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 (3)흥륭와(싱룽와)문화 본문
《환국-가사라국》
6. 환국과 신석기문화(3)
6.3 흥륭와(싱룽와)문화 - 8200년 전~7400년 전(BC6200∼BC5400년)
출처; 〈코리안루트를 찾아서〉(6) 싱룽와 신석기 유적-동이의 발상
흥륭와유적에서는 주거지 170여 기, 저장구멍 300여 기, 무덤 30여 기 등이 조사되었고,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에 버금가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중국 최고의 취락, 최고의 옥기가 출토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내몽고자치구 오한기(敖漢旗) 보국토향(寶國吐鄕) 흥륭와촌(興隆窪村)에서 확인되었다.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는 서요하(西遼河),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분포하는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문화이다. 이 지역은 중국의 고고학적인 구분에 의하면 요서지구에 해당하며, 후대에 북방유목민들이 활동하던 무대이기도 하다. 1983년에 조사된 흥륭와유적의 발굴조사로 인해 동남부 지역의 선사고고학상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흥륭와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6200∼5400년 사이에 해당하며, 황하유역 중원지구의 노관대(老官臺), 자산(磁山)문화와 동일한 발전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륭와유적에서는 6차례의 발굴을 통하여, 주거지 170여 기, 저장구멍 300여 기, 무덤 30여 기 등이 조사되었다. 대규모의 취락유적이며, 방형의 형태에 주거 내부 중앙에는 노지가 있고, 주변에 기둥이 있는 구조이다. 대개 20㎡ 정도 규모의 주거는 계획적으로 열을 지어 축조하였고, 환호(還濠)가 둘러싼 배치를 보인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평저 통형관(筒形罐)이 주류를 이루며, 분(盆), 완(碗), 배(杯) 등이 있다. 토기의 문양은 압인문(壓印文), ‘之’자문, 요현문(凹弦文), 단사선문(短斜線文) 등이 시문되고 있으며, 간혹 문양이 없는 토기도 있다. 이 중에 통형관에 시문된 ‘之’자문은 ‘之’자문토기문화의 기원과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하북지역, 요하 이동지역에서 출토되는 ‘之’자문토기와도 관련된다. 석기는 각종 세석기와 호미, 괭이, 돌삽의 농경구, 도끼, 자귀, 끌 등의 가공용구, 그리고 갈돌, 갈판 등이 출토되고 있다. 골기는 칼, 송곳, 바늘, 작살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은 주거지의 한쪽 벽에 접하여 만들어진 단독장의 수혈토광묘이다. 부장유물은 토기, 석기, 골기, 옥기 등이며, 멧돼지를 순장하는 경우도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소형옥기는 중국 최초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옥기문화는 후대의 홍산(紅山)문화 단계에 절정을 이룬다. 이 외에 화강암으로 제작한 돌조각의 여인상도 발견되었으며, 이는 모계사회의 증거품으로 해석되고 있다.
북방지구의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는 황하유역과 장강유역에 버금가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중국 최고의 취락, 최고의 옥기가 출토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흥륭와문화 이후에는 조보구(趙寶溝), 부하(富河), 홍산(紅山), 소하연(小河沿)문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흥륭와유적의 출토품은 요하지역 각 문화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이상균)』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흥륭와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440
〈코리안루트를 찾아서〉에서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두 개의 집자리엔 영도자가 살았거나, 회의 혹은 원시종교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돼지사육과 돼지숭배는 원시농업의 시작을 보여주는 단서이며, 차하이·싱룽와에서 발견된 옥결(玉결·옥귀고리)과 똑같은 것이 한반도 중부(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7000년 전 유적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 8000년 전의 계획도시
중국에서 가장 넓고 보존이 잘된 신석기 시대 대규모 취락이다. 4만㎡에 달하는 마을은 환호(環壕·적의 침입을 막으려 도랑으로 두른 것)로 보호돼 있었다. 집자리의 규모는 보통 60㎡(약 18평)인데, 가장 큰 두 곳은 140㎡(약 42평)를 훌쩍 넘었다. 중국학자들은 바로 이 대목을 주목한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두 개의 집자리엔 영도자가 살았거나, 회의 혹은 원시종교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8000년 전의 마을에 벌써 2개의 씨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학계는 이 원시마을에 약 300명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각 방의 모습을 보면 취사용구뿐 아니라 생산도구, 심지어 식품저장용 움막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는 가정마다 경제적인 독립성을 지녔다는 얘기다. 또한 마을은 10개 정도의 열(列)을 지어 일정하게 구획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같은 배열에 살았던 가정끼리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1개 마을의 최소단위인 가정과, 같은 열에 사는 혈연관계로 맺은 가까운 친척, 그리고 마을 안에서 함께 살았던 먼 친척까지 하나의 씨족마을을 이뤘음을 말해준다.
# 싱룽와 마을의 비밀
싱룽와에서는 사람과 돼지가 함께 순장된 장례풍습이 확인됐다.
무덤에는 빗살무늬토기와 옥기, 골기 등과 함께 사람과 돼지를 합장한 흔적도 보였다. 이것을 순장(殉葬)이라 한다면 훗날 동이족의 나라인 상(은)도 순장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사용 구덩이에서도 돼지뼈가 다수 발견됐는데, (지금의 돼지머리처럼) 돼지는 8000년 전에도 제수용품으로 사랑받은 게 분명하다. 돼지 외에도 사슴뼈와 물고기뼈가 대량으로 나왔다.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돼지사육과 돼지숭배는 원시농업의 시작을 보여
주는 단서이므로 차하이-싱룽와인들은 어렵과 수렵을 주요 생산활동으로 하면서 농업을 막 시작한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사족을 달면 차하이와 싱룽와는 200㎞나 떨어져 있지만 연대와 문화양상은 매우 비슷하다. 따라서 중국학계는 차하이-싱룽와 문화라는 용어로 묶는다.
차하이-싱룽와 유적이 중요한 것은 용(차하이)이나 취락의 규모(싱룽와) 때문만은 아니다. 차하이, 싱룽와에서 동시에 출토된 옥과 정교한 빗살무늬 토기 덕분이다. 또한 확인된 175기의 주거지 가운데 5기가 동이의 문화인 홍산문화 주거지라는 점이다. 이것은 홍산문화(BC 4500~BC 2000년)가 싱룽와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었음을 웅변해준다.
옥 문화에 관해서는 옥 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운 홍산문화를 다룰 때 다시 언급하겠다. 다만 차하이·싱룽와에서 발견된 옥결(玉결·옥귀고리)과 똑같은 것이 최근 한반도 중부(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7000년 전 유적에서 나왔다는 사실만 우선 언급해두고 싶다.
차하이 옥결, 싱룽와 옥결, 고성 문암리 옥결(왼쪽부터)
여기서는 빗살무늬 토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중국고고학계의 태두 쑤빙치(蘇秉琦)는 차하이와 싱룽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를 두고 “(발해문명을 꽃피운) 홍산문화의 근원이 중국 중원에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중원(황허)과 동북(싱룽와)의 신석기문화는 서로의 특색을 지닌 채 발전했으며, 두 곳의 공통점은 중화민족의 발상지 중 하나라는 점이며 모두 영도자가 살았다는 것”이라고 견강부회했다.
하지만 빗살무늬 토기 문화는 주지하듯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발해연안에 있는 차하이-싱룽와는 중국인들도 인정하듯 동이의 영역이다.』
(출처; 코리안루트를 찾아서(6) 싱룽와 신석기 유적-동이의 발상,
https://www.khan.co.kr/article/200711091447501)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에서는 기원전 6천년에 흥륭와문화 단계에서는 한반도 북부지역과 요서, 요동 지역이 하나의 단일 문화권이었다고 보았고, 불에 탄 조와 기장이 무더기로 발굴되어 이미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보았으며, 인공적인 치아 수술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흥륭와문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옥기다. 이 지역에서 옥결(옥 귀거리)이 인골과 함께 출토되었다. 기원전 6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까 세계 최초로 인간이 가공한 옥기다.
흥륭와문화의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 발굴 모습. 우실하 교수 제공. 그래픽 문석진
그런데 흥륭와문화와 같은 모양의 옥결이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유적에서 나왔다. 기원전 6천년까지 올라간다고 보고 있는 유적이다. 2007년에 전남 여수에서도 비슷한 옥결이 인골과 함께 발굴되었다. 모양이 흥륭와문화 옥결과 똑같다. 이들 유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문암리유적에서 나온 옥 귀걸이(사적 426호). 기원전 6,000년 이상으로 연대가 추정된다. 우실하 교수 제공
…… 한반도에도 비슷한 시기에 옥결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흥륭와 옥의 성분을 분석했더니 직선거리로 400km 떨어진 랴오닝성의 수암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옥으로 밝혀졌다. 수암에서 조금만 더 가면 압록강이고 두만강쪽으로 동해를 타고 내려오면 문암리로 연결된다. 흥륭와 일대에서 발견되는 빗살무늬토기도 문암리 유적에서 똑같이 나온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기원전 6천년에 흥륭와문화 단계에서는 한반도 북부지역과 요서, 요동 지역이 하나의 단일 문화권이었다는 이야기다.
전남 여수시 안도패총유적에서 나온 귀걸이와 발굴 당시 사진. 안도패총의 귀걸이는 화산지역에서 나오는 흑요석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장강하류를 통해서 보다는 백두산 지역에서 백두대간 동쪽 동해안을 통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남해안의 흑요석은 일본 화산지대의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성분 분석이 필요하다. 우실하 교수 제공. 그래픽 문석진
…… 또 불에 탄 조와 기장이 무더기로 발굴되었는데, 이미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야만인의 땅이라고 믿어온 만주일대에서 기원전 6000년에 집단 거주지와 농경문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 상식을 깨는 것이다.
흥륭와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치아 수술 흔적. 우실하 교수 제공. 그래픽 문석진
기원전 6천 년 이미 인공적인 치아 수술 흔적
위 사진은 흥륭와에서 발견된 치아 수술 흔적이다. 중국, 일본 학자들이 이것을 발굴하고 4년을 고민했다고 한다. 진짜 수술 흔적 같기는 한데, 기원전 6천년 흥륭와문화 시대에 치아 수술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학자들이 이 유골을 가져가서 4년간 집중연구를 해 2008년 2월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틀림없이 인공적인 치아수술 흔적이라는 것이다. 두개골이 그대로 나왔고, 치아에 뚫린 구멍의 직경이 모두 같고 도구를 이용한 연마흔적도 발견되었다.
현미경 사진을 찍어봤더니 나선형 연마흔적을 발견했고 이것은 인공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은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충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뚫은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수술 흔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개골 수술은 유럽에서 기원전 5천 년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되었고, 중국에서도 기원전 2,500년 두개골 수술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이른 시기에 치아 수술 흔적이 발견된 것은 흥륭와 유적지가 유일하다.』
출처;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01553.html#csidx6e7a05799288ba3a3905099184cba5e
〈위키백과〉도 잡곡이 있던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 최근 발견된 싱롱구 유적(興隆溝遺跡)에서는 잡곡이 있던 증거가 발견되었고, 싱롱와 문화에 있어서 유일한 농업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B%B1%EB%A3%BD%EC%99%80_%EB%AC%B8%ED%99%94)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흥륭와문화,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5&idx=1440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B%B1%EB%A3%BD%EC%99%80_%EB%AC%B8%ED%99%94)
코리안루트를 찾아서(6) 싱룽와 신석기 유적-동이의 발상,
https://www.khan.co.kr/article/200711091447501)
‘제5의 문명’ 요하는 ‘중화’역사엔 없었다,
hps://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01553.html#csidx6e7a05799288ba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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