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한(삼한) (1) 말조선의 천도와 마한으로 국호 변경 본문
신채호선생님은 본래 마한은 압록강 이남을 거의 다 점유했는데 낙랑·진한·변한 삼국이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조령 이북과 임진강 이남을 점유하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진·변 두 한은 명의상으로는 국가지만 실제로는 신·불 두 조선 유민의 자치구였고 마한에 대해 조공과 조세를 납부했다고 보았습니다.
■ 말조선의 천도와 마한으로 국호 변경
말조선의 초기 도읍이 평양이었다는 점은 이미 설명했다.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말조선은 그 뒤 국호를 말한(마한)으로 바꾸고 남방 월지국으로 천도했다가 불조선왕 기준에 의해 멸망했다. 왜 천도했는지는 역사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흉노와 중국의 연이은 침략으로 북방 정세가 위태해지자, 말조선왕이 염증을 느껴 남쪽 먼 곳으로 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침략주의 성격을 가진 역대 제왕들의 칼끝에서 빛나던 조선이란 명사를 외국인들이 싫어했기 때문에, 말조선이란 명칭을 버리고 옛날에 왕호로 쓰던 말한을 국호로 취하여 이를 이두자로 ‘마한’으로 표기했다.
새로 쓰는 왕호인 ‘신한’은 이두자로 ‘진왕’이라 쓰고 ‘마한국 진왕’이라 칭했다. ‘한’이라는 하나의 글자에서, 음을 취해 ‘한(韓)’이란 국호를 만들고 뜻을 취해 ‘왕’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은 문자상 국호와 왕호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국호를 마한이라 하고 한씨가 왕조를 세습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한씨 왕의 존재만 알았다. 기준이 왕위를 탈취한 뒤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자기 성인 기씨를 버리고 한씨로 바꾼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삼국지》에서는 “기준이 ······ 바다로 달아나 한(韓) 땅을 차지하고 한왕이라 칭했다”고 하고, 《위략》에서는 “기준의 아들과 친척 중에서 이 나라에 머문 사람들은 성을 숨기고 한씨라고 했다”고 했다.
기존 역사서에서는 월지국이 백제 금마군 즉 지금의 익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익산군의 마한 무강왕릉에 관한 속설 때문이다. 속설에서는 무강왕을 기준의 시호로 보고, 근처에 있는 미륵산의 선화부인 유적을 기준의 왕후인 선화의 유적이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기준이 남쪽으로 달아나 금마군에 도읍했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무강왕릉은 일명 말통대왕릉인데, 말통은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다. 무왕의 이름은 마동으로, 《삼국유사》에 나온 서동은 마동의 의역이고 《고려사》 〈지리지〉에 나온 말통은 마동의 음역이다. 선화는 신라 진평대왕의 공주로 무왕의 왕후가 된 사람이다. 역사서에서 백제를 마한이라고 표기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무강왕릉 유적은 익산이 한때 백제의 도읍이었음을 입증하는 데는 충분하지만, 기준의 도읍이었음을 입증하는 데는 불충분하다.
마한 50여 나라 중에 월지국과 건마국이 있었다. 건마국은 금마군 즉 지금의 익산으로 보인다. 따라서 마한의 도읍인 월지국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정확한 지점은 알 수 없지만, 마한과 백제의 국경이 웅천 즉 지금의 공주였으니, 월지국은 이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말한이 국호가 된 지 오륙백 년이 흐른 뒤에 이것을 왕호로 쓰는 사례가 있었다. 신라의 눌지·자비·소지·지증왕은 다 ‘마립간’이라고 칭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는 ‘눌지마립간’에 대해 “마립은 궐(橛)”이라 했다는 주석이 달려 있다. ‘궐’은 ‘말 재갈’ 이란 뜻이다. 마립의 ‘마’는 그 소리 전체를 취해 ‘마’로 읽으며, ‘립’은 그 첫소리를 취해 ‘ㄹ’로 읽고, ‘간’은 그 소리 전체를 취하여 ‘한’으로 읽은 것이 명백하다. 그래서 마립간으로 쓰고 말한으로 읽은 것이다. 이는 말한을 왕호로 쓴 증거가 된다.(1)
■ 낙랑과 남삼한의 대치
마한이 월지국으로 천도한 뒤, 옛 도읍 평양에서는 최씨가 등장해 주변 25개국을 복속시키고 하나의 대국을 이루었다. 역사 기록에 나오는 낙랑국이다. 마한은 낙랑이 분리해 나가면서 임진강 이북을 상실했지만, 이남의 70여 개국은 여전히 다스렸다.
얼마 뒤 중국과 흉노의 침공을 피해 북방에서 마한으로 들어오는 신·불 조선 유민이 날로 많아졌다. 그러자 마한은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100여 리를 떼어 신조선 유민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치 조직을 만들어 진한부(辰韓部)라고 명명했다. 또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또 다른 부분을 불조선 유민들에게 떼어주고, 역시 자치 조직을 세운 뒤 변한부(卞韓部)라 불렀다. 변한에는 신조선 유민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변진부(卞辰部)라고도 불렀다. 진한·변한과 더불어 마한을 남(南)삼한이라 한다.
마한이 굳이 진·변 두 한을 세운 것은, 삼신 사상에 따라 삼한이란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대단군왕검의 삼한 제도에서는 신한이 중심이고 말·불 두 한은 보조자였다. 하지만 남삼한에서는 말한, 곧 마한이 최강국 즉 종주국이 되고 신한, 곧 진한과 불한, 곧 변한이 약소국 즉 소속 국가가 된 것은, 이주민의 계통에 따라 명칭을 지은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삼한은 각각의 왕을 다들 신한이라고 했다. 마한의 왕은 말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진한의 왕은 신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변한의 왕은 불한나라의 신한이라 했다. 이로써 신한이 세 개가 되었다.
삼한이 각기 존재한 것은 왕검 때 지은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고, 신한이 세 개가 된 것은 삼조선 분립 이후 저마다 신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진한·변한의 두 신한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대로 마한의 신한이 겸직했기 때문에 이름만 있고 실질은 없었다. 이것은 남삼한 때 처음 생긴 일이다. 삼한은 우리 역사에서 특히 논쟁이 많은 존재다. 기존 학자들은 진수의 《삼국지》에 나오는 삼한 즉 남삼한에 의거해서 삼한의 위치를 정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삼한 명칭의 유래와 삼한 체제의 변혁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비록 공은 많이 들였지만, 북방에 있었던 원래의 삼한을 발견하지 못하고 남삼한 내부의 상호 관계도 명백히 밝히지 못했다.
깊이 읽기 마한·진한·변한에 속한 국가의 수
이번 장의 앞부분에서는 “마한 50여 나라 중에 월지국과 건마국이 있었다”(A)고 한 데 비해, 여기서는 “마한은 낙랑이 분리해 나가면서 임진강 이북을 상실했지만, 이남의 70여 개국은 여전히 다스렸다”(B)라고 하여, 두 개의 언급이 일견 일치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A에서는 마한에 50여 국이 속했다고 했고, B에서는 마한에 70여 국이 속했다고 했다.
《삼국지》 〈동이 열전〉에 따르면 마한연맹에 속한 나라는 56개였다. A문장은 이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진한과 변한도 각각 연맹체를 이루기는 했지만 마한의 통할을 받았다. 《삼국지》 〈동이 열전〉에 따르면, 진한과 변한에 속한 국가는 총 24개국이었다. B 문장은 진한과 변한도 마한의 일원이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마한·진한·변한에 속한 국가의 합계는 《삼국지》 〈동이 열전〉에 따르면 80개였다.(2)
광주MBC 특집다큐 :: 빅히스토리 마한
https://youtu.be/opFF-kBKgyY?list=PLRAmvpNm4pmm7JqvcSC1qna8rYrgRQOfO
<자료출처>
(1) [네이버 지식백과] 말조선의 천도와 마한으로 국호 변경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2) [네이버 지식백과] 낙랑과 남삼한의 대치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참고자료>
마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진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변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한국사 探] 잃어버린 고대 왕국 마한을 찾아서 / YTN 사이언스
https://youtu.be/j3WR-gCi04Q?list=PLRAmvpNm4pmm7JqvcSC1qna8rYrgRQOfO
1,500년전 무덤의 주인은? 고대국가 마한 장고무덤의 비밀 [광주MBC다큐 마한6부]
https://youtu.be/YiKMMFn-21Y?list=PLRAmvpNm4pmm7JqvcSC1qna8rYrgRQO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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