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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시대/한(삼한)

마한 (4) 나주 정촌고분

대야발 2025. 2. 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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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22년 3월 23일 발간 사실을 알린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보물 지정 기념 도록 '신선되어 하늘 나라샤'를 보면 신발에서 강조된 용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昇天)의 상징이다.

 

성윤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은 논고에서 "금동신발 발등 용머리 장식은 다수의 용 중 우두머리에 해당한다"며 "용머리 장식의 용은 측면에 있는 부마(副馬·예비로 끌고 다니는 말) 역할의 용을 이끌고 승천하는 수장급 용"이라고 설명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도록 발간.."주인 여성은 실질적 세력가"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용머리 장식 [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삼국시대 신발 유물 가운데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 전남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은 앞쪽에 달린 용머리 장식이 백미로 평가된다. 2014년 출토된 신발은 길이 31∼32㎝, 폭 9.3㎝ 내외다.

 

 

발등 중앙에 부착한 장식은 삼각형 눈, 상서로운 기운을 토해내는 듯한 입, 돌기가 있는 뿔, 타원형 귀로 용을 표현했다. 이 장식은 왼쪽 신발에서만 완전한 형태로 발견됐다. 오른쪽 신발 장식은 파편 일부만 나왔다.

 

 

용 문양은 신발 몸체 곳곳에서도 확인된다. 머리에 뿔이 있고 귀는 타원형이며 입은 벌리거나 다물고 있다. 상상에만 존재하는 용은 왕이나 선인(仙人)이 하늘을 왕래할 때 이용하는 수단으로 알려졌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3일 발간 사실을 알린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보물 지정 기념 도록 '신선되어 하늘 나라샤'를 보면 신발에서 강조된 용은 사후에 하늘로 올라간다는 승천(昇天)의 상징이다.

 

성윤길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원은 논고에서 "금동신발 발등 용머리 장식은 다수의 용 중 우두머리에 해당한다"며 "용머리 장식의 용은 측면에 있는 부마(副馬·예비로 끌고 다니는 말) 역할의 용을 이끌고 승천하는 수장급 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동신발 안쪽에서 발견된 뼛조각에 대해 "피장자가 신발을 신고 있었고 신발이 승천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라며 "금동신발은 용머리 장식이 하늘을 향한 상태로 놓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성 연구원은 용과 승천이 도교 사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뒤 금동신발에 불교적 성격이 강한 연꽃무늬가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정촌고분 금동신발은 도교와 불교가 공존하던 시기의 유물"이라며 "승천과 내세 불멸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교적 내세관을 투영해 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일신양두' 문양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촌고분 금동신발의 또 다른 특징은 몸 하나에 얼굴이 두 개인 '일신양두'(一身兩頭) 문양이다. 현존 금동신발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촌고분 유물에서만 확인됐다.

 

성 연구원은 "일신양두는 지상의 중심이자 신성한 장소를 뜻한다"며 "양쪽 신발에서 용과 일신양두가 인접해 배치됐는데, 두 문양이 금동신발에서 중심이 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용과 일신양두 문양을 근거로 금동신발을 지상의 중심에 묻힌 이가 하늘로 오르는 승천의 의례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했다. 또 "금동신발을 신은 40대 여성은 지역의 실질적 세력가였고, 신발로 그의 지위를 알 수 있다"고 짚었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도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문과 영문을 실은 도록에는 정촌고분 특성과 금동신발 출토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담겼다. 신발에 새겨진 육각형, 불꽃, 봉황, 새, 짐승, 괴수, 인면조신(人面鳥神·사람 얼굴에 새 몸인 신) 문양의 숨은 의미도 상세하게 논했다.(1)

 

연합뉴스, 박상현기자, 용은 승천의 징표일까..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문양 의미는, 2022. 3. 23.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조망하는 무덤떼가 있으니 바로 정촌고분이다.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에서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을 발굴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나온 인골의 주인은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인골을 분석해 복원한 얼굴 모습, 오른쪽은 정촌고분 전경.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가톨릭대 산학협력단 분석 결과

영산강 유역 호령했던 토착세력

금동관·금동신발 착용한 채 묻혀

파리 번데기도 나와 ‘6일장’ 추정

 

 

‘영산강 유역 다시벌(평야)을 다스리던 마한 출신 토착세력의 지도자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조망하는 무덤떼가 있으니 바로 정촌고분이다.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에서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을 발굴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시차를 두고 3기의 시신(목관)이 안치된 굴식돌방무덤(1호 석실)에서 2개체의 인골이 확인됐다. 발굴단은 부스러진 머리뼈와 정강이뼈가 확인된 1개체는 5세기 3/4분기(450~475년)에 1차로 안치한 목관의 주인공으로, 머리뼈만 1개 수습된 인골의 주인공은 3차(5세기 4/4분기~6세기 1/4분기·475~525년)로 안장한 목관의 주인공으로 각각 판단했다. 또 3차 목관 피장자 부근에서는 금동신발과 다량의 유리구슬, 옥류 등이 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의 인골 분석 결과 1차와 3차 목관의 주인공들인 두 인골이 모두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 중 금동신발과 함께 안장된 3차 목관 주인공이 관심을 모았다. 이 인골의 치아 상태로 측정한 나이는 45살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3차 목관 주변에서 출토된 정체불명의 금동조각편들이 금동관의 대륜(큰 테)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피장자는 금동신발은 물론 금동관을 착용한 채 묻혔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5세기 후반~6세기 초 영산강 유역을 호령한 수장이 ‘40대 여성’이라는 얘기가 된다. 나주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조망권을 갖춘 최고 신분의 고분에 묻힌 주인공이 여성이고, 특히 금동관과 금동신발까지 껴묻이 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오동선 학예연구사와 이건용 연구원은 11일 국립나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고대 동아시아의 금동신발과 금동관’)에서 ‘정촌고분의 주인공=토착세력의 지도자인 40대 여성’이라는 점을 논증할 예정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아울러 금동신발의 내부 흙에서 확인한 다량의 파리 번데기 껍질이 알려주는 주인공의 장례식도 복원했다. 파리 번데기 껍질 형태와 크기 등을 분석해보니 검정파릿과라는 것이 확인됐다. 검정파릿과는 9~10월 무렵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금동신발 주인공도 그 무렵 사망했을 가능성이 짙다.

 

 

또 파리의 변태 과정별로 무덤방 내부와 동일한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이 가능한지 실험한 결과 알에서 번데기까지 평균 6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금동신발 주인공인 40대 여성 지도자는 사망 후 최소 6일간 조문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무렵 마한 권역에서 발견되는 황금 제품은 이 지역을 간접지배한 백제 중앙정부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3차로 묻힌 피장자가 백제에게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사여받을 정도로 이 지역 수장급 인물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2)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나주 정촌고분 주인은 5~6세기 마한의 40대 여성 지도자”, 2019.10.10 

 

 

 

 

 

2014년 평야에 조성된 복암리 고분군을 감시하듯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무덤, 즉 정촌고분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그해(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현실(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됐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2014년 평야에 조성된 복암리 고분군을 감시하듯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무덤, 즉 정촌고분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그해(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현실(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됐다.

 

 

이것은 현재까지 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규모이다. 따라서 해발 110m의 잠애산 남서쪽 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정촌고분에 묻힌 주인공은 오히려 당대(5세기 3/4~6세기 1/4분기)의 복암리 3호분 주인공보다 지위가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강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지도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위). 신발 안에는 사람의 발뼈(사진 아래의 왼쪽)와 파리 번데기 껍질(오른쪽)이 보였다.

 

 
 

정촌고분의 굴식돌방무덤(1호 석실)에서 시차를 달리한 2개체의 인골이 확인됐다. 1개체는 5세기 3/4분기(450~475년), 다른 1개체는 5세기 4/4~6세기 1/4분기(475~625년)에 안장된 목관의 주인공으로 각각 판단했다. 또 피장자 부근에서는 금동신발과 다량의 유리구슬, 옥류 등이 확인됐다.

 

 

 

정촌고분에서 확인된 금동신발. 이 역시 백제 중앙정부가 사여한 것으로 보인다.|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 제공

 

 

 

이 무렵 마한 권역에서 발견되는 황금제품은 이 지역을 간접지배하던 백제 중앙정부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3차로 묻힌 피장자가 백제에게서 금동신발을 받을 정도로 이 지역 수장급 인물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인골로 복원한 얼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의 얼굴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인골 분석 결과 1차와 3차 목관의 주인공들인 두 인골이 모두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두 인골의 치아 상태로 측정한 나이는 47살과 45살 정도였다. 측정가능한 1개체 인골의 신장은 146㎝ 정도(146.36±7.62㎝)로 추정됐다.(3)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 5~6세기 영산강 유역의 지도자 '40대 여성', 그녀는 누구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019. 11. 17.

 

 

 

https://youtu.be/LswL232lktY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20323101057248

 

 

(2) “나주 정촌고분 주인은 5~6세기 마한의 40대 여성 지도자” - 경향신문 (khan.co.kr)2019.10.10 

 

 

(3) 5~6세기 영산강 유역의 지도자 '40대 여성', 그녀는 누구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daum.net)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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