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 '남한 혁명통일론' 버렸다..보안법 존폐 논쟁 새국면

이제훈 입력 2021. 06. 01. 07:06 수정 2021. 06. 02. 09:36 댓글 129

헌법과도 같은 노동당 규약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문구 지우고
"전국적 범위 자주·민주적 발전" 대체
남북 격차로 체제 생존 내몰린 북
현실-이데올로기 괴리 해소 차원
통일보다 '남북 공존' 방향 선회
한국사회 보안법 논쟁 영향 줄 듯

[단독] 북, '남한 혁명통일론' 버렸다..보안법 존폐 논쟁 새국면 (daum.net)

 

[단독] 북, 76년 지켜온 '남한 혁명통일론' 사실상 폐기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조선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 통일론’ 관련 문구를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한겨레>가 31일 조선노동당 새 규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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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②

안정식 기자 입력 2021. 04. 21. 09:03 수정 2021. 04. 21. 16:48 댓글 24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② (daum.net)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②

지난 글에서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원문 링크 : htt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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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안정식 기자 입력 2021. 04. 14. 09:03 수정 2021. 05. 06. 10:54 댓글 22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북한 체제의 특성상 대중시위로 체제가 무너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그렇다면, 북한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까요?


출처;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daum.net)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북한 체제의 특성상 대중시위로 체제가 무너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그렇다면, 북한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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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

안정식 기자 입력 2021. 04. 07. 09:24 수정 2021. 04. 21. 10:27 댓글 38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 (daum.net)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

북한에서 대중시위에 의한 체제 붕괴가 가능할까? 남북한 흡수통일을 상정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입니다. 논의를 보다 분석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동구 사회주의권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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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화 D-1]"김정은 이후 평양 시민 '경제 열망' 커졌다"

싱가포르 | 박은경 특파원 입력 2018.06.10. 22:17 수정 2018.06.10. 23:46 댓글 107

 

[경향신문] ㆍ평양서 12년째 워크숍 여는 싱가포르 비영리 단체 ‘조선교류’ 대표 제프리 시

[북·미대화 D-1]"김정은 이후 평양 시민 '경제 열망' 커졌다" (daum.net)

 

[북·미대화 D-1]"김정은 이후 평양 시민 '경제 열망' 커졌다"

[경향신문] ㆍ평양서 12년째 워크숍 여는 싱가포르 비영리 단체 ‘조선교류’ 대표 제프리 시 ‘비즈니스우먼 되고 싶다’는 김일성종합대학 여학생 소망 듣고 2007년부터 북한서 경제·경영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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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다녀온 러 전문가 "북한, 미국의 전쟁준비 두려워해"

송고시간 | 2018/01/11 16:06

 

"북 당국자들, 남북의 전쟁위기 인식차에 놀라…핵무기는 정권 보장용"
북 관리들, 미국과 핵균형 고수하며 "우리 병사들은 군화 신고 잔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1/11/0200000000AKR20180111133700009.HTML?input=1179m 

 

평양 다녀온 러 전문가 "북한, 미국의 전쟁준비 두려워해"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북한 당국자들이 미국의 대북 전쟁 태세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10일(현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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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보다 와의 적대 상태 중단 원한다

입력 2008-05-07 02:54수정 2009-09-25 03:48

 

군부 만나고 서울 들른  리언 시걸 박사 인터뷰

《북-미 핵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외교적 업적을 완성하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의 임기 안에 최대한 북-미관계 진전을 기대하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미국에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은 진정 핵을 포기할 것인가? 북한워치포럼이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원 박사의 의견을 들었다. 》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5070070 

 

“北, 돈보다 美와의 적대 상태 중단 원한다”

北군부 만나고 서울 들른 美 리언 시걸 박사 인터뷰 《북-미 핵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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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북한 해방 8년사’…김구·김일성 모습 ‘생생’

등록 :2007-08-09 19:35수정 :2007-08-10 10:22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227993.html#csidx9f237db59993fedaf15803a2b928ff6

 

[동영상] ‘북한 해방 8년사’…김구·김일성 모습 ‘생생’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에서는 9일 러시아국립영상사진문서보관소와 미국 내셔널아카이브스 등에서 입수한 해방이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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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국경이 '천지개벽' 하고 있다

[한반도 브리핑] 무역제재와 3월 5일 청년광산

 

박종철 경상대학교 교수 2019.09.30 17:13:02

북중 국경이 '천지개벽' 하고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58708

 

북중 국경이 '천지개벽' 하고 있다

소설과 수치 사이에서 2017년 이후 주요 대북 제재로 수출입 관련 석탄, 철(광석) 등 주요 광산물 수입 금지(2270, 2321, 2397호)와 섬유, 해산물, 조업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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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조선왕궁습격 125주년에 "日, 사죄는 커녕 경제보복"

송고시간 | 2019-07-23 11:40

https://www.yna.co.kr/view/AKR20190723079800504?input=1179m

 

北, 조선왕궁습격 125주년에 "日, 사죄는 커녕 경제보복"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북한은 23일 125년 전 일본의 조선왕궁 무력점령을 상기하면서 일본이 과거에 대한 사죄 대신 한국에 대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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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유지한채 美와 관계개선… 김정은 ‘베트남 모델’ 꾀하나

한상준 기자입력 2018-03-13 03:00수정 2018-03-13 08:59

[남북미 비핵화 외교전]김정은 ‘정상국가 구상’ 속내는

http://news.donga.com/3/all/20180313/89067967/1#csidx7d1c7c4ba8c13cda67a7a1200282d88

 

체제 유지한채 美와 관계개선… 김정은 ‘베트남 모델’ 꾀하나

“북한이 앞으로 베트남처럼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심스럽게 남북 대화 국면이 움트던 1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 정치권 인사도 “급박하게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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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3대째 자랑...‘미국의 항복서’

[중앙일보] 입력 2018.01.27 07:00

 

김수연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22322636

 

김정은 3대째 자랑...‘미국의 항복서’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북한이 즐겨 쓰는 이 위협적인 언사는 60년대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일성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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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이라크·리비아…북한이 미국을 못 믿게 된 사태 셋

[중앙일보] 입력 2017.10.21 13:00

 

강혜란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22035109

 

코소보·이라크·리비아…북한이 미국을 못 믿게 된 사태 셋

“북한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의 주요 성향이 99년 코소보전쟁의 직접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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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대표 여성언론인 “우리, 단합합시다”

‘조선중앙방송’ 정명순 국장 금강선 회의서 화해 강조

한겨레 2008.5.12

김동훈 기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287020.html

 

북 대표 여성언론인 “우리, 단합합시다”

‘조선중앙방송’ 정명순 국장 금강선 회의서 화해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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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공연, 타임 ‘베스트 오브 아시아’ 뽑혀

입력 2008-04-28 02:59수정 2009-09-25 05:10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4280122 

 

北 아리랑 공연, 타임誌 ‘베스트 오브 아시아’ 뽑혀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과 한국의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베스트 오브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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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승용차 개인소유 인정…협의이혼은 불허

대법원 ‘북한의 민사법’ 펴내

한겨레 2007.12.29

김남일 기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260128.html

 

북, 승용차 개인소유 인정…협의이혼은 불허

대법원 ‘북한의 민사법’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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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기상이변에 세계 두번째 취약

한국은 21위…이상기후 피해 아시아에 집중

한겨레 2007.12.13

조홍섭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256577.html

 

북, 기상이변에 세계 두번째 취약

한국은 21위…이상기후 피해 아시아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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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교류의 땅 신의주’ /혜안 펴냄

서울신문 기사일자 : 2007-10-12    23 면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012023009&spage=1 

 

‘소통과 교류의 땅 신의주’ /혜안 펴냄

, ‘소통과 교류의 땅 신의주’(혜안 펴냄)는 북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 연구의 성과이다. 서인범 동국대 교수 등 12명의 한국사와 중국사 연구자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워크숍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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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호주인이 겪은 북한은? 北남성 “남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입력 2019.07.11 (07:03

[글로벌 돋보기] 호주인이 겪은 북한은? 北남성 “남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kbs.co.kr)

 

[글로벌 돋보기] 호주인이 겪은 북한은? 北남성 “남한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北 "간첩행위 호주인" vs 알렉 시글리 "스파이 아냐" 최근 북한에 억류됐던 호주인 유학생 알렉 시글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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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화려함에 파스텔톤 도배.. "체제선전 위한 거대 세트장"

입력 2018.06.30. 03:00 수정 2018.06.30. 03:08 댓글 49

[토요기획]서방건축가가 본 계획도시 평양의 건축물

http://v.media.daum.net/v/20180630030033636

 

장대-화려함에 파스텔톤 도배.. "체제선전 위한 거대 세트장"

[동아일보] 북한 평양 지하철 영광역의 내부 모습.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세밀하게 조각된 흰색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고풍스럽고 웅장한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역에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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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흡혈귀"…北주민 2명, BBC에 이례적 비난 

등록 2018-05-30 09:20:17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80530_0000322142&cID=10101&pID=10100 

 

"김정은은 흡혈귀"…北주민 2명, BBC에 이례적 비난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김정은은 마치 흡혈귀가 피를 빨아먹는 것처럼 우리로부터 돈을 빼앗아가고 있다

www.newsis.com

 

 

 

[단독] 성인용품 보더니 슬쩍 압수, 몰카에 드러난 북한의 속살

[중앙일보] 입력 2018.02.07 11:27 수정 2018.02.07 15:49

 

김윤호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22523180

 

북한 르포해 다큐 찍은 대구 교수 "군대 고발 영화들고 칸 간다"

대한민국 군대의 가혹 행위, 성추행 문제 등을 담은 사회고발성 독립영화 '시계'가 프랑스 칸 영화제에 출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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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매료된 北여대생들 “별나라 南 구경가자” 거액뇌물도

주성하기자입력 2018-01-20 03:00수정 2018-01-20 04:44

 

[토요기획]13년만에 南 오는 北 미녀 응원단, 그들은 누구《한국에 올 때마다 큰 화제가 됐던 북한 ‘미녀 응원단’이 13년 만에 다시 남쪽에 내려온다. 단원 선발 방식과 기준 등 북한 응원단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본다.》

http://news.donga.com/3/all/20180120/88253882/1#csidxdfbc5490dbf7e11a0d9fdaa396f201a

 

한류에 매료된 北여대생들 “별나라 南 구경가자” 거액뇌물도

북한이 17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응원단 230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올 때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던 북한 ‘미녀응원단’이 13년 만에 다시 남한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응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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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래·술 즐기는 남북한 사람들, 영락없이 한민족”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 사진 로저 셰퍼드 제공

ㆍ북한서 사진전 연 ‘백두대간 사진가’ 로저 셰퍼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022125445&code=100100 

 

“산·노래·술 즐기는 남북한 사람들, 영락없이 한민족”

“한국의 산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 더 매력적이죠” 백두대간에 반해 뉴질랜드 경찰관을 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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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간 탈북자들, 그들은 지금…

입력 2008-05-05 02:59수정 2009-09-25 04:09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805050012 

 

美로 간 탈북자들, 그들은 지금…

“먹고살기 바빠” 자본주의 적응 아직 실험중 美정부 지원 거의 없고 영어 서툴러 정착에 고전 식당-마트 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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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강제북송 즉각 중단을… ”

입력 2008-04-28 02:59수정 2009-09-25 05:09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280104 

 

“中, 탈북자 강제북송 즉각 중단을… ”

美‘북한인권주간’ 행사 총괄 숄티 대표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답게 인류보편의 가치에 반하지 않는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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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한국 한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영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약칭 조선(한국 한자: 朝鮮, 영어: Korea), 북조선(한국 한자: 北朝鮮, 영어: North Korea), 북한(한국 한자: 北韓)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군사 분계선 북부에 위치한 국가이다.[3] UN이 추정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약 2,563만 명이다.[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용어는 조선말이며, 평양말을 기초로 문화어가 형성되었다.

수도는 평양시이며, 이밖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도시로는 남포시개성시라선시 등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 형태는 정당이 조선로동당이 있으며 사실상 일당제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 최고지도자 김일성은 6.25 전쟁8월 종파 사건 등을 거쳐 정적을 제거하여 수령 중심 정치 체제를 완성하였다. 그의 자손인 김정일김정은은 차례로 집권을 하며 선대의 수령주의를 이어받은 정치를 펼쳤다. 이 체제는 '주체사상'이라는, 김일성 일가와 그들의 당[5]인 조선로동당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대표된다.

분단 이후부터 현재까지 김일성 일가의 의지에 따라,[6] '조선이 없는 지구는 깨버려야 한다'는 김정일의 언급,[7] '수령결사옹위정신', '자력갱생'으로 대표되는 강경한 수령 중심의 체제의 성립과 유지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보여왔다. 이를 위해 경제 개방을 포함한 외부와의 전면적 교류를 꺼려 외부에서 이 국가의 상황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국호

한국의 역사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동국가 내에서는 자국에 대한 약칭, 혹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통칭으로 ‘조선'이 사용되며, 중화인민공화국 등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단지 조선이라고 하면 대개 1392년에 건국된 왕조 국가 시대를 가리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와 자국에 대한 호칭의 구별을 위해 ‘리조조선(李朝朝鮮/리조)'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가리킬 때 대개 북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북한이라는 단어의 이러한 쓰임은 동 단어의 한국어 사전상 의미와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데,[8][9] 한국어 사전상 남한, 북한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입장에 따른 의미를 갖고 있다. 즉, 한국어 사전상 남한은 대한민국의 남쪽 지역(대한민국 영토 중 휴전선 이남 지역),[10] 북한은 대한민국의 북쪽 지역(대한민국 영토 중 휴전선 이북 지역)[11]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남한과 북한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의미와 달리 대한민국의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는 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라는 용어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었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은 자국을 이 명칭으로 부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 '남측'(대한민국) 에 대비하여 '북측'(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호칭을 양국간의 외교 혹은 문화 교류 등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북한과 비슷한 지리적 의미를 가지는 서북이라는 말이 존재했다. 서북은 지리적인 서북인 평안도만을 의미하지 않고, 서도와 북관을 합쳐 황해도평안도함경도를 일컫었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자국을 '공화국', '조국' 등으로 부르고, 북한 지역을 가리켜 '공화국 북반부', 혹은 북조선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중화민국홍콩마카오 등에서는 대한민국에서와 같이 "북한"(중국어 정체자: 北韓, 병음: Běihán 베이한[*])이라는 명칭을 쓰고, 일본에서는 "기타초센"(일본어: 北朝鮮)이라는 명칭을 쓴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입니다.
 한국의 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5년 9월 2일 이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5년 9월 2일 이전 한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간주한다.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고려발해조선은 모두 이 국가가 통치하는 지역의 일정 부분을 통치한 국가다.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에 있는 단군릉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를 고조선의 지도자였던 단군(과 그의 부인)의 능이라고 주장한다. 함경남도 금야군 비단리에 있는 소라리토성도 대표적인 고조선 유적이다.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동명성왕의 묘라 추정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 36호 동명왕릉과 고구려의 궁이었던 국보 2호 안학궁터와 국보 8호 대성산성 복원물과 더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 공동 2호 보통문, 국보 4호 대동문, 국보 19호 을밀대 등의 고구려 장안성에 관련된 유적도 남아있다. 2004년 7월 1일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WHC)에 의해 평안도와 황해도일대의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발해의 수도인 5경중 남해부는 남경이라 불렸으며 함경남도 함흥시에 위치하였다. 황해도는 신라에 귀속되었다.

고려시대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는 개성역사유적지구는 2013년 6월 23일, 제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WHC) 프놈펜 회의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는 “동북면”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었으며, 지금의 함경도 일원이다. 8도제가 도입되면서 평안도와 함경도가 설치되었다. 김종서와 최윤덕은 세종의 명을 받아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북쪽으로 오늘날과 거의 동일한 경계를 만들었다.

조선의 중심권역이었던 경기도충청도 출신을 가리키는 기호인과 평안도황해도개성을 출신은 가리키는 서북인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811년(순조 11년)에 평안도의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관서 지방에서는 외래사상이 일찍 유입되어 선천·정주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전파됨에 따라 많은 개신교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당시 개신교는 관서지방에서 보수적 관료층이 아닌 근대화의 경향을 강하게 지녔던 자립적 중산층에 의해 수용되었고, 이 자립적 중산층은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나라의 모든 모순을 제거하고 개화를 이룩하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관서지방의 기독교적 전통은 상당히 강하였다. 또한 관서 지방의 대표격인 평양에서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이 일어나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였다.

근대 한국을 가르는 기준으로는 1862년 고종의 즉위식을 시작으로 구분되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등 여러 이견이 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3.1운동에 따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현재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본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경술국치를 맞아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9월 2일 이후

1945년 9월 2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과 미국이 38선을 경계로 조선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해 군정통치했다. 이때 조만식을 중추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평남건국준비위원회를 세우자 평안남북도가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조선반도 적화의 거점이 되었다.

1945년 10월 조선반도 북부에서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세워지고나서 이북5도행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어 이 위원회의 이름으로 농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실제 경작민에게 배분하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그 뒤 47년 2월 최고의결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와 최고집행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창설하고,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군되었다.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김일성을 수상,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 9일 사회주의헌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 날을 인민정권 창건일, 다른 말로 9.9절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6.25 전쟁

6.25 전쟁 - 폐허에서 구조 화물을 뒤지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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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38도선 부근에 걸쳐 국지전이 빈번하였다. 특히 조선인민군은 대한민국 관할하에 있던 옹진반도개성의정부춘천 그리고 강릉 등의 접경지역을 주 공격 목표로 삼았다. 김일성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침을 48번이나 건의했고 스탈린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를 거절했다. 결국, 미군이 철수한 시점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남침 승인을 받아내고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적 지원을 등에 업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대한민국에 대대적인 기습 남침을 감행했다. 6.25 전쟁 전쟁 초기 기습으로 인해 패전을 거듭한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군은 3일 안에 수도 서울을 점령당하는 등 정부 주요인사들은 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조선인민군이 낙동강 부근까지 진출했다. 이후 국제연합군 파병과 더글라스 맥아더의 인천 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측이 반격을 시작해 9월 27일에 서울을 점령하고, 10월 1일에는 38도선까지 점령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임무를 완수한 국제연합군은 철수할 것을 검토했으나, 이승만의 주도로 응징론이 대두되면서, 국제연합군은 새로운 총회 결의를 바탕으로 거듭해서 10월 26일에는 압록강 부근까지 진출하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과 소련의 지원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였고 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며 38도선 부근에서 장기화되었다. 이후 교착을 거듭하다가 1953년 7월 27일 밤 10시에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설정된 군사 분계선을 경계로 오늘날까지 휴전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6.25 전쟁은 그 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 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 내에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으로 인해 양측 간의 적대감이 극도로 팽배하게 되어 조선반도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개성시(개풍군), 한강&임진강 하구, 옹진반도함박도연백군를 상실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속초시설악산화진포, 대붕호 (파로호), 철원평야, 양양 낙산사를 상실하게 되었다.

6.25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의 시작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정치구조는 초기에 남로당 계열, 갑산파 계열, 소련파 계열, 연안파 계열 등으로 이루어진 연립내각 체제였다. 6.25 전쟁 이후 김일성은 당시 정적들이였던 박헌영리승엽 등 남로당 간부들을 대거 숙청했다. 6.25 전쟁 이후 김일성의 지반은 계속 확대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최창익 등 연안파 세력들이 지도자 위치에 있던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던 시도(8월 종파 사건)를 했지만, 무산되면서 얼마 후 주동세력인 소련파와 연안파는 숙청되었다. 이로 인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어서 김일성은 갑산파계열내에 온건세력들을 숙청함으로써, 정치구도는 김일성 유일 체제가 확립되었다.

1972년 12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공포되었다. 이 법은 1977년 개정되어 국가의 공식이념을 주체사상으로 확립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해 혁명의 단계가 인민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서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넘어왔음을 명확히 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수도)는 서울시다"라는 내용에서 '서울'을 '혁명의 수도'인 '평양'으로 바꾸었다.
  • 조선로동당의 우월적 지위 명시
  • 사회주의적 소유제도의 확립
  • 주체사상의 헌법 규범화
  • 국가주석제 도입 및 권한 강화
  • 집단주의 강조(조직적체계)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 권력을 국가원수인 주석에게 몰아준 것이었다. 즉 내각수상을 주석으로 그 이름을 바꾸고, 주석에 직속된 중앙인민위원회에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같은해 대한민국에서 10월 유신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는데, 사회주의헌법은 수령 유일체제의 법제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학자 김당택은 주체사상 채택을 비판하였다. 그는 본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수령이라는 직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그러함에도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할 당시부터 수령으로 호칭되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수령이 점차 신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제국의 천황과 흡사하게, 종교적·신화적인 요소를 수령제도에 가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수령의 영도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수령 유일체제로서, 수령인 김일성을 중심으로 전체 사회를 일원적으로 편제했다. 수령은 위대한 사상과 탁월한 영도력, 그리고 지고의 인격을 지닌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수령의 교시는 무조건 복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헌법의 요지다. 이후 김일성의 사상은 주체사상으로 명명되었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유일체제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변모해 갔다.[12]

김일성은 1994년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김영삼과 만나 대담하기로 약속했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결국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이때에 성취되지 못하였다.

김정일 정권

김정일

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과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1994년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한다고 했을 때 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미군과 맞설 수 있는 전쟁수행능력이 없고 비축물자도 없고, 전투 의욕도 상실한 상태였다.

2000년 6월 13일 김정일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과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한편 2003년에 출범한 참여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2006년 7월 미사일 시험발사가 있었으며 10월 13일 핵 실험을 실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시에서 만나 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한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수립된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관계는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대한민국 국적의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가 관광 도중 총살되었고, 결국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도 불구하고 2009년 4월에는 이른바 광명성 2호를 발사하였고, 5월에는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2010년 3월 2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연이어 11월에는 휴전협정 이후 최초의 영토 도발인 연평도 포격을 감행하여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김정은 정권

김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4개월 뒤인 2012년 4월 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화국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장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2012년 7월 18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기존 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 칭호를 부여할 것을 결정했다. 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이 유일했었다.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를 포함하여 현재 총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2월 12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 2월 12일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리히터 규모 4.9 (미국 지질조사국은 리히터 규모 5.1)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동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북불가침합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13]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14]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했다.).[15]

12월 3일, 김정은은 정권 내 제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에게 정치적 숙청을 단행해 축출했다. 이어 12일, 사형을 선고하고 즉결 집행으로 장성택을 제거했다. 그러나 고모 김경희에 대한 처분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2017년 9월 3일에 12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6차 핵실험에 감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미합중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작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를 촉구를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대북 제재와 함께 포용정책을 병행하면서 김정은은 2018년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고 이후 아이스하키팀 등에서 단일팀과 예술단 공연 등을 하면서 2018년 4월 27일에 대한민국과 정상회담을 하여 비핵화 의지를 밝히며, 풍계리 핵 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폭파 및 폐쇄하였다. 2018년 6월 12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였다.

그러나 미국 CIA조사[16][17]에서 풍계리와 동창리 이외 미사일기지와 핵 실험 장소를 비밀리에 더 보유 및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고체 연료를 사용한 미사일 시험 발사도[18]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에만 5월 4일에 1발 (고도 60여km, 사거리 240여km), 5월 9일에 2발 (고도 45~60여km, 사거리 420여km 및 270여km), 7월 25일에 2발 (고도 50여km, 사거리 600여km), 7월 31일에 2발 (고도 30여km, 사거리 250여km), 8월 2일에 2발 (고도 25여km, 사거리 220여km), 8월 16일에 2발 (고도는 30여㎞, 사거리 230여㎞)등을 발사하였다.

대한민국의 킬체인체계 하의 미사일방어체계와 사드는 액체연료는 잘 감시, 탐지, 타격 할 수 있지만, 고체연료는 감지가 매우 어렵고, 고도를 낮추면, 방어체계에 노출되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특정지역을 타격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군은 이를 노리고 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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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시에는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원수직을 겸직하게 하고, 그 아래 내각 총리를 두었다. 이후 최고인민회의의 상임위원장인 김두봉최용건이 국가원수직을 겸했으며,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과 동시에 국가주석직을 신설해 초대 총리인 김일성을 주석으로 추대했다. 이후 김일성은 주체를 명분으로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를 확립하였고 우상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그는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주체사상을 통치 이념화하였다. 일성은 1990년 국가주석에 재선되었으나 1994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규정해 국가주석직은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도입한 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 위원장 자격으로 통치하였으며 선군 사상을 표방하여 선군 정치를 하였다. 김정은은 북한만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더욱 강조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가나 민족의 사유화를 시도하고 있다.[19] 그들은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라는 주장으로 장성택을 처형하기도 했다.[2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체제는 수령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일당 독재[21] 체제다. 주체사상과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하며, 권력을 부계 세습하는 점에서 다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정당을 비롯한 계급의 소멸을 시사하고 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지배계급이 세습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사람의 지도자가 당과 군을 장악하고 있고, 조선로동당 이외의 정당도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조선로동당이 곧 국가라는 관점은 조선로동당 규약과 헌법이 뒷받침한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선군정치라는 적색파시즘적 이념이 추가되었다. 또한 국가원수이자 국방 전반의 최고 지도자는 국방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입법부 수장이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최룡해다. 2010년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대장 칭호를 받고 김정일의 후계로 추대되고 있었으며,[22] 2011년 김정일이 죽자 김정은이 실권을 장악했다.

최고인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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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본 국가 운영 원칙은 국가는 당(黨, 조선로동당)이 “령도(領導)”하고 당은 수령이 “령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국가 전반의 체제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당은 전인민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의체, 즉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정강정책을 실현한다. 그러므로 국가 최고권력기관은 최고인민회의며 헌법에 이러한 권리가 따로 기술되어 있을 정도다. 다만 이러한 정치체계는 대통령 중심제도 의원내각제도 아니므로 "회의제"라 할 수 있다. 과거 소련의 최고 소비에트나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등도 동일한 체제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는 내각의 조직 및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위원장 1인, 부위원장 2인, 명예부위원장 2인, 서기장 1인)과 국방위원회위원을 선거로 선출한다. 산하 위원회로 법제위원회(위원장 1인, 위원 6인)와 예산위원회(위원장 1인, 위원 6인)를 설치한다.

국방위원회

국방위원회는 국방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위원회로 행정상 내각 및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 다만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던 시기에는 조선로동당 총비서를 겸직해 국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권력 우위를 점했다. 실제로 1998년 9월 5일 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 추대연설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나라의 정치, 군사, 경제 력량의 총체를 통솔지휘하여 공산주의 조국의 국가체제와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며 나라의 방위력과 전반적 국력을 강화발전시키는 사업을 조직령도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며 우리 조국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성스러운 중책이라 함으로써 사실상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국방위원회는 전반적 무력과 국방건설사업의 지도, 국방부문의 중앙기관 신설 및 폐지, 중요 군사 간부의 임명 및 해임, 군사칭호 제정 및 장령 이상의 군사 칭호 수여, 나라의 전시상태와 동원령의 선포와 같은 결정과 명령을 내며 자기사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 앞에 책임을 진다. 위원회 구성은 위원장 1인, 제1부위원장 1인, 부위원장 1인, 위원 5인이며 산하기관으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무력성을 둔다.

내각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입니다.

내각은 과거에는 정무원으로 불린 기관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조직 및 인사권을 통해 구성되며 헌법에 의해 정부를 대표하는 권한을 가진다. 1998년 9월 5일 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의 헌법개정을 통해 내각으로 그 조직이 변경되었다. 내각은 내각총리 1인과 부총리 3명으로 구성된다. 2005년 5월 30일 금속기계공업성을 금속공업성과 기계공업성으로 분리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산하에 3위원회, 29성, 1원, 1은행, 2국을 두고 있다. 그 외에 필요에 따라 임명되는 무임소상도 임의로 구성되기도 한다.

정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당제를 택하고 있다. 현재 여당은 조선로동당이며, 수십 년 간 장기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로동당은 이름일 뿐 실제로는 조선로동당이 국가를 관리하며 야당으로는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 있으나, 국호에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붙이기 위한 형식적인 야당이며, 조선로동당의 통제를 받는다. 사실상 정치적 권한은 전무하다. 그 중 천도교청우당은 종교적 성격을 가진 유일한 당이다.

선거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거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대 지도자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 목록입니다.

대외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 관계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통적으로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중화인민공화국동독베트남쿠바라오스 등 구 공산권 국가들과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1990년 독일의 통일1991년 소련의 붕괴, 그리고 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로 인하여 국제 사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수립과 동시에 지금까지 “혈맹”까지는 아니지만 지원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소련 붕괴 이후 소원해졌으며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 때 조선인민군 일부를 파견받는 등 우호적이었으나 미국-중화인민공화국 관계가 개선되고 1992년 대한민국과 수교한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보다 대한민국과의 교류가 괄목하게 증가하였다. 아프리카인도파키스탄 등 제3세계 국가들과도 활발한 대사급 관계를 맺어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반미 국가인 쿠바시리아와는 계속 우호 관계를 유지했었다. 이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단독 수교국이지만, 대한민국과의 수교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수교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무기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우호적이다. 대한민국이 하나의 한국을 폐기한 이후 스웨덴스위스영국 등 많은 서방 국가들이 조선을 승인하였다. 스웨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호적인 몇 안 되는 서방 국가다. 중화민국과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교류가 드물었으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부터는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하였다.

대한민국과 미국과는 건국 이래로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로 인해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비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를 괴뢰정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적대관계이다. 1983년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이후 미얀마는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의 묘역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킨 결례에 대해 분노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즉시 단절하였고, 이 사건으로 비동맹국 회의에서 발언권이 약화되었으며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때는 유고슬라비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 폭파범들의 당시 종적을 조사해서 미국 측에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23] 아르헨티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에 방화사건이 나면서 관계가 악화되어 단교하였다. 루마니아의 경우 한때 김일성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의 친분으로 인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89년 말 차우셰스쿠가 유혈 혁명으로 총살되고 1990년 3월 루마니아가 대한민국과 수교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24]

대한민국과의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남북 관계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 영토는 조선반도와 부속영토로 하므로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반국가단체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 실효지역은 미수복영토이다.[25][26]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내에서는 자국을 조선(朝鮮), 공화국조국, 혹은 북조선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 때부터 국무원 고시에 의하여 확연한 구분을 위해 조선이란 명칭을 금지하고 북한(北韓)이라는 명칭만 쓴다.

양측의 관계는 70년대 이전에는 6.25 전쟁 등의 여파로 적대적이었고, 70년대 이후 5년 이내의 주기로 화해와 대립을 반복하였다. 한국 정치권에서 이 정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큰 상황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자 자국이 조선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조선 정권이란 미제국주의자들의 총칼에 의하여 꾸며진 괴뢰정권으로서 미국상전의 지시를 충실히 집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김일성의 말에 따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합법 정부 내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더불어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남조선혁명"을 통해 조국통일을 이루자는 적화통일론을 고수하기도 하였다.[27] 대한민국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화를 통해 통일을 하자는 주장, 이 정부가 없어져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주장,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주장 등이 대립하고 있다. 남북은 대화를 하며 남북한 상호 체제인정과 상호불가침, 남북한 교류 및 협력 확대와 같은 방안이 논의된 적도 있으나, 이것이 다시 무산되다가 대화가 추진되기도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남북 관계에서 일어난, 기존의 남북 관계를 바꾼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측의 주장

대한민국 헌법의 제1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며, 국가보안법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반(反)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28]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조항이 평화 통일 원칙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4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29] 주장도 있으며, 2000년의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직시하였으므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도[30] 있으나, 대한민국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는다.[31]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총회 결의 195(III)호(The problem of the independence of Korea)[32]에서, 대한민국 정부(大韓民國政府,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를 "한반도에서 유엔 임시위원단의 감시와 통제 아래 대다수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선거가 치러진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그러한 합법 정부"임을 결의했다. 1949년 10월 21일 293(IV)호 결의[33] 또한 이를 확인했다.

중국과의 관계

 조중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 6일 수교하였다.[34] 6.25 전쟁 시기에는 중국인민지원군이 참전했으며 이들 군대는 1958년 10월 26일에 철수했다. 196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1990년대 초 최악이었던 조중 관계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수교로 훼손된 관계 회복에 나서 지금껏 모두 7차례에 걸친 김정일의 방중과 장쩌민·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거치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상과 함께 조선반도 정세의 핵심적 변수가 됐다. 천안함 사건으로 대북 경제협력을 단절한 이명박 정부의 5·24 조처로 경협 분야에서 북-중 경협이 남북경협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35] 2010년 12월 26일 중국은 나진항 4, 5, 6호 부두를 5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36] 베이징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역상이 1000명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37]

그러나 김정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던 중 2018년 3월 김정은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베이징에서 시진핑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로써 조중 관계는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5월에는 다롄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졌고, 김정은과 시진핑은 또한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6월 19일 베이징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과의 관계

 일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은 수교 협상을 통해 관계개선에 나서려 했으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과거사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일 병합 조약에 대한 평가나, 배상문제·청구권문제 등에 대하여도 결말이 나지 않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62년부터 일본은 조선반도에 "두 개의 정권"이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고 시인해 왔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이후에 "한국의 주권은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휴전선 이남에 한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면서, 일본은 정경분리 원칙을 적용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실체를 따로 취급하여 왔다.[38] 한편, 배상 문제도 한국과의 조약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 수상으로는 처음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나눈 적이 있다. 2002년의 양국 정상회담에서 배상권을 상호 포기하고 일본으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경제 협력을 얻는 방법에 합의했다고 발표되었으나, 이후 수교 협상은 정지되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괴선박 사건으로 대표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동에 대한 일본 여론의 반발과 핵 문제 등으로 고립이 심화된 데에 있다. 일본은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56년경, 박영빈은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소련은 미국과 평화 공존을 지향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미국과의 평화 공존 정책을 주장하였다. 김일성은 이에 대해 격분하여 "소련은 미국과 직접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과 직접 전쟁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본 빩은이들렇게 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소련의 눈치를 본 탓인지 그를 단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39]

1961년에는 소련과의 상호 협력 원조 조약을 체결했지만 1996년에 효력이 상실되었다. 2000년에는 러시아와의 우호 선린 협력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에서는 군사 동맹 관련 조항이 삭제되었다.

독일과의 관계

베를린 소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1987년)
독일민주공화국 정부의 초청으로 칼 마르크스 대학(라이프치히)에 유학중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학생들 (1953년)

1990년 독일의 통일로 인해 평양 주재 독일민주공화국 대사관이 폐쇄되었다. 폐쇄된 독일민주공화국 대사관의 권리는 국제법상 공식적으로는 스웨덴 대사관에 귀속되었다. 1만6천여 평방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공관이었다.[40] 2000년 대한민국 김대중 정부의 요청으로 다시 평양 주재 독일대사관이 세워졌다.[41] 2002년 1월 서방국가로는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상주 대사를 파견했다. 스웨덴과 영국은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지만 대리대사가 이끌고 있다.[42]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오스트리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하인츠 피셔는 조선.오스트리아친선협회의 창립 회원이자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2000년과 2017년 정권이 바뀌면서 양국 관계는 약간의 영향을 받았다. ÖVP와 FPÖ 등의 연립 정당은 대체로 조선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이를 이용해 정치적인 경쟁상대를 비방하기도 했다.[43][44]

오스트리아에는 약 100여명의 조선인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에만 10명 가량의 국가보위성 요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된다.[45] 한때 조선이 유럽에서 운영한 마지막 은행인 골든스타 은행이 에 자리하기도 했다.

기타

  •  중화민국1992년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단교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  미국: 건국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을 주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많은 선전물에 미국을 적대시하는 등 미국과는 수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최근 6.12 북미회담으로 한동안 관계가 좋아졌다가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 2월 27일 제2차 북미회담에서 결렬된 이후 다시 사이가 악화되었다.
  •  스페인: 2000년 12월 15일 스페인 정부는 성명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이 조선반도 화해와 정상화 과정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공식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46] 그러나 대사관 설립여부는 밝히지 않았다.[47] 실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한 국가들의 상주공관은 평양보다 베이징에 훨씬 더 많이 있는 실정이다.[48]
  •  스위스: 1974년 2월 27일, 취리히에 통상대표부를 개설하는 등 대 스위스 경제교류 촉진책을 써왔고, 1974년 12월 19일에 스위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발표하였다.[49] 스위스의 인도적 대북 지원량이 1997년 들어 급증하자, 1997년 8월 5일부터 9일까지 발터 푸스트 스위스 외무성 인도주의협조총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외무성대표단이 방문해 평양에 스위스 외무성 직원 1∼2명이 상주하는 사무소를 개설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비공개 합의했다. 1998년 평양주재 스위스 외무성 사무소가 설치되었다.[50]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세계 수위권 수준의 낙농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르헨티나와 1973년에 수교를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500만 달러 어치의 곡식을 외상으로 아르헨티나에게 수입했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77년 돌연 아르헨티나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 외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동으로 단절되었으며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 측에서는 굉장히 황당해했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르헨티나에게 재수교를 원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곡물 대금을 갚으면 다시 수교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  이탈리아: 2000년 1월 G7 중에서는 최초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2001년 6월 20일 마테오 피카리엘로 이탈리아 해외무역공사 서울 사무소장을 단장으로 하는 20여명의 경제 사절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최초의 이탈리아 경제사절단의 평양 방문으로, 이탈리아의 주요 은행 중 하나인 뱅카 나치오날레 델 라보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C.S.I 테오레마, 의류업체 오벰 등이 포함되었다.[51] 2001년부터 이탈리아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학생과 의사, 연구원들을 이탈리아에 초청해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연간 20명 정도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52] 평양에는 이탈리아 외교부 산하 개발협력처 평양 사무소가 있다.[53] 평양의 광복거리에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주방장이 피자 재료까지 모두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원래의 맛을 추구하는 평양 최초의 이탈리아 피자가게가 2008년 12월 문을 열었다.[54] 2009년 평양에 이탈리아 요리 전문식당이 하나 더 생겨 모두 3곳으로 늘면서, 피자와 스파게티가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55]
  •  폴란드: 2010년 쇼팽 탄생 200돌을 맞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함께 공동음악회를 열었다.[56]
  •  프랑스: 1972년 6월 파리에 통상대표부를 설치했고 이어서 1984년 12월 그것을 일반 상주 대표부로 승격시킨 바 있는 이 때, 대한민국 정부는 윤석헌 주프랑스 대사를 통해 프랑스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했었다. 또한 평양에 프랑스와의 합작투자 호텔을 건립하는 등 조선으로서는 드문 선물을 주면서 서방국가에 외교적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었다.[23]
  •  헝가리: 1988년 조선이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대사로 임명한 것을 두고 권력 계승을 둘러싼 갈등 문제와 관련시켜 보려는 시각도 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만큼 헝가리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23]
  •  영국: 2001년 7월 28일 주 런던 대사관이 임시 개설되었다.[57] 2003년 4월 30일 최수헌 조선 외무성 부상이 주 영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런던 서부 주택가 일링의 거너스버리에 위치한 130만 파운드 짜리 저택을 매입해 대사관으로 개조했다.[58] 서유럽에서는 독일이탈리아스페인스위스스웨덴에 이어 6번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외교공관이며, 개관식에는 최수헌 외무성 부상, 리시홍 대리대사, 주 영국 중국 대사, 영국 외무부 관계자, 하원의원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개관식이 열리는 동안 대사관 앞에서 영국 인권단체인 세계기독연대(CSW·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와 ‘릴리즈 인터내셔널(Release International)’이 공동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58]
  •  스웨덴: 스웨덴은 반제국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197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75년 3월에는 서방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평양에 대사관을 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지 않은 대부분의 서방 국가 출신의 외국인(대한민국일본 제외)은 스웨덴 대사관이 보호한다.
  •  예멘예멘에서는 조선 의사들이 활동하고 있다.[59]

군사

공동경비구역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민군 병사(2005년)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조직인 조선인민군은 제도상 노동당의 '당군'이며, 선군정치 하에서 권력의 기반이다. 최고사령관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다조선인민군은 징집병이며 2002년 병력은 약 110만 명이상으로 추정된다. 부문별로는 육군 120만명, 해군 4만 6000명, 공군 8만 6000명으로, 병력만 보면 세계 4위다. 그러나 상당수의 장비가 노후되었기에 실질적인 전투 능력에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주적인 대한민국 국군의 장비들이 질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유사시 장비들이 전력으로서 큰 기여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평양-원산선 이남에 총전력의 70%를 배치하고 있으며, 170mm 자행포 및 240mm 방사포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지역을 기습 선제 타격할 수 있다. 현재 이라크 전쟁의 전훈을 받아들여 특수전 전력의 확충과 갱도 건설과 기만기 개발로 후방지역의 생존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백령도 인근 장산곶과 옹진반도연평도 근처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장재도, 무도, 대수압도 등에는 해안포 900여문이 배치돼 있다. 군항인 해주항 일원에만 100여문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해안포는 사정거리 27km의 130mm,사정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정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정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조선 인민군은 로동 1호대포동 1호대포동 2호 등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대포동 2호는 미국의 영토인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2012년 12월 12일 인공위성 은하 3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확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0,000 ~ 13,000 km 이상의 ICBM 사정거리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1만 km는 미국 서부 지역까지, 13,000 km는 미국 대부분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KN-08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실시했다.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TEL에 탑재되어 있는데 TEL은 정찰 위성이나 레이다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다. 150~250여 기가 실전배치된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탄도 미사일의 TEL도 27~40대로 파악되고 있다. 괌을 사정권에 둔 무수단 탄도 미사일 운용부대는 14대의 TEL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등을 통해 무인 정찰기(UAV) 도입을 해서 서해상에서 운용 중이다.

또한 세계 3위에 준하는 생화학 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조선인민군은 전시에 대비해 군 보관시설에만 150만t의 전시용 유류를 비축해 놓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문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스스로 세계에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은 공식적으로는 핵무기 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기정 사실로 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80년대 후반 핵개발 의혹이 있는 시설에 대한 핵사찰 요구에 반발하여 NPT 탈퇴를 선언하기도 하였지만,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 미국과 제네바합의를 맺어, NPT 잔류와 핵시설 동결을 선언하였다. 2003년 초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우라늄 농축 의혹을 제기하면서 제네바합의를 파기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06년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몇 개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사회의 핵폐기 요구에 대응하여 미·일·러·중·남·북 6자회담을 진행하였으며, 2007년 초기 단계를 합의하였다.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만간 핵시설을 불능화하게 된다. 기존의 핵무기에 대한 처리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처음 핵을 보유한 국가로 지정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60]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09년 3월 24일에 6자회담의 폐기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7월 16일 김영남(金永南)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이라고 하며 6자회담의 종료선언을 했으나, 9월 18일 김정일은 양자 및 다자회담의 틀에 대해 재언급하였다. 조선 인민군 총사령부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였고 판문점 전화를 차단하였다. 또한 불가침 조약을 폐기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주체105, 2016년 1월 6일' 수소탄 실험을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며 그 진위 여부는 현재 밝혀지고 있다. 이 실험이 성공으로 밝혀질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소탄 보유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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