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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경희궁에 다녀왔습니다. 사적으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습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습니다.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경희궁과 경운궁을 잇는 홍교, 1902년경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아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