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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1970년대 4대국 안전보장론 제시로 한반도 전쟁 억제와 동북아평화 체제 구축 비전을 제시했던 김 전 대통령은 1978년부터 꾸준히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2000년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선정됐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40여 년간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6·15 남북 공동선언 등 남북 화해와 긴장 완화에 기여한 공로 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다시 만난 김대중] 한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백미선2024. 12. 18. 14:35 연중기획 DJ탄생 100년「다시 만난 김대중」은 KBS 광주총국이 김대중..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꾸준한 접촉을 하던 남북은 1985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한 번 이산가족행사에 합의,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가족을 만날 기회를 잡는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드디어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다. '시간과의 애타는 싸움'..그동안의 이산가족 만남 살펴보니사정원2018. 8. 20. 11:31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공식 일정이 오늘(20일)부터 시작됐다.전날(19일) 사전 집결을 위해 속초에 모인 우리 측 상..

2000년 6월13일 오전10시27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측과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날엔 공개석상에 잘 나오지 않아 은둔생활을 한다고 알려졌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마중하기 위해 순안공항에 미리 와 기다리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 평양 간 DJ, 은둔생활 김정일이 '파격 마중'…"기대 이상의 환대"[뉴스속오늘]박상혁 기자 2024. 6. 13. 05:00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마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기록관 2000년 6월13일 오전10시27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측과 한반도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이날엔 공개석상에 잘 ..

연평도 근해에서 1999년, 2002년 벌어진 남북 해군의 충돌 배경에는 꽃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꽃게가 아니라 돈이다. 남한 어민들은 꽃게를 팔아서 빚을 갚고 자녀 학비도 마련한다. 북한 어민들도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꽃게 상당부분을 중국칭다오와 다롄 지역으로 수출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꽃게와는 별개로 연평도 등 서해 5도 해역은 양쪽 전력이 집중된 ‘해상화약고’다. 이 때문에 사소한 충돌은 곧바로 국지전으로, 이어 전면전으로 번질가능성이 높은 곳이 이곳이다. ■ 꽃게도 긴장하는 6월! 연평도= 글 권혁철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2003. 6. 5. 02:29 서해교전 1돌, 폭풍전야의 연평도를 가다 오전 5시면 연평도가 깨어난다. 동이 틀 무렵이면 선원들이 탄 트럭..

■ 1998.11.18~2008.7.11 금강산관광 10년, 먼저 온 미래이제훈2022. 5. 2. 16:06 [이제훈의 1991~2021][이제훈의 1991~2021] _27‘비싸고 불편한’ 금강산관광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한때 파산의 벼랑에 몰렸다. 그러나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을 열어 육로관광·당일관광·승용차관광을 성사시키며 남북경협의 유전자(DNA)에 ‘사용자 편의성’과 ‘경제성’을 새겨넣었다. ‘금강산관광 10년’은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산증인이자 나침반이다. 2007년 7월26일 여름방학을 맞아 금강산에 온 경기도 안산시 송호초등학교 학생들이 장전항의 금강산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아버지~.” 1998년 11월19일 이른 아침, ..

이른바 '소떼 방북'은 정 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27일 소 501마리를 몰고 두 번째 방북길에 올라 민간 기업인 처음으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소떼 방북 효과는 대단했다. 남북 민간교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고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초석이 됐다. ■ 1001마리 소떼와 83세 정주영…휴전선 활짝 열린 영화 같은 장면[뉴스속오늘]양성희 기자2025. 6. 16. 06:00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

1953년 정전과 함께 분단이 영속화된 뒤 현재까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세 개만 들라면 무엇일까? 우선, 1961년 5‧16 쿠데타다. 이 때 생긴 '개발독재체제' 내지 '박정희 체제'는 이후 우리 사회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이 체제는 구체적으로 정치적 독재체제와 경제적으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국가주도의 경제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1987년 민주화다. 흔히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것으로, 민주화와 함께 박정희 체제의 한 축인 독재체제가 무너졌다. 세 번째는 1997년 IMF 경제위기다. 이 위기와 함께 박정희 체제의 또 다른 축인 국가주도형 경제체제가 무너지고 미국식의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 우리를 괴롭히는 비정규직의 일상화,..

남북관계가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과 관련된 조문 논쟁 후 급냉각한 1996년 8월 말, 베이징에서 만난 남북한 정치학자 모임에서 북한 학자들에게 한 내 발언이다. 이 모임 직전인 8월 13~20일 '연세대첩'이라고 부르는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가 벌어졌다. 한총련이 연세대에서 범민족대회를 열며 '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등을 내걸고 경찰과 대치해 이과동이 불타고 단일 사건으로 최대 규모인 5848명이 연행된 것이다. ■ '연세대 사태'가 부른 학생운동의 추락[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21. 8. 13. 07:25 [손호철의 발자국] 68. 서울 연세대 : '민주화의 주역' 학생운동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나는 대학시절 감옥을 가기 시작해 평생 운동권으로 살았습..

■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 처한다"... 다시 보는 내란 수괴 1호 대통령 재판최다원기자 2025. 1. 30. 10:00 12·12 쿠데타, 5·17 계엄, 5·18 사태 주도검찰 '기소유예·공소권 없음' 뒤집고 기소1심 사형→2심 무기징역 감형→대법 확정18년 만에 심판 마무리했지만 특사로 석방윤석열 대통령, '내란 수괴' 2호 피고인 기록 1996년 3월 11일 1차 공판이 열린 법정에 나란히 선 전두환(왼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3월 11일, 만연한 봄기운과 달리 서늘한 긴장감이 감도는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옥색 수의 차림에 안경을 쓴 수인번호 3124번이 옆에 선 1042번을 향해 고개를 기울여 귓속말을 건넨다.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1995년 3월 1일. 지금의 서울 광화문에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축제가 펼쳐졌다. 바로 그 자리에 70년 간이나 버티고 서 있던 ‘한민족 말살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 광장에서 열린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 축제’에서 당시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오늘 삼일절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의 시발점으로 삼는다”고 천명했다. 흥겨운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무수히 많은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저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로 축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 '한민족 말살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선포식[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