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조망하는 무덤떼가 있으니 바로 정촌고분이다.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에서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을 발굴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나온 인골의 주인은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 왼쪽 사진은 인골을 분석해 복원한 얼굴 모습, 오른쪽은 정촌고분 전경.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가톨릭대 산학협력단 분석 결과
영산강 유역 호령했던 토착세력
금동관·금동신발 착용한 채 묻혀
파리 번데기도 나와 ‘6일장’ 추정
‘영산강 유역 다시벌(평야)을 다스리던 마한 출신 토착세력의 지도자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착용하고 있었다.’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의 넓은 들판을 한눈에 조망하는 무덤떼가 있으니 바로 정촌고분이다.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정촌고분에서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을 발굴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지도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시차를 두고 3기의 시신(목관)이 안치된 굴식돌방무덤(1호 석실)에서 2개체의 인골이 확인됐다. 발굴단은 부스러진 머리뼈와 정강이뼈가 확인된 1개체는 5세기 3/4분기(450~475년)에 1차로 안치한 목관의 주인공으로, 머리뼈만 1개 수습된 인골의 주인공은 3차(5세기 4/4분기~6세기 1/4분기·475~525년)로 안장한 목관의 주인공으로 각각 판단했다. 또 3차 목관 피장자 부근에서는 금동신발과 다량의 유리구슬, 옥류 등이 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의 인골 분석 결과 1차와 3차 목관의 주인공들인 두 인골이 모두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 중 금동신발과 함께 안장된 3차 목관 주인공이 관심을 모았다. 이 인골의 치아 상태로 측정한 나이는 45살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3차 목관 주변에서 출토된 정체불명의 금동조각편들이 금동관의 대륜(큰 테)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피장자는 금동신발은 물론 금동관을 착용한 채 묻혔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5세기 후반~6세기 초 영산강 유역을 호령한 수장이 ‘40대 여성’이라는 얘기가 된다. 나주의 너른 들판이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조망권을 갖춘 최고 신분의 고분에 묻힌 주인공이 여성이고, 특히 금동관과 금동신발까지 껴묻이 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오동선 학예연구사와 이건용 연구원은 11일 국립나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고대 동아시아의 금동신발과 금동관’)에서 ‘정촌고분의 주인공=토착세력의 지도자인 40대 여성’이라는 점을 논증할 예정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아울러 금동신발의 내부 흙에서 확인한 다량의 파리 번데기 껍질이 알려주는 주인공의 장례식도 복원했다. 파리 번데기 껍질 형태와 크기 등을 분석해보니 검정파릿과라는 것이 확인됐다. 검정파릿과는 9~10월 무렵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금동신발 주인공도 그 무렵 사망했을 가능성이 짙다.
또 파리의 변태 과정별로 무덤방 내부와 동일한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이 가능한지 실험한 결과 알에서 번데기까지 평균 6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금동신발 주인공인 40대 여성 지도자는 사망 후 최소 6일간 조문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무렵 마한 권역에서 발견되는 황금 제품은 이 지역을 간접지배한 백제 중앙정부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3차로 묻힌 피장자가 백제에게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사여받을 정도로 이 지역 수장급 인물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2)
2014년 평야에 조성된 복암리 고분군을 감시하듯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무덤, 즉 정촌고분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그해(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현실(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됐다.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2014년 평야에 조성된 복암리 고분군을 감시하듯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무덤, 즉 정촌고분에서 획기적인 발굴성과가 나왔다. 그해(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 너비 355㎝, 길이 483㎝, 높이 296㎝ 규모의 현실(널방·주검이 안치된 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됐다.
이것은 현재까지영산강 유역권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 가운데 최대규모이다. 따라서 해발 110m의 잠애산 남서쪽 사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정촌고분에 묻힌 주인공은 오히려 당대(5세기 3/4~6세기 1/4분기)의 복암리 3호분 주인공보다 지위가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강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 지도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위). 신발 안에는 사람의 발뼈(사진 아래의 왼쪽)와 파리 번데기 껍질(오른쪽)이 보였다.
정촌고분의 굴식돌방무덤(1호 석실)에서 시차를 달리한 2개체의 인골이 확인됐다. 1개체는 5세기 3/4분기(450~475년), 다른 1개체는 5세기 4/4~6세기 1/4분기(475~625년)에 안장된 목관의 주인공으로 각각 판단했다. 또 피장자 부근에서는 금동신발과 다량의 유리구슬, 옥류 등이 확인됐다.
정촌고분에서 확인된 금동신발. 이 역시 백제 중앙정부가 사여한 것으로 보인다.|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 제공
이 무렵 마한 권역에서 발견되는 황금제품은이 지역을 간접지배하던 백제 중앙정부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3차로 묻힌 피장자가 백제에게서 금동신발을 받을 정도로 이 지역 수장급 인물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인골로 복원한 얼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영산강 유역을 다스린 40대 여성의 얼굴이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인골 분석 결과 1차와 3차 목관의 주인공들인 두 인골이 모두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두 인골의 치아 상태로 측정한 나이는 47살과 45살 정도였다. 측정가능한 1개체 인골의 신장은 146㎝ 정도(146.36±7.62㎝)로 추정됐다.(3)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5~6세기 영산강 유역의 지도자 '40대 여성', 그녀는 누구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0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