 활동무대는 이때부터 대륙에서 점차 동쪽으로, 그리고 한반도 쪽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만주 지역에 북부여가 자리 잡고 한반도에는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 여러 나라가 난립했습니다. 이것을 한국사에서는 열국列國(여러 나라)시대라 합니다.
250여 년 나라를 끌어간 북부여는 나중에 고구려로 이어지고 잘 알려진 것처럼 고구려를 비롯해 백제, 신라, 가야 등 4국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 뒤 신라가 통일을 이루고 이는 다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조선말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가 해방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환국에서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한민족의 9천 년 역사는 한국 고대 문명의 두 가지 핵심단어라 할 신교문화와 광명사상으로 일관된 것입니다. 악의에 가득 차고 편협한 중화사관이나 식민사관, 유물론적 실증주의사관 같은 틀로는 그 면면한 역사의 진실을 결코 제대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교사관, 대한사관으로 한국의 고대 문명을, 나아가 근대사와 오늘을 조망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한민족은 물론 온 인류가 지나온 역사를, 그리고 다가올 내일까지 제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greatcorea10/220089728075)
2.4 2014년 7월 31일 브레인미디어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사 유물, 고조선은 신화 아닌 역사〉
『'흑피옥’ 주제로 김영식 청파현대서예연구원 원장 강연
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최근 더욱 교묘한 수법으로 우리 역사를 잠식하고 있다. 올해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지만, 정작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는 중국의 일방적인 억지 논리 아래 중화 민족의 역사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서 더욱 경계할 것은 그들의 역사 침략이 고구려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민족의 시원 국가 고조선과 그 선대인 환웅천왕의 배달국시대, 환인천제의 환국시대까지 자국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찬란한 우리 역사의 뿌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에 김영식 청파현대서예연구원 원장은 국학원 제132회 국민강좌에서 ‘한국 상고사의 위대한 유물 흑피옥’을 주제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8일 대한출판문화협회(서울 종로구 사간동)에서 열린 이날 강좌에는 15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김영식 청파현대서예연구원 원장이 옥 유물 중 하나인 옥규(玉圭)를 보여주며 고조선 신화가 역사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효선 기자]
이날 김 원장은 ‘고대 한민족의 이동’, ‘고조선 신화를 실존 역사시대로’, ‘흑피옥과 요하문명’, ‘동북공정의 실체’, ‘현시대 우리의 역사적 사명 등 테마별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특히 홍산 문명 유물은 고조선과 배달국 시대의 유물, 흑피옥 문명 유물은 환국과 마고 시대의 유물이라고 지적했다.
“제가 오늘 주제로 삼은 것은 유물이다. 바로 흑피옥이라는 것이다. 왜 이 유물에 목을 거느냐. 지금 우리 학자들이 고조선을 인정 안 하고 있는 것은 실증사학에 의해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그 실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 유물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김 원장은 “홍산문명 유물과 흑피옥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만주, 요서지역, 랴오둥반도 일대)은 예로부터 동이족(대황, 구환, 구이 등으로 불리던 고대 한국인)의 주 활동 영역이었다”며 “이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많은 유물은 환인족과 곰족으로 대변되는 북방 수렵족과 남방 농경족, 즉 예족과 맥족이 융합되어 가는 과정이 신화가 아닌 사실의 역사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조선이 신화가 아닌 실존 역사시대임을 증명하는 옥규 [자료제공=국학원]
홍산문명옥기는 1980년대 중반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시 일대에서 출토된 엄청난 양의 옥(玉) 조각상들을 말한다. 1990년대 출토된 흑피옥은 홍산문명옥기보다 선대의 옥 조각상들이다. 그는 고조선 신화가 역사임을 증명하는 유물로 옥 유물 중 하나인 옥규(玉圭)를 들었다. 옥규는 고조선과 배달국, 환국이 존재했던 요하 상류지역에서 출토된 실존 유물이다.
김 원장은 “옥규에 새겨진 글자(令 出其不用 保衛兵荒, 령 출기불용 보위병황) 중 가장 중요한 글자는 ‘황(荒)’”이라며 “이는 동이(東夷)와 북적(北狄)이라 칭하는 고대 한민족이 살던 ‘한반도와 요하 일대의 대황지구’를 지칭한다”고 했다. 여기서 대황지역은 천손민족이 사는 하늘나라, 즉 환인 천제가 다스리던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한 동서남북지역을 말한다.
흑피옥은 경도 3~4도의 연옥이 아니라 경도 6~7도 경옥이다. 흑피옥의 토템사상은 인간과 자연은 하나라는 천부사상을 담고 있다. 흑피옥 유물에는 풍이족인 환인족과 새족인 조이족이 융합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낸 조각상, 태호복희와 여와의 합체 옥 조각상, 염제 신농 조각상,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C 형룡, 흑피옥 천부경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 흑피옥 유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염제 신농 조각상, 흑피옥 천부경, 흑피옥 표면에 나타난 문자, 치우천왕을 상징하는 C 형룡 [자료제공=국학원]
특히 흑피옥 조각상에 양각된 문자는 갑골문(BC.1600년)보다 최소 1000년 이상 더 오래된 문자로 밝혀졌다. 이 문자에는 우주 천부의 원리, 자연과 인간·종족 간의 충돌과 융합, 천지자연 숭배의 원시 신앙 등이 담겨 있다. 천손민족이던 지배계급층이 사용하던 문자로 추정 연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중국은 갑골문이 가장 오래된 문자라고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이전에 이미 문자를 쓰고 있었다”며 “흑피옥에 나타난 문자가 정확하게 밝혀지는 날 우리나라의 위상은 물론이거니와 인류문명의 시원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지금은 문화전쟁 시대이다. 우리는 실감할 수 없겠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록 현장은 세계 각국이 자국의 문화유산을 등록시키기 위한 치열한 전쟁터"라며 "제가 이러한 일련의 유물들을 확보하고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함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되찾기 위함이다.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은 살아왔던 드넓은 땅과 웅혼한 역사, 위대한 조상들까지 모두 빼앗긴 '얼'빠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외세에 의해 단절되고 숨겨졌던 한민족의 고대사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이 시대의 역사적 사명을 강조했다. 이효선 기자』
(출처; 브레인미디어,
http://www.brainmedia.co.kr/BrainLife/14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