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산동성 (3)
력사를 찾아서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 시조온조왕조에 백제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3년(B.C. 6)〕 여름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우리나라의 동쪽에는 낙랑(樂浪)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어 번갈아 우리 강역을 침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요사이 요망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께서 돌아가셨다. 형세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으니, 장차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의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오래도록 편안한 계책을 도모해야 하겠다.』 (한국고대사료DB, https://db.history.go.kr/ancient/level.do?levelId=sg_023r_0020_01..
《만주와 한반도 12,000년 전~ 2,000년 전 년대기》 4.22 용산문화(龍山文化); 4900년 전~4000년 전(BC 2900~2000년) 『중국 산동성(山東城) 장구현(章丘縣) 용산진(龍山鎭)에 위치하는 성자애(城子厓)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용산문화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신석기시대 만기(晩期) 문화이다. 1928년 처음 확인되었고, 1930년에 발굴이 이루어졌다. 용산문화는 산동 용산문화(山東 龍山文化), 묘저구2기문화(廟底溝2期文化), 후강2기문화(後崗2期文化), 객성장2기문화(客省庄2期文化)의 4가지 계통으로 구분된다. 이 중 가장 전형(前型)을 띠는 것이 산동 용산문화로 방사성탄소 보정연대로는 기원전 2500∼2000년에 해당하며, 이전의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의 계통을 잇고 악석문화(岳..
동부여의 건국과 위치 지금까지 필자는 고조선 말기부터 붕괴 이후까지의 부여 분열과 그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고대에 부여는 동부여 · 북부여 · 졸본부여 · 부여 등이 있었다. 고조선시대에는 고조선의 거수국으로서 하나의 부여만 존재하였으나 고조선이 붕괴된 뒤 그 지배귀족과 거주민들이 여러 곳으로 이주함에 따라 여러 곳에 부여라는 이름이 있게 되었다.위에 언급된 여러 부여 가운데 맨 끝의 그냥 부여는 고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원래의 부여로서 그 위치는 지금의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고조선이 붕괴된 뒤 이 부여는 지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북부여는 부여의 지배세력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던 부여로서 원래의 부여보다는 다소 북쪽에 있었지만 그 위치도 난하 상류유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