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환국과 신석기문화(5)

6.5 의주 미송리 유적 8000년 전~2600년 전(BC 6000~ BC 8~7세기)

 

 

 

그림 1. 압록강 유역의 유적(1: 신암리, 2: 쌍학리, 3: 반궁리, 4: 도봉리, 5: 용연리, 미송리)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https://eastsearoad.tistory.com/164?category=749380)

 

미송리 유적의 신석기시대는 신락(新樂)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참고하여 B.C. 6000년 기에 해당된다고 편년 되었다. 이것은 신석기시대 상한을 B.C. 5000년으로 보던 종래의 주장에서 1000년을 올린 것이며, 북한의 시기구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이다.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미송리에 있는 석회암지대의 동굴에서 나온 선사시대 유적으로 석회암 광산에서 암석을 채취하는 과정 중 동굴이 확인됐고 동굴 안에 사람 뼈를 비롯한 토기, 석기 등이 발견되어, 1959년에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에서 발굴하였다.

 

동굴 내부의 퇴적층은 위로부터 표토층과 진흙층(두께 1.0~1.3m)이 있고 그 아래 검은 부식토층의 선사시대 유물층이 있다. 그 위에 쌓여 있는 지층에서는 근대시기의 그릇 조각, 짐승 뼈 등이 흩어져 나왔다. 선사시대 문화층은 2개로 나누어 아래 문화층과 윗 문화층으로 부르고 있는데 아래, 위 문화층사이에 15~20의 간층(間層)을 두고 있다.

 

아래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를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나왔고 위 문화층에서는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나왔다. 신석기문화층에서 나온 유물의 종류 및 양은 많지 않아서 동굴 안팎에서 질그릇 조각과 뼈 부스러기 및 약간의 석기가 나왔다.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은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 자료로, 그리고 서포항문화로 대표되는 동북지방과의 연관성을 증거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발굴보고에서 제시된 토기조각은 모두 10점인데 이 가운데 8점은 가장 흔한 생선뼈무늬(魚骨文) 계통이다. 2점은 이른바 꼬불무늬인데(之字文: 북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짧은이음구불무늬라고 부른다), 폭은 넓고 사이는 좁게 연속적인 꼬불무늬를 베풀었다. 전체적인 복원이 불가능한 파편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보고된 꼬불무늬 때문에 한국 신석기문화 연구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보고자들은 내몽고 자치구 林西縣의 몇 유적에서 꼬불무늬가 나온 예를 들어 그곳과 미송리 유적의 연관성을 추정하였으며, 그 연대는 신석기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 중국 동북지방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고, 특히 요하를 중심으로 하여 꼬불무늬토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의 방사성탄소연대 값이 B.C. 6000년을 넘어서서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중원지방과 공시성(共時性)을 갖는 신석기문화가 성립되고 있었음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단동대련지구를 중심으로 요동지방의 後窪, 上馬石, 小珠山, 新樂 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꼬불무늬와 미송리의 것이 같다고 보아 동일한 문화권을 설정하였다. 이들 문화 유형을 시아오쮸산-미송리유형이라고 한다.

 

미송리 유적의 신석기시대는 新樂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를 참고하여 B.C. 6000년 기에 해당된다고 편년 되었다. 이것은 신석기시대 상한을 B.C. 5000년으로 보던 종래의 주장에서 1000년을 올린 것이며, 북한의 시기구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까지 신석기 후기(B.C. 3000년 기 후반기)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던 미송리 유적이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 유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미송리 유적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서 한국 신석기문화의 개시연대가 상향조정되고 3개의 문화 유형이 설정되는 대대적인 개편이 있게 된 것이다.

 

위 문화층은 압록강 송화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말기의 유적과 유사하며, 먼저 토기에서 특징 있는 것들이 보인다. 토기는 17점 나왔는데 그 가운데 표주박의 위아래를 잘라놓은 듯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단지들을 이후 미송리형토기(美松里型土器)로 부르게 되었다. 단지 몸체에 고리형 가로 손잡이나 젖꼭지형 손잡이를 대칭으로 1쌍씩 달고 그 사이에는 입술 모양의 장식을 붙인 것도 있다. 가로줄 무늬의 차이 등에 따라 생김새가 다양하다. 미송리형토기는 이후 한반도 북부를 비롯해 요동지역에 까지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져 고조선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이 되었다. 그밖에 청동도끼(銅斧), 돌화살촉(石鏃), 가락바퀴(紡錘車), 뼈바늘, 송곳, 대롱옥(管玉) 등이 나왔으며, 사람 뼈도 여러 명 분이 나왔다. 청동도끼는 날이 넓게 퍼진 부채날도끼(扇形銅斧)이다. 부채날도끼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문화에서 보이는 특징있는 유물 가운데 하나로 강상(崗上) 무덤에서 나온 도끼 거푸집에 새겨진 것과 유사하다. 유적의 연대는 B.C. 8~7세기, 고조선시기에 들어간다.

(출처;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미송리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0662)

 

 

김재윤은 블로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에서 미송리유적이 압록강 유역에서 가장 이른 유적이고, 요동지역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미송리 유적이 위치한 곳은 압록강 유역의 의주시이고 동굴유적이다. 이 유적의 시공간적 위치가 중요한 것은 몇 가지가 있다.

 

 

 

그림 1. 압록강 유역의 유적(1: 신암리, 2: 쌍학리, 3: 반궁리, 4: 도봉리, 5: 용연리, 미송리)

 

 

 

그림 2. 미송리 유적 하층 출토품(3,4번이 지자문토기로 볼 수 있다)

 

1. 언제 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압록강 유역에서 가장 이른 유적이다.

 

먼 소리? 사실 현재 북한의 선사시대 유적은 몇 개가 알려져 있지 않다. 몇 개 되지 않은 것도 1950~60년대 발굴한 유적이 대부분이어서 연대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보고서를 낼 당시에는 나름의 연대추정치가 있다. 미송리 유적의 하층 기원전 6000년 기로 북한에서는 보았다. 근거는 중국의 유적과 비교해서다. 물론 중국에도 그 연대에 대한 개념이 시원치 않을 때이니 당연히 맞지 않다. 그리고 최근에 중국의 연대는 아주 많이 변했다.

 

잘 모른다면서 어떻게 빠르다는 것은 아는 것인가?

 

왜냐하면 자문 토기가 출토되는데, 이건 요동지역에서는 소주산 하층문화(그림 3), 후와 하층 유적등 이른 시기에 확인되는 문양시문방법이기 때문이다. 압록강 유적의 다른 유적에서는 출토되지 않는다. 즉 이 유적보다 늦다. 그리고 이미 신암리 유적과 같은 압록강 유역의 유적은 필자가 정리하여서 대부분 연대는 가늠할 수 있다.

 

 

 

그림 3. 소주산 하층문화의 토기(요동반도 남부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 중에 하나이다.)

 

2. 압록강 유역은 요동지역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길목이다.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흐름을 판단하는 곳이 몇 군데가 있는데, 요동지역과의 연관성은 압록강 유역이다. 아무리 그 이남에서 요동과 관련성 유물이 나온다 해도 이곳이 해결되지 못하면 소용없다.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흐름을 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유적의 연대는 한반도 압록강 유역의 문화적 범위 및 시간적 연대흐름을 알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럼 미송리 유적 하층의 연대를 어떻게 하면 되지 않느냐! 고 질문할 수 있다. 미송리 유적의 하층은 신석기시대 유물이 10점 보고되었다(전부 토기편이다, 그림 2). 이 점이 너무나 아쉽다. 근거가 많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자문토기가 나오는 것은 엄연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으로, 너무 한정적이며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비교가 중요하다.

 

현재 이 부분이 필자의 연구 중에는 빠져 있고, 이 부분을 해결하면, 환단고기 역주본에서 말하는 한국 신석기문화가 요서지역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홍산문화가 한반도와 관련이 있는 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https://eastsearoad.tistory.com/164?category=749380)

 

 

김재윤은 〈6700~5300년 전 압록강문화권...이란 글에서 미송리유적이 6700~6300년 전 및 5500~5300년 전 압록강문화권의 매개가 된 유적이라고 보았다.

 

 

 

1:미송리유적; 2:후와유적; 3:북오둔유적; 4:소주산유적; 5:마성자A; 6:장가보A; 7:북전A; 8:신락유적; 9:북장유적; 10: 좌가산유적; 11:토성리유적 (김재윤 2019에서)

 

위의 지도는 6700~6300년 전(1) 5500~5300년 전(2) 압록강문화권의 범위이다.

그 매개가 된 유적은 압록강유역의 미송리 유적이다.

미송리유적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한 바 있다.

토기가 10점 밖에 없지만, 지정학적 위치에서 놓칠 수 없는 유적이다.

지도에서 1번은 미송리 1기와 같은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이고, 지도 2는 미송리 2기와 같은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이다.

(출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6700~5300년 전 압록강문화권...

https://eastsearoad.tistory.com/353)

 

참고자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미송리유적,

http://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2&idx=1066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https://eastsearoad.tistory.com/164?category=74938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6700~5300년 전 압록강문화권...

https://eastsearoad.tistory.com/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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