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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조선 강역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조선의 서쪽 경계 지역이 어디였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리지린은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서기전 3세기까지는 하북성 난하였다가 서기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영토를 빼앗긴 후 요녕성 대릉하 동쪽으로 축소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오늘의 중국 요녕성 개평으로 보고 있다. 윤내현 역시 발해 북안 난하 유역을 고조선의 서쪽 경계지역으로 보고 있고, 중국에게 밀려서 한때 축소되었다고 보지만 진·한(秦漢) 때 다시 난하를 국경으로 삼았다고 보는 점이 다르다. 또 리지린은 왕검성을 고조선의 도읍이라고 봤지만 윤내현은 왕검성은 위만조선의 도읍이지 단군조선의 도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56년 만에 남에서 출간..

서기전 2333년 무렵 국가 단계로 진입한 고조선의 강역은 지금의 베이징 동쪽 난하로부터 동북쪽은 아르군 강과 흑룡강, 남으로는 한반도 남쪽 해안에 이르는 만주·한반도 전역에 걸쳐 있었다. 고조선이 기자조선으로 넘어가고 다시 위만조선을 거쳐 한4군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설은 잘못됐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4군은 모두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역인 베이징 인근 난하 동부지역, 요서지역에 있었으며, 주나라 망명객 기자의 조선은 서부 변경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작은 거수국(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다. 낙랑군 등 한4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지금의 중국 요서지역에 있었다. ■고대사 통념 바꾼 '윤내현 고조선 연구' 개정판2015. 10. 22. [한겨레] 고조선 연구(상)윤내현 지음/만권당 1979년부..

'여러나라시대'는 '열국시대'라고도 쓰고요, 기존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대체하고자 하는 개념입니다. 사실상 고조선(위만조선 포함) 멸망 후 여러 왕국들이 등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나라(왕국)시대'라고 봅니다. BC108년 위만조선이 한漢에 멸망하여 그 자리에 한漢의 행정구역인 한사군이 세워 집니다.한사군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위만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인가하는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또 위만조선이 기자조선, 고조선의 영토를 완전히 점유했는가하는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한사군 중 가장 핵심적인 낙랑군이 오늘날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부였다는 것이 통설이라고 합니다. 『한사군의 위치를 중국의 요동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반도 중·북부 및 남만주 일부에 걸쳐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