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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강서대묘는 북한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 벽화 고분으로 이웃한 2개의 큰 무덤과 함께 강서삼묘로 불립니다. 고구려 평원왕 또는 영양왕의 무덤으로 추정합니다. 강서3묘 전경(출처; '한왕묘'와 강서3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daum.net)2019. 5. 2.) 널방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비천 · 비운 · 신선 · 산악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신은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고 인기를 모은 방위신(方位神)으로서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습니다. 강서대묘 새를 탄 선인(출처; 강서대묘 깊이보기 3 - 비천과 선인 (daum.net)2019. 6. 27.) 강서대묘 비천상(출처; 강서대묘 깊이보기 3 - 비..
임기환교수는 덕흥리고분에 담겨 있는 벽화 제재의 풍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림의 대상과 내용에 대해 그 이름과 설명이 묵서로 밝혀져 있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며, 벽화와 묵서 등 이 무덤에 담겨 있는 역사 자료의 가치로 보아 덕흥리고분을 현존하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첫 자리로 꼽았습니다. [고구려사 명장면-26] 고구려 역사의 노다지, 덕흥리고분『1976년 12월 8일,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옛 지명: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 무학산 서편 옥녀봉의 남쪽 자락. 향금산이라고 불리는 구릉에서 관개수로 공사 중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 1기가 발견되었다. 한겨울임에도 발굴단은 부랴부랴 12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20일까지 한 달여 동안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 성과는 놀라웠다.무덤은 널길,..
신라 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경주 대릉원 일원에서 잘 알려진 무덤 중 하나가 바로 천마총(天馬塚)입니다.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경험을 쌓고자 시작한 조사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를 비롯해 금관, 금 허리띠 등 1만1천5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습니다. 경주 천마총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달 23일 찾은 경주 천마총 입구 모습. 2023.4.3 yes@yna.co.kr "오늘은 날씨도 청명했지만, 아침부터 현장은 다시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1974년 발행된 '천마총 발굴 조사 보고서' 중)경북 경주시 '황남동 155호 고분'의 발굴 일지는 1973년 8월 22일을 이렇게 전한다. 발굴 조사 전 천마총의 모습 사진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
이형구교수는 북한의 미술사학자 주영헌(朱榮憲)씨가 안악 3호분을 미천왕릉(美川王陵)으로 보고 있는데, 1990년대에 와서는 고국원왕릉(故國原王陵)이라고 하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안휘준(安輝濬) 선생은 “안악 3호분은 중국인인 동수(冬壽)의 묘로 보기보다는 역시 고구려 왕(王)의 능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또 “묘주는 왕의 신분을 지닌 지체 높은 인물로 신격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요동 지방은 고조선의 옛 영토이다. 이곳은 3세기 무렵 위(魏)나라에 의해 점거되었고, 310년까지 서진(西晋)이 장악하였다. 물론 이후는 5호(胡) 16국(國)이 중국 중원을 차지하려고 할거하던 시기이다. 그래도 요동 지방은 중원 지방보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명왕릉'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시의 력포구역 룡산리의 용산에 있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무덤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용산에 있었던 이 무덤이 '동명왕묘'로 전해졌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1891년 조선 고종 때 '동명왕릉'으로 추봉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동명왕릉이 동명성왕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기에 '전(傳) 동명왕릉'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적어도 근현대 이후 갑자기 생긴 게 아닌, 고려시대 때도 기록이 확인되는 정말 오래된 유적인 것은 확실합니다. (1) 북한학계에서는 장수왕 때 평양으로 수도를 옭기면서 졸본에 있던 동명왕의 무덤을 함께 옮겼다고 주장합니다. 『북한학계에서는 장수왕 때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졸본에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