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력사를 찾아서

여러나라시대(3) -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나?(1) 본문

여러나라시대/여러나라시대

여러나라시대(3) -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나?(1)

대야발 2024. 11. 13. 17:06
SMALL

 

 

 

 

'여러나라시대'는 '열국시대'라고도 쓰고요, 기존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대체하고자 하는 개념입니다. 사실상 고조선(위만조선 포함) 멸망 후 여러 왕국들이 등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나라(왕국)시대'라고 봅니다. 

 

 

 

BC108년 위만조선이 한漢에 멸망하여 그 자리에 한漢의 행정구역인 한사군이 세워 집니다.

한사군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위만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인가하는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또 위만조선이 기자조선, 고조선의 영토를 완전히 점유했는가하는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한사군 중 가장 핵심적인 낙랑군이 오늘날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부였다는 것이 통설이라고 합니다.

 

한사군의 위치를 중국의 요동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 중·북부 및 남만주 일부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낙랑군의 관할지역은 오늘날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부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낙랑군은 서기전 108년 한 무제(武帝)에 의해 옛 고조선의 중심부에 설치되어 이후 약 400여 년간 동방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침투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현(朝鮮縣)을 수현(首縣)으로 하고 11개의 속현을 거느리며 출발한 낙랑군은 한사군의 중심지였다.』(1)

 

 

 

 

나무위키에도 낙랑군은 지금의 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로, 특히 평양 일대에서 많은 유물과 고분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한나라, 위나라, 서진의 군현(기원전 108년~기원후 313년). 기원전 108년 전한의 제7대 세종 무황제 유철이 보낸 한군이 고조선(위만조선)을 상대로 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이며, 313년 고구려에 의해 축출되었다. 위치는 지금의 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로, 특히 평양 일대에서 많은 유물과 고분이 발굴되었다.』(2)

 

 

 

그러나 중국 측 사료에는 낙랑군이 옛 요동(현재 요서)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서(漢書)》 〈가연지열전(賈捐之列傳)
(한나라 강역이)동쪽으로는 갈석을 지나 현도, 낙랑으로써 군을 삼았다

(東過碣石以玄菟、樂浪為郡)

 

 

 

한(漢)나라에서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한 가연지(賈捐之:?~서기전 43년)는 낙랑군 설치 후 50여년 후의 인물입니다. 갈석산(碣石山) 부근에 낙랑군과 현도군이 있었다는 뜻인데, 한(漢)나라 때 갈석산은 현재 중국 하북성 창려현에 있습니다. 현재 요서 지역입니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본기光武帝本記〉
처음에 낙랑사람 왕조(王調)가 (낙랑)군을 근거로 불복했다.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

〔樂浪人王調據郡不服(樂浪郡, 故朝鮮國也, 在遼東〕

 

 

 

《후한서後漢書》 〈최인열전(崔駰列傳)
『최인은 과거 급제자이므로 장잠현의 현령으로 삼았다
주석(註釋)에 "장잠현은 낙랑군 소속인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

〔出爲長岑長〔長岑縣, 屬樂浪郡, 其地在遼東〕

 

 

 

그런데도 한국 주류 사학계는 북한 지역에 있는 토성, 분묘, 석비(石碑·점제현 신사비), 봉니(封泥) 등을 ‘한사군 한반도설’의 결정적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1915년 <조선고적도보>를 간행하면서 낙랑·대방군 유적으로 못 박은 후 현재까지 정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윤내현교수는 <고조선연구, 상>에서 '대동강 유역이 낙랑군이었다는 근거로 그들이 제시한 고고 사료인 고분, 토성, 봉니, 인장, 점제비, 효문묘 동종 등'을 철저히 검증하여, 일부가 위조인 것은 물론 위조가 아니더라도 낙랑군이 있었다는 증거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3)

 

 

 

북한학자 안병찬은 ‘평양일대 락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1995)에서 ‘평양시 락랑구역 안에서만도 2600여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백 평방미터의 건축지가 발굴되었으며 1만5000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을 찾아냈다’면서 “이것은 일제가 ‘락랑군 재평양설’을 조작하기 위해 조선 강점 기간에 도굴한 무덤수보다 무려 26배에 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

 

 

 

북한학자 리진순은 ‘평양일대 락랑무덤에 관한 연구’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기원전 1세기 말까지 존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썼습니다.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서기전 108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축조되기 시작해 한사군이 설치된 지 오래지 않아 사라진 목곽묘는 한사군 유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4)

 

 

2015년 3월 2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500년전 원적(原籍)이 '낙랑(樂浪)군 조선현(朝鮮縣)'인 사람의 무덤이 발굴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경화시보(京華時報) 등에 따르면 베이징시 문물국은 최근 다싱(大興)구 황춘(黃村)진 싼허좡(三合庄)촌 일대 고대 무덤군 발굴 작업(사진) 중 북조(北朝) 시대의 묘 2기를 발견했다.

 

이중 한 무덤에서 나온 벽돌모양 묘비에는 무덤에 묻힌 이가 '韓顯度'(한현도ㆍ중국어 한셴두)이며, 원적이 '낙랑(樂浪)군 조선현'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무덤 주인공은 원상(元象) 2년 사망했다. 원상은 동위(東魏) 효정제 원산견의 2번째 연호로 서기 539년이다. 베이징시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20여㎞ 떨어진 이 곳을 재개발하던 중 1,000년 이상 된 무덤 129기가 발견되자 지난해부터 발굴 작업을 해 왔다.

 

중국 매체들은 무덤 주인공의 원적인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 "낙랑군은 한무제(漢武帝)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평정한 뒤 지금의 한반도 내 설치한 사군(四郡) 중 하나이고, 조선현은 지금의 평양시"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원 왕조들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탈취'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사군이 존속한 기간은 25년에 불과했고 가장 오래 남아있던 낙랑군도 사실상 상업적인 무역기지로서 명맥만 유지됐다는 게 우리 학계 입장이다. 중국이 이런 낙랑군을 강조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시 다싱구 싼허좡(三合庄)촌 일대 고대 무덤군 발굴 현장 /2015-03-20(한국일보)

베이징시 다싱구 싼허좡(三合庄)촌 일대 고대 무덤군 발굴 현장

 

 

무덤 주인공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현재로선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 매체들은 "고조선 유민이 왜 베이징에 묻혔을까"라며 한민족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북위(北魏) 태무제 탁발도가 서기 432년 '조선민'을 비여(肥如ㆍ중국어 페이루)로 이주시키고 '조선현'을 다시 설치했다는 기록이 근거다.

 

비여는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50㎞ 정도 떨어진 현재의 친황다오(秦皇島)와 창리(昌黎), 루룽(盧龍), 첸안(遷安)현 일대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으로 유입된 한국인이 이 곳에 살게 됐고 이들은 원적을 '낙랑군'으로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북위가 '조선민'을 강제 이주시킨 시기는 낙랑군이 사라진 지 100여년도 지난 때다. 무덤이 조성된 것은 이로부터 또 다시 100여년이 지난 시기다. '조선민'이 강제 이주됐다 해도 그들이 수백년 전 사라진 낙랑군을 굳이 원적지로 썼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1,500년전 우리 선조들이 베이징까지도 활동 무대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적일 수도 있다. '낙랑군'이 한반도가 아니라 베이징 부근에 설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덤의 주인공이 과연 한국인인지, 또 어떻게 이곳에 묻히게 됐는지는 현재로선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조선현'이 고향인 이가 1,500년전 베이징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됐다.』(5)

 

 

 

[발로읽는역사#1] 낙랑군 조선현사람 무덤이 왜 북경에서 나와?

https://youtu.be/Q8LBfr0t0Mw 

 

 

 

 

 

<주>

 

 

(1) 낙랑군(樂浪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2) 낙랑군 - 나무위키 (namu.wiki)

 

 

(3) 일제식민 통치용으로 만든 '낙랑군 평양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23.10.01

 

 

(4) ‘한사군 한반도설’ 근거 목곽묘, 한사군 앞서 이미 축조 (hani.co.kr)2009-06-09

 

 

(5) 1500년 전 베이징에 살던 한민족 무덤 발견? (daum.net)2015.03.2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