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한(삼한) (5) 남삼한 70여 국 본문

본래 마한은 압록강 이남을 거의 다 점유했다. 그러다가 낙랑·진한·변한 삼국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조령 이북과 임진강 이남을 점유하게 되었다. 진·변 두 한은 명의상으로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신·불 두 조선 유민의 자치구였다. 이들은 마한에 대해 조공과 조세를 납부했다. 그러므로 낙랑 같은 적국은 아니었다.
■ 남삼한 70여 국
삼한의 소속 국가 중에서 역사 기록에 나타난 것은 70여 개다.
마한은 원양·모수·상외·소석색·대석색·우휴모탁·신분활·백제·속로불사·일화·고탄자·고리·노람·월지·자리모로·소위건·고원·막로·비리·점비리·신흔·지침·구로·비미·감해비리·고포·치리국·염로·아림·사로1)·내비리·감해·벽비리·구사오단·일리·불미·지반·구소·첩로·모로비리·신소도·고랍·임소반·신운신·여래비리·초산도비리·일난·구해·불운·불사분야·원지·건마·초리 등 54개국을 다스렸다.
‘비리’ 계통의 국가들은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나오는 부여와 〈지리지〉에 나오는 부리였다. 비리는 부여 즉 지금의 부여군이고, 감해비리는 고막부리 즉 지금의 공주였다. 벽비리는 파부리 즉 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이고, 여래비리는 이릉부리로 지금의 전남 화순군 능주면이었다.
신소도는 신수두 즉 대신단(大神壇)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일명 소태라고 불린 성대호로 지금의 충남 태안에 해당한다. 지침은 지심 즉 지금의 충북 진천 등지였다. 건마는 금마군(전북 익산군)으로서 백제 무왕릉이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살펴볼 곳이 많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변한은 미리미동·접도·고자미동·고순시·반로·낙노·미오야마·감로·구야·주조마·안야·독로, 12부의 통칭이다. 미동(彌凍)은 ‘믿’으로 읽는다.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와 있는 ‘만’이란 의미다. 고자(古資)는 ‘구지’로 읽으며 반도라는 뜻이다. 야(邪)는 ‘라’로 읽으며, 강이란 뜻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 편과 《가락국기》에서 12부의 유적지를 찾아보니, 고자미동은 고자군 즉 지금의 고성만(灣)이다. 고순시는 고령가야 즉 지금의 상주·함창 사이의 공갈못이다. 공갈은 고량가야에 가까운 발음이다. 반로(半路)는 ‘벌’로 읽으며 별이란 뜻이다. 이것은 성주가야 즉 지금의 성주를 가리킨다. 미오야마는 미오마야라고도 했다. 미오(彌烏)는 ‘밈라’로 읽었다. 임나 즉 지금의 고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구야(狗邪)는 ‘가라’로 읽으며 ‘큰 못’이란 뜻이다. 지금의 김해에 해당한다. 안야(安邪)는 ‘아라’로 읽으며 강 이름을 가리킨다. 지금의 함안에 해당한다. 이 6국은 훗날 가라 6국이 되었다. 나머지는 자세하지 않지만, 대개 그 부근이다.
진한은 기저·불사·근기·난미리미동·염해·군미·여담·백로·주선·마연·사로·우중, 12개국의 통칭이다. 12개국 중에서 사로가 신라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밖의 경우에는 연혁을 알 수 없다. 이는 신라 말의 한학자들이 종전의 이두를 버리고 한자로 의역한 탓에 지명을 고증할 수 없게 된 까닭이다.
본래 마한은 압록강 이남을 거의 다 점유했다. 그러다가 낙랑·진한·변한 삼국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조령 이북과 임진강 이남을 점유하게 되었다. 진·변 두 한은 명의상으로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신·불 두 조선 유민의 자치구였다. 이들은 마한에 대해 조공과 조세를 납부했다. 그러므로 낙랑 같은 적국은 아니었다.(1)
윤내현교수는 한은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으로서 지금의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최씨낙랑국의 건국으로 대동강 이남으로 줄었고, 대방국의 건국으로 지금의 멸악산맥 이남으로 줄었으며, 신라 · 백제 · 가야 등의 건국으로 한의 영토는 서남부 지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한은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으로서 지금의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조선 말기에 지금의 요서 지역에 위만조선이 건국되어 그 영토를 확장하자 그 지역에 있었던 낙랑 주민 가운데 일부가 거주지를 잃고 지금의 평양 지역으로 이주하여 최씨낙랑국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의 강역은 대동강 이남으로 줄어들었다.
그 후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던 낙랑 남부의 대방 지역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황해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대방국을 세우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의 강역은 지금의 멸악산맥 이남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한의 강역 변화는 외부의 영향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북부의 국경을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한은 고조선의 붕괴로 말미암아 독립국이 된 뒤에도 커다란 강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것은 신라와 백제 및 가야의 건국과 영토 확장 때문이었다. 이들은 원래 한의 거수국들이었는데 한이 독립국이 된 뒤 오래지 않아 이들도 독립국으로 출발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렇게 되자 한의 영토는 축소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라는 서기 전 57년에 한의 동부인 진한 지역, 즉 지금의 경주에서 건국되어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한의 동부 영토가 줄어들었다. 백제는 한의 서북부인 마한의 북부, 즉 지금의 임진강 유역에서 건국한 뒤 얼마 안 되어 한강 남부유역으로 도읍을 옮기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한의 북부 영토가 줄어들었다. 가야는 한의 동남부인 변한 지역, 즉 지금의 김해에서 건국되어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한의 동남부 영토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되어 한의 영토는 그 서남부 지역으로 줄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 한전에는 한의 진왕이 한 전체를 통채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 한전에는 한의 진왕이 한의 일부만을 통치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한의 강역이 변화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은 강역이 변화됨에 따라 도읍을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의 도읍은 마한 지역에 있었는데 백제가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한의 도읍 지역을 차지하게 되자 한은 도읍을 남쪽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한의 도읍이 《후한서》 〈동이열전〉 한전에는 목지국으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 한전에는 월지국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한의 도읍이 목지국에서 월지국으로 이동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이 목지국에서 월지국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서기 8년(백제 온조왕 26년)이었다.
지금까지는 목지국과 월지국은 한 곳으로서 그 첫자인 월月자와 목目자는 같은 문자였을 것인데 기록과정에서 다른 문자로 잘못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의 도읍이었던 목지국과 월지국의 위치를 고증할 만한 분명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그 동안의 연구결과와 전설 등을 참고해 볼 때 목지국은 지금의 충청남도 직산 지역으로, 월지국은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으로 추정된다. 한은 서기 3세기 말경 멸망할 때까지 계속 영토가 줄어들었으므로 목지국과 월지국 외에도 그 말기의 임시 도읍이 전라남도 지역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2)
교과서가 외면하는 삼한의 진짜 위치?
[도올김용옥] 노자 29 고인돌과 고조선, "마한은 고구려의 전신이었다" -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https://youtu.be/o-fv64_gnHU?list=PLRAmvpNm4pmm7JqvcSC1qna8rYrgRQOfO
<자료출처>
(1) [네이버 지식백과] 낙랑 25개국과 남삼한 70여 국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2)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175-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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